보고 끄적 끄적...2018. 12. 14. 08:23

 

<어쩌면 해피엔딩>

 

일시 : 2018.11.13. ~ 2019.02.10.

장소 : 대명문화공장 1관 비발디파크

작,작사 : 박천휴

작,작곡 : 윌 애런슨 (Will Aronson)

음악감독 : 주소연

연출 : 김동연

출연 : 김재범, 문태유, 전성우, 신주협 (올리버) / 최수진, 박지연, 강혜인 (클레어)

        성종완, 양승리, 권동 (제임스)

제작 : 대명문화공장

 

어쩌면...

나는 행복해지고 싶었나보다.

사람이 사는 이유가 행복하기 위해서일텐데,

그렇다면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상태는 아니다.

가끔 아니 자주 그런 생각을 한다.

AI로 사는 게 오히려 편할지도 모르겠다고.

물론 Up-grad나 Power Off에 대한 압박감은 있겠지만

입력된 프로그램을만 제대로 작동하면 내내 평온하지 않을까?

어쩌면... 어쩌면... 말이다.

 

오랫만에 무대에서 본 전성우는

여전히 소년의 이미지가 가득하다

이 녀석은 언제까지 저렇게 풋풋할까 싶을 정도로.

(벌써 서른이라는데...)

그래서 최수진 클레어가 로봇임에도 불구하고 누나처럼 느껴지는게 흠이라면 흠 ^^

최수진 클레어는 김재범 올리버와 합이 더 좋을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

 

사실은...

전미도 클레어가 간절했다.

그녀 특유의 감성과 표정, 눈빛, 모든게 간절했다.

박천휴와 윌 애런슨의 뮤즈 전미도는 알까?

구식 헬퍼봇들이 사는 이 아파트로 빨리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 있다는걸.

전미도 클레어가 돌아와주면 좋겠다.

올리버보다 내가 당장 죽을 것 같으니까.

나도 좀 해피엔딩 좀 해보자.

어쩌면... 어쩌면...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8. 12. 13. 08:24

 

<랭보>

 

시 : 2018.10.13. ~ 2019.01.13.

장소 : 대학로 TOM1관

작가 : 윤희경

작곡 : 민찬홍

음악감독 : 신은경

연출 : 성종완

출연 : 박영수, 정동화, 손승원, 윤소호 (랭보) / 에녹, 김종구, 정상윤 (베를렌느) / 이용규, 정휘, 강은일 (들라에)

제작 : 라이브(주), (주)데블케이필름앤씨어터

 

아르튀르 랭보(1854~1891).

여덞 살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서 스무 살에 절필한 천재 시인.

예전에 대학때 어떤 선배에게 생일 선물로 랭보의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받았었다.

(예전에는 그랬다. 생일에 시집을 선물하고 그랬다.)

어린 마음에 제목이 주는 압박감이 커서 쉽게 들춰보지 못했었다.

비관주의와 종말론의 끝판을 볼 것 같아서...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제목과는 반대로 아름다운 시와 글들이 많아서 깜짝 놀랐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가 뮤지컬로 만들어진다고 해서.

그렇다면 그의 동성연인이었던 폴 베를렌느(1844~1896) 이야기도 빠질 수 없을거고

그의 시들이 어떻게 작품 속에 표현되고 스며들지 궁금했다.

(특히 "모음들"이란 시가 나올지 궁금했는데... 세상에나... 나온다.)

랭보는 시인은 "견자(見者)"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뮤지컬 속에선 "견자(見者)"가 "투시자(透視者)"로 표현된다) 

시인이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게 아니라

왜곡된 시선으로 투시해야 한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마약과 술을 비롯해서 온갖 방탕한 생활을 겪어야만 한다고...

스무살에 절필한 시인의 입에서 나온 말치고는 상당히 파격적이긴 하다.

랭보는 두 권의 책을 썼는데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랭보가 고작 19살에 쓴 책이다.

