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8. 7. 27. 13:17

 

궁금하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왜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인기가 있는지가...

<개미>와 <타나토노트> 까지는 군말없이 인정한다.

두 작품은 놀랍도록 참신하고 흥미로웠다.

그런데 나머지 소설들은...

거대한 소(牛) 같다.

수없는 되새김질에 초록빛 췌장액이 올라올 정도다.

그리고 베르베르는 좋겟다는 부러움도.

잘 만든 작품 몇 편으로 이런 돌려막기가 가능한 것도 놀랍고

그 돌려막기가 매번 성공한다는것도 놀랍다.

이런 글쓰기를 시그니처라고 해야 하나...

 

솔직히 말하면,

읽는 동안 내가 바보가 된 것만 같았다.

어딘지 베르베르에게 농락당하고 있다는 느낌.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간절했다.

그 소설 읽으면서 느꼈던 숱한 전율을

베르베르 소설을 읽으면서는 단 한 번도 못느꼈다.

혹시 킬링 타임 소설이었을까???

설마!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8. 5. 15. 10:09

연명치료 결정법.

일명 웰다잉(Well dying)법으로 불리는 법안이 2016년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리고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올 2월부터 본격 시행이 됐다.

"연명치료"란,

증상 및 고통의 완화에 기대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행해지는 의료행위를 말한다.

심폐소생술, 항암제 투어, 혈액투석, 인공호흡기 착용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생전에 DNR(Do not Resuscitate) 동의서를 미리 작성하는 사람들도 있다.

환자의 자발적인 요구로 

생명의 위급한 상황에서 심폐소생술(CPR) 등의 처치를 받지 않겠다는 서약서.

그러니까 연명치료 결정법은

안락사까지는 아니지만 인간의 존엄사는 인정하겠다는 뜻이다.

 

 

매스컴에 "고독사" 관련 뉴스를 접할때마다 남 일 같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 현재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누군가를 만날 생각 따위 전혀 없고

사교성이 많아 연락을 주고받는 친구들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그마저도 연락을 거의 안해 이 상태라면 향후 몇 년 안에 연락두절이 된대도 이상할게 없다.

심지에 그런 것들에 물안감이나 조바심조차 전혀 없어 

이제라도 열심히 연락을 해봐야겠다는 반성과 다짐을 할 리도 없다.

이래저래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도

나란 인간은 "고독사"하기 딱 좋은 사람이구나 싶다.

 

내내 고민했던 문제인데

<오싱>의 작가 하시다 스가코가 내게 답을 줬다.

지금 당장의 문제는 아니지만

마지막이 다가올 때

고민없이 결정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의료기기에 의지해 생명을 연장하고 싶은 마음.

나 역시 전혀 없으니까.

 

그러니 사는 동안은 스스로 돌보며 잘 살자.

성실하게, 꾸준히, 대단치 않게...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7. 9. 8. 11:57

 

난 김영하의 소설을 정말 좋아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나온 소설들은 장편, 단편을 불구하고 다 읽었다.

심지어 산문집, 여행에세이까지도 다 읽었다.

요즘은 "알쓸신잡"때문에 유명인이 되버린것 같아 개인적으론 속상하지만

보여지는 김영하보다 소설가로서의 김영하의 가치를 더 많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몇 년 전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으면서 받았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빛의 제국>의 충격과는 완전히 다른 충격.

김영하는 천재구나...를 다시 절감케 했던 작품이다.

 

오직 두 사람
아이를 찾습니다
인생의 원점
옥수수와 나
슈트
최은지와 박인수
신의 장난

 

일곱 편의 단편들이 다 아팠다.

특히 <오직 두 사람>은 제목을 배반(?)하는 내용이라 읽으면서 힘들었다.

가족이라는게...

참 힘들다.

힘들지 않아야 하는데 힘들다.

그리고 그 힘듬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잃어버린 아이만 찾으면 모든 불행이 사라지고 "행복"이 펼쳐질거라 믿었는데

십 여 년이 지나 찾은 아이는 가족의 모든 목적과 이유를 말살한다.

