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3. 12. 6. 08:00

이스탄불 구시가지에서 살짝 외곽에 위치한 카리예 박물관.

2년 전 이곳에 들어선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건 감탄과 황홀을 넘어 온 몸을 꼼짝달짝 못하게 만드는 경외감이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도 무슨 일이 있어도 이곳만은 꼭 다시 가리라 작정했다.

예전에 너무 어렵게 이곳을 찾아간 기억때문에

조카들과 동생을 데리고 또 다시 헤매지 않을까 걱정을 했지만

숨을 쉴 수조차 없었던 경외감을 다시 한 번 경험해보고 싶었다.

다행히 이번엔 아주 수월하게 찾아갔다.

에미뇌뉘에서 37E를 타고 에디르네카프에서 하차해서 길 건너에 있는 카리에 박물관을 바로 찾아서 들어갔다.

(도대체 나는 2년 전 왜 여길 그렇게 헤맸을까? 지금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카리예 박물관은 처음엔 "코라 성당"으로 불렸다.

그러다 오스만제국때 아야소피아처럼 자미로 바뀌면서 "카리예 자미"로 명칭이 바뀌었다.

미나레와 미흐랍도 그대 만들어졌단다.

"코라"이든"카리예"든 그 뜻은 전부 "교외(郊外)"를 뜻하는 그리스어와 아랍어라니

뭐 결정적으로 바뀐 건 사실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일까? 이곳의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는 보전이 잘되어 있는 편이다.

"교외"라는 단어 그대로 술탄 아흐멧 중심지에서 벗어난 지형적인 요인이

비극의 참상을 면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생각된다.

물론 오랜 시간이 지나서 자연스럽게 훼손된 부분도 있긴 하지만

정교함과 크기와 섬세함이 무시무시할 정도다.

이 성화들을 자세히 보려고 한국에서 짐을 챙길 때 일부러 망원경까지 넣었었다.

이번 여행에서 내 동생이 가장 좋아했던 곳!

동생은 이곳에서 파는 도록까지 사서 지금도 시간날 때마다 펼쳐본다.

분량도 꽤 되고 영어판이긴 하지만 그림 하나하나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있어서 꽤 유용한 도록이다.

(물론 사전을 곁에 두는 건 필수고!)

 

본관 정중앙의 황금색 성경을 들고 있는 예수의 모자이크.

머리쪽 황금빛 모자이크에 쓰에 있는 글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는  그리스어다.

햇빛을 받아 황금빛으로 보이는 예수님의 온화함이 그대로 가슴 안으로 들어온다.

이곳은...

정말 빛의 공화국이고, 빛의 유토피아고, 빛의 현신이다.

햇빛의 이동에 따라 모자이크화도 변한다.

작은 큐빅조각 하나하나가 마치 살아서 춤을 추는 것 같다.

경외감과 신비감이 종횡무진으로 함께 뛰어다닌다.

이곳에는 시간도, 공간도 다 사라진다.

단지 "나"와 대면하는 절대자만 있을 뿐.

 

예수의 모자이이크 왼쪽에는 천국의 열쇠를 쥐고 있는 베드로가

오른쪽에는 로마 세차례 선교여행을 했다는 사도 바울의 모자이크가 있다.

좌우에서 예수를 호위하는 느낌.

특히 사도 바울 모자이크는 햇빛을 정면으로 받고 있어서

작은 모자이크 조각 하나하나가 그대로 빛이더라.

뿜어져나오는 빛때문에 눈이 부셨다.

그대로 고해성사라고 해야 할 것 같은 심정.

모든 죄를 다 자백하고 나면 정말 내 안에 평안이 찾아와 줄 것 같아

그대로 무릎을 꿇고 싶었다.

 

이곳은 하루 온종일 있으라고 해도 전혀 지루하지 않을 곳.

오히려 보면 볼수록 신비감과 경외감에 말문이 막혀버리는 그런 곳이다.

침묵 속에서 그저 바라만 볼 뿐.

카리에 박물관.

