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7. 11. 17. 08:50

 

<빈센트 반 고흐>

 

일시 : 2017.11.04. ~ 2019.01.28.

장소 :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극본 : 최유선

작곡, 음악감독 : 선우정아

연출 : 김규정

영상디자인 : 고주원 / 영상감독 : 정혜정

출연 : 박한근, 이준혁, 김경수, 조상웅 (빈센트 반 고흐) / 김태훈, 임강성, 박유덕, 유승현 (테호 반 고흐)

제작 : HJ 컬쳐

 

내가 유럽 여행시 네덜란드 항공(KLM)을 타는 이유는 딱 하나다.

혹시나 경유시간에 고흐 박물관을 다녀올 수 있을까 싶어서...

하지만 불행히도 지금까지 그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 여행에서 암스테르담에서 그렇게 오래 기다릴 줄 알았다면 빗 속을 뚫고서라도 다녀왔을텐데...)

그 헛헛함을 달래려고 이 뮤지컬을 보러 갔다.

(이유도 참...)

초연부터 호평을 받았고

재연에 이어 중국과 일본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단다.

이번이 세번째 공연.

그런데 이 작품...

정말 잘 만들었다.

무대도, 음악도, 음향도, 영상도, 조명도, 연출력도,  스토리도, 배우들 연기까지도 모든게 다.

고흐의 마지막 대사 딱 그대로다.

"좋아. 완벽해!"

그림을 그리워하다 그 그리움을 그림으로 그린 화가 고흐.

 

 

고흐는...

행복했겠다.

그리고 그만큼 아프고 힘들었겠다.

그 마음이 느껴져 고흐의 그림 앞에선 늘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황금빛 밀밭의 색에, 반짝이는 밤하늘 별빛에, 휘몰아치는 초록의 나무에,

그 모든 감정들이 다 담겨있다.

그래서 감정적으로 더 크게 다가왔던 작품.

 

배우들의 연기는 아름다웠다.

스킬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작품과 인물에 접근하는 방식이 간곡했다.

이런 배우들을 보면...

사랑이 마구마구 샘솟는다.

한 발의 총성, 바람 가득한 황금빛 밀밭 위로 날아오르는 검은 까마귀.

그리고 마지막까지 무대를 가득 채운 고흐의 그림들.

가슴이 사정없이 무너졌다.

쿵.쿵.쿵...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5. 12. 1. 08:10

 

 

<터미널>

 

일시 : 2015.11.25. ~ 2016.01.10.

장소 :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극작 : 창작집단 독(讀)

무대 : 김종석

연출 : 전인철

출연 : 권귀분, 정수영, 구도균, 우현주, 김태근, 김태훈, 김주완, 안혜경, 이창훈, 정재은

제작 : LG아트센터

 

창작집단 독(讀)은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 출신 작가들의 모임이다.

2013년 프레젝트박스 Seeya에서 이들이<터미널>이란 제목으로 9 편의 옴니버스 연극을 올렸었다.

그때 입소문이 워낙 자자해서 보고 싶어했었는데 기회가 닿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대학로에서 이 작품이 올라온단다.

2013년 작품 중 완성도가 높았던 3편(소, 전하지 못한 인사, 러브 소 스윗)의 에피소드와

새롭게 선보이는 6편의 에피소드들과 함께.

게다가 내가 너무나 좋아하고 사랑하는 극단 맨씨어터와의 협업이라니 이 얼마나 좋은가!

9편의 에피소드가 하루에 다 올려지는게 아니라

중복되지 않게 조정하는게 쉽지 않지만 일단 다섯 편의 에피소드를 확인했다.

 

내가 이미 너였을때 - 박춘근 作

거짓말 - 김현우 作

소 - 천정완 作

망각이 진화를 결정한다 - 고재귀 作

가족여행 - 조인숙 作

 

첫관람에서 만난 다섯 편의 에피소드는

작품 자체가 너무 좋았고,

출연 배우들은 그보다 더 좋았고,

배우들의 연기는 그보다 더 더 더 좋았다. 

가장 인상깊었던 에피소드는 <소(牛)>와 <망각이 진화를 결정한다>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에피소드 <소(牛)>는 비참했고

<망각이 진화를 결정한다>는 잔인했다.

돼지처럼 먹고, 개처럼 자고, 소처럼 일하다 소가 되버린 아버지.

그리고 소가 된 아버지를 팔아 그 돈을 사이좋게 나눈 둘째 아들과 막내딸.

