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손말"을 배운 적이 있었다.
더듬더듬 손으로 읽고 말하는 아름다운 언어
"수화"
목소리가 아니어도 감정을 담아
진심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게 아름답고 고귀하게 느껴졌었는데....
출근길 지하철에서
붙어있는 광고의 글자를 보면서 열심히 연습하다가
실제로 청각 장애우과 짧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던 기억...



초음파 검사 중에
가끔 태아들이 보여주는 손말 
"I Love You"
그 손끝을 보고 있으면 순간적으로 뭉클해진다.
마치 아이가 엄마에게 
그리고 나에게 
귀한 사랑을 보내주는 것 같아서...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그 작은 손을 오물거려 말하는 아가들
대답해주고 싶다.
"그래, 세상은 온통 사랑뿐이라"고...

사랑으로 너는 태어나고
사랑으로 너는 자라나고
사랑으로 세상에 남겨질 거라고...
그리면서
나는 다짐한다.
아기의 작은 두 손
그 손이 처음 쥐는 세상을
꼭 사랑으로 기억하게 만들겠다고...

아기의 손말.
그 깊고 선한 메시지를 위하여...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8. 12. 28. 19:38

<눈먼 자들의 도시> - 주제 사라마구




인간의 공포심과 잔혹함, 그 인간성의 바닥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책입니다.

단언컨대, 제가 아는 최고의 공포소설입니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보다도 더 공포스럽게 다가오죠. 헉슬리가 말한 세계는 그래도 SF적인 요소가 있어 “에이 설마...”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데 이 소설은 그냥 그 자체가 정말 너무나 현실로 다가와 사람을 섬뜩하게 만듭니다.

3년 전이네요.

“주제 사라마구”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게...

처음 친구에게서 이 사람의 이름을 들었을 때, 일본 사람인가? 했더랬습니다.

1922년 포르투갈 출생으로 아직까지 건장하게 활동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대가 중의 한 분입니다. 1998년 95번째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하구요.

2008년에도 자국에서 <작은 기억들>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했네요. 9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끊임없이 작품을 써내려가고 있는 그가 사실 더 공포스럽긴 합니다.

지난달 드디어 이 원작을 토대로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죠.

감독 페르난도 메이렐러스는 원작을 조금도 훼손시키지 않고 그대로 살리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고 하네요.

그는 주제 사라마구 단 한 사람을 위해 포르투갈로 직접 날아가 특별 시사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영화가 끝난 후, 주제 사라마구가 오랫동안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동영상을 통해 우연히 보게 됐는데 제 가슴까지 찡해졌었습니다.

대가에 대한 깊은 헌사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 작품이 영화화 된다고 했을 때, 정말 가능해?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만들겠다는 거지?

설마 원작에 상처를 주게 되는 건 아닐까?

특별한 느낌을 갖게 한 책에 대한 걱정과 우려. 그리고 그냥 책으로 남겨두면 안 되나...하는 개인적인 바램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론은 정말 괜찮은 영화가 만들어졌더라구요...

(저, 개봉하는 날 냉큼 달려가 봤습니다. ^^)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은 읽은 이를 긴장하게 만들기로 유명합니다.

소설 속에 쓰이는 문장 부호도 오로지 마침표와 쉼표뿐입니다. 대화나 독백 같은 대사조차 따로 구분해서 쓰지 않고 그대로 계속 문장 안에 포함시켜 버리죠. 그래서 처음엔 당혹스런 느낌마저 갖게 됩니다.

익숙하지 않은 것들은 만날 때 느끼는 불편감이라고 할까요?

지금은...

그러한 문단 자체가 작가의 의도를 해석하는 하나의 포인터였다는 걸 이해하게 됐습니다.

그의 글을 읽을 때 긴장하지 않고 읽는다면 아마도 대번에 책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기 쉬울 겁니다.

읽는 사람의 몸도 마음도 송두리째 몰입도록 이끌기에 그의 이름 앞에 대가라는 수식어가 붙게 된 건 아닐지......(솔직히 작가에게 끌려 다니는 것도 등장인물들에게 끌려 다니는 것  만큼이나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어느 날,

사람들이 하나 둘씩 아무 이유도 없이 눈이 멀게 됩니다.

“백색 공포”가 도시 전체를 뒤덮게 되죠.

정부는 급기야 그 사람들을 따로 격리하고 관리하기로 결정합니다.

여기에 눈이 멀지 않은 한 여자가 있습니다. 그 여자는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어차피 나도 곧 남편처럼 감염될 테니까......