그 신비한 시간과 공간 속으로...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12. 10. 05:50

<뮤지컬 엣지스>

원작: 벤제이 파섹, 저스틴 폴
연출: 변정주
극작: 류용재, 윤혜선
기간: 2010.11.23 ~ 2011.1.16
장소: 대학로 더굿씨어터
출연: 강필석, 최재웅, 최유하, 오소연


오랫만에 강필석의 무대를 봤다.
<틱틱붐>을 보려고 했는데 놓쳐버리고...
솔직히 제목만으로는 그리 끌리는 작품은 아니었다.
그런데 강필석, 최재웅 두 배우를 함께 볼 수 있다는 게 선택의 가장 큰 부분으로 작용했다.
모자이크 형식의 이야기.
스터디셀러 <아이 러브 유>를 떠올리게 한다.
평범한 젊은이들의 고민과 고백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낯설고 어색하지?
원래는 송쓰루 뮤지컬이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대사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냥 원작처럼 송쓰루로 갔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등장인물조차도 배우들의 실명 그대로 사용해서 나름데로 친밀하게 다가가게 한 것 같은데
그게 이상하게 솔직하게 다가오는 게 아니라
작위적으로 다가온다.
중간중간 인터넷이나 현장에서 쓴 고민을 소개하는데
그게 또 물위에 기름이 뜨듯 이질적이다.
단지 소개한다는 의미 밖에는...
그걸 관객의 참여라고 과연 할 수 있을까????
관객들의 호응도 생각만큼 즉각적이고 원활하지 않아 배우들도 참 힘들겠다 싶다.

 

반복되는 직장 생활에 질린 남자,
여기저기 면접을 찾아다니는 취업 장수생인 여자,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자 하는 맞선녀,
인터넷에 빠져 가상의 모습과 헷갈리는 컴퓨터 중독남,
이렇게 네 사람으로 시작되고 끝나지만
그 중간중간은 실제와 배역 사이를 왔다갔다하면서 좀 산만하게 진행된다.
88만원 세대로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는데
꿈, 사랑, 실수... 등 그냥 평범한 이야기들 뿐이다.
뭐랄까? 포인트가 될만한 이야기가 없다는 게 흠이라고나 할까?
원케스팅으로 작품의 집중력을 높인건 정말 좋았는데...
(좀 걱정은 된다. <건메탈 블루스>, <더 씽 어바웃 맨>처럼 비운의 운명이 될까봐...)  
변정주 연출이 말했다.
“만약 캐스트가 많았다면 작품이 이렇게 나오긴 힘들었을 거다.
작품에 나오는 내용들이 본인들의 입에서 직접 나온 것이 많았다.
원캐스트여서 배우들도 자신을 벗고 보여줬기에 작품이 나왔다고 생각한다”고
독특한 컨셉이 장점이 될수도 있겠지만 그게 단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려운 여정이 되겠지만 부디 진화를 잘 시키기를...



기억에 남는 뮤지컬 넘버들이 꽤 있다.
가령, 네 배우가 함께 부른 "가면을 벗어"라는가
최재웅이 부른 "어머니"
(이 노래 가사가 참 좋다. 그리고 최재웅의 음색이랑 잘 어울린다)
강필석이 조그만 인형 두 개를 가지고 부르던 동화같은 노래,
(이 노래를 부를 때 강필석의 표정과 목소리 참 좋다)
그리고 최유하가 캣우먼스러운 복장으로 지나간 연예 편력(?) 노래 "이젠 안녕" 도 괜찮았다.
최유하, 오소연 두 사람이 연인으로 나와서 부른 "너는 나를 믿어야해"도
여자 두 사람의 하모니가 안정적이고 특별했다.
마지막에 나오는 "난 무엇이 될까?(become)"는 시작과 마지막 부분이 대비되는 느낌이 들면서
묘한 분위기는 남기더라.
그리고 무대 창문과 벽면에 보여지던 영상도 분위기와 아주 적절하게 어울렸다.
소극장 공연인데 에피소드에 따라 배우들의 의상도 자주 바뀌었고
4명으로 구성된 밴드의 라이브 연주도 장점이라 하겠다.
조목조목 따지고 들어가면 나쁘지 않은데
이상하게 전체적으로는 조화가 잘 되지 않는다는 게
좀 아이러니다. 



꿈, 사랑, 실수, 어머니. 다시 사랑...
아마도 너무 많은 흔한 이야기를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산만하다고 느껴진 건.
아니면 이런 이야기에 공감하기엔 내가 너무 무덤해진 건지도 모르고...
가끔은 그럴 땐 조금 서글퍼지기도 한다. (*^^*)
그래, 그냥 독특했다라고 기억하자.
엣지있게 ^^
확실히 오랫만에 무대에서 본 강필석의 목소리는 반가웠다.


