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9. 2. 14. 08:29

 

<오이디푸스>

 

시 : 2019.01.29. ~ 2019.02.24.

장소 : 예술의 전당 CJ 토월극장

원작 :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극작, 각색 : 한아름

무대 : 정승호

연출 : 서재형

출연 : 황정민(오이디푸스), 배해선(이오카스테), 박은석(코러스장), 최수형(크레온), 남명렬(코린토스 사자) 외

제작 : (주)샘컴퍼니

 

2013년 LG아트센터에서 본 <더 코러스, 오이디푸스>의 기억이 선명하다.

작품을 보고 썼던 글의 시작은 이랬다.

"이 대단한 작품에 대해 도대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심지어 지금도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면 전율이 느껴진다.

객석이 무대에 있어서 관객을 원형극장에 모인 테베의 시민으로 만들어버린 것도 놀라웠고

엔딩 장면에서 원래의 넓은 객석이 오이디푸스가 떠나는 길로 형상화되는 것도 충격적이었다.

두 대의 피아노와 나무 의자들,

그리고 배우들의 하얀 의상까지...

지금도 눈에 선명하다.

그때 오이디푸스 역을 한 박해수를 보면서 생각했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하긴 그 공간에서만큼은 모두 미친 사람들이었다.

배우들도, 스텝들도, 제작진들도 심지어 관객들까지도...

 

다시 돌아오는구나 생각하니 좋았다.

그때 받았던 광기에 가까운 전율을 다시 느낄 생각을 하니 더 좋았다.

그래서 최대한 가까이서 보려고 무려 OP석을 예매했다.

황정민의 전작 <리처드 3세>도 너무 좋았고

출연배우들도 다 좋아서 두루두루 기대감이 컸다.

그랬더랬는데...

실제로 본 작품은 2013년도와 같지만 결이 많이 다른 작품이었다.

전체적으로 too much 하다는 느낌.

캐릭터 포스터 보면서도 too much하다고 생각했는데

무대도, 의상도, 분장도, 연출도, 조명도, 연기도 다 그렇더라.

(제일 too much한 배우는 코러스장 박은석)

대사가 바뀐 것도 아쉬웠고

음향과 코러스의 역할이 확 줄어든 것도 아쉬웠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너무 너무 너무 많이 아쉬웠던 작품.

아무래도...

2019년의 <오이디푸스>와 2013년의 <더 코러스, 오이디푸스>

완전히 다른 작품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결정과 선택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

부은 발, 오이디푸스.

그 이름이 운명을 말해주리라.

오이디푸스를 보라!

저 뒷모습을 본 자라면 명심하라.

누구든 삶의 끝에 이르기 전에는,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전에는

사람으로 태어나 자신이 행복하다고 믿지 말라.

오이디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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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끄적 끄적...2016. 7. 25. 10:09

 

<코펜하겐>

 

일시 : 2016.07.14. ~ 2016.07.31.

장소 : 동숭아트센터 동숭소극장

작가 : 마이클 프레인 (Michael Frayn)

번역 : 양영일

연출 : 윤우영

출연 : 남명렬(닐스 보어), 서상원(베르너 하이젠베르그), 이영숙(마그리트)

제작 : 극단 청맥

 

내가 이 연극을 처음 봤던게 2010년 3월이다.

혹시나 싶어서 블로그를 뒤적였더니 다행히 그때 쓴 후기가 있더라.

어려운 작품이라 꽤 곤혹을 치른 흔적이 역력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열하게 이해하려고 애쓴 모습이 보인다.

전체적으로 삼각형 구도를 보여준 무대에 대한 개인적인 평은 지금봐도 꽤 그럴듯 했다.

기억을 되돌리면,

이 작품에 대한  전체적인 느낌은 불안함에서 균형으로 가는 여정이었다.

 

"기억이란건 일기장처럼 묘한 놈이야. 기억의 시간 속으로 실제처럼 걸어 들어가게 되지"

보어의 대사 처럼 지금 내 머릿속에도 두 개의 장면이 자리잡는다.

2010년 <코펜하겐> 공연 장면과 1941년 하이젠베르그와 닐스 보어가 코펜하겐에서 만나는 장면이.

2010년엔 미처 몰랐었는데 이 작품위트있고 재미있다.

세 명의 등장인물은 수시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고

숱한 독백과 대화들 역시도 수시로 장면과 시점을 넘나들며 사방으로 튄다.

마치 원자핵에 충돌된 중성자가 2의 제곱승으쪼개지는 것럼.

chain reaction.

결국 1막 후반부에 이 연쇄반응에 한 번의 폭발 위기가 닥친다.