이곳에서 여자는 눈이 먼 사람들의 모든 눈이 되어 생활합니다.

도무지 약자와 강자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인간의 탐욕은 장하게도 강자와 약자의 권력을 명확히(?) 분리해냅니다. 게다가 어떠한 저항도 하지 못한 체 새로운 권력이 휘두르는 잣대에 그대로 따르게까지 되죠.

“먹을 것을 원한다면 당신들의 여자를 바쳐라”... 도대체 이런 상황에 성이라는 요소가 끼어들 자리가 과연 있는 걸까요? 그런데 정답은 어이없게도 “그렇다!”는 사실입니다.

눈 먼 남편들은, 애인들은 그들의 눈 먼 여자들을 줄 세워 보냅니다.

그리고 눈 먼 그녀들이 몸으로 얻어 온 음식물을 그들의 목 안으로 삼키죠.

아마도 그 순간, 그 곳의 사람들은 그들의 눈에 이어 그들의 입(말)조차도 잃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슬아슬하게 유지됐던 균형감이 왠지 깨지는 소리가 들리네요.

상황이든, 사람이든, 뭐든 달라지겠구나 하는 예감...

예감은 적중합니다.

수용소에 불이 나고 눈 먼 사람들은 거리로 쏟아집니다.

아무도 그들을 제지하지도 돌아가라고 명령하지도 않습니다.

이미 그들 세상 모두가 “백색 공포”에 감염된 상태였으니까요.

거리는 온통 끔찍한 형상으로 변해 있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기에 대소변을 아무 곳에서나 보고. 질서는 무너지고 도시는 쓰레기와 똥, 오줌으로 뒤덮입니다.

차라리 인류 심판의 날처럼 느껴지기까지 하네요.

행렬이라는 거, 줄이라는 거, 이 책에서는 마치 생명줄의 연장선처럼 보입니다.

단 한 명의 눈에 의지해 서로의 어깨를 잡고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

그들에게 세상을 사는 방법은 단 사람에 의지해서이고, 그들의 생명도 또한 단 한 사람에 의해서만 계속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들에겐 절대자, 즉 구세주가 되는 셈이죠.

눈 먼 무리들을 이끌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그들을 위해 먹을 것을 구해오고 더러운 몸을 씻기고, 옷을 세탁합니다.

힘들었겠죠, 지치고 그리고 그만두고 싶지 않았을까요? 아마도 그녀는...


이유 없이 눈이 멀었던 것처럼,

다시 이유 없이 한 사람씩 시력을 회복하게 됩니다.

읽는 사람도 공황 상태로 몰고 갈 만큼 갑작스런 상황이라 조금 당혹스럽기까지 합니다.

눈이 보이게 된 사람들 중간에 서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던 그녀는 눈이 일시적으로 하얗게 보이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갑작스런 공포로 이제 내 차례인가 중얼거리는 그녀의 눈 속에 도시는 다행히 그 모습 그대로 보여집니다.

이 모든 끔찍한 것들을 오로지 혼자서만 보고 경험한 그녀가 말합니다.

......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 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그녀가 말하고 싶었던 건...

그들의 눈을 멀게 만든 그들 내부에 있는 이름 없는 뭔가에 대해서였을 겁니다.

그 뭔가는 바로 우리 자신이죠.

다행히 그들은, 아니 우리는 회복됐습니다.

그러나 누군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8. 12. 21. 10:55

  <엄마를 부탁해> -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그녀가 낸 작품들은 모조리 읽었습니다.

하다못해 산문집까지도...

제게 있어 신경숙은 질투의 대상이이기도 했고,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고, 그리고 실망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그녀만의 독특한 감성과 글쓰기에 얼추 젖어버렸다고 할까요?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의 제 느낌들이 작가로서의 그녀에 대한 종착역은 결단코 아닐 거라는 사실입니다.


이 사람...

평범한 일상을 너무 아프게 써 어느 날은 혼자 화가 났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면은... 나를 들여다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뜨끔한 자괴함과 부끄러운 속내를 들킴에 대한 막무가내의 억지였던 건 같네요.

“풍금이 있던 자리”

가령 그녀의 글쓰기는 그렇습니다.

풍금이 있는 자리가 아니라 풍금이 있던 자리인 거죠.

화자가 바로 <나>여야 하는 이야기를 그녀는 <당신>으로 바꿔놓습니다.

그녀의 모태 신앙 같은 도시 정읍, 그리고 차마 분명한 이름조차 갖지 못한 체 등장하는 이니셜의 인물들...