그 당시 500부를 찍었다는데 대금 미지급으로 인쇄업자가 보관하고 있다가

랭보가 37에 생을 마감하고 2년 뒤 뒤늦게 빛을 보게 된다.

동성연인 베를렌느와 헤어지고 절필을 한 랭보는

(베를렌느는 정말 랭보를 죽이려고 총을 겨눴을까? 나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네덜란드 식민지 부대에 용병으로 있다 탈영하기도 했다.

말년에는 무기 장사와 이것 저것 잡다한 무역상을 하기도 했고

막판엔 골수암에 거려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기까지 한다.

(다리를 절단한 진짜 이유가 "매독"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그 당시 많이 그랬으니까...)

시, 산문, 그리고 그림에도 재능이 있었던 랭보는

확실히 불운한 천재이자 광기의 시인이긴 하다.

어느 시대에 태어났든 순탄하지 못했을 인생이다.

그냥... 다 아프고 가련하다.

랭보도, 베를렌느도.

 

작품은...

기대 이상으로 잘 만들어졌다.

무대를 세 부분으로 나눠 시간, 공간의 구분을 자연스럽게 이끈 것도 아주 좋았고

천천히 바뀌는 무대 조명은 빛도, 색감도 그대로 한 편의 시(詩)였다.

랭보와 베를렌느 두 사람의 시도 이야기 속에 잘 녹아들었고

해설자이자 keyman인 들라에의 존재도 과하지 않고 좋았다.

(개인적으로 해설자가 너무 많이 개입하는걸 좋아하지 않아서...) 

그리고 무엇보다 뮤지컬 넘버들이 너무 좋다.

따로 OST도 발매한다는데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이 있는 넘버들이다.

세 배우의 연기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고

대사톤이 끝장이었다.

그냥 정상윤이 베를렌느인 것 같고, 윤소호가 랭보인 것 같았다.

감정적으로 울컥한 부분들이 많아서 개인적으론 좀 아팠다.

그냥... 뭐 여러가지 것들이 겹쳐져서...

 

랭보가 그랬다.

La vie est aileurs... 라고.

인생은, 여기에 없다.

(어쩌면 정말 그런지도...)

 

* 덕분에 오랫만에 랭보의 시들을 펼쳤다.

  더불어 베를렌느의 시들도.

 

<모음들>  - 랭보

 

검은 A, 흰 E, 붉은 I, 초록 U, 푸른 O, 모음들

내 며칠 너희들의 숨은 탄생을 말하리라.

아(A), 지독한 악취 주변을 윙윙대며

번쩍이는 파리 떼들 뒤덮인 검은 코르셋

 

어둠의 만(灣)으(E), 증기와 장막의 순진함,

그이의 얼음 창(槍), 하얀 왕들, 산형화(散形花)의 소름,

이(I), 자주빛, 각혈,

분노 혹은 참회의 취기속 그 아름다운 입가 웃음.

 

위(U), 순환, 초록빛 바다의 신성한 동요,

짐승들 뿌려진 방목장의 평화,

근면한 이마에 새겨진 연금술

 

오(O), 이상하게 째지는 지상 최고의 나팔,

지상과 천상을 꿰뚫는 고요,

오(O), 오메가, 그 눈의 보랏빛 광선!

 

<감각(Sensation)> - 랭보

 

여름날 푸른 석양녁에 나는 오솔길을 걸어가리라

밀이삭에 찔리며 여린 풀 밟으며,

꿈꾸듯 내딛는 발걸음. 나는 산뜻한 풀잎들을 발에 느끼며,

들바람이 나의 맨머리를 씻게 하리라.

 

아무 말도 하지 않으리,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리,

그러나, 맘 속에 솟아오르는 끝없는 사랑

나는 가리라, 멀리 더 멀리 마치 보헤미안처럼

자연 속을 여인과 함께, 행복에 젖어.

 

<가장 높은 탑의 노래> - 랭보

 

오라, 오라,

도취할 시간이여.

 

얼마나 참았든가!

