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5. 9. 10. 07:54

 

<형제는 용감했다>

 

일시 : 2015.08.23. ~ 2015.11.08.

장소 :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

대본, 작사, 연출 : 장유정

작곡,편곡 : 장소영, 황규동

음악감독 : 장소영

안무 : 오재익

제작 : PMC 프러덕션

출연 최재웅, 윤희석, 정준하 (이석봉) / 김동욱, 정욱진, 동현 (이주봉)

        최유하, 최우리 (오로라) / 박지일, 안세호 (이춘배)

        원종환, 성열석 (이춘걸) / 윤사봉, 김지혜 (예산댁)

        임진아, 신재열, 유태상, 김홍기, 이송

제작 : (주)PMC프로덕션

 

창작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가 코엑스 이후 3년 만에 돌아왔다.

그것도 심히 흐믓한 캐스팅으로!

(여기에 이주원 오로라까지 가세했다면 금상첨하였겠는데...)

역시나 탄탄하게 잘 만든 작품은 시간이 흘러도 변함이 없다.

특히 이 작품이 더 기특한건,

2008년 초연때와 달라진게 거의 없다는거다.

재연, 삼연이 올라오면서 욕심때문에 이것저것 추가하고 빼는 바람에

초연과는 점점 딴판이 되는 작품도 많은데

이 작품은 고유성을 참 잘 지켜내고 있다.

이 시대에 종가집 형제 이야기가 가당키나 할까 싶지만 이 작품은 가당키나 하다.

재미와 감동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스토리도 처지지 않아서 2시간이 지루할 틈이 없이 흘러간다.

그래도 이 작품이 다시 올라올때마다 한 번씩은 늘 봤었는데

그때마다 매번 즐겁고 유쾌하게 관람했었다.

 

최재웅 석봉은 말이 필요 없었고

정욱진 주봉은 기대했던것보다 연기와 노래 다 좋았다.

<쓰릴미>때 눈여겨 봤던 배우인데 참 성실하게 캐리어를 쌓아가는 배우인것 같다.

최유하는 1막 오라라보다는 2막 어머니가 더 잘 아울렸고

1막 앞부분에서 열심히 춤을 추던 박지일 배우에게 무지 많이 감동했다.

한참 어린 후배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 가열찬 춤사위(?)였다.

이춘배일 때는 노래는 너무 정직하게 부르셔서 그게 또 우리네 아버지 모습 같아서 개인적으론 참 좋았다.

(그런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과하게 up-set된 배우도 있었고

가사 전달이 제대로 안되는 부분들도 있긴 했지만

어쨌든 이 작품은 충분히 롤런할 만한 작품이다.

이번 시즌 재관람은 안하겠지만

(만약 이주원 오로라가 돌아온다면 그땐 달라지겠지만...)

언제라도 공연이 올라오면 시즌별로 한 번씩은 꼭 챙겨 보게 될 것 같다. 

 

그러니 썩을 놈 죽일 놈 두 형제들은

어떻게든 뚝심있게 잘 버텨줬음 좋겠다.

Well made 형용 ^^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12. 28. 08:06

<심야식당>

일시 : 2012.12.11. ~ 2013.02.17.

장소 :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원작 : 아베 야로 "심야식당"

대본, 작사 : 정영

작곡 : 김혜성

연출 : 김동연

출연 : 송영창, 박지일 (마스터) / 서현철, 정수한 (타다시)

        임기홍, 김늘메 (코스즈) / 박정표, 최호중 (겐)

        한채윤, 백은혜 (치도리 미유키) / 박혜나 (마릴린)

        정의욱 (켄자키 류)/차정화, 배문주, 김아영 (오차즈케 시스터즈)

 

원래는 계획에 없던 관람이었다.

책장 넘기는게 귀찮아 만화를 워낙에 안 읽기도 하거니와

특히나 일본만화는 이상하게 공감하기가 쉽지않아 더 안 보게 된다.

(나, 그 유명하다는 슬램덩크, 초밥왕 이런 것도 안 봤다.)

아무리 출연진들이 좋다고 하더라도 인터파크에 미리크리스마스 이벤트 30% 할인이 뜨지 않았다면 아마도 외면했을 작품.

솔직히 말하면 이 작품이 창작인줄도 몰랐다.

그런 작품이 있다.

별 기대를 하지 않고 공연장을 찾았는데

첫 장면과 대면하는 순간 속수무책으로 쏙 빠져버리게 되는 그런 작품!

창작뮤지컬 <심야식당>이 내겐 그랬다.

작고 소박한 음식점 앞으로 박지일이 자전거를 끌고 들어서는 순간,

느닷없이 퍼지던 따뜻한 훈김.

그건 마치 이제 막 지어낸 고슬고슬한 밥을 눈 앞에 둔 느낌이었다.

2시간 동안 지독한 허기와 신기한 포만감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어느새 내 빈 속은 꽉 채워졌다.

문어모양으로 자른 베엔나 소시지를 볶은 소리,

달콤한 계란말이 부치는 소리,

전기밥통 여는 소리, 차

밥 위에 차를 따르는 소리,

재료를 손질하는 경괘한 칼질 소리.

음식을 준비하는 이 모든 소리가 그렇게나 다정하고 따뜻할 수 없었다.