감정이 고조된 하이젠베르그의 회상 장면.

(개인적으로 이 장면이 이 작품의 결정적 장면이라고 생각하는데

 감정이 앞선 서성원 배우의 딕션이 무너진건...  내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작품 묘하게 연극 <레드>와 겹쳐진다.

바하의 "Fugue in G minor"가 나와서기도 하지만

공통적인 하나의 명제가 숨겨져있다.

"자식은 아버지를 살해해야만 해!"

학문이나 예술에서 일가를 이루기 위해 필요불가분한 일. 

지독한 역설이고 모순이다.

절망의 극복이고 희망의 극복이다.

그래서 이 작품이 내게 이렇게 매혹적으로 다가왔던 모양이다.

2010년 보다 훨씬 더!

 

그렇다면 이 이야기에 답은 있을까?

아니 답이라는게 과연 필요할까?

모든게 끝이 났지만

언제 다시 시작될지 그 누구도 모르는데...

 

* 내가 처음 남명렬 배우의 작품을 본 건 2005년 <에쿠우스>의 다이사트였다.

  그때 나는 막 짝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연극을 보는 내내 두근대고 설랬었다.

  그런데 이 작품을 보면서 그때의 설렘이 또 다시 재현됐다.

  내가 보고, 느낀건 물리적인 "청춘"을 뛰어넘는 생명력이자 매혹이었다.

  다이사트와 닐스 보어.

  대책없는 삼각관계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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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끄적 끄적...2016. 2. 2. 08:33

 

 

<달빛 안갯길>

 

일시 : 2016.01.23. ~ 2016.02.06.

장소 :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

극작 : 신은수

연출 : 신동인

출연 : 남명렬, 조연호, 김왕근, 임형택, 정원조, 김유리, 류헤린, 박별

주최 : 극단 한양레퍼토리 

 

연극 <달빛 안갯길>에는 신화와 현실의 세계가 공존한다.

의상대사와 선화공주의 설화는 그대로 부석사 창건으로 이어진다.

부석사 앞마당에 묻혀있다는 석룡(石龍)

어릴때 들었던 그 신화 속 이야기가 환한 달빛 속에 안개처럼 스며든다.

실제로 조선의 역사를 왜곡하고 날조하려는 일본은 노력은 조급했고

그 조급함을 감추기라도 하듯 뒤따르는 행동은 잔인하고 가차없었다.

 

이 작품을 보면서 "왜곡"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했다.

"역사"라는 거대한 담론을 떠나서

지금도 매일 매일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개인적인 왜곡들.

SNS에 올려지는 글과 시진 중 꾸미지 않고 맨얼굴을 그대로를 드러내는 것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왜곡은 망상을 낳고,

망상은 다른 세계를 창조한다.

인간이... 그런 존재다.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자꾸 믿어라... 믿어라... 세뇌하면 어느새 정말 믿게 된다.

그게 지배자들이 피지배자에게 자행하는 "문화정책"의 민낮이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역사가 "달빛"인지 아니면 "안갯길"인지.

 

아차하면 전래동화나 환상동화로 전락할 수 있는 작품인데 그 경계를 비교적 잘 지켜냈다.

아무래도 연기 잘하는 중견 배우들이 든든하게 받쳐주니

젊은 배우들도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개인적으로 배우의 실제 나이와 연기하는 역할 사이의 나이 차이가 너무 많으면

좀 불편해지면서 몰입이 안되는데 이 작품은 그 점에서는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배우 덕분에 작품이 더 살아났다고나 할까!

흔적을 남긴다는 말.

그 말이 주는 깊이와 넓이가 참 막중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역사도, 연기도 모두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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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끄적 끄적...2015. 9. 11. 07:55

 

<아버지와 아들>

 

일시 : 2015.09.02. ~ 2015.09.25.

장소 : 명동예술극장

원작 : 이반 투르게네프

극작 : 브라이언 프리엘

연출 : 이성열

출연 : 오영수, 남명렬, 김호정, 이명행, 윤정섭 외 

제작 : 국립극단

 

러시아의 3대 문호 이반 투르게네프의 소설 <아버지와 아들>이 연극으로 올라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개인적으로 안톤 체흡보다 쉽웠지만 안톤 체흡만큼 매력적이진 않았다.

그런데 배우들의 힘이 정말 너무 좋았다.

러시아 작가의 작품들은 일단 등장인물 이름부터 머리가 아프다.

나였다면 등장인물들 이름을 외우는 것만으로도 한나절이 걸릴지도 모른다.

 

러시아 작품을 읽을 때는 개인적으로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

등장인물 이름이 너무 어려고 심지어 길기까지 해서 각인되기가 쉽지가 않다.