                                           <Become> - 강필석, 최재웅, 최유하, 오소연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11. 29. 06:34
아마도 전 인류는 비틀즈에게 큰 빛을 지고 있는 것 같다.
비틀즈만큼 문학적으로, 예술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친 현대 예술가가 또 있을까?
<마왕>, <사신치바>른 쓴 젊은 일본 추리작가 이사카 코타로도
그런 의미에서 비틀즈에게 빛을 지고 있는 셈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몇 년 전 개봉했던 <테이큰>이란 영화가 떠올랐다.
딱히 비슷한 내용도 아니었는데...
폭발 사건을 기준으로 시간을 되돌아가 전개된다는 공통점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황금 자장가!
비틀즈는 이 노래 속에 어떤 평온을 남겨뒀을까?
각자 흩어진 비틀즈 맴버들이 만든 최후의 곡.
그러나 모든 맴버가 함께 모여 부르지 못하고 폴 메카트니에 의해  모자이크처럼 이어 붙여진 노래. 
노래는 처음의 의도와는 다르게 메틀리처럼 녹음되버리고 말았다.



비틀즈와 함께 이 책의 상징적인 존재로 등장하는 "오스왈드"
존 F 케네디를 암살한 것으로 알려진 오스왈드.
그러나 그는 단지 누명을 쓰고 희생된 자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진짜 범인은 누구인가?
과연 범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소설의 주인공 아오야기 마사하루는 지금 오스왈드가 되어 도망 중이다.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총리 암살범으로 몰려서...
증거 자료로 나오는 비디오 녹화 화면에는 분명히 그의 얼굴이 담겨있다.
사방이 다 그를 주목하고 그를 추적한다.
"너 오스왈드가 될거야!"
친구는 그에게 이런 말을 남기면서 좌우간 도망치라고 말한다.
2년 전 아이돌 스타의 스토커를 우연히 잡아서 매스컴의 화제가 됐던 택배기사 아오야기 마사하루.
그러나 이 모든 사건도 역시 누군가에 의해 계획된 것이었다면?
그 후 지하철역에서 치한으로 몰린 사건까지도...
8년만에 찾아온 친구는 그에게 말한다.
"너를 치한으로 체포하려는 게 아니라 현장을 사람들에게 목격시키는 게 목적" 이었다고.



성형수술로 마사하루와 똑같은 얼굴의 누군가를 만들어낸 거대 조직.
그 조직을 피해 도망다니는 마사하루와의 대결은.
초라하면서도 집요하고 허술하면서도 절대적이다.
몇 번의 검거와 탈주를 거듭하면서 그들은 마사하루에게 말한다.
"지켜세웠다가 버리는 게 세상 사람들의 취미야!"
매스컴과 정부의 정보조작은,
평범한 한 사람을 어마어마한 암살범으로 만들어내기에 충분하고도 남다.
"적은 상당히 거대한 놈들이예요. 규모도, 태도도"
우연히 만나 도움을 받게 된 연쇄살인범 기루오도 말한다.
책 속에서는 그 거대조직이 왜 주인공을 범인으로 만들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히 나와있지 않다.
하긴, 명확했다면 주인공 역시도 도망치는 데 이유와 목적이 명확했겠지.
도주에 성공한 마사하루는 가짜를 만들어낸 성형외과 의사에게
스스로 다른 얼굴로 만들어 줄 것을 부탁한다.
얼마후 경찰은 마사하루의 시체가 항구에서 떠올랐다는 발표를 한다.
가짜 마사하루가 본의 아니게 비극을 맞이한 셈이다.
뭐 모종의 음모는 전부 비극이긴 하겠지만...

인간의 최대 무기는 습관과 신뢰란다.
이야기 속에서 그가 범인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린 사람들도
전부 습관과 신뢰에 의해서 마사하루가 범인이 아닌 걸 알아차린다.
책을 읽다 자수 생각했다.
새상에 얼마나 많은 오스왈드가 만들어졌을까를...
음모에 맞서는 방법은
똑같은 음모로 대처하는 것이 유일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또 모르지.
어느 틈에 나 자신도 누군가에 의해 오스왈드가 되고 있는 중인지도...
왠지 뒷골이 섬득해진다.
그러다가 에이, 설마!
내가 뭐라고....
를 생각하니 왠지 다행스럽기도 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