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마 유키오'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5.06.18 신경숙 표절 시비
  2. 2014.06.24 교토 금각사(金閣寺)
  3. 2010.10.27 <사랑하고 있다고, 하루키가 고백했다> - 사이토 다카시
그냥 끄적 끄적...2015. 6. 18. 09:16

문단이 시끌시끌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작가 신경숙 때문에...

문단계의 독보적인 존재 신경숙을 깐 이응준 작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혹시나 향후 이 문제로 이응준이 거대 출판사로부터 퇴출되지 않을까 심각하게 걱정된다.

어떤 의미에서,

대한민국이란 곳에서 신경숙은

황석영, 조정래 작가보다 더 크고 거대한 존재다.

이미 하나의 브랜드 네임이 되버렸고 기업체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정도다.

참 씁쓸하다.

 

작가 신경숙.

그녀의 마니아는 아니지만 어쨌든 신작이 나오면 항상 읽기는 했었다.

한때 문단계에선 이런 말이 있었다.

"오죽하면 신경숙이겠느냐!"

동의했었다.

그녀의 소설을 읽다보면 왠지 모를 기시감 같은게 느껴졌다.

특히나 이런 기시감은 장편보다 단편을 읽을때 더 크게 느껴졌다.

주변에 그런 이야기를 하면,

다들 내가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란다.

아닌데... 아닌데...

 

 

 

작가 신경숙이 출판사 창작과 비평을 통해 발표한 입장 표명은 이렇다.

...... 오래전 <금각사> 외엔 읽어본 적 없는 작가로 해당 작품(<우국>)은 알지 못한다. 이런 소란을 겪게 해 내 독자분들께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풍파를 함께 해왔듯이 나를 믿어주시길 바랄뿐이고,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런 일은 작가에겐 상처만 남는 일이라 대응하지 않겠다 ......

다른 작가도 아닌 일본의 대작가 미사마 유키오의 글이다.

골백번을 읽어보고 또 읽어봐도,

우연이라고 하기엔 두 문장은 너무나 똑같다.

심지어 그 뒤에 이어지는 문장의 뉘앙스까지도 완벽하게 일치한다.

 

레이코도 잘 응했다. 첫날밤을 지낸 지 한 달이 넘었을까 말까 할 때 벌써 레이코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고, 중위도 그런 레이코의 변화를 기뻐하였다. - 미시마 유키오 <우국>

 

첫날밤을 가진 뒤 두 달 남짓, 여자는 벌써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여자의 청일한 아름다움 속으로 관능은 향기롭고 풍요롭게 배어들었다. 그 무르익음은 노래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 속으로도 기름지게 스며들어 이젠 여자가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노래가 여자에게 빨려오는 듯했다. 여자의 변화를 가장 기뻐한 건 물론 남자였다. - 신경숙 <전설>

 

소설을, 아니 책이라는걸 일 년에 한 권도 안 읽는 사람이라도

이 두 글을 읽으면 똑같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겠다.

아래 링크한 기사는, 

이응준 작가가 직접 쓴 글이다.

과거 신경숙 작가의 소설 중 표절논란에 휩싸였던 다른 작품들에 대한 기사들로 링크되어 있다.

사람의 생각과 판단이라는건 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나는 이응준이 신경숙을 죽이기로 이 글을 썼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의 글처럼 한국문학의 "치명적인 상처'를 세상에 알리고 싶었을테다.

 

http://www.huffingtonpost.kr/eungjun-lee/story_b_7583798.html 

 

신경숙이 정말 몰랐을까?

남진우가 곁에 있는데 정말 몰랐을까?

신경숙의 남편은 시인이자 신화 비평으로 유명한 남진우다.

예전에 남진우의 비평 수업을 1년 동안 들었었다.

그가 문학적으로 얼마나 박식한지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당시에 나는 남진우의 박식함에 깊게 깊게 좌절했었다. 그는 천재라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벌써 20년도 더 된 이야기지만...)

그런 남진우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몰랐다???

글쎄...

 

나는 다만...

신경숙과 창작과 비평 양자 모두 솔직했으면 좋겠다.

아니 정직했으면 좋겠다.

아니라고 하기엔 너무나 아니라서...

 

......신경숙과 같은 극소수의 문인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한국문인들의 삶은 예나 지금이나 버겁고 초라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작가임을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려는 까닭은 비록 비루한 현실을 헤맬지라도 우리의 문학만큼은 기어코 늠름하고 진실하게 지켜내겠다는 자존심과 신념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 이응준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4. 6. 24. 07:35

일본에 갈때마다 늘 가보고 싶었던 킨카쿠지 금각사(金刻寺)

이곳이 그렇게 보고 싶었던건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탓이다.

늘 그렇듯 여행지에 대한 환상의 시작은 적어도 내겐 책이다.

게다가 지금도 신기하게 생각하는건,

잘 찍은 사진으로 첫대면을 한 풍경은 실제로 보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책을 통해 읽은 풍경은 실제 대면했을 때 오히려 더 묘한 감흥이 느껴진다.

그건 아마도 그 풍경이 "이야기"를 품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섯번이나 일본을 가고 그때마다 교토를 방문했음에도

교토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금각사와는 참 인연이 안닿았다.

(심지어 이곳과 아주 가까운 료안지까지 갔었으면서도...)

어쩌면 그건 미사마 유키오의 일종의 최면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금각사는 1397년 건립된 선종 사찰 로쿠온지(鹿苑寺))에 속해 있는 3층 건물로

부처의 사리를 모신 사리전이란다.

특이한건 1, 2, 3층의 건축양식 모두 다르다는거!

1층은 헤이안시대 귀족주의 건축양식이고

2층은 무로마치시대의 무사들 취향의 양식이다.