그래서 개인적으론 주요 인물들은 따로 애칭을 만들어 기억한다.

물론 본래 아름과 비슷한 애칭으로... 

그래도 고마운건 이 연극은 등장인물 이름이 고색창연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고생을 덜했다.

사실 이 작품은 이명행과 남명렬, 김호정 배우때문에 선택했는데

의외로 비자로프 윤정섭 배우에게 더 많이 몰입했다.

이명행의 아르까디나는 꼭 <푸르른 날에>의 오민호 같았고

거의 모든 인물들이 시종일관(?) 여기 저기 흔들리고 휘둘려서 개인적으론 난감했다.

 

혁명을 꿈꾸는 니힐리스트 바자로프.

낭만적인 사랑은 허무라고 주장하던 그가

절망적으로, 미친 듯이, 말도 안되게, 열정적인 사랑에 빠진다.

지독한 사랑에 빠진 사람은...

안타깝게도 딱 그만큼의 지독한 절망에도 함께 빠진다.

그 절망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두 가지 뿐이다.

그 사랑을 이루던가, 아니면 완벽한 파멸을 실현하던가!

발진디푸스에 전염돼서 사망하긴 했지만 비자로프의 죽음은 확실히 후자의 가깝다.

니힐리스트에게 사랑이라니...

자신이 그토록 경멸한 단 하나의 무모한 열정에 그렇게까지 삶 전체가 휘둘려버리다니...

비극이 예견되긴 했다.

 

그런데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왜 이렇게까지 유아적인가!

아들을 숭배하는 아비도 유아적이고

아들과 친구같은 아비도 유아적이고

결투를 신청하는 빠벨도 유아적이고

발진디푸스에 전염된 비자로프를 찾아간 안나도 유아적이고,

죽은 비자로프의 신념을 뒤따르겠노라 말하고 행동하지 않는 아르까디나도 유아적이다.

덕분에 깊고 멈출 수 없는 우울에 빠져버린 사람은 다름 아닌 "나"다.

그래도 체홉은 이렇게까지 우울하지는 않았는데...

 

<아버지와 아들>

어렵지 않은 작품이지만.

결코 이해하고 싶지 않은 작품이다.

그런데 그게 바로 세대고, 삶이고, 사랑이니 난들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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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끄적 끄적...2014. 11. 18. 08:15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 - Tribes)

일시 : 2014.11.08. ~ 2014.12.14.

장소 :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극작 : 니나 레인 (Nina Raine)

번역 : 이인수

연출 : 박정희

출연 : 남명렬(크리스토퍼), 남기애(베스), 김준원(다니엘)

        방진의(루스), 이재균(빌리), 정운선(실비아)

제작 : 노네임씨어터컴퍼니

 

나는 정말이지 노네임씨어터 작품을 너무나 사랑한다.

작품을 선택하는 안목도 너무나 탁월하고 연출가과 배우 캐스팅 역시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싶을만큼 환상적이다.

매 작품마다 깊이와 재미를 동시에 쥐고 있는 현실이라 감정적으로도 쉽게 동화된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이 작품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 역시도 그랬다.

가족...

그 가깝고도 먼 관계.

정말 그렇더라.

세상에서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가족이

사실은 세상 그 누구보다 일방적인 소통을 강요하더라.

그걸 사랑이라고, 관심이라고, 애정이라고 말하면서...

사람이 가장 외로워지는건

가족 안에서 혼자됨을 느끼는 그 순간이지 않을까 싶다.

각자의 발언은 마치 선사시대 원시인들이 질러대는 괴성과 정확히 일치한다.

모든 사람들이 다 말을 하고 있지만,

사실 아무도 말하지 않고, 아무도 듣지 않는다.

"이해" 보다는 내 입에서 나오는 "말" 자체가 행동의 전부다.

극 속에서 가족들이 실제로 하는 말과 자막에 비쳐치는 말이 갖는 괴리감이 절실했다.

이해될 수 없는 기호들의 끝없는 나열...

그게 가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기에 우리는 또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각자의 소리를 내고,

비소통으로 소통하지만 돌아온다.

왜냐하면 자기가 그 속에 속해 있으니까.

 

다니엘의 대사가 가슴에 꽃혔다.

"너 자신을 지키고 싶다면 거리를 둬!

 누군가에게 네 마음을 주면 그 사람을 그걸 버스에 두고 내려.그 다음엔 이리저리 밟히고 채이지"

그래서 광신도 집단처럼 폐쇄성에 기대 울타리를, 소속을, 공동체를 만들게되나?