그 둘은 서서히 소로 변해가는 장남이 소가 되는 날 다시 만나기로 한다.

"늬들이 아무리 지랄발광을 해도 늬들도 결국은 소가 된다!".

아니라고 부정할 수가 없어서 비참했다.

 

pure human, less than half cyborg, more than half cyborg.

100년 후의 미래가 에피소드 <망각이 진화를 결정한다>의 같다면,

비극일까? 희극일까?

그렇다면 나는 어떤 인간의 유형이길 원할까?

기억메모리칩으로 타인의 기억을 경험하고

유한한 장기를 티타늄 장기로 교환하고

간직하고 싶지 않은 기억 따윈 델리트키로 삭제해서 클린화시키고...

망각이 무서운건,

그 자체가 이미 너무 크고 완강한 욕망이기 때문이다.

그냥 모든 순간과 장면이 잔인하고 끔찍했다.

그게 미래의 모습이 아니라 지금의 모습인것만 같아서 무서웠다.

 

가볍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하나 같이 묵직하다.

누군가의 평처럼 "짧고 굵다"라는 표현이 적합한 적품이다.

웃고 있지만 웃는게 아니고.

슬프지만 울 수가 없더라.

머리속에 다섯 편의 이야기가 그대로 대롱대롱 걸려버렸다.

유쾌하지 않다.

하지만 무시할 수도 없다.

결국 오도 가도 못하고 

그대로 "터미널"에 발이 묶여 버렸다.

 

어디로 가야 하나...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5. 10. 5. 07:44

<에쿠우스>

 

일시 : 2015.09.04. ~ 2015.12.01.

장소 :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

극본 : 피터쉐퍼

번역 : 신정옥 

연출 : 이한승

출연 : 안석환, 김태훈 (다이사트) / 남윤호, 서영주 (알런)

        박서연, 유지은 (질) / 유정기, 서광일 (프랑크) / 차유경, 이양숙

        노상원, 은경균, 조민교, 김태완, 임동현, 김재훈, 김성호 

제작 : 극단 실험극장

 

<에쿠우스>는 2005년 김영민 알런, 남명렬 다이사트로 처음 본 이후 재공연될 때마다 한 번씩은 꼭 봤던 작품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005년만큼의 강렬함을 그 이후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해 점점 더 갈증만 커져가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솔직히 이번 시즌 <에쿠우스>는 그냥 넘길 생각이었다.

10대 알런 서영주도, 유인촌 아들 남윤호 알런도 그다지 끌리지 않았지만

2014년과 다이사트 박사가 동일해서 좀 망설여졌다.

김태훈 배우가 기대보다 좀 별로여서...

그런데...

역시 <에쿠우스>는 도저히 외면이 안되는 작품인가보다.

결국 봤다.

알런이 좀 고민이 되긴 했는데 평이 좋은 남윤호로,

다이사트는 딕션과 톤을 무시할 순 없어서 2014년 그대로 김태훈을 선택했다.

 

결론은,

좋았다.

특히 다이사트 김태훈이 2014년과 너무 많이 달라서 깜짝 놀랐다.

딕션과 템포도 너무 좋았고 전체적인 톤과 연기가 미치도록 좋았다.

2014년에는 후반부로 갈수록 집중력이 흐려졌었는데

이번 관람에서는 전혀 그렇치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다이사트에 몰입하고 공감하게 만들더라.

뭐랄까, 작품 전체에 김태훈의 아우리가 작용하는 느낌.

심지어 내가 알런인것처럼 느껴지더라.

(실제로 알런에게 최면을 거는 장면에서는 나도 그대로 눈을 떴다 감았다를 반복했다)

남윤호 알런은,

딕션이 선명하지 않았고 템포가 살짝 빨랐다.

그래도 1막 마지막 장면인 하하의 들판은 그야말로 거침이 없었다.

순식간에 휘몰아치는 폭풍 같더라.

 

그리고 이 작품의 숨은 주인공 너제트 은경균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더불에 말(馬)로 분한 여섯 명의 배우들에게도. 

이들이 표현한 "하하의 들판"은 압권이었다..

마치 주술에 걸리는 느낌이었고.

심지어는 섬득한 귀기(鬼氣) 비슷한 것까지도 느껴졌다.

이 작품을 볼 때마다 말 역할을 하는 배우들을 보면서 늘 안스러웠는데

이날은 전혀 그런 생각이 안들만큼 모든 것들을 압도했다.

