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8. 12. 3. 10:19

비오는 류블라냐 거리를 걸었다.

오후 7시가 넘은 시간.

하늘은 흐리지만 날은 아직까지 밝다.

적당히 젖은 거리는 포근했고 비냄새를 품은 공기는 청량했다.

콩크레스니 광장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류블라냐 대학교 정문에 둥그런 명패(?)가 달렸다.

543 do 100

무슨 뜻일까 궁금했지만 알 길이 없었다.

막연한 카운트다운 앞에 완벽한 문맹자가 되버린 나.

광장에서는 한창 공연 준비중이었다.

학생들 작품인것 같은데 제법 규모도 크고 의상도 제대로 준비되있다.

잠깐 머물면서 발레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저 주황색 입은 무용수가 주인공 ^^

근데 주인공이 저렇게 설렁설렁 연습해도 되는건가?

켠디션 조절하는건가....

 

 

저 노란색 건물은 박물관일테고,

슬로베니아 필하모닉 아카데미 건물도 보인다.

건축양식 같은건 1도 모르겠고

이쁜 건물이 눈 앞에 있으니 저절로 보게 되고

보고 있으면 이뻐서 더 보게 된다.

튀는 색도 없도 같은 색도 없다는게 마냥 신기하다.

화창한 날의 류블라냐도 지만

비에 젖은 류블라냐는

전설 같고, 신화 같아서 더 좋았다.

 

용이 사는 도시, 류블라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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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 끄적끄적2018. 11. 16. 17:26

공교롭게도 내가 여행했을때가

류블라냐 축제 기간이었다.

그래서 거리 공연과 소소한 이벤트들을 심심치 않게 봤다.

오픈 키친 마켓을 지나 음악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 걸었더니

시청사 앞에서 거리공연을 하더라.

네 명의 뮤지션이 꾸미는 연주와 노래.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치려고 했는데

노래 실력이 상당하다.

그대로 발이 묶여 한참을 감상했다.

 

 

4인조 밴드의 흥도 흥이지만

무대 앞에서 춤을 추는 꼬마들의 흥이 엄청났다.

밴드도, 아이들도, 아이들의 부모도, 모여있는 사람들도

다 얼굴에 엄마미소를 짓고 있다.

아이들의 흥은,

남들 시선 따위 안중에도 없다는듯 자유로웠다.

그래서 좋았고,

그래서 부러웠다.

 

 

 

말의 언어가 아니라

몸의 언어로 말하는 사람들을 보는건 언제나 수줍다.

그게 노래든, 연주든, 춤이든, 그림이든,

또 다른 무엇이든...

몇 개 단어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내겐

기를 써도 닿을 수 없는 미지의 세계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어쩌면 앞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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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 끄적끄적2018. 11. 15. 15:32

오후 6시.

돌아다니기 딱 좋은 시간이다.

하늘이 흐리긴 하지만 당장 비를 뿌릴 정도는 아니다.

우산을 챙겨들고 호텔을 나섰다.

"The brave men did not kill dragons, The brave men rode them"

그런가????

dragon은 커녕 brave men도 본 적이 없어서...

 

 

사실 내고자 했던 곳은.

류블라냐에 도착한 첫 날 너무 맛있게 먹은 젤라토 가게였다.

밤 늦은 시간에 우연히 들어간 곳이라 가게 이름을 몰라서...

대성당 뒤 어디쯤인인 것 같았는데... 아닌가보다.

결국 못찾았다.

대신 오픈 키친 마켓(Open Kitchen Market)을 찾았다.

찾았다고 표현은... 사실 적절치 않다.

중앙시장 쪽으로 워낙 크게 열려서 못보는게 더 이상하다.

Open Kitchen Market은

3월 중순부터 10월까지 매주 금요일마다 열리는 일종의 food festival이다.

어쩌다보니 류블라냐의 마지막 날이 금요일이어서 마주쳤다.

이런 행운이...

심지어 아무도 대충 만드는 음식도 아니다.

50여 명의 유명 세프가 직접 눈 앞에서 조리해준다.