옆에 빈의자 하나씩 남겨놓고!

소수의 세계도, 다수의 세계도 정답이 될 수는 없다.

빈의자는 여전히 남아있으니까. 

 

빌리의 빈자리에,

다니엘의 빈자리에,

루스의 빈자리에,

크리스토퍼의 빈자리에,

베스의 빈자리에.

누군가 성큼성큼 다가와 앉아준다면 좋겠다.

그리고 나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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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끄적 끄적...2014. 4. 22. 07:26

<알리바이 연대기>

일시 : 2014.04.17. ~ 2014.04.20.

장소 :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극작 : 김재엽

연출 : 김재엽

출연 : 남명렬, 지춘성, 정원조, 이종무, 전국향, 유준원, 유병훈, 백운철

 

이 연극...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만큼 놀라운 작품이다.

아들의 입을 통해 이야기되는 아버지의 일생이라는 덤덤한 이야기 속에 일제 강정기부터의 이어지는 대한민국의 현대사가 아주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짧지만 그 어느때보다 방대하고 치열하고 암울했던 시대.

그 시대의 끄트머리를 지나온 나에겐 어린 세대들에게 박물관 역사와 별반 다르지 않을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경계인과 주변인도 못됐던 내조차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몇몇의 사건들.

그걸 보면서 "기억"과 "보존"에 대해 생각해봤다.

이 작품은 극을 쓰고 연출을 한 김재엽이 10여년 전에 아버지를 간호하면서 쓴 병상일기가 시작이다.

(작품 속 등장하는 아들의 이름 역시도 "재엽"이다.) 

“제가 3~4개월 동안 아버지의 회고를 들었어요. 그런데 거의 돌아가시기 직전에 했던 말씀이 뭔지 아세요? ‘내가 탈영을 했었단다’라는 것이었어요. 그것이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숨겨놓은 말이었어요. ‘이제 속이 다 시원하다’고까지 하시더군요.”
다행이다.

김재엽의 아버지도 다행이고,

김재엽도 다행이고,

그리고 나까지도 다행이다.

이 작품.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

4월 25일부터 5월 11일까지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다시 공연된다니 일부러라도 찾아봤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의 어처구니없는 현대사를 이렇게라도 조금 알게 되면 좋겠다.

이해까지는 못하더라도...

 

극장 맨 앞 줄 보조석에 어린 대학생들이 단체로 관람을 하더라.

노파심에 불과하겠지만 그들의 눈에 이 연극이 단지 허구로 보일까봐 걱정스러웠다.

이 아이들 중 몇 명이 장준하를, 그의 어이없는 추락사를,

유신헌법을, 민청학년 사건을,

평화의 댐 성금을, 전교조를,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죽어간 대학생들의 분신을,

문익환 목사의 눈물을 이해할까?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해왔다.

그래, 차라리 너희들은 이 모든 걸 몰랐으면 좋겠다!

이런 일들이 실제로 벌어졌다는걸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면 좋겠다.

그래서 그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은 완전히 다를 수 있다면...

이 작품은 기꺼이 허구로 기억돼도 좋다.

 

아들에게 언제든지 사람이 많이 몰려있는 쪽에 서라고 말하는 아비의 말은,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만큼은 필생(必生)을 위한 절대적인 진리다.

모난 돌이 되어서는 안된다.

중요한 건 앞에 나서지 않고 가운데 서는 일.

죽음을 앞둔 아비의 고백이 나는 너무나 서럽고 서러웠다.

"아비는 피하고 싶었다..."

누군들 그렇지 않았을까!

피할 수 있다면 누군들 그러고 싶지 않았을까!

 

죽음을 앞둔 아비의 마지막 대사가 내내 가슴을 친다.

너무나 옳아서!

반박의 여지가 전혀 없을 만큼 너무나 옳아서

슬프다. 막막하다. 답답하다.

"한국이란 나라는 말이다. 아버지가 살아보니까 진실에 뿌리를 내린 지도자를 만난 적이 없는 것 같다. 진실에 토대를 두지 않은 권력은 그 정도나 방향에 차이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모두 다 독재나 마찬가지라구. 독재는 말이지, 진실과 함께 할 수 없으니까 거짓을 감추려고 자꾸 알리바이를 꾸며댄다니까. 그래, 그랬던것 같다. 이제 또 어떤 놈이 나와가지고 알리바이를 꾸며댈련지......"

진실에 뿌리를 내린 지도자.

잠깐이라도 좋으니 그런 지도자를 만날 수만 있다면 좋겠다.

그럴 수 있다면...

그가 남자든, 여자든, 그 누구이든.

(심지어 인간이 아니더라도...)