이 일곱 명의 배우들이야말로 정말 가치있는 배역이었음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이들이 아니었다면 알런도, 다이사트도 아무 소용이 없겠더라.

공연이 끝나고 나오는데 다이사트의 대사가 이 날 따라 자꾸 귓가에 맴돌았다.

"이런 터무니없는 일 가운데 내가 마냥 생각해 보는것은 말에 대해서 입니다.

 소년이 아니라 말..."

 

나의 열정은...

파괴되었는가!

그렇다면 나는 구원이 된 것인가!

커다란 말머리를...

내가 지금 뒤집어 쓰고 있다.

어쩌면 당분간 에쿠이테이션 상태에 머물게 될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5. 5. 12. 07:59

 

<레드>

 

일시 : 2015.05.03. ~ 2015.05.31.

장소 :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

극본 : 존 로건 (John Logan)

무대 : 여신동

연출 : 김태훈

출연 : 정보석, 한명구 (Mark Rothko) / 박은석, 박정복 (Ken)

주최 : 신시컴퍼니

 

많이 놀랐다.

마크 로스코(Mark Rothko)였고, 연극 레드(Red)였다.

게다가 한명구와 박은석이었다.

그런데 왜 강렬하지도, 치열하지도 않았을까?

이유가 뭘까 혼자서 혼란스러워 하는 중이다.

동국대학교 이해랑예술극장에서의 초연과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재연을 보면서 미학적인 아름다움에 경의롭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대사 하나 하나가 전부 클라세가 되어 가슴속으로 담겼는데 즈금의 <레드>는 아직은 그렇지 않다.

역시나 <레드>는 쉽지 않는 텍스트로구나.. 절감했다.

연출도 김태훈이었고 무대도 여신동이 맞는데 왜 이런 이질감이 느껴졌을까?

그런 생각을 들더라.

먄약에 내가 초연과 재연을 보지 않고 지금 이 작품을 처음 보는 거라면 어땠을까?

 

고백컨데...

이 작품에서 배우 강신일의 존재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거대했고 지대했다.

작품의 무게감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게 믿어지지 않는다.

강신일은 로스코 자체였고,

로스코는 강신일로 인해 다시 재현됐었다.

강신일 로스코와 강필석 켄의 갈등은 다툼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소신을 건 치열한 논쟁이었다.

두 사람이 보여준 세대와 세대의 갈등은

마크 로스코를 켄으로, 켄을 마크 로스코로 만드는 일종의 융화였다.

지금처럼 서로 조롱하고 다그치고 징징대는 모습은 확실히 아니었다.

한명구와 박은석 배우 모두 아직까지는 역할에 완전히 동화되지는 못한 느낌이다.

한명구 로스코는,

곤조로 가득한 예술가의 아우라보다 고집불통 외골수의 호통이 더 많이 느껴졌다.

박은석 켄은,

목소리톤이 가늘고 높아서 개구진 느낌이 강했다.

 

무대 위에 놓여진 그림들의 색감도,

크기가 달라진 로스코의 책상과 놓여진 위치도

바퀴를 달아 움직이게 만든 작업테이블도 어딘지 낯설고 산만하다.

<레드>가 맞긴 한데 아진 완전한 <레드>가 아닌 느낌.

그냥... 좀 그림움이 가득해져버렸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5. 1. 7. 08:43

 

<바냐와 소냐와 마샤와 스파이크>

 

일시 : 2014.12.05. ~ 2015.04.04.

장소 :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

극작 : 크리스토퍼 듀랑

연출 : 오경택

출연 : 김태훈, 서현철 (바냐) / 황정민 (소냐), 서이숙 (마샤)

        김찬호 (스파이크), 김보정 (니나), 임문희 (카산드라)

제작 : (주)연극열전

 

이미 종료된 연극이 좀 민망하지만 최대한 간략한 느낌만 적어보자.

솔직히 말하면 작품에 대한 기대보다 배우에 대한 기대감으로 예매했던 작품이다.

김태훈, 황정미, 서이숙, 그리고 김찬호.

게다가 아주 오랫만에 무대에서 보게될 임문희도 반가웠다.

출연 배우들의 바로 전작들도 다 좋았고 연기력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배우들이라 뭐가 됐든 후회는 안할게 분명하니까...

제목도 요상한 <바냐와 소냐와 마샤와 스파이크>는

그러니까 안톤체흡에 대한 오마주이자 헌정작이라 하겠다.