게다가 대화조차도 문장부호 없이 그대로 써버리는 당혹감...

<리진>이라는 소설을 통해서 잠깐 다른 방식의 글쓰기를 시도했던 그녀가 다시 초기작으로 돌아왔네요.

지극히 “신경숙다운” 소설과 함께요...


철들기 시작한 딸들 중 “엄마”라는 이름에 가슴 아프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이 책은 모태로부터 시작된 자식들의 원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총 5장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엄마를 잃어버린지 일주일째다”.....

지독한 두통과 점점 잃어가는 기억들, 수시로 찾아오는 통증을 숨기고 노부부는 자식이 있는 서울로 올라옵니다.

예전의 우리네 아버지들의 발걸음.

아내와 같은 속도로 함께 나란히 걸어가는 게 마치 무슨 대단한 흉이라는 되는 냥 성큼성큼 앞서 갑니다.

자식들의 마중을 마다하고 지하철을 탄 남편의 등골이 순간 오싹합니다.

글조차 읽지 못하는 그 아내가 열차를 타지 못했던 거죠.

성급히 남편은 남영역에서 되집어 전철을 타고 서울역으로 향합니다.

그러나 아내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렇게 4명의 다 큰 자식들은 속수무책으로 어미를 잃습니다.

 

각각의 장은 큰딸, 맏아들,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다시 큰딸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큰딸의 이야기는 “너(2인칭)”의 시점으로, 맏아들의 이야기는 “그(3인칭)”의 시점으로, 아버지의 이야기는 “당신(2인칭)”의 시점으로, 그리고 어머니의 이야기는 “나(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엄마를 찾는 전단지를 만들기 위해 모인 가족들은 서로에게 긁힌 상처를 드러내며 새로운 상처를 만듭니다.

그들에게 던져진 화두 두 가지!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나?”

“엄마가 홀로 남겨지고 있을 때 나는 무엇을 했는가?”

이제 그들은 전단지를 보고 연락한 내용을 따라 엄마를 찾아 헤맵니다.

그들이 찾아간 곳은 예전에 그들의 첫 직장이 있었던 곳이고, 본인 명의의 첫 집을 장만했던 곳 등, 모두 그네들의 흔적이 스친 곳이기도 합니다.

엄마는 정말 그 곳을 다녀갔던 걸까요?

파란 슬리퍼에 뼈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상한 발을 끌고...


우리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엄마에겐 사연이 없다고... 엄만 그냥 처음부터 엄마일 뿐이라고...

어쩌면 이해할 마음조차도 미처 갖지 못할 만큼 자식으로서의 이기심이 너무 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엄마에게도 돌아가 편히 쉬고 싶은 집이 있었을 테고, 그리고 그 엄마에게도 무릎을 베고 누우면 다독여 줄 엄마가 일평생 필요했을 거라는 걸, 우리는 정말 알고 있었을까요???

그런 엄마가 어느 날, 우리들에게 말합니다.

“나는 이제 갈란다... 잘 있으시오”


엄마를 잃어버린 지, 9개월째...

작가인 큰딸은 이탈리아 성 베드로 성당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녀는 그 곳에서 여동생의 편지를 떠올리며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 앞에 섭니다.

“....... 엄마는 엄마가 할 수 없는 일까지도 다 해내며 살았던 것 같아. 그러느라 엄마는 텅텅 비어갔던 거야. 나는 엄마처럼 못 사는데 엄마라고 그렇게 살고 싶었을까?......”
감히 누가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까요?

“엄마니까....엄마란 다 그런 존재니까....”

저는 죽어도 이렇게 말 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소리조차 죽이며 흐느꼈던 내 어미의 아픈 통곡과 내 손을 붙잡고 놓지 않던 내 어미의 거친 손이 지금 저를 여기에 있게 했으니까요...

결국,

이 책은 또 제 이야기이기도 한 셈이네요.


피에타 상...

죽은 예수를 품에 안고 고통과 절망의 순간을 이겨내고 있는 성모 마리아.

어미의 무릎, 제 2의 모태 속에서 아들은 드디어 평온을 맞이합니다.

어미의 손길이 스치기만 하면 이제 모든 고통과 절망은 사라져 흔적도 없어질 테죠.

비로소 모든 잃은 생명 또한 비옥해져 싹이 틀 것이며 자라나 열매를 맺게 될 겁니다.

내 어머니...

어미의 생명은 그렇게 나에게로 옮겨옵니다.....

아무래도 저는 이제 제 자신에게도 말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엄마를 부탁해...” 라고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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