내 언제까지나 잊었네

공포와 고통도 하늘 높이 떠나갔고

불쾌한 갈증이

내 혈관을 어둡게 하네.

 

오라, 오라,

도취할 시간이여.

 

잊게 되어있고,

더러운 파리떼

기운차게 윙윙거리는데

향과 가라지를

키우고 꽃피우는 들판처럼

 

오라, 오라,

도취할 시간이여.

 

<나의 방랑> - 랭보

 

속이 터진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른 채 나는 떠났다.

나의 외투는 더할 나위 없이 닳아빠져 어쩜 그렇게도 어울리는지!

창궁 아래를 걸어가네. 뮤즈여, 나는 그대의 충복.

오! 라, 라, 내가 꿈꾸었던 것은 눈부신 사랑이었노라.

 

한 벌 밖에 없는 나의 반바지는 커다란 구명이 나고

어린 몽상가인 나는 길을 따라가며 시를 뿌렸다.

나의 여인숙은 큰곰자리,

하늘의 내 별들은 다정하고 부드럽게 살랑거렸다.

 

나는 길가에 앉아 별들이 속삭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 상쾌한 구월의 저녁, 포도주같은

밤이슬 한방울이 이마 위로 떨어진다.

 

환상적인 그림자들의 한가운데서 운을 맞추듯

나는 가슴 가까이에 한쪽 발을 치켜들고

내 닳은 구두의 구두끈을

마치 칠현금을 타듯이 잡아당겼다.

 

<초록> - 베를렌느

 

열매, 꽃 잎, 가지들이 여기 있고.

그리고 오로지 당신만을 향해 고동치는 내 마음이 여기 있고

그대 하얀 두 손으로 찢지는 말아주오.

다만 이 순간 그대 아름다운 두 눈에 부드럽게 담아주오

 

새벽바람 얼굴에 맞으며 달려오느라

온몸이 얼어붙은 이슬방울 채 가시지 않았으니

그대 발치에 지친 몸 누이고

소중한 휴식의 순간에 잠기도록 허락해 주오.

 

그대의 여린 가슴 위에 둥글리도록 해주오.

지난번 입맞춤에 아직도 얼얼한 내 얼굴을,

그리고 이 선한 격정이 가라앉게 그대 달래주오.

그대의 휴식 속에 가만히 잠들 수 있도록.

 

<애수> - 베를렌느

 

장미꽃은 새빨갰었다.

담장의 잎은 시커맸었다.

그리운 이여, 그대가 꼼짝만 하면

나의 절망이 모두 되살아난다.

하늘은 너무나도 푸르고 너무나도 부드럽고

바다는 너무나도 초록이고 공기는 너무나도 달콤하였다.

나는 언제나 두려워한다. 이것이 기다림이라는 것이다.

당신이 무참하게 나를 버리지나 않을까 하고.

옻칠을 한 듯한 호랑가시나무 잎에도

번들거리는 회양목 나무에도

끝없는 광야에도

당신 이외의 모든 것에 나는 진력이 났다

 

<감상적인 산책> - 베를렌느

 

석양이 그 최후의 광선을 내리쬐고 있었다.

그리고 바람은 창백한 수련들을 보듬고 있었다.

커다란 수련들은, 갈대 사이에서

조용한 물위에 슬프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홀로, 내 고통을 산책시키면서

연못을 따라 버드나무 사이를 거닐고 있었다.

그곳에는 희미한 안개가

날개치며 서로 부르는 상오리의 목소리와 함께

울고 절망하는 커다란 유령을 부르고 있었고,

내 고통을 산책시키면서

나는 홀로 버드나무 사이를 걷고 있었다

이윽고 암흑의 짙은 수의가

오더니 익사시켰다

창백한 물결 속에 석양의 마지막 광선을

그리고 갈대 사이의 수련들을,

조용한 물 위의 커다란 수련들을.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8. 12. 12. 08:28

 

<지킬 앤 하이드>

 

시 : 2018.11.13. ~ 2019.05.19.