등장인물들 이름도 모두 체흡의 작품 속 인물들 이름 그대로다.

극 중간중간에 체흡의 4대 장막극 <갈매기>, <바냐 아저씨>, <세자매>, <벚꽃동산>의 장면들과 대사들이 튀어나온다.

그래서 안톤체흡에 익숙한 사람들은 숨은 그림찾는 재미가 꽤 쏠쏠했을것 같다.

개인적으로 <세자매> 빼고는 다 봐서 그런 패러디들이 아주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유쾌, 상쾌한 작품이긴 하더라.

그러면서 아주 노골적을 솔직해서 때로는 통쾌하기도 했다.

스파이크는 역할 자체가 발연기하는 설정이라 과장된 몸짓과 표정이 아주 재미있었고

반대로 카산드라는 연기가 너무 과해서 눈에 살짝 거슬렸다.

그래도 어쨌든 세 시간 정도의 런닝타임이 그다지 지루하지 않았다.

 

관람하고 나오는데 상반되는 두 가지 생각이 들더라.

하나는 이 배우들이 아니었다면 이 작품... 참 밋밋했겠다는 거였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배우들이 최상의 캐릭터는 분명 아니라는거다.

개인적으론 마샤는 얼마전 <미스 프랑스>를 했던 김선경이 딱이었을것 같고

바냐도 조금 더 코믹하고 덜 지적인 느낌의 배우였다면 좋았겠다.

(서현철 바냐는 못봤지만 적역이지 않았을까 싶다,)

카산드라는 <데스트랩> 한세라가 했어도 좋았을것 같고...

그래도 오랫만에 안톤체흡의 추억에 잠길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안톤 체흡은...

참 어렵고도 재미있는 사람이다.

아마도 안톤 체흡은 연극게의 영원한 노스탤지어로 남을 것 같다.

지구가 멸망할때까지 ^^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4. 10. 2. 08:04

<고곤의 선물>

일시 : 2014.09.18. ~ 2014.10.05.

장소 :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극본 : 피터 쉐퍼 ( Peter Shaffer)

연출 : 구태환

출연 : 박상원, 김태훈 (에드워드 딤슨) / 김소희 (헬렌 딤슨)

        김신기 (필립 딤슨), 이봉규, 고인배 외  

제작 : 극단 실험극장

 

연극 <고곤의 선물>

하마터면 이 엄청난 작품을 못보고 지나칠뻔했다.

생각해보니 내가 연극이란 장르에 빠지게 된 건,

피터 쉐퍼의 <에쿠우스> 때문이었다.

신화와 성서적인 뉘앙스가 강했던 <에쿠우스>는 문외한인 내 눈에도 신비하고, 오묘했으며, 너무 아름다워서 비장하기까지 했었다.

<에쿠우스>라는 단 한 작품만으로 나는 피터 쉐퍼를 천재의 범주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이 연극 <고곤의 선물>로 피터 쉐퍼에게 완벽하게 무릎을 꿇었다.

나의 굴복은 아주 정당하고, 아주 깔끔하고, 아주 명확해서 오히려 감사함이 느껴질 정도다.

보는 내내 그랬다.

"이건 정말이지 미친 작품이다....!"

솔직히 나는 이 작품에 대한 어떠한 코멘트도 감히 쓰질 못하겠다.

그럴 깜냥도 못되지만 그러고 싶다는 생각조차 안든다.

내가 뭐라 끄적인다면 그건 불경죄(不敬罪)을 범하는 꼴이 되겠다.

 

신화보다 더 신화같은 이야기.

모든 암시와 복선은 너무 치밀하고 완벽해서 차라리 거짓말 같았다.

이제 어쩌면 좋을까!

고곤으 눈을 정면으로 봐버렸으니...

온 몸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리는건 시간문제다.

고곤을 가진 자도,

고곤을 마주한 자도,

고곤이... 된다...

 

헬렌 딤슨이 필립 딤슨에게 한 말은 사실이었다.

"그는 이제 현실이 될거예요, 당신에게 현실이 되서 다가올거예요!"

페르세우스와 아레나가,

에드워드와 헬렌이 되어 나에게 걸어온다.

복수와 심판.

그 진부한 고대의 원형은 지치지도 않고 전승되고 또 전승된다.

모든 이야기는, 모든 역사는, 모든 비극은, 모든 용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고 여기에서 이렇게 끝을 맺는가!