하긴 유명해도 내게 그들은 무명씨(無名氏)일 뿐이지만.

잘 됐다.

저녁은 여기서 해결하는걸로!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고기를 빼고 찾으니 선택지가 별로 없다.

몇 바퀴 고 돌아 고른 음식은 "팟타이"

고백하자면 내 생애 처음 먹는 팟타이였다.

혹시라도 향신료 냄새가 날까봐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숙주나물에 두부, 새우, 견과류 토핑까지 잔뜩 들어있어서

고기가 별로인 나같은 사람에겐 취향저격 음식.

가격도 5유로라 아주 착했고,

양은 내 기준으론 좀 많은 편이었지만

사람 구경, 음식 구경하면서 천천히 다 먹었.

이번 여행에서 가장 배부르게, 가장 맛있게 먹은 한끼였다.

만약 류블라냐 여행을 계획한다면

금요일 오픈 키친 마켓을 꼭 가자.

다양한 맛과 향이  모여있으니까.

심지어 흥까지 ^^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8. 11. 14. 13:11

포스토이나 동굴에서 캐리어를 끌고

20여 분을 걸어서 도착한 버스정류장.

인터넷상에선15:05. 15:10 분 두 대의 차가 표시되어 있다.

대략은 1시간에 1대 운행하고

류블라냐까지 소요시간은 1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

2번 탑승장 앞에서 20여 분을 기다리니 버스가 도착했다.

기사님께 직접 버스요금(6uro)을 내고 자리에 앉은 시간은 오후 3시 15분.

다 고맙더라.

비가 멈춘 것도, 날이 개인 것도,

기다리지 않고 포스토이나 동굴을 본 것도,

그리고 버스를 오래 기다리지 않은 것까지 다.

 

 

여행은 끝나가고

어느새 세 번째 류블라나행이다.

여행자긴 하지만 이렇게 몇 번번 류블라냐로 돌아오니

제법 귀가(歸家)의 느낌도 들었다.

이런 여행도... 참 괜찮구나... 생각했다.

버스에서 내려 막힘없이 길을 찾아가는 내 모습도

제법 기특했다.

 

 

PARK HOTEL 두번째 투숙이다.

리셉션에서 묻는다.

너 며칠 전에 여기 오지 않았니? 라고...

컴퓨터에 기록된 숙박이력을 보고 건넨 말이었겠지만

영업적인 인삿말조차도 반가웠다.

지난번엔 11층 객실이었는데 이번엔 5층 객실이다.

깔끔하고 단정했고 햇빛이 가득 들어와 밝았다.

오후 5시.

참 좋은 시간이다.

이 좋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생각해봐야겠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8. 11. 13. 11:54

포스토이나 동굴 투어는 1시간 30분 정도 진행된다.

어느 정도는 전기기차를 타고 들어가고

중간부터는 가이드를 따라 단체로 움직이면 된다.

매표소에서 받은 오디오 가이드 기계에 해당 번호를 누르면

내가 있는 곳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오디오 가이드는 물론 유료 ^^

(동굴 투어+오디오 가이드 = 25.80 uro)

 

 

투어가 시작되는 동국의 가장 높은 골고다 언덕부터

스파게티홀, 핑크홀, 화이트홀, 러시안 다리. 피사의 사탑 등등...

거대하게 드리워진 커튼들.

그리고 엄청난 크기의 종류석들과 석순. 석주들.

10년에 0.1m씩 자란다고 했던가?

이곳에서는 시간이라는게 무용해보인다.

공간이... 시간을 삼켜버린 곳.

지금 나는 고래 뱃속에 갇힌 요나가 되버렸다.

조악한 핸드폰으로 아무리 찍어봐도

동굴의 거대함을, 위용을, 신비함을 담아낸다는건 역부족이다.

커다란 동물의 가느다란 터럭 한 올.

그만큼도 불가하다.

 

 

이곳에서만 산다는 인간 물고기,

이놈들은 어두운 곳에서 살기 때문에 눈이 퇴화됐단다.