마지막 3층은 중국양식으로 선실처럼 텅 비어 있단다.

이 킨카쿠지가 워낙 유명하다보니 "로쿠온지"라는 정식 사찰명이 안타깝게도 묻혀버렸다.

금각사는 실제로 1년에 한번씩 금박을 보수한다는데

자세히보면 모자이크처럼 이어진 금박 큐빅들이 볼 수 있다. 

금각사를 방문한 날,

햇빛이 그야말로 금빛으로 쏟아졌다.

무방비상태로 서있는 내게 가차없이 후려지듯 내리꽃히는 강렬함들, 빛들, 찬란함들,

살기(殺氣)마저 느껴지던 아름다움.

 

미사마 유키오의 "금각사"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었다.

더 솔직히 말하면 건성으로 책장을 넘긴 축에 속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금각사의 아름다움에 도취한 젊은 스님의 저지른 엄청난 불장난(?)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알 것 같다.

극도의 미(美)를 마주한다는건

보는 사람을, 견디는 사람을 광인으로 만들어버릴만큼 가차없다는 걸.

젊은 스님은 금각사를 파괴하려던 건 아니라

함께 산화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순간 젊은 스님의 혼백이 내게 옮겨올까 두려워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어디로 가든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금각사의 시선.

 

번잡한 금각사를 벗어나면

이곳이 같은 곳인가 싶을만큼 사람들의 발길이 확 줄어든다.

한적한 다실과 한적한 폭포, 그리고 한적한 석탑.

앉은뱅이 빨간 꽃과 눈맞추려고 쪼그려 앉았던 한적한 길.

금각사는 내게 보여준 건 빛의 길이었다.

그날 내 발걸음을 이리저리 이끌었던 것

종일 "빛"이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이었지만

금각사 주변을 나는 순례자의 심정으로 걸었는지도 모르겠다.

한걸음 한걸음 꾹꾹 디딘 발걸음이 이렇게까지 선명한걸 보니... 

 

엄중한 빛이고

엄중한 길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10. 27. 05:56
제목만 봤을 때는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헌사같은 책이라고 생각했다.
글을 쓴 저자는 현재 메이지 대학교 문화부 교수 사이토 다카시.
소개글에 말의 권위자라고 나와 있는데 솔직히 어떤 의미의 표현인지는 잘 모르겠다.
좀 거하게 말하자면,
하루키의 소설 뿐만 아니라 일본의 현대문학 속에 등장하는
사랑에 대한 느낌과 그 언어적 표현에 대한 통찰이다.
참 묘한 건 객관과 주관 그 중간의 어디쯤에서 적당히 감성적으로 쓰여진 글이다.
살짝 시니컬하기도 하고 관조적이기도 하면서 때론 열정적이다.
사랑한다면, 사랑하고 싶다면, 사랑했다면,
일본 소설 속 사랑 언어에 주목하라...
딱히 그러고 싶진 않았는데 읽다보면 그 표현들에 주목하게 된다. 이상하지?



part 1 쿨한 사랑 -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part 2 나쁜 사랑
<금각사> 미시마 유키오
<산시로> 나츠메 소오세키
<겐지 이야기> 무라사키 시키부

part 3 보통 사랑
<지금 만나러 갑니다> 이치카와 다쿠지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카타야마 쿄이치
<선생님의 가방> 가와카미 히로미
<전차남> 나카노 히토리


기억하기 딱 좋은 편수인 10편의 일본 소설이 나온다.
물론 이야기의 줄거리를 무시할 순 없지만 
여기선 각각의 소설에 나오는 어떤 부분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고 소박하게 쓰고 있다.
나는 이 책들을 읽으면서도 이런 부분들을 놓쳤었구나 새삼 성긴 책읽기에 웃음이 나기도 했다.
때론 이런 책들이 묘하게 가슴에 담길 때가 있다.
고민하지 않고 소풍처럼 읽을 수 있는 적당히 평화롭고 한가한 책이...



가끔 생각하게 된다.
"사랑"이라는 건 말일까? 행동일까? 감정일까?
이 모든 것이라고 대답하겠지만 어쩐지 그 시작은 말(고백)이 아닐까?
표현되어지든, 표현되어지지 못하든.

그리고 나는 사랑을 하고 있었다.
그 사랑은 몹시 복잡한 곳으로 나를 끌어들이고 있었다.
주위의 풍경에 마음을 쓸 여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고백을 세상을 다르게 보고, 다르게 느끼게 한다.
극도의 무관심이든, 극도의 관심이든
고백의 순간 이제 더이상 처음과 같을 수는 없게 되는 것.

나의 외로움이 너의 외로움이 되는 것,
망연히 벽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흘려야 했던 것, 왜 너를 사랑했냐고,
왜 나를 사랑했냐고 따지고 싶어도 따질 수 없는 것,
한 번이라도 더 보고 헤어질 것이라고 후회해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는 것,
그것을 입 밖에 내밀 수 없었던 사랑이라는 것.

너와 나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
그래서 그 경계의 끝에서 비록 누군가 너덜거리게 된데도
사랑이 두려운 남자도 여자도
모두 운명같은 사랑을 꿈꾼다.
운,명.같.은.사.랑.
얼마나 대책없는 단어끼리의 조합인가!

하도 사랑, 사랑하기에
그것이 뭐가 그렇게 대단하기에 난리냐 싶어
사랑을 해봤지만 그 감정 별 것 아니던데,
라고 말하면서도 사랑 없이 못 사는 것이 사람인지라,
누군가 사랑, 그것은 말이야, 서두를 떼기만 해도 또다시 두근거린다.


아닌 척 하면서도 그만,
이 문장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사랑, 참...
또 다시 모질구나... 싶어서...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