끝도 시작도 알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

(나는 작품을 보는 내내 그걸 떠올렸다.)

 

김소희와 김태훈의 연기는,

그냥 그대로 발화(發化)더라.

저러다 무대 위에서 전소돼 사라져버리는건 아닐까 걱정스러울만큼 뜨겁고 강렬했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들은 완벽하게 컨트롤하는 김소희에겐 항복했고

모든 이야기의 핵인 김태훈에겐 굴복했다.

김태훈이 보여준건... 결코 연기가 아니더라. 

완벽한 대사였고, 완벽한 장면이었고, 완벽한 암시였고, 완벽한 결말이었다.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에드워드일 뿐이었다.

지금껏 내가 본 김태훈의 작품 중 가장 엄청났고, 가장 대단했고, 가장 무시무시했다.

거튼콜에 그가 무대로 걸어나오는데 그냥 저절로 일어서게 되더라.

그순간만큼은 김태훈이 고곤이었다.

고곤의 저주가 두려워 재관람조차도 망설여지는 작품.

이대로 속수무책으로 빠져들다가는

티라의 화강암 절벽.

그곳에서 떨어져 피투성이가 될 다음 사람이 꼭 나인 것만 같다.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용서"뿐이다.

그래서 헬렌의 마지막 대사를 나도 주문처럼 따라했다.

"나는 당신을 용서해. 나는 당신을 용서해, 나는 당신을 용서해..."

 

그러니 고곤이여!

부탁하노니 제발 그 눈을 나를 향해 돌리지 말아다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4. 4. 4. 08:06

<EQUUS>

 

일시 : 2014.03.14. ~ 2014.05.17.

장소 : 동국대학교 이해랑 예술극장

극본 : 피터쉐퍼

번역 : 신정옥 

연출 : 이한승

출연 : 안석환, 김태훈 (다이사트) / 지현준, 전박찬 (알런)

        이은주, 김지은 (질) / 유정기, 김상규 (프랑크)

        차유경, 이양숙, 노상원, 은경균 외

제작 : 극단 실험극장

 

창단 45주년이 된 극단 실험 극단의 대표 레파토리 연극 <에쿠우스>

2005년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처음 봤던 <에쿠우스>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그게 시작이었다.

알런의 김영민과  다이사트 남명렬에 그야말로 꽃히게 된 게.

그리고 연출 김광보 작푸을 챙겨보게 된 게.

그래서 알런을 했던 조재연이 연출과 다이사트로 출연했던 2009년 공연도 챙겨봤다.

(그때 내가 본 캐스팅은 알런은 류덕환, 다이사트는 송승환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작품은 매번 내게 충격을 준다.

2005년에는 완벽한 매혹이었고,

2009년에는 남창(男娼)같던 말들때문에 충격적이었고

공연이 끝난 후 말들 연기했던 배우들이 그 복장 그대로 벽에 줄지어 서있었는데 그게 그렇게 저급할 수가 없더라.

누구 머릿속에서 나온 기획인지를 놓고 정말 엄청나게 씹었었다.

그리고 2014년 세번째 본 <에쿠우스>는 아쉽게도 많이 부산하고 산만했다.

심지어 실소를 금치 못하게 만든 장면들도 있어 많이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나 이 작품 정말 좋아하는데...)

에매할때부터 성인인증 절차가 있어서 노출 수위가 짐작은 했지만

실제로 공연 전에 경고성 멘트도 하더라.

무대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서 몰래 촬영을 할 경우 조치가  취해질거라고.

 

지현준 알런.

본인이 배우로서 할 수 있는 모든걸 총동원해서 정말 미친듯이 연기한다.

그러데 나는 정말 미안하게도 37세의 지현준이 17세의 알런으로는 도저히 감정이입이 되지 않더라.

일단 보여지는 모습이 소년의 느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조숙을 넘어 조로(早老)했고

목소리도 일부러 소년스럽게 내려고 애쓰다보니 부자연스러워서

정신 이상이 아니라 정신지체처럼 보였다.

놀라운건 2005년 김영민 알런을 볼 땐 분명 소년의 이미지를 강하게 느꼈었다.

영화 <은교>에서 박해일 이적요에게 감정이입이 될 수 없었던 것처럼 지금의 알런도 딱 그렇다.

필사적으로 표현한다는 것과는 별개로...

어쩔 수 없는 이질감때문에 낯설었다.

 

다이사트 김태훈.