절망 속에서 희망을 보겠다.

 

일시에 무너지고 가차없이 절망해야 하는 대한민국.

끝없는 알리바이 왕국에 완강한 조의(弔意)를 표하며...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4. 4. 4. 08:06

<EQUUS>

 

일시 : 2014.03.14. ~ 2014.05.17.

장소 : 동국대학교 이해랑 예술극장

극본 : 피터쉐퍼

번역 : 신정옥 

연출 : 이한승

출연 : 안석환, 김태훈 (다이사트) / 지현준, 전박찬 (알런)

        이은주, 김지은 (질) / 유정기, 김상규 (프랑크)

        차유경, 이양숙, 노상원, 은경균 외

제작 : 극단 실험극장

 

창단 45주년이 된 극단 실험 극단의 대표 레파토리 연극 <에쿠우스>

2005년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처음 봤던 <에쿠우스>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그게 시작이었다.

알런의 김영민과  다이사트 남명렬에 그야말로 꽃히게 된 게.

그리고 연출 김광보 작푸을 챙겨보게 된 게.

그래서 알런을 했던 조재연이 연출과 다이사트로 출연했던 2009년 공연도 챙겨봤다.

(그때 내가 본 캐스팅은 알런은 류덕환, 다이사트는 송승환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작품은 매번 내게 충격을 준다.

2005년에는 완벽한 매혹이었고,

2009년에는 남창(男娼)같던 말들때문에 충격적이었고

공연이 끝난 후 말들 연기했던 배우들이 그 복장 그대로 벽에 줄지어 서있었는데 그게 그렇게 저급할 수가 없더라.

누구 머릿속에서 나온 기획인지를 놓고 정말 엄청나게 씹었었다.

그리고 2014년 세번째 본 <에쿠우스>는 아쉽게도 많이 부산하고 산만했다.

심지어 실소를 금치 못하게 만든 장면들도 있어 많이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나 이 작품 정말 좋아하는데...)

에매할때부터 성인인증 절차가 있어서 노출 수위가 짐작은 했지만

실제로 공연 전에 경고성 멘트도 하더라.

무대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서 몰래 촬영을 할 경우 조치가  취해질거라고.

 

지현준 알런.

본인이 배우로서 할 수 있는 모든걸 총동원해서 정말 미친듯이 연기한다.

그러데 나는 정말 미안하게도 37세의 지현준이 17세의 알런으로는 도저히 감정이입이 되지 않더라.

일단 보여지는 모습이 소년의 느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조숙을 넘어 조로(早老)했고

목소리도 일부러 소년스럽게 내려고 애쓰다보니 부자연스러워서

정신 이상이 아니라 정신지체처럼 보였다.

놀라운건 2005년 김영민 알런을 볼 땐 분명 소년의 이미지를 강하게 느꼈었다.

영화 <은교>에서 박해일 이적요에게 감정이입이 될 수 없었던 것처럼 지금의 알런도 딱 그렇다.

필사적으로 표현한다는 것과는 별개로...

어쩔 수 없는 이질감때문에 낯설었다.

 

다이사트 김태훈.

나쁘지는 않았지만  다소 과하게 흥분하는 장면들은 의외였다.

알런의 격렬한 정열을 부러워하다못해 불같은 질투에 빠진 사람 같다.

그래서 객관적인 시각이 필요한 장면들이 오히려 약하게 느껴진다. 

2005년 남명렬이 보여줬던 다이사트.

아마도 내겐 그 모습이 가장 정답에 가까웠던 것 같다. 

나는 <에쿠우스>를 보면서 한없이 심각해지는 가라앉는 것도 싫지만

코믹하게 웃는 것 더 싫다.

그런데 이번 공연에서는 그런 장면들이 너무 많다.

알렌의 아버지 역이던 김상규는 사투리톤이 너무 많아서 객석이 큭큭 웃었고

알런이 바닷가에서 처음 말을 보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기수는...

개그콘서트의 한 장 면 같아 절망적스러웠다.

알런이 최면상태에서 말을 타는 걸 재연 장면은 너무나 어수선하고 산만하다.

(2005년에 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때 정말 충격적이라 할 말이 없었는데...)

중간에 인터미션 때문에 이야기가 댕강 잘리는 것도 너무나 싫다.

어딘지 치열함은 줄어들고 원시성만 강조된 듯한 느낌.

 

아쉽다. 아쉽다. 너무 아쉽다.

워낙 애정이 깊은 작품이라 더 많이 아쉽다.

다이사트 박사가 세상과 단절된 알런의 자아를 되찾아 주려고 노력했듯

나의 <에쿠우스>도 본래의 자기 모습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고통과 싸워 자신의 세계를 찾았으면 좋겠다.