장소 : 샤롯데 씨어터

원작 : 로버트 스티븐 <지킬 앤 하이드>

극본, 작사 : 레슬리 브리커스 (Leslie Bricusse)

작곡 : 프랭크 와일드혼 (Frank Wildhorn)

연출, 안무 : 데이비드 스완 (David Swan)

음악감독 : 원미솔

출연 : 조승우, 홍광호, 박은태 (지킬&하이드) / 윤공주, 아이비, 해나 (루시) / 이정화, 민경아 (엠마)

        김도형, 이희정 (어터슨) / 김봉환(댄버스 경), 강상범, 홍금단, 이창완, 이상훈, 이용진, 김이삭 외

제작 : (주)오디뮤지컬컴퍼니, 롯데터테인먼트

 

<지킬 앤 하이드>는,

너무 잘 알아서 재미있기도 하고,

또 너무 잘 알아서 어떤 면에서는 재미없는 작품이기도 하다.

<헤드윅> 이후로는 2년 만의 뮤지컬 복귀고,

이 작품으로는 4년 만의 복귀인 조승우.

조승우의 티켓 파워는 이번에도 역시나 당당하고 거침없었다.

드라마와 영화로 숨가쁘게 달려온 조승우의 숨고르기.

뮤지컬이 그에게 그런 의미가 아닐까 싶다.

스스로도 "무대 배우"라 말할 정도니 조승우를 조승우답게 만드는 곳도 "무대"이긴 하다.

 

일단,

오랫만에 봐서 그런지 재미있게 봤다.

특히나 무대가 완전히 리뉴얼돼 새로운 느낌이었고

의상과 조명톤도 조금 달라졌다.

시대배경을 앞서가는 실험실이 살짝 이질적이지만

리뉴얼을 위한 노력의 흔적이니 눈감아 줄 수 있는 정도.

솔직히 이 작품에 관한한 배우의 연기에 대해 언급할 내용은 없다.

누군가는 그러더라.

"지킬 앤 하이드"란 공장에서 찍어낸 것 처럼 다들 잘 한다고.

백 번 공감한다.

그렇다고 기계적이란 뜻은 아니고

다들 기본 그 이상을 매번 해준다.

심지어 신예 루시인 "해나"까지도 기본 이상은 하더라.

(톤과 연기가 살짝 부자연스러운건 어쩔 수 없고...) 

이정화 엠마는 강함이 느껴지는 엠마였고

예상과는 다르게 조승우와의 듀엣이 흔들리는 것 같아 놀랐다.

조승우는...

연기로는 말 할 게 없다.

단지 초연부터 봤던 매니아로서 예전만큼의 파워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도 사실이다.

개인적으론 full power로 질러대는걸 좋아하지 않아서

지금 정도가 파워가 깊이가 딱 좋긴하다.

(홍광호 지킬을 망설이는게 그 놈의 Full Power 때문이라서) 

 

아! 그리고 스트라이드와 스파이더 1인 2역의 이용진.

하이드의 말을 빌려,

"다른 사람일거라 생각했나?" 였다.

특히 스파이더는 역대급.

멋졌다. 정말!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8. 12. 11. 13:13

Story는 늘 흥미롭다.

그게 타인의 이야기일 경우에는 더 그렇고

사랑과 이별에 관한 이야기라면 더욱 더 그렇다.

우리는 결론이 막장이었든 순애보였든 이별에는 뭔가가 있을거라고 짐작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다.

시작도, 끝도 특별함 보다는 평범이 태반이라는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이야기가 궁금한건

일종의 "위로"를 받기 위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들보다는 내 허접한 연애가 조금은 낫지 않나...

하는 소박한 확신, 아니 자기 최면.

그러니까

Story속에 은근슬쩍 내 이야기를 끼워넣으려는 시도다.

애매하고 교묘한 시도.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면서 사는구나...

제 3자의 덤덤한 시선으로 둘러보는 박물관.