화려하게 펼쳐지는 지옥의 향연.

아...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구나...

답답함과 씁쓸함과 막막함.

이 모든 이야기는 전부 다 내 이야기다.

아무래도 김영하는 저 멀리 어딘가에서

나를 꾸준히 그리고 면밀히 지켜보고 있는 모양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7. 9. 7. 15:17

 

내가 이런 말을 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동물탈을 쓰고 우물 속에 웅크리고 앉아 재즈를 들으면서 맥주를 마셔야 할 것만 같다고.

그리고 읽고 난 뒤에는 뭔가 완결되지 못한 찜찜함까지...

 

그런데 이 소설은 어딘지 좀 달랐다.

뭐랄까, 예술의 완벽한 조합이라고 할까!'

회화과 음악 그리고 문학의 완벽한 삼위일체를 보는 느낌이랄까?

게다가 비엔나 여행을 앞둔 내게는 이 책의 내용 일부에 눈이 번쩍 뜨이기도 했다. 

이데와(Ieda)와 메타포(metaphor)의 현현(顯現)이라니...

그것도 그림을 빌려서...

역시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다.

개인적으론 지금까지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다

권 당 600쪽이 넘는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읽어 내려갔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전부가 아닐거란 생각.

시간도 공간도 다르지만 "나"를 공유하는 또 다른 세상.

내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그런 세계가 공존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렇지 않다면 내 삶도 순순히 설명될 수 없으니까...

그러고보니 꼭 IQ84 같네 ^^

 

The other side of the moon

혹은

Two moons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7. 7. 24. 08:09

그러나 겁쟁이가 되기도 쉽지 않았다. 겁쟁이가 되기보다는 영웅이 되기가 훨씬 더 쉬웠다. 영웅이 되려면 잠시 용감해지기만 하면 되었다. - 총을 꺼내고, 폭탄을 던지고, 기폭 장치를 누르고, 독재자를 없애고, 더불어 자기 자신도 없애는 그 순간 동안만. 그러나 겁쟁이가 된다는 것은 평생토록 이어지게 될 길에 발을 들이는 것이었다. 한순간도 쉴 수가 없었다. 스스로에게 변명을 하고, 머뭇거리고, 움츠러들고, 고무장화의 맛, 자신의 타락한, 비천한 상태를 새삼 깨닫게 될 다음 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겁쟁이가 되려면 불굴의 의지와 인내, 변화에 대한 거부가 필요했다 - 이런 것들은 어떤 면에서는 일종의 용기이기도 했다. 그는 혼자 미소를 지으며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아이러니의 즐거움은 아직 그를 버리지 않았다.

 

 

맞는 말이다.

겁쟁이가 되는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평생토록 이어지게 될 길에 발을 들이는 것...

무서운 말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랬다.

번번히 발목을 잡은 구절들 때문에 속도가 나지 않았고

도돌임표라도 만난 것마냥 몇 번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심지어 마지막 몇 장이  남은 지금,

거절이 두려워 고백을 망설이는 사람처럼 서성이고 있다.

 

자 책 표지에 서성이고 있는 사람이.

꼭 나 같다.

아이러니인데...

즐겁지만은 않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7. 7. 6. 08:42

 

제목을 보고 깜짝 놀랐다.

노골적이다 못해 어찌 생각하면 폐륜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질문.

그런데 나는 왜 그렇게까지 놀랐던 걸까?

단순하게 나이 든 부모라면... 그래... 사랑할 수 있겠다.

하지만,

치매를 알고 있다거나, 중한 병을 앓고 있다면

일말의 흔들림없이 부모를 사랑할 수 있을까?

솔직히 나는 도저히 자신이... 없다.

부모가 자식인 나를 더이상 기억하지 못하고

이니 지나버린 과거의 기억만이 유일한 현실이 된다면....

기억에 없는 나는 자식으로서 뭘 할 수 있을까?