 

* 온몸을 던져 열연을 보인 배우들에게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왜냐하면 그들은 충분히 아름다웠기에!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3. 12. 29. 12:33

<햄릿>

일시 : 2013.12.04. ~ 2013.12.29.

장소 : 명동예술극장

원작 : W. 세익스피어

윤색 : 이양구

연출 : 오경택

무대 : 정승호

출연 : 정보석, 남명렬, 서주희, 김학철, 박완규, 이지수 외

제작 : 아시아브릿지컨텐츠(주), (주)쇼플레이

 

정보석이 배우로서 가장 하고 간절하고 하고 싶었던 역이 "햄릿"이란다.

하지만 도저히 함부로 도전할 수 없는 역이라 매번 망설였단다.

그런 그가 드디어 "햄릿"을 도전했다.

그런데 연습하는 과정에서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여러번 하차를 생각했단다.

이해된다.

역시 세익스피어의 "햄릿"은 어렵고 난해한 텍스트임에 분명하다.

생각해보니 나 역시도 세익스피어의 <햄릿>을 연극으로 제대로 본 게 이번이 두번째다.

(내 첫번재 "햄릿"은 김영민이었다. 좋았다.)

"To be or not to be!"

아마도 이 대사는 지구가 명망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남을 유일한 명제가 아닐까!

사실 나는 이 대사를 햄릿의 입으로 듣게 될 줄 알았는데

(누군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제대로 허를 찔렸다.

 

젊은 연출가 오경택의 <햄릿>은 놀랄만큼 파격적이었다.

양철 합판(?)을 이용한 무대는

결코 발설하지 못하고 가슴 속에 담아내야하는 울부짖음처럼 들렀다.

빛과 소리를 적절하게 활용한 것도 아주 인상적이었고...

그런데... 이 작품...

정말 난해하다.

텍스트 보다 훨씬 더.

솔직히 첫 장면에서 락음악에 맞춰 해드뱅잉을 하는 클로디어스를 보는 순간 당황했다.

현대의 옷을 입은 <햄릿>.

그런데 대사는 자주 신파조였고 

참 미안한 말이지만 배우들은 너무 올드했다.

현대적인 해석을 보여줄거였다면

무대도, 시대도, 분위기도 더 완벽하게 현대적이었으면 좋았을것 같다. 

배우 정보석의 열연은 확실히 아름다웠다.

공연 종료가 얼마 남지 않아 목소리가 많이 잠겨있는 건 안타깝더라.

정말로 정보석은 이 작품에 모든 걸 다 걸었던가!

혤쑥해진 몸피가 <햄릿>이 되기 위해 노력한 

정보석의 고뇌와 집념을 보는 것 같아 가슴 한 끝이 뭉클해왔다.

 

사실 이 작품,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서 기대를 많이 했었다. 

기대보다 느낌이 덜 했던 건

아마도 내가  정통 고전극 <햄릿>을 그리워해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관람하면서 <더 코러스, 오이디푸스>가 많이 떠올랐다.

새로운 해석과 파격적인 표현.

안타깝게도 이 작품은 욕심이 너무 컸던 것 같다.

배우들 간의 연기의 갭도 너무나 컸고

전체적으로 어딘가 균형감이 자꾸 어긋나는 느낌.

게다가 객석 바로 앞에서 오르락 내리락 거리던 무대는 참 거슬렸다.

 

그냥 좀 모르겠다.

현대적인 해석이라고 해도  진중하고 묵직한 <햄릿>을 느끼고 싶었는데 

내겐 전체적으로 너무 산만하게 다가왔다.

아쉽다. 많이...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3. 6. 21. 08:00

<I Am My Own Wife>

일시 : 2013.05.28. ~ 2013.06.29.

장소 : 두산아트센터 Space 111

대본 : 더그 라이트

번역 : 김기란  /  무대 : 여신동

조명 : 최보윤  /  음향 : 임서진

연출 : 강량원

출연 : 남명렬, 지현준 (샤롯데)

제작 : 두산아트센터

 

아름다운 여자를 만났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를 한줄한줄 정성껏 읽어나갔다.

서로 다른 두 시대를 살아온 여장남자.

 그녀의 삶 전체에 대한 모든 이야기,

그러나 그 인생 전부를 읽어내고도 결코 다 알아낼 수 없는 그런 여자.

샬롯 데 폰 말스도르프.

처음에 대면한 건 프레임 액자 속에 담긴 정물화 한 점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빛,

스르륵 비밀처럼 열리는 문.

