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1. 3. 17. 05:46

윤대녕의 글을 읽고 있으면 온 몸이 싸늘해진다.
김훈의 그것과는 또 다른 싸늘함.
김훈의 소설 속에 바람을 읽을 수 있다면
윤대녕의 소설 속에는 폭설을 읽을 수 있다.
쓸어도 쓸어도 집요하게 다시 쌓이는 거침없는 하얀 눈발.
그의 소설은 세상의 모든 길을 묻은 길고 오랜 폭설,
그 하얀 풍경(설경)이 담긴 오래된 묵화같다.
그의 소설 속에는 그 폭설을 뚫고 시간을 천천히 통과하는 사람이 있다.
그쪽에서 이쪽으로 찾아오는 그런 시간, 그리고 그런 사람.
동시에 찾아오는 그 두가지를 대면하는 건
오래오래 침묵하게 하고, 오래오래 집중하게 한다.
그의 글들은 앞으로도 얼마나 더 그림같을 것인가!!!
내게 그의 글은 바로 "옛날 영화"다.


연(鳶)
제비를 기르다
탱자
편백나무숲 쪽으로
고래등
낙타 주머니
못구멍
마루 밑 이야기


윤대녕의 네 번째 소설집엔 담긴 8편의 중,단편의 그림들.
(그의 소설은 그림처럼 읽힌다. 그것도 아주 또박또박...)
이 그림들을 읽으면서
나는 책 속에 있는 인물들이 다 내 오랜 피붙이같이 마다마디가 저릿했다.
피붙이에 대한 이야기를 풍문(風聞)으로 듣는 건 또 얼마나 괴로운 일이던가! 
인간사(人間史)!
윤대녕의 단편들에도 장편에서처럼 "시간"이 보인다.
그대로 멈춰서 현재까지 이어지는 시간.
혹은 상관있어야 하는데 부러 무시하고 계속 흘러가는 시간.
그 시간속에 그들이 있다
..... 낮에 잠깐 열어두었던 창문을 닫고 집안으로 들어가는 여자처럼 보였다. 이미 굳어버린 콘크리트 반죽처럼 도대체 아무 표정이 없는 ......  그들은
이렇게 삶이 뜻하지 않은 각도로 인생을 바꿔놓은 사람들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일이 어떤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계기로 작용해 생의 전모를 바꿔놓는 수가 종종 있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삶의 원리이자 저마다 이면에 감춰진 속박이자 굴레이기도 하다.

생에는 화해할 수 없는 관계라는 것도 엄연히 존재하게 마련이란다.
그걸 인정하면 악마같던 삶이 관대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고...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선 오래된 작부집의 늙어버린 문희나 고래등을 만든 아버지처럼
많은 시간들이 더 지나야만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나?
사람은 정화되지 않으면 나이를 먹을 수 없다는데...

윤대녕의 단편 속에 담긴 한 사람의
혹은 한 가정의 전 생애를 들여다보는 일은,
마치 누군가 내 등에 대고 직접 망치를 치는 것처럼 뜻밖의 고통이었다.
어이없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찌할 수도 없는 고통.
윤대녕이 말했다.
...... 나는 '그 모든 어찌할 수 없음'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그리움을 자주 체험했다. 삶의 정체는 결국 그리움이었을까? ..... 나는 문학이 왜 내게 문학이어야만 하는 이유를 새삼 절실하게 깨달았다. 그 어찌할 수 없는 그리움들을 밖으로 떨쳐내기 위해서라도 나는 또한 쓰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삶이 계속되는 한 그리움은 계속될 것이고 또한 누군가 조용히 숨어 글을 바라고 쓰는 일도 계속될 것이다 .....


그리고 누군가는 조용히 숨어 
시간이 담긴 윤대녕의 그림들을 또박또박 읽어나갈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날 문득,
이쪽과 저쪽의 시간이 서로 만나지는 날이 올지도...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7. 19. 06:11
두 권의 소설을 읽다.
<추락천사>라는 미국 작가의 책과 베스트셀러 작기인 김진명의 <최후의 금서>.
두 권을 읽었는데도 별 할 말이 없어 막막하다.
이런 책을 만나면...
참 당혹스럽다.
분명히 읽긴 했는데 또 분명히 할 말이 없는 책.



<추락천사>
이번엔 뱀파이어와 인간과의 사랑이 아니라
더 발전(?)해서 천사와 인간과의 사랑이다.
그리고 이 책은 확실이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아류작이다.
전체적인 분위기도 그렇고 여자 주인공의 나이가 17살이라는 것도 그렇고
남자 주인공이 불멸이라는 설정도 그렇고, 이야기 전계(삼각관계)도 그렇고,
완전히 쌍둥이 소설이다.
단지 주인공들의 이름과 천사냐 뱀파이어냐의 차이만 있을 뿐.
게다가 이 소설도 트와일라잇 시리즈처럼 총 4부작이다.
(우리나라엔 아직 1권만 번역된 상태다. 다음 편의 제목은 Torment, 고통이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는 출판되자마자 이미 월트 디즈니에서 영화 판권을 계약했단다.
그런 걸 보면 아무래도 미국이라는 나라가 퍽이나 관대(?)한 나라처럼 느껴진다.
책에 대해 할 말은 이게 전부다. ㅋㅋ