"실연"이라고 했을때

우리는 남녀의 사랑만 떠올리지만

이 박물관에서의 broken은 그보다 더 넓은 의미다.

어머니,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기억들까지.

Broken Relationship에는 broken love만 있는건 아닌데

실연... 이라는 우리말 앞에 일종의 선입견이 생겨버리긴 했다.

그런데,

사랑도 실연도 이쯤되면 별 게 아니라서...

 

 

박물관 한켠에 방문객을 위한 방명록이 있길래

나도 따라 몇 자 적었다.

Good bye Love,

Forever 라고.

 

Tomorrow is another day니까.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8. 12. 10. 09:35

Museum of Broken Relationships

이름하여 실연 박물관 혹은 이별 박물관.

이곳을 오고 싶었던 이유는,

story때문이었다.

전시된 물건이 아니라 그 물건에 담긴 이야기.

그게 궁금했다.

원했든, 원치 않았든 이별했을 때는 이유와 사연이 있을테니까.

 

 

이 박물관의 시작은 실제 연인이었던

드라젠 그루비식과 올린카 비스티카에 의해서였단단.

4년 간의 연예를 정리하면서 그들의 만남을 추억하기 위한 의도였다고.

아마도 물고뜯는 이별이 아닌 아름다운 이별이었던 모양이다.

처음엔 두 사람의 물건으로 채워졌었는데

소문을 듣고 세계 각국에서 물건들을 보내와서 지금과 같은 규모가 됐단다. 

요즘 말로 하면 "이별"을 콘텐츠화 시켜 대박을 터뜨린 셈이다.

 

 

입장료는 40쿠나.

유로화는 안되고 only 쿠나만 가능하다.

나라별 무료 안내책자도 있는데 나올 때는 꼭 반납해야한다.

안내 책자를 찾아가며 보다가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아 일단은 스킵했다.

대신 사진으로 찍어서 심심할 때마다 하나하나 해석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타인의 비밀을 몰래 훔쳐보는 느낌이랄까?

어딘지 살짝 미안하기도 하지만

보라고 전시한 것들이니 맘 놓고 story 속으로 들어가보자.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천천히!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8. 12. 7. 08:42

2016년 혼자 크로아티아 여행을 했었으니

자그레브는 두번째 방문이다.

오늘의 목적지는 "실연 박물과"

2년 전에 못가서 이번에는 꼭 가보고 싶었다.

카타르 항공이 슬로베니아는 운행하지 않아서

어차피 자그레브까지 와야 했고 그 기회에 잠깐 들러보자 생각했다.

산마르코 성당 어디쯤이라고 했으니

트랩을 타고 반옐라치치 광장에 내렸다.

한 번 왔었다고 이렇게 또 오니 더 반가웠다.

 

 

실연박물관 가는 길에 우연치 않게

근위대 교대식을 봤다.

전혀 모르고 갔었는데 정어에 거행되는 모양이다.

사람들이 모여있길래 무슨 일인가 싶어 갔더니

근위대 교대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스탠바이 상태.

그 와중에 두번째 군인은 상사의 눈을 피해가며 연신 윙크를 날린다.

그마저도 귀엽다.

아직 어리고 젊은 청년의 페로몬을 누가 막을수 있을까 싶어서...

 

 

아테네, 프라하, 자그레브.

지금까지 세 번의 근위대 교대식을 봤었는데

개인적으론 이곳이 제일 인상 깊었다.

아테네는 코믹과 절도 중간이었고,

프라하는 어마무지한 인파 때문에 사람들 머리만 본 것 같는데

자그레브는 제대로다.

일단 강렬한 붉은 옷이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음악대도 있고, 동원된 군인 수도 제법 많다.

총으로 하는 퍼포먼스는 절도가 넘치고,

군인들 표정과 움직임에도 품위가 느껴진다.

동영상으로 열심히 촬영했건만 용량이 커서 올릴 수 없다는게 함정.