나쁘지는 않았지만  다소 과하게 흥분하는 장면들은 의외였다.

알런의 격렬한 정열을 부러워하다못해 불같은 질투에 빠진 사람 같다.

그래서 객관적인 시각이 필요한 장면들이 오히려 약하게 느껴진다. 

2005년 남명렬이 보여줬던 다이사트.

아마도 내겐 그 모습이 가장 정답에 가까웠던 것 같다. 

나는 <에쿠우스>를 보면서 한없이 심각해지는 가라앉는 것도 싫지만

코믹하게 웃는 것 더 싫다.

그런데 이번 공연에서는 그런 장면들이 너무 많다.

알렌의 아버지 역이던 김상규는 사투리톤이 너무 많아서 객석이 큭큭 웃었고

알런이 바닷가에서 처음 말을 보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기수는...

개그콘서트의 한 장 면 같아 절망적스러웠다.

알런이 최면상태에서 말을 타는 걸 재연 장면은 너무나 어수선하고 산만하다.

(2005년에 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때 정말 충격적이라 할 말이 없었는데...)

중간에 인터미션 때문에 이야기가 댕강 잘리는 것도 너무나 싫다.

어딘지 치열함은 줄어들고 원시성만 강조된 듯한 느낌.

 

아쉽다. 아쉽다. 너무 아쉽다.

워낙 애정이 깊은 작품이라 더 많이 아쉽다.

다이사트 박사가 세상과 단절된 알런의 자아를 되찾아 주려고 노력했듯

나의 <에쿠우스>도 본래의 자기 모습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고통과 싸워 자신의 세계를 찾았으면 좋겠다.

 

* 온몸을 던져 열연을 보인 배우들에게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왜냐하면 그들은 충분히 아름다웠기에!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10. 24. 08:03

<벚꽃동산>

일시 : 20.12.10.12. ~ 2012.10.28.

장소 :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작가 : 안톤 체홉 (Anton Pavlovich Chekhov)

연출 : 오경택

출연 : 이석준, 박호산 (로파힌) / 우현주 (라네프스카야)

        김태훈 (가예프) / 정수영 (바랴) / 전미도 (아냐)

        정동환, 최용민, 정승길, 권지숙, 이재인, 신용진, 박채원

주최 : 극단 맨씨어터

 

안톤체흡의 작품들은,

솔직히 어렵고 힘들다.

(특히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머리에 쥐가 날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톤 체홉의 작품이 올라오면 꼭 챙겨보는 이유는 너무나 서정적이고 섬세하고 아름다워서다.

이야기와 인물들 속에 빠져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황홀해진다.

맨씨어터는 작년에도 지금까지와 약간 다르게 해석한 안톤 체흡의 <갈매기>를 올렸었다.

보고 싶었던 작품인데  예매를 해놓고도 보지 못해서 이번 <벚꽃동산>은 놓치지 말자 생각했었다.

안톤 체홉의 마지막 작품 <벚꽃동산>

안톤 체홉의 작품 중에서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 작품을 체홉은 스스로 "코미디"라고 정의했고,

1904년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초연을 올린 연출가 스타니슬랍스키는 "비극"이라고 정의했다.

나는 이 작품을 화사하고 찬란한 비극이라고 말하고 싶다.

원작을 읽고 봤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개인적으로 원작을 꼭 챙겨보는 편인데 이상하게 안톤 체홉의 작품은 무대뽀 정신으로 보게 된다)

그리고 출연배우들!

도대체 이 대단한 배우들을 어떻게 이 한 작품에 전부 섭외할 수 있었을까?

분명히 이 작품엔 뭔가가 확실히 있으리란 기대감.

솔직히 출연진에 기가 팍 죽었었다.

 

20세기 초 러시아.

농노제 폐지로 시작된 러시아의 변혁은 러시아의 모든 것들을 빠른 속도로 바꿔놨다.

과거 부유한 영주의 자손이었던 라네프스카야(우현주)와 가예프(김태훈)의 벚꽃동산도

급기야 경매에 넘어갈 처지가 되버렸다.

그러나 두 사람은 아직 평온하다.

그런데 어쩌지!

난 이 오누이의 평온과 순수가 너무나 눈물겹게 아름답고 예뻤다.

벚꽃동산을 별장지로 임대해서 돈을 벌라고 권유하는 로파힌(박호산).

두 오누이의 환상을 현실에 끌어오기 위해 끝없고 집요한 설득을 거듭하지만

오누이는 너무나 태평해서 심지어 몽환적이기까지 하다.