결론은,

비참하게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다.

 

<미움 받을 용기>도 그렇고, 이 책도 그렇고

뭔가 엄청나게 대단한 비법과 기술이 있는건 아니다.

하지만 일기에 가까운 그의 글을 읽다보면

이 모든 것들이 무던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여진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걸 받아들이고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이상적인 부모"라는 틀에 미련을 두지 말라고 말한다.

왜 우리 부모님이 이렇게 되었을까 생각하면 절대로 답이 나오지는 않는다고..

 

...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도 사람은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줄 수도, 누군가에 의해 행복해질 수도 없습니다...

... 내가 준 것이 내가 준 사람으로부터 바로 내게 돌아오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돌고 돌아서 내게 돌아올 수도 있고,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돌아오지 않겠지요. 하지만 돌아오지 않는다고, 혹은 돌려주지 못한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그저 하면 됩니다. 인간관계에서는 주는 것만 생각하면 됩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포함해서 돌아올 것 따위는 기대하지 않으면서요 ...

 

그러니 행위가 아니라 존재 자체에 고마워 해야 한다고.

부모님이 가족을 몰라보게 된다고 해도 인간으로서의 부모님의 가치는 변하지 않기에

부모 자식이 아닌 "인간"의 관계에 집중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글을 쓴 작가 자신도 아버지가 초기 치매를 앓고 있었는데 가까이 살면서

아버지 집에서 작업실처럼 글을 쓰면서 간병을 했단다.

그런데 자신이 찾아가면 아버지께선 그렇게 잠만 주무셔서 걱정스러워 아버지께 물었단다.

자신이 와있는게 불편해서 그러시냐고.

아버지의 대답에 내 가슴이 꿍 떨어졌다.

"네가 있어서 안심하고 잘 수 있는 거야."

 

이런 관계였음 좋겟다.

"가족"이라는 건.

엄청나게 거대한걸 해주는게 아니라

존재만으로 안심하고 잘 수 있는 그런 관계.

 

그런데,

그게 참 쉽지 않다.

아무래도 내가 욕심이 너무 많은 모양이다.

사실은,

질문을 조금 바꿔야 할 것 같다.

나이 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가 아니라

나이 들어가는 당신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로.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7. 6. 20. 09:05

책에 대한 책을 읽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서가(書家), 아니 서고(書庫)에 대한 책이다.

책을 소개하는 서평집이었다면 분명히 읽으면서 지루했을텐데

이 책은 읽으면 읽을 수록 놀랍다.

첫장을 넘길 때만해도 65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주눅이 들었었는데

중간 중간 서가를 촬영한 엄청난 사진들과 함께 읽으면서는 지독한 질투심에 빠지게 됐다.

도쿄에 가야할 이유가 생겼다.

도쿄 분쿄구에 위치한 "고양이 빌딩"

믿기지 않을만큼 경이로운 책의 성지.

 

7평 면적이지만 지하 1층에서 지상 3층까지 벽 전체가 책으로 빽빽하다.

어디 벽 뿐인가?

심지어 계단과 화장실, 옥상까지도 다 책이다.

개인이 이렇게 많은 책을 보관하고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책을 보관하기 위한 별도의 개인 서고를 만들었다는건 더 경이롭다.

게다가 고양이빌딩이 책으로 가득 차서

다른 곳에 보관하고 있는 책들도 엄청나단다.

읽는 중에도, 다 읽고 나서도 "이게 정말 실화냐?" 싶다.

책에 미쳐도 단단히 미치지 않고서야...

 

책을 읽고 있으면

내가 이 공간 안에 들어가 있는 것 같다.

마치 다치바나 다카시가 나를 데리고 서가 이곳 저곳 직접 안내해주면서

책을 꺼내들고 하나씩 하나씩 이야기해주는 것 같다.

게다가 와이다 준이치의 사진들은 이 착각에 현실감을 더한다.

상상으로나 가능할 공간이 실제로 내 눈 앞에 펼쳐졌다.

