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파란만장했던 여행
이번 여행은 처음부터 삐걱대기 시작했다.
기상악화로 경유지 네덜란드 스키폴 공항에서 발이 묶었고
대체 항공이었던 에어 프랑스도 드골 공항에서 딜레이가 생겨
예정보다 8~9시간 늦게 베니스에 도착했었다.
베니스 일정 하루가 그대로 날아가고
온라인으로 예약한 티켓을 날려버리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았다.
떠나왔으니까.
도착했으니까.
그런데 이번엔 프라하 공항에서 또 다시 문제가 생겼다.
오버부킹으로 비행기를 못타는 사태 발생.
(하지만 항공사는 절대 오버부킹했노라 실토하지 않는다)
그걸 나는 공항에 도착해서야 알았다.
전날 메일로 내용을 보냈줬다는데 미처 확인을 못했다.
그런데 확인할 수도 없겠더라.
왜 그랬는지는 전혀 기억은 안나지만
외국에서 로그인이 아예 안되게 메일 설정을 해놨더라.
확인을 했더라면 호텔을 하루 더 연장하고
의식주에 쓴 하루 비용 일체를 항공사에 청구하면 됐을텐데...
(실제로 돌아와서 KLM 항공에 메일을 보내 보상을 받았다.
1인 당 항공료 600유로 씩과 그날 하루 우리가 쓴 비용 모두)
다시 호텔로 갈까 하다가 어찌어찌 공항에서 버티기에 들어갔다.
처음엔 잘 몰라서 노숙 비슷한걸 하다가
체코 공항 내에 Rest & Fun center가 있다는걸 알게 됐다.
자고 있는 조카를 깨워 family room으로 들어갔다.
숙박은48시간 안에 예약을 해야 한대서 599czk를 지불하고 6시간을 rent했다.
샤워시설도 갖춘 곳이라 씻을 수도 있다.
동생과 조카는 샤워 후 침대에서 잠깐 눈을 붙였고
나는 이 모든게 미안해서 혼자 자책하고 또 자책했다.
나중에 조카녀석은 이것도 재미있었다고 하더라.
공항에 이런 시설이 있는 줄 몰랐다고 신기해다고...
(땡큐, 조카!)
이날의 메모를 찾아봤다.
"우여곡절 끝에 비행기를 기다리는 중.
또 다시 20분 딜레이.
이 여행이... 끝이 나긴 할까?"
많이 지쳤었나보다.
그래도 마지막 문구는 반전이었다.
"기다림에 신물이 날 지경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음 여행을 꿈꾸고 있다..."
누군가 그랬다.
여행이란 서로 다른 종류의 허기를 채우는 일이라고.
그래서 세계 각지의 공항에는 날마다 섭식장애자들이 모여든다고.
일종의 난치(難治)라 하겠다.
블치(不治)면 더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