또 다시 김진명이다.
이 양반 참 부지런히 그리고 참 쉽게 글 쓰는 것 같다.
좋은 재료를 가지고 왜 매번 그러실까???
인류의 위대한 문명을 만든 수메르인의 뿌리가 한민족이라는 사실이
숫자 13의 수수께끼를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알아가게 된다.
그 과정 속에서 현실적이지 못한 인물들이 너무 많이 등장하고
프리미이슨애 환인교에 경전으로 알려진 카빌라와 천부경의 등장까지
참 다국적이고 버라이어티하게 이동한다.
게다가 자본을 통해 세계와 인류을 지배하겠다는 시도를
찾아낸 최후의 경전으로 인해 멈추게 된다는 설정은
로보트 태권 브이 보다 더 공상과학적이다.
도저히 한 마디 안 할 수 없다.
소설은 소설일 뿐, 오해하지 말자!
오랫만이다.
책 읽고 참 할 말 없어지기는...

이렇게 두 책을 묶어 놓으니까 참 모양새가...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1. 26. 06:23
제시 김. 그리고 김호경.
대한민국의 작은 도시 익산의 고교생 김호경.
부모의 오래고 깊은 불화와 학교 생활 비적응자였던,
스스로 고교를 자퇴함으로써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기로 작정한 17세 소년이
지금은 제시 김이 되어
세계 최고의 병원 존스홉킨스 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 과정을 밟고 있다.



이 나이에 읽기엔 좀 민망한 책이긴 하지만
(청소년 권장도서 같은 느낌...)
그의 독종 기질엔 박수를 보낸다.
우산을 살 돈을 아끼기 위해 비를 맞고 다녀야 했고
점심을 먹을 돈이 없어 졸졸 굶으며 공부를 해야 했던 청년.
스스로 선택한 두 번째 인생을 위해
그는 오늘 하루가 마지막 날인 것 처럼 100% 노력을 기울였단다
카르페 디엠!
그 결과 평균 4.0이라는 성적으로 지역전문대학을 졸업해
UCLA에 들어가서는는 만점에 가까운 학점을 받아 최우등생(숨마 쿰 라우데)으로 졸업한다.
그리고 뒤이에 UCS 의대로.
그곳에서도 제시 김은
전미 응급의학 임상 국가고시에서 3년 연속 존스홉킨스 역대 최고 점수를 받아 신화가 된다.



미국 대학 중에서 의대는 공부하기가 가장 어럽기로 유명하단다.
그는 일주일에 6일, 하루 열여섯 시간을 공부에 투자하고.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교실, 병원, 아니면 도서실에서 보낸다.
학업에 집중하면서도 두 개의 활동을 잊지 않았다.
달리기와 자원봉사였다.
......나에게 고통과 자유는 음과 양처럼 서로 반대편에 서 있는 동시에 서로를 포용하는 두 개의 원리다. 어떤 때는 섞이고 어떤 때는 분리되면서 내 삶에서 떠나지 않았다. 달리기를 하면서 인생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고통과 자유의 법칙을 여실히 깨달았다. 자유에 대한 갈망에는 반드시 고통이 따르고 고통을 이겨내야만 자유를 얻을 수 있다. 달리는 동안 내가 사용한 MP3에는 "고통에서 자유를"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또한 나는 한쪽에는 "고통", 한쪽에는 "자유"라는 글귀가 새겨진 달리기용 신발을 신고 달린다.....



그는 이 책을 자신처럼 힘들어하는 젊은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단다.
이미 잘하고 있고 굳건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결국 성공할테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도움과 격려가 필요하다고...
최악의 문제아라고 해도 올바른 동기, 적절한 지원, 진심 어린 격려,
그리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자신이 원하는 일을 성취할 수 있는,
상상할 수 없는 잠재력이 누구에게나 있다고 그는 믿는단다.
그는 자신은 결코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한다.
다만 자신이 하는 일을 위해 개인적인 욕구를 희생했고
모든 순간순간 엄청난 열정과 노력을 쏟아 부었을 뿐이라고...
책을 통해 서른의 자신의 인생에 대해
이렇게 자신감있는 말을 할 수 있는 그가 진심으로 부럽고 존경스럽다.
나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는가?
책을 덮은 지금 그의 열정이 칼날처럼 나를 향하고 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찍고 끄적 끄적...2009. 5. 17. 22:35
아무리 완벽한 날이라도
언제나
그 끝은 나게 되어 있고...



한쪽이 욕망으로
괴로울 때,
다른 한쪽은 고통으로
똑같이 괴롭고....



모든 규칙에 맞설 용기 !
그러나,
도를 넘어서면
용기는
광기로 돌아서고......



허락될 수 없는 것을 향한
중독된 탐닉,
결코
단 한 번도 채워지지 않을
지독한 허기.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