마지 꽃비 내리는 따사로운 봄날 벚꽃동산에 피크닉이라도 와있는 느낌이다.

오히려 절박하고 간절한 건 로파힌이다.

오누이와 로파힌의 대비되는 모습이 연극을 보는 내내 참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주변의 사람들.

뭔가 깊숙히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다가도

그냥 지나가면서 무슨 일이 생겼나 잠깐 시선을 주고 곧 제 갈 길 가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오직 로파힌만이 절박할 뿐이다.

실제로 이 "벚꽃동산"을 지키고 싶은 사람은 사실 로파힌 한 사람 뿐인 것 같다.

이 아름다움 벚꽃동산의 벚꽃들이 잘려나가든,

품위없는 별장지가 되어 사람들의 소란 속에 묻혀버리든 상관없다.

어쨌든 지켜낼 수는 있으니까.

 

박호산의 로파힌은 참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가장 순수하고 아이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이석준은 로파힌을 어떤 인물로 해석했을지 궁금하다.)

사실은 작품 속 인물 들 중에서

벚꽃동산을 제일 지키고 싶어한 사람, 너무나 벚꽃동산을 원했던 사람은 로파힌이 아니었을까?

변화를 보는 시선에 옳고 그름을 정의하긴 어렵다.

어쨌든 시간은 흐르고,

지금 있는 모든 것들은 결국은 어떤 형태로든 잊혀진고 없어진다.

그리고 인간은 그 잊혀진 것들을 또 서럽고 아프게 기억하고 그리워한다.

정말 바보같이...

  

벚꽃동산에 있던 모든 사람이 떠나고 홀로 남겨진 피르스(정동환)의 독백,

그 마지막 장면은 정말 압권이다.

그리고 별 비중없어 보이는 피브스에 왜 정동환이라는 배우가 필요했는지도 조금은 알 것 같다.

툭툭 베이지는 벚나무와 생의 마지막 안식을 향해 걸어가는 피르스의 발자욱 소리.

 "떠나셨어! 날 잊어버리셨어!

  괜찮아!, 그래!

  ...... 산 것 같지도 않은 게 한평생이 다갔군.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 아무것도. 에이... 이런 바보"

피르스의 마지막 대사가 주는 무게감은

누워있는 피르스 위로 관뚜껑처럼 닫히는 무대 장치와 함께 가슴 속에 턱 얹힌다.

희극과 비극을 오고 간 <벚꽃동산>을 결국

이렇게 깊은 무게잠과 존재감으로 맘 속 깊이 파고 들었다.

파괴와 변화 뒤엔 그 폐허를 딛고 새로운 희망과 미래가 태어난다.

어쩌면 벚꽃동산에 춤추던 그 무수한 꽃잎들은 일종의 팡파레였을지도 모르겠다.

눈물나게 아름답고 서럽게 찬란한 결말을 보면서 나는 눈이 부셨다.

 

무대는 아름다웠고

배우들의 딕션은 정확했으며,

연기는 진중하고 섬세했다.

작품과 무대에 대한 깊은 경외심이 느껴졌다.

(정말 진심으로 멋있었다. 이 배우들...)

커틑콜에서 정동환 배우를 향해 출연 배우 모두가 박수치며 존경의 모습을 보이는 장면은,

뭉클할만큼 감동적이었다. 

이 작품...

아마도 오래동안 간직될 것 같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4. 5. 06:36
무대 위엔 꼭지점을 아래로 향하는 커다란 역삼각형이 층층히 쌓여진 종이더미 위에 위태롭게 서있다.
균형이 잡힌 정삼각형도 아닌 불안한 모습 그대로...
그 불안함 속에 해답을 위한 힌트라도 주는 듯.
높이 달린 창문을 통해 한 줄기 빛이 퍼져온다.
그러나 그 빛조차도 자세히 보면 불안한 삼각형의 형태다.
그리고 삼각 구도로 놓여 있는 의자 세 개.
그 의자마저도 정삼각형의 구조를 살짝 벗어나
시작은 분명 어느 한쪽으로 불안하게 기울어져 있다.
(물론 극이 진행하면서 정삼각형의 구조를 쟘깐씩 보여주긴 하지만)
내게 연극 <코펜하겐>의 첫인상은 그러니까
평형에 대한, 균형에 대한 일종의 불안한 도전이며 거부처럼 느껴진다.