정말 미치겠다.

 

마음같아서는 도둑고양이가 돼서

고양이 빌딩 안에 몰래 숨어들고 싶다.

되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려도

아무 상관없겠다.

진심으로...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7. 2. 21. 08:13

나... 이 책 좀 우습게 생각했다.

실제로 처음 몇 장을 넘길때까지도 가벼운 코믹물이구 그랬다.

익숙하지 않은 작가의 글을 읽을 때,

나는 책 날개에 있는 작가 소개를 일부러 챙기지 않는다.

혹여 그게 선입견을 만들지도 몰르니까. 

그런데 이 책 <82년생 김지영>을 읽으면서는 이례적으로 중간에 작가 소개를 찾아봤다.

PD수첨, 불만제로, 생방송 오늘 아침... 등

작가 조남주는 10년 동안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작가로 일을 했더라.

1978년생.

그녀의 삶은 몇 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내 삶의 시간들과 겹쳐진다.

그러니까 82년생 김지영은,

그녀의 이야기이자 나의 이야기다.

 

재미있고, 뭉클했고, 씁쓸했고, 절망했다.

딸이고, 아내고, 엄마인 여자의 삶이 위대하다는걸 골백번 공감하면서도

평등한 권리와 의미에 대해서는 아직  한결음 뒤쳐지는 느낌적인 느낌을

도저히 무시하지 못하겠다.

모든 여자들 모든 남자들이 다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세상의 모든 김지영을 위해서.

그리고 그 김지영을 조금씩 이해하기 위해서.

 

나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김지영들아!

앞으로 우리 덜 힘들고, 덜 속상하고, 덜 지치면서 살아가자!

그러면서도 마구마구 나대면서 당당한 목소리를 키우면서 그렇게 살자!

정당하고 이유있는 나댐.

우리, 이제 그렇게 살자!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6. 8. 16. 08:12

토요일 퇴근해서 집에 들어가서 

광복절 월요일까지 내내 책을 읽었다.

문유석 판사가 쓴 <개인주의자 선언>과 조정래의 <풀꽃도 꽃이다>

다른듯 닮은 책이었고

책을 다 읽은 지금은 좀 막막하고 답답하다.

그리고 이기적이고 못된 생각이지만 두 가지에 대해 나는 정말 다행이구나 안도했다.

첫째는 이미 학창시절을 다 지나왔다는거,

두번째는 입시스케쥴을 관리할 자식이 없다는거.

세상의 모든 학부모들은 도대체 누굴 위해 살고

세상의 모든 자식들은 누구를 위해 사는 건가?

천륜이 원수가 되는 세상이라니...

살떨리게 무섭고 잔인하게 살벌하다.

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인생을 설계하고 계획한다는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내 맘도 내 맘이 아닌 때가 허다한데...

교육 개혁, 교육 혁신, 바른 교육.

총명탕과 수능주사가 판을 치는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진짜 가능한 일인가 싶다.

그러면서도!

조정래의 글에 나오는 내용이 전부가 아니라는게 더 우울하다.

빙산의 일각.

어떤 면에선 조정래의 글 역시 진실이 아니다.

그래서 정래는 아직 순진하고

이 책은 환상문학이다.

     

 

조정래 소설을 읽는 내내 마음에 채기가 났다,

뭐 이런 말도 안되는 일들이 일상처럼 일어나는 대한민국에 신물이 난다.

책임져야 할 누군가가 있는것도 아니면서 지례 지친다.

다른 한편으로 나역시도 다르지 않았을거란 생각.

나한테 자식이 있었다면 나도 그들처럼 "총명탕"을 대령하고

학원에서 학원으로 아이를 실어나르지 않을 자신이 과연 있을까 싶다.

이게 다 능력이 아니라 신념의 문제라면 좋겠는데...

희망이 희망처럼 보이지 않아 마지막 장을 넘길때까지 막막했다.

 

그 상처를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어>이 조금 다독여줬다.