알 수 없는 미소와 함께  객석을 휘 둘러보고 거침없이 사라져버리는 그녀, 샤롯데!

끝나고 나서 알았다.

그 미소가 나를 베를린 그륀더자이트(Gruenderzeit) 박물관에 깊숙히 들어가게 했다는 걸...

 

작품을 보기 전,

조금 두려웠었다.

남명렬 배우의 게이스런 모습을 목격하게 될까봐.

그렇게된다면 참 난감하고 당황스럽지 않을까 생각했다.

(배우 남명렬을 개인적으로 조금 알기에...) 

다행이 게이스런 몸짓과 목소리는 없었다.

단지 그녀만이 있었을 뿐.

 

남명렬의 샤롯데은,

질투가 날만큼 아름답고 포근하고 따뜻했다.

일부러 목소리를 여자처럼 꾸미지도 않았고 자세는 오히려 남자의 움직임에 더 가깝다.

그러나 그의 샤롯데는 너무나 섬세하고 세밀해서

여자인 내가 보기에도 질투가 느껴질 정도다.

특히 말의 끝에 여성만이 감지할 수 있는 섬세함이 담겨있다.

소리와 빛,

마치 그녀처럼 중복되며 겹쳐지는 그림자들.

이 작품은 지독한 탐독을 부른다.

남명렬이 읽어준 이 작품은,

오직 한 사람의 이야기였고, 한 사람의 목소리였다.

1인 35역의 모노드라마... 운운은 일종의 미사여구라고 생각하련다.

나는 이 작품 속에서 35명을 만난 게 아니라,

대단한 단 한 명의 여자를 만났고, 봤고, 읽었을 뿐이다.

그녀, 샤롯데!

배우 남명렬의 특유한 발성과 딕션은 내겐 마술이고 최면이다.

뭉개지는듯하면서 명확한 그의 "ㅅ발음"을 들으면서

나는 또 다시 이곳과 저곳의 경계에서 서성였다.

그 목소리가 신비와 현실, 거짓과 진실, 그와 그녀 사이 어딘가로 나를 데리고간다.

아주 자연스럽고 평범하게!

 

 

샤롯데에게 누군가 물었다.

가구가 망가지거나 오래되면 어떻게 하느냐고,

수리하거나 버리느냐고.

그녀가 대답한다.

 "나는 절대로 가구를 수리하거나 버리지 않아요.

  그 모든게 존재했다는 증거죠.

  모든 것은 보존해야 해요. 있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만 합니다.

  이건 기록이예요. 삶의 기록!" 

순간 나는 그녀의 오래된 컬렉센 중 하나가 되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품었다.

그녀의 거짓들이 그녀에게 그랬듯

(어디까지 타인의 관점에 불과할뿐이지만)

그게 내게도 자가처방이 되어줄지도 모른다는 절박함.

아! 그렇구나!

이 작품은 절박한 기록에 대한 이야기었구나.

문득 시계추가 움직이며 커다란 소리를 낸다.

나치와 공산주의라는 서로 다른 두 시대를 살아낸 그녀가 남긴 소리.

그 소리가 마치 급작스럽게 들린 총소리처럼 가슴을 뚫고 지나간다.

내 오른쪽 입꼬리도 살짝 올라간다.

꼭 그녀처럼... 

 

나는 그녀를 읽었다.

비록 전부는 아닐지라도.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9. 19. 08:31

<삼국유사 프로젝트 첫번째 - 꿈>

시 : 2012.09.01 ~ 2012.09.16.

장소 : 백성희장민호극장

출연 : 남명렬, 강신일, 장세라, 장재호, 강학수, 최지훈 외11 인

극작 : 김명화 

연출 : 최용훈

제작 : (재)국립극단

 

이 가을에 기대되는 연극 프로젝트가 시작돼 살짝 흥분모드다.

국립극단에서 기획한 삼국유사 프로젝트.

전부 5편이 올려진다는데 그 첫번째 작품이 바로 이 작품 <꿈>이었다.

게다가 강신일과 남명렬이 충연한단다.

처음에 이 소식을 접했을 때,

순간 누군가 내 속을 읽은 게 아닌가 싶어 놀랐었다.

무슨 작품이 됐든 간에 이 두 배우가 무대에 함께 오른 모습을 보게 되길 내가 얼마나 꿈꿨던가.

이건 흥분 모드가 아니라 황홀 모드라고 해줘야 옳다!

(정말 꿈은 이루어지긴 하는구나... 사실 감동도 했다)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 극장은 처음 가봤는데 찾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서울역 광장 1번 2번 출구 주변을 얼마나 왔다갔다 했는지...