오래 사는 놈은 100년까지도 살 수 있다는데

컴컴한 곳에서의 100년이라는 삶이

상인지 벌인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물고기에게 "human"이라는 단어를 쓴다는게...

물고기 입장에서는 그다지 달갑지 않을 거라는 생각.

또 나만 했을까???

투어의 마지막은 콘서트홀에서 끝이 난다.

그리고 여지없이 만나는 기념품샾.

 

 

트러플 병에 손이 갔지만

장식장에 있는 트레블이 생각났다.

유통기간이 이미 지난... 그래서 정말 전시품이 되버린 트러플.

올리브유와 페스토, 치즈, 기타등등 기타등등...

(반성하자!)

나오는 길에 스냅사진이 붙어있는걸 봤다.

내가 나를 발견하는게 겁이나서 서둘러 나왔다.

개인적으로 사진 중에서 이런 사진이 제일 무서워서...

 

 

오후 2시 30분,

동굴을 나와 잠시 고민했다.

프레드야마성을 갈지 말지를...

7~9월에는 성까지 가는 무료 셔틀을 운행하지만

나머지 기간엔 개인이 요금을 지불하고 택시를 불러 이동해야만 한다.

매표소에 말하면 불러준다는데

혼자 가는 것도, 다른 사람들 사이에 끼어 가는 것도 썩 내키지 않았다.

게다가 적어도 왕복 3시간 정도 걸릴테니...

아쉽지만 깔끔하게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못볼거라 생각한 포스토이나 동굴을 봤으니

오늘은 이걸로 충분하다고 타협했다.

결정을 했으니

캐리어를 끌고 버스정류장으로 출발!

걸어가면서 내내 생각했다.

기내형 캐리어라 정말 정말 다행이라고!

^^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8. 11. 12. 08:56

포스토이나 정류장에 도착한 시간은 12시 6분.

캐리어를 끌고 서둘러 길을 찾았다.

만약 오후 1시 관람을 놓치게되면,

꼼짝없이 1시간을 기다려야해서 마음이 급하다.

그나마 다행인건,

5월부터 8월까지는 매시 정각마다 들어갈 수 있다는거다.

나머지 기간엔 하루에 3~4회만 오픈해서

시간을 놓치거나 관람객이 넘쳐나면 못 볼 수 있다.

끌고 온 캐리어는 매표소 사무실에 맡겨놨다.

심지어 무료 ^^ 

(But! 분실시 책임은 안 짐!)

 

 

포스토이나 동굴은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석회 동굴이다.

우리나라에도 석회동굴이 꽤 있긴한데

사실....난 석회동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기대가 컸다.

열차에 탔을 때 앞사람 머리에 가려지면 안보일것 같아서

들어가면 맹 앞줄에 앉아야겠다 생각했다.

오른쪽 큰 입구가 들어가는 곳이고,

왼쪽 작은 입구가 나오는 곳.

출구 위에 새겨진 "1819"는 이 동굴이 사람들에게 공개된 해란다.

전기조명이 설치된건 1884년.

관람객을 위한 최초의 동굴열차는 1872년.

지금같은 전기기관차로 바뀐건 1945년.

(뭐, 중요한건 아니고...)

 

 

바라던데로 열차 맨 앞에 앉았다.

모르는 한 가족과 다정히...

일단 맨 앞 줄은 시야가 트여 확실히 좋았다.

계속 타고 가는건 아니라 별 의미는 없긴 하지만.)

바람막이 점퍼를 챙겨입은건 신의 한수.

8부 바지에 맨발 샌들이라 다리쪽은 극지대를 경험했다.

그래도 1시간 정도는 참을 수 있지 싶다.

(1시간 후 동태가 되버렸지만...)

 

 

고백하면....

혼자라서 많이 무서웠다.

나처럼 혼자 온 사람은 없는 것 같았고

주위는 어둡고, 기온은 차갑고...

그나마 한국어 오디오가 있어 위로가 됐.

아마도 혼자 들어가라면

동굴 안이 아무리 장관이라해도

절대, 절대, 절대 못들어왔을 것 같다.