나 역시 "합리적 개인주의"를 꿈꾸는 사람이다.

사람이 많은 곳은 질색이고

그래서 지하철에서 중간좌석은 앉지 않고 꼭 끝자리를 앉는다.

회식 싫어하고, 명절 싫어하고, 가족모임 싫어하고, 시끄러운거 싫어하고...

타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혼자이길 희망하는 좀 고약한 사람이다.

그래서 주말같은 경우는 퇴근해서 월요일 출근하기전까지

단 한 번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만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혼자서 뭔가를 한다는 데에 두려움도 없고 걱정도 없다.

다행히 혼자있다는게 더 이상 눈치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런 내게도 한 가지 지키고 싶은 원칙같은게 있다.

"후지게 살지 말자!" 라는 거,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절대 후진 선택은 하지 말자는거다.

후져지는 순간 사람이 얼마나 형편없이 무너지는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이 두 책을 읽으면서 다시 다짐했다. .

뭐가 됐든 후지게 살지는 말자!

절대, 절대 그렇게 살지는 말자!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6. 4. 27. 08:27

아주 아주 오래 전에 하퍼 리의 소설 <앵무새 죽이기>를 읽었다.

그리고 영화도 찾아 봤다.

와... 그때 받았던 분노와 절망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리고 생각했었다.

이 책을 쓴 하퍼 리란 작가 평범하게 살기 힘들었을거라고.

실제로 하퍼 리는 <앵무새 죽이기>가 세계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후

더 이상 작품을 발표하지 못하고 은둔생활을 했단다.

(성공이 재능을 제대로 억누른 케이스...)

사실 <파수꾼>은 1930년에 출판된 <앵무새 죽이기>보다 먼저 쓰여진 소설로

<앵무새 죽이기>의 초고이자 습작노트라고 하겠다.

분실된 걸로 알려진 이 원고가 2015년 2월 하퍼 리의 언니가 보관하고 있는 서류 더미에서 발견됐다.

 

미국에서 2015년에 이 작품이 출판됐을때 엄청난 이슈가 됐었다.

선주문이 엄청나기도 했지만

책 속의 인물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의 배신 혹은 변절(?)이 문제가 되면서 선주문 대량 취소 사태까지 발생했다.

그 이유를 정확히 알고 싶다면,

55년 전에 출판된 그녀의 전작 <앵무새 죽이기>를 읽어야만 하지만

어쟀든 20년이라는 시간은...

사람을 변하게 하기에 아주 충분한 시간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나이가 들면 평등을 부르짖던 사람도 어쩔 수 없이 보수쪽으로 기울게 되는건가?

애티커스 처럼....

 

 

누군가 진실에 따라 살아온 사람이라면,

그가 살아온 가치를 우리가 믿어 왔다면,

그런 그가 우리를 실망시킨다면,

그것은 단순히 우리를 경계하게 만드는게 아니라 우리플 파산시키지.

 

이 문장을 읽는데 나도 모르게 숨이 꽉 막혔다.

그럴 것 같다.

양심의 파수꾼이라고 믿었던 존재의 이면을 눈 앞에서 목격하게 된다면.

과연 그게 파산으로 끝이 날까?

그건 한 세계의 완벽한 종말을 뜻한다.

아마도 하퍼 리는 그 시대를 살아오면서 침묵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을테다.

그녀가 차기작을 내놓지 못한건,

그러니까 엄청난 성공이 주는 부담감이 아니라

그녀가 지나온, 그리고 지나가고 있는 시대의 모순에 말문이 막혀서가 아니었을까?

 

이 세상에 하나의 모습만 가지고 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문재는,

그 다른 모습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어떠한 정도의 차이를 두고

얼마나 자주 노출되느냐에 있다.

 

그러니 사람아!

어떤게 자기 본모습인지는 모르겠지만

뭐가 됐든, 누구에게든 절대로 발각되지 마라!

여기 한 세계가  

가차없이 무너지고 있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