결국은 공연장에 직접 전화를 걸었다.

(아마도 나 같은 사람들이 꽤 많은 모양이다. 웃으면서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걸 보니...) 

빨간색 외관이 참 인상적이었는데 가까이서보니 오래전에 미군기지로 사용했던 곳이 아닌가 싶다.

공연장 입구에 인공잔디와 피크닉 의자를 설치한 모습도 인상적이다.

가을 햇살 아래 공연을 기다리는 관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는 모습은 참 보기 좋더라.

앞으로 4번은 더 오게 될텐데 일단 공연장의 첫인상은 나쁘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런데 관객석 내부 바닥이 우드라서 발을 조금만 움직여서 소리가 난다.

집중력있게 공연을 관람하려면 이 부분도 해결되야 할 것 같은데...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고 했던가!

(All history is cmtemporary) 

그리나 모든 역사는 그 자체로는 어떠한 의미도 가지고 있지 않다.

(History has no meaning)

연극을 보면서 난 이 명제들을 수없이 떠올렸다.

인간의 역사는 욕망(慾)의 역사이고,

인간은 그 끝없는 욕망을 탐(貪)하여 결국 소유하기 위해 자진해서 고통 속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인간의 모든 역사는 고(苦)의 역사다.

pain이 없으면 gain도 없다는 논리는 또 얼마나 잔인하고 포악한가!

그러나 인간의 역사는 pain의 통감 정도에 따라 진보되고 진화된다.

때론 어이없게도 끈질긴 뒷걸음으로 퇴보하기도 하고...

"조신지몽"처럼 지금의 정권도 일장춘몽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간절히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나를 참 우울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이 작품도 지금의 문제를 입에 담는 것이 너무 싫어 애써 삼국유사를 빌어 말한건지도 모르겠다.

 

의상과 원효, 조신과 평묵, 그리고 이광수와 최남선.

세 가지 욕망을 탐하면서

나는 때로는 허덕였고, 때로는 모호했고, 그리고 때로는 절망했다.

그건 방관의 입장이기도 했고, 관조의 입장이기도 했지만

솔직히 대부분은 무능의 입장일 수밖에 없었다.

시간과 공간이 섞이고 인물이 서로 섞인다.

기을 쓰고 쫒아가면 길을 잃기가 다반사였다.

무능을 탓할 여력도 없이 종내는 그냥 눈에 보이는 것들을 그대로 보기만 했다.

완전히 해독은 아니었대도 몰이해 역시 아니었으니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일은 마음 먹기에 따라 달라진다니 그대로 따를 수 밖에...

 

원효는 당나라 유학길에 동굴에서 하룻밤을 머물게 된다.

곤하게 자다가 잠결에 달게 마신 물이 다음날 아침 해골에 담긴 썩은 물이었다는 걸 알고 순간 깨달음을 얻는다.

그리고 당나라로 가던 발걸음을 돌려 다시 신라로 돌아온다.

원효의 깨달음은 몽(蒙)에서 시작된다.

꿈의 맥락에서 작품을 보면 춘원 이광수의 욕망 역시 몽의 욕망이다.

그의 비루한 인생은 그의 탓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인생해서 조국을 단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의 변절은 과연 변절일까?

결코 깰 수 없는 몽(夢)속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그 꿈은 너무나 구체적이라 오히려 유일한 현실이 된다.

 

작품 자체가 여러모로 방대하고 심오(?)했지만

배우들의 열연은 이 모든 모호함을 상쇄시킬만큼 엄청나고 대단했다.

특히나 춘원 이광수로 분한 강신일이 또 다른 자아(춘원의 양심)와 만나 논쟁하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다.

섬득하고 잔인했다.

그래서 좌절하듯 슬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시간들이 황홀했던 건,

배우들의 열연뿐만 아니라 무대와 음악, 조명이 주는 신묘함도 한 몫을 했다.

관음보살의 춤과 그림 밖으로 튀어나온 탱화.

의상과 원효, 조신과 평묵의 과장된 행동과 코믹한 모습들.

처음엔 분명 당황스러웠지만 곧 인정했다.

어차피 설화의, 야사의 세계는 과장과 웃음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단히 호쾌하고 대단히 심각한 작품을 본 셈이다.

이 작품을 보는 때에 우연치 않게 내 손엔 도올 김용옥의 책이 들려 있었다.

<사랑하지 말자>

그 책 속의 한 대목을 남겨보련다.

 

"인생은 청춘의 꿈으로 시작하여 비극의 해탈로 끝난다.

 꿈과 해탈을 연결하는 외나무 다리는 모험이다.

 인생은 오직 모험이 있을 뿐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