(동영상 편집... 이딴거 할 줄 모르고, 앞으로도 계속 할 줄 모를거고...)

뭐... 대략 캡쳐 사진으로 만족하는 걸로!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8. 12. 6. 08:27

이름에 "사랑"이라는 뜻이 들어있는,

사랑스런 류블라냐에서의 마지막 아침.

6시에 눈을 떴다.

어제 밤엔 아주 절묘한 순간에 숙소로 돌아왔다.

메텔코바와 밤산책을 마치고

근처 마켓에 들러 동생이 부탁한 하리보젤리와 말린 무화과를 샀다.

숙소에 들어와 짐을 내려놓는데 쏴~~아 하는 빗소리가 들렸다.

폭격처럼 퍼붓던 비.

내내 하늘이 잔뜩 흐렸는데 드디어 사단이 났다.

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하마터면 비맞은 생쥐 꼴이 될뻔했는데 타이밍 최고였다.

그리고 오랫만에 빗소리 덕분에 잠도 푹 잤다.

휘성의 노래와 함께.

 

 

오늘은 국경을 넘는 날이다.

슬로베니아 류블라냐에서 크로아티아 자그레브로.

장거리 버스를 타야해서 든든한 조식은 필수다.

또 다시 깨어나는 푸드 파이터의 본능.

나도 정말 궁금하다.

어떻게 저 많은게 다 들어가는지가.

평소에는 잘 안 챙겨먹는 편인데

여행만 가면 어마어마한 조식 대식가가 되는지...

그냥 여행지에서만 발휘되는 괴력이라고 해두자.

숙소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

류블라냐성과 성 니콜라스 대성당의 첩탑을 보니

슬로베니아 일정이 끝났다는게 실감됐다.

늘 그렇듯 아쉽다. 아주 많이.

 

 

오전 8시 30분 자그레브행 버스에 올랐다.

처음 타보는 2층 버스였는데

1층에 빈자리가 없어 2층 오른편 창가쪽에 자리를 잡았다.

두 번의 국경심사로 하차와 승차를 반복했고

버스 안에서 한국행 비행기 웹체크인을 완료했다.

자그레브로 가까워질수록 하늘이 잔뜩 흐려서

캐리어에 넣어버린 우산을 다시 꺼내야하나 몇번 고민하다 깔끔하게 포기했다.

일종의 될대로 되라는 식.

오전 11시 자그레브 버스터미널 도착했다.

오후 2시 30분 이곳에서 공항행 리무진을 타야하니 3시간 30분 정도의 여유시간이 있다.

캐리어를 맡기고(3uro)고 트램티켓(4HRK)도 한 장 샀다.

한 번 왔었다고 방향을 찾는데 막힘이 없다.

2년 전 처음 왔을때만해도 트램을 잘못 탈까봐 몇 번씩 묻고 또 물었었는데....

묘한 기분이 들었다.

2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은 장소에 서있는듯한 느낌.

반갑기도 했고, 기특하기도 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8. 12. 5. 08:35

류블라냐 시청사 근처에 빨간 버스가 서있었다.

만화같은 그림이 그려져 있어서

놀이시설인가?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입구에서 들여다보니 도서관이더라.

세상에나...

이렇게 귀엽고, 이쁘고, 깜찍한 이동 도서관이라니!

 

 

사진 찍어도 되냐고 물었더니 괜찮단다.

일단 책이 엄청나게 많아서 맘에 쏙 들었고,

(내가 읽을 수 있는 책은 한 권도 없겠지만...)

넓찍한 내부도 아늑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

자리잡고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도 있었는데

제일 뒷쪽엔 꼬마녀석 세 명이 앉아 있었다.

책에 빠져 있는 모습,

책을 고르는 모습,

잠까 고개를 들어 이방인을 쳐다보는 모습,

다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불쑥 나타난 낯선 이의 시선이 불편했다면 정말 미안!)

 

 

류블라냐 여행은 프레셰렌 광장이 그 시작이란다.