실은 내가 엄청난 겁장이라서...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8. 11. 9. 13:32

오전 8시 15분.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기다렸다는듯이 비가 쏟아진다.

짐을 줄이기 위해 컵라면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비 내리는 아침.

방 안에서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비의 모습은 더없이 좋지만,

잠시 뒤 저 빗속을 뚫고 버스를 타러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심난해진다.

이런 날엔 기내형 캐리어도 거대한 산처럼 느껴진다.

 

 

비는 그치지 않고

오히려 천둥번개까지 더해져 더 요란해졌다.

게다가 방문 열쇠는 끝까지 나를 괴롭힐 작정을 했는지 도무지 빠질 기미가 없다.

호스트의 방문은 굳게 닫혀있고

문을 두드려 깨우는게 맞는건지도 모르겠고...

결국 열쇠를 방문에 꽂아 놓은채 게스트하우스를 나왔다.

(인사도 못하고 나온게 지금도 영 찜찜하다)

30여분을 기다려 10시 10분 류블라냐행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 탄 사람은 나까지 5명.

비가 그치지 않을 것 같아 류블라냐까지 가는 요금(11.30uro)으로 계산했다.

 

 

개일것 같지 않은 날씨였는데 어느 틈에 거짓말처럼 개였다.

버라이어티한 슬로베니아의 6월.

더불에 내 일정도 다아니믹하게 즉석에서 변경된다.

류블라냐가 아니라 포스토이나 동굴로.

정오를 살짝 넘겨 포스토이나 터미널에 도착했다.

혼자 캐리어를 끌고 동굴을 찾아 가는 길은

살짝 무섭기도, 청승맞기도 했지만 길이 예뻐서 다 참을 수 있었다.

그리고... 물론 헤맸다.

조금보다 많이...

목적지를 단번에 찾아가는 일.

내겐 아마도 영영 불가능한 일이지 싶다.

하지만 길치의 운치(韻致)라는 것도 분명히 있다...라고 말한다면...

너무 없어보일까?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8. 11. 8. 13:45

바람이 엄청났다.

가만히 서있어도 몸이 이리저리 떠밀릴 정도다.

사정없이 휘청이는 몸.

물건들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고정하지 않은 화분들이 쉽게 내동댕이쳐졌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퍼부을 기세다.

잔득 흐리고, 잔득 낮고...

그래도 일단은 버텨본다.

피란의 파도를 다시 볼 순 없을테니까. 

 

 

 

바람소리.

파도 소리.

파도가 제법 높다.

쉽게 제방을 넘나든다.

두어걸음 떨어졌는데도 물이 채찍처럼 날아든다.

하지만 그 날카로움조차도 마냥 좋다.

왜냐하면.

떠나야 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니까.

남아있는 사람들은...

참 좋겠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8. 11. 7. 09:07

어쩌면...

나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다.

아니 돌아오더라도

여기 아닌 다른 곳으로 갔어야 했다.

 

 

프라다 칼로도 그랬던걸까?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일기장에 이 글을 쓰는 프라다 칼로의 마음이...

읽힌다.

 

 

그래,

나는 그날 저기 골목 어디쯤에서

그대로 숨어버려야했다.

왜 그렇게 안했을까....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8. 11. 6. 16:28

새벽 5시쯤에 일어났다.

창문을 열고 바깥을 살펴보니

하늘은 잔득 흐렸고 바람 심상치 않다.

금방이라도 장대비가 퍼부을것 같은 날씨라

아침산책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라지만 이곳까지 와서 방에만 있는건 아닌것 같다.

비를 만나든, 바람을 만나든, 둘을 다 만나든,

일단 나가기로 결정했다.

 

 

사람이 거의 없는 길은.

아직 깨지 않은 꿈같다.

아주 작은 꿈.

조그마한 소리에도 소스라치며 눈을 뜰 것만 같은 그런...

그렇게 깨어질 얋고 선한 적막이

나는 참 좋다.

 

바람이 불어도,

하늘이 잔득 흐려도,

이곳은,

이곳에 있는 나는 거짓말처럼 고요하다.

믿겨지지 않을 만큼...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