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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20 달동네 책거리 86 : <이갈리아의 딸들>
달동네 책거리2010. 2. 20. 05:56
 <이갈리아의 딸들> -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이갈리아의 딸들


기발하고 재미있는 역발상(?)의  소설도 있다는 걸 아시나요?

오늘 소개할 책이 그런 책 중 한 권입니다.

작가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1941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출생. 오랫동안 교사 생활을 했다고 하네요. 1970년대 초반부터는 여성해방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오슬로 여성의 집>과 <매맞는 아내들을 위한 쉼터>에서 일해 오고 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이 쓴 또 다른 책들은 <전세계의 동성애자여, 일어나라>, <그래, 이젠 그만>, <성 크로와에게 바치는 노래>, <페리호를 타고> 등이 있답니다(작가의 성향이 조금 이해되시겠죠?) 이 책은 모국어로 출판됐을 때 보다 영어로 번역되어 나왔을 때 오히려 더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하네요.

유럽에선 연극으로 장기 공연되기도 했다고 하고요...

<이갈리아의 딸들>

이 책은 성의 역할이 완전히 뒤바뀐 나라에 대한 이야깁니다.

먼저 “이갈리아”라는 단어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드릴께요.

이 책에서 나라의 이름으로 나오는 “이갈리아”는 평등주의를 뜻하는 “egalitarian” 단어와 이상국을 뜻하는 “utopia” 두 단어가 합성된 말로 “평등한 유토피아”란 뜻입니다.

좀 느낌이 오시나요? 

이 나라에서는 여성을 움(wom)으로 남성은 맨움(manwom)으로 부르고, 아내는 여전히 “wife”, 남편은 “housebound”라고 부릅니다.

여성들은 자신에게 정자를 제공한 아이 아버지에게 '부성보호'를 지명할 수 있고(쉽게 말하면 남자 가정부라는 뜻이죠 ^^), 맨움들은 부성보호를 받기 위해 다달이 행정관서에 가서 피임약을 먹고 사인을 받아야 합니다. 나는 이 나라가 지정한 여자에게만 정자를 제공하겠다는 뭐 그런 서약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사회를 이끌어가고 정치를 하고, 경제 주체가 되는 사람들이 wom이고 manwom은 그 여자가 벌어오는 돈으로 가정을 꾸미고, 미용실을 가서 본인 자신을 가꾸고, 자녀를 양육하는 뭐 대략 그런 나라입니다.

여성들은 당당히 윗옷을 벗어 가슴을 자랑스럽게 드러내고 다니고 대신 남성들이 여성처럼 “페호”라는 코르셋 같은 보호기를 착용해야 하는 나라. 댄스파티에서 수줍게 여성의 춤 신청을 받기위해 신경전을 벌이는 나라. 혹 여성에게 선택받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전전긍긍하는 남자들이 사는 나라...

그런 나라가 바로 “이갈리아‘라는 곳입니다.


이 책은 어떻게 생각하면 코믹한 책이고 어떻게 생각하면 심각하다 못해 공포감마저도 느껴지는 내용입니다.

성의 역할의 기존의 개념과 정확히 정반대인 나라.

남자들이 여성들에게 강간당하고,

여자들에게 구타당한 멍든 얼굴을 진한 화장으로 감추는 남자들이 사는 곳.

정자가 수치의 근원이고 월경은 힘의 원천인 사회.

어찌됐든 내용적인 면에서 이 책은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때 항상 나오는 책이기도 하지만 어쩐지 저는 페미니즘 소설로 치부하기엔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 스스로도 이 책이 조금은 지나치다고 말하고 있지만, 어쨌든 굉장히 재미있고 신선하고. 동시에 생각거리를 만들어 주는 내용임에는 분명합니다.

여성과 남성이 아닌 “사람”을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죠.

갑자기 가수 김건모가 부른 “핑게”라는 가사의 일부가 생각납니다.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

인간과 인간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

“역지사지”

이런 입장 바꿔 생각하는 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바야흐로 "갈등" 구조가 표면화되는 거죠.

어떤 형태이든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사이엔 갈등이 생기게 되면 그 구조 자체를 파괴하고자 시도하는 움직임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어떤 특정 개인이든, 상황이든요.

이곳에도 그런 사람이 존재하게 됩니다.

잃어버린 자아와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남자, “페트로니우스”가 바로 그 도화선에 해당하는 인물이죠.

그에게 아버지는 멘토의 역할을 합니다.

강간당한 아들에게(아들을 강간한 그 여자는 임신을 하게 되고 페트로니우스에게 부성보호를 명령하죠) 아비는 말합니다.

"그에게서 부성보호를 받으면 안 된다. 페트로니우스! 삼십년 간, 아니면 네가 버틸 수 있는 한, 하루 스물 네 시간 꼬박, 처음부터 끝까지 고달프고 힘든 일이라구. 그리고 만일 세세한 부분까지 아내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스물 네 시간 내내 일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비난뿐이야. 페트로니우스! 만일 내가 너라면, 지금...만일 내 입장이라면...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거야. 가정과 아이에 대한 꿈은 집어치우고 내 자신을 찾고 싶어...”


드디어 맨움들에 의한  맨움해방주의가 싹뜹니다.

맨움도 움이 가진 것과 똑같은 권리, 권력, 기회를 가져야 하며, 평등을 얻기 위해서는 현재의 상황이 변해야 한다는 정치적 신념. 이것에 근거한 사회운동을 부르짖게 되죠.

이제 그들의 외침이 순탄치 않으리란 건 예상이 되시겠죠?

언제나 힘든 시작엔 필사적인 억압이 있었으니까요. 어느 시대든, 어떤 상황이든, 그리고 누가 어떻게 시작을 했든...


그렇다면 이 책,

결국 여성해방을 꿈꾸는 내용인건가요?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양성해방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양성존중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네요.

여성이기에, 남성이기에 보호받아야 하고 인정받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 인간이기에, 사람이기에 하나의 귀중한 객체로 보호받고 인정받아야 한다는 사실.

더 이상 누군가가 누군가의 인생에 얹혀사는 존재가 아닌, 그래서 팔자 고치는 삶을 꿈꾸는 게 아니라 내 삶을 내가 살아가야만 나에 대한 진정한 자존감을 갖게 된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쓰고 보니 참 교훈적이네요....^^)

이 책을 읽고 여자란 무엇인가? 혹은 남자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나>란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램을 해 봅니다.

"혁명"이라는 말...

지금 우리가 꿈꾸고 희망하는 모든 것들이,

어느 순간,

우리에게 <혁명>이 될 수도 있습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