그래서 마지막 여정도 그곳에서 마무리를 했다.

마지막으로 들어간 성 프란체스카 성당은 예배 준비가 한창이었고

고해소 안으로 한 줄기 빛이 내려가는 모습이 성령의 은사같아 절로 거룩해졌다. 

어둠이 내린 광장은 좀 무서웠고,

시인 프레셰렌 동상도 많이 괴기스럽긴 했지만

(특히 위에 있는 저 여인...)

그 또한 마지막의 여운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세 번을 류블라냐로 돌아왔으니 나름의 "정"이라는 것도 들었을텐데

그 정을 미련없이 떼고 가라는 의미인가보다... 생각했다.

 

긴 하루의 끝과.

슬로베니아 여행의 끝은,

달콤하고 시원한 젤라토로 달랬다.

나쁘지 않은 엔딩 크레딧.

시원하고 또 달콘하여라...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8. 12. 4. 09:25

메텔코바 예술촌(Metelkova Arts Center)

사실 류블라냐에 가면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류불라냐에 매번 돌아올때마다

기차역부터 메텔코바 가는 길까지 쭉 이어지는 그래피티를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그래서 아끼뒀다가 여행 마지막 날에 찾아갔다.

 

 

과거에는 확실히 그랬었는지도 모른다.

슬로베니아의 대표적인 대안 문화공간이었을지도...

하지만,

지금은 솔직히 우범지역이 됐다.

여행책자에도 밤늦은 시간에는 절대로 가지 말란다.

혼자서는 특히나!

이곳에서 불법적인 거래가 많이 이뤄진단다.

심지어 마약가지도...

지금은 자정활동을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는데

아직까지는 좀 무섭긴하다.

하긴 어스름한 초저녁에 혼자 갔으니 무서운게 당연하다.

 

 

젊은 예술가들이 살았을때는

갤러리와 공연장, 클럽 등이 있었다는데

자금은 확실히 음산하고 어둡긴하다.

히피스런 젊은이들이 휘바람을 불며 뭐라고들 하는데

그냥 못들은척 했다.

슬로베니아 말이라 알아듣지도 못했지만

donation이라는 단어도 보이는데

정말 donation을 위한 건지는 좀 의심스럽다.

아무렇지 않은척 둘러보며 사진을 찍긴 했지만

숙소에 돌아와서 확인했보니 엄청 흔들렸더라.

그나마 건진 사진들도 이 모양. 

ㅋㅋ 나... 엄청 쫄았었나보다 ^^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8. 12. 3. 10:19

비오는 류블라냐 거리를 걸었다.

오후 7시가 넘은 시간.

하늘은 흐리지만 날은 아직까지 밝다.

적당히 젖은 거리는 포근했고 비냄새를 품은 공기는 청량했다.

콩크레스니 광장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류블라냐 대학교 정문에 둥그런 명패(?)가 달렸다.

543 do 100

무슨 뜻일까 궁금했지만 알 길이 없었다.

막연한 카운트다운 앞에 완벽한 문맹자가 되버린 나.

광장에서는 한창 공연 준비중이었다.

학생들 작품인것 같은데 제법 규모도 크고 의상도 제대로 준비되있다.

잠깐 머물면서 발레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저 주황색 입은 무용수가 주인공 ^^

근데 주인공이 저렇게 설렁설렁 연습해도 되는건가?

켠디션 조절하는건가....

 

 

저 노란색 건물은 박물관일테고,

슬로베니아 필하모닉 아카데미 건물도 보인다.

건축양식 같은건 1도 모르겠고

이쁜 건물이 눈 앞에 있으니 저절로 보게 되고

보고 있으면 이뻐서 더 보게 된다.

튀는 색도 없도 같은 색도 없다는게 마냥 신기하다.

화창한 날의 류블라냐도 지만

비에 젖은 류블라냐는

전설 같고, 신화 같아서 더 좋았다.

 

용이 사는 도시, 류블라냐 ^^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