역사 속의 세 사람,
닐스 보어(남명렬), 베르너 하이젠베르그(김태훈), 그리고 닐스 보어의 아내 마그리트(조경숙)
스스로 현실 속의 사람들이 아님을 고백하고 있는 이 사람들은
지금 하나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중이다.
“왜, 1941년 하이젠베르그는 보어를 방문했는가?”


아버지와 아들 같은 사제지간이자 오랜 연구 동료인 보어와 하이젠베르그는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서로 적국으로 갈라서게 된다. 
하이젠베르그의 위험하면서도 비밀스러운 방문은
50년간 토론을 벌여왔으나 그닥 명확한 결론을 얻지 못한 상태다.
연극은 세 번의 리플레이를 거듭한다.
그리고 매번 다시 묻는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가 찾아왔을까?” 를...
이들 세 사람은 이 질문을 통해
도대체 지금 어떤 해답을 얻고자 하는걸까?



연극 <코펜하겐>은 노골적으로 말해 아주 많이 어렵다.
그리고 심각하다.
게다가 지독히 아름답기까지 하다.
핵분열, 중성자, 원자로, 원자탄의 제조, 불확정성 원리와 상보성의 원리 등
수시로 등장하는 물리학의 개념들로 머릿속은 이미 무한대의 복잡성 안에 놓여있다.
어쩌면 이 연극을 이해하기 위해선 관객들에게 지독한 인내심이 필요할지도...
그러나 연극 <코펜하겐>에서 중요한 건,
그런 과학 원리나 학자적인 이론이 아니라 
그 이론을 끌어냈던 인간들의 본성과 진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Dark side of the moon"
그렇다면 그건 확실히 불가능한 일도, 어려운 일도 아니긴 하다.
마침내는 인간이란 객체의 유사성을 이해할 수 있게 될테니까...
시간의 개념조차도 무력하게 만드는 핵폭발을 능가하는 인물들의 충돌과 대면은
사뭇 진지하면서도 무척 재미있다.
수시로 돌출하는 날카로운 삼각형의 모서리들은
한쪽은 역사를 향해, 한쪽은 인물을 향해, 나머지 한쪽은 상황을 향해
거침없이 전진하기도 하고 일시에 후퇴하기도 하면서 극의 생명감을 예리하게 살려낸다.
입 속에서서 쏟아져나오는 숱한 이론들과 과학에 몰두한 인간의 지독한 광기.
그리고 그 광기 속에 보여지는 학문에의 순수한 열정.
"과학"으로 덧씌워진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과 탐구.
그 치열함이 극 속에서 제 2, 제 3의 긴장감으로 고스란히 살아난다.
폭풍같은 치열함들...
(이런 치열함을 만나게 되면 나는 그만 정신을 잃게 된다...)



<마라, 사드> 이후에 무대 위에서 만난  배우 남명렬은
역시나 늘 아름답고 섬세하고 그리고 정확하다.
그는 매번 무대 위에서 삶의 터를 개척한다.
끝없는 유목민으로서의 연극배우 남명렬의 아우라가
그래서 나는 늘 깊고 다정하고 믿음직스럽다.
연극 무대는 시간과 열정을 배반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배우 남명렬.
 “살아가는 세월만큼 무대 위에서 녹아나기 마련이에요. 그 세월은 관객들에게 어필될 수 있어요.
  그러니 연극이 나의 길이라고 생각한다면 시선을 조금 길게 봤으면 해요.”

이 말에 지극히 공감하는 관객이 여기도 이렇게 있다는 걸 그가 알까? (^^)
그는 연극 <코펜하겐>을 통해 관객과 ‘의미 있는 소통"을 희망한단다.
"우리는 현재 재미와 가벼움, 즐거움을 위해 달려가는 말 위에 있죠. 잠시 말고삐를 잡고 ‘속도를 조정해볼까’ 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 이 작품과 함께 했으면 해요. 담론 자체는 거대하지만 그 속에 인간적인 부분들이 많이 있거든요. 유머도 있고.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르는 말초적 세상에서 무언가를 돌아보고 싶다면 좋은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애쓰고 있고요."
속도를 조정하기...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제일 필요한 일이 바로 그건지도 모르겠다.
아이러니하게도 치열한 연극 <코펜하겐>을 보고 나는 느긋한 "여유"를 느꼈다.
당연하지 않은가?
원래 인간의 삶이란 이렇게 늘 불확실 한거니까...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