(이런 소리들을 작품속에서 그대로 들려주겠다는 생각, 누가 맨 처음 했을까?)

 

저녁 12시 부터 아침 7시까지 문을 여는,

변변한 간판도 없는 심야식당.

메뉴라고는 된장정식 하나뿐이지만

손님이 주문하는 음식은 그때그때 만들어주는 마스터가 있는 그 곳.

사람들은 심야식당 문을 열고 말한다.

"마스터! 늘 먹던 걸로 주세요~~~"

비엔나소시지, 달콤한 계란말이, 고양이맘마, 버터라이스, 모시조개술찜,

달걀후라이를 올린 소스 야끼 소바, 감자셀러드, 오차즈께...

음식과 함께 하나씩 꺼내지는 추억과 사연들에 나는 여러번 뭉클하고 아련했다.

추억에 제대로 채한 사람들.

외롭고 지친 세상에서 나를 알아봐주고 위로해주는 단 하나의 음식.

마스터가 해주는 음식은 "괜찮다, 괜찮다"라며 어깨를 또닥이는 깊은 위로 같다.

(그치,그치,그치,그치~~~~ 네~~~!) 

마스터 역의 박지일은 정말 최고의 스토리텔러였다.

대사와 노래가 많은건 아니지만 작품 속에서의 존재감은 정말 엄청나다.

그 목소리라니...

누구라도 박지일 마스터 옆에 있으면 그동안 꽁꽁 싸매고 있던 깊은 트라우마도 술술 고백할 수 있을 것 같다.

절로 위로가 되는 백만불자리 음성.

늙은 게이 코스즈 임기홍도 신주쿠 뒷골목 역사책 타다시 서현철도 역시나 멋지고 인상적이었다.

(이 두 배우가 내게 일말의 실망을 안겨줄 날이 과연 오기는 할까?)

배우 최호중은 놀라운 발견이다.

이 배우 주목받기에 정말 충분하다!

노래도 괜찮고 그 많은 배역을 정말 완전히 다른 감정과 모습으로 연기했다.

임기홍과 또 다른 부류의 멀티맨 탄생을 예고한다.

매실, 연어, 명란젖 오차즈께 시스터즈는 정말 환상적이었고

작품의 구석구석을 정말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나게 만들었다.

등장하는 10명의  배우들 전부 대단했다.

번잡하지 않은 무대도 너무 좋았고 뮤지컬 넘버들도 하나하나 다 좋았다.

(요즘 공연되는 창작뮤지컬들 정말 대단하다. 정말 만세다~~!)

 

정말이지 이 식당 어떻게든 찾아내서 꼭 한 번 가고 싶다.

찾아내면 문을 드르륵 열고 호기롭게 말하는거다.

"마스터! 늘 먹던 걸로 주세요!"

 

나는...

진심으로 위로받고 싶다.

내 텅 빈 마음속 그 깊은 곳까지

포만감 가득한 위로를 꾹꾹 채우고 싶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11. 19. 08:25



윤소정, 박지일, 이호성, 길해연, 서은경.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뛰는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연극 <33개의 변주곡>
2009년 3월 미국 "유진 오닐" 극장에서 초연됐을 때 
여주인공 캐서린 역을 제인 폰다가 분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작품은 그 해 토니상 5개 부분에 후보로 올랐고 아쉽게도 무대디자인 상만 수상했다.
무대는 확실히 상을 받기에 충분할만큼 독창적이고 아름답고 실용적이다.
그리고 작품은...
무대보다 훨씬 멋지다.
연극은 캐서린의 죽는 순간까지 연구했던 베토벤 논문 서문으로 시작된다.
(이 말은 베토벤의 말이기도 하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기원에서 시작해봅시다.
어떤 것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에서 시작합시다.
왜 그런 방식으로 생겨나게 되었으며
어떻게 현재의 모습이 되었는지...




디아벨리 왈츠를 주제로한 베토벤의 테마가 있는 33개 변주곡.
이 변주곡은 베토벤의 변주 기법를 집대성한 작품이자
바하의 골든베르크 변주곡과 함께 변주곡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란다.
연극을 보고 일부러 그 변주곡 전체를 찾아서 들어봤다.
베토벤의 33개 변주곡은 총 4개의 구조로 나뉜다.
(연극에서 베토벤으로 분한 박지일이 열정적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1. 발전군 : 제 1 변주 ~ 제 10 변주
2. 코트라스트군 : 제 11 변주 ~제 20 변주
3. 스케르쪼군 : 제 21 변주 ~ 제 28 변주
4. 피날레군 : 제 29 변주 ~ 제 33 변주

디아벨리의 왈츠는 50초 가량의 비교적 짧은 곡이다.
베토벤은 이 왈츠의 리듬을 가지고 총 50분이 넘는 변주곡을 만들었다.
베토벤은 처음엔 디아벨리의 왈츠를 "구두 수선공의 헝겊조각(cobbler's patch)"이라며 폄하했단다.
그러나 마음을 바꿔 무려 4년의 시간동안 이 변주곡에 집착해 33개의 변주곡을 만들었다.
왜 베토벤은 디아벨리의 왈츠에 집착했을까?
음악학자 캐서린 브랜트(윤소정)는 지금 그 부분을 추적하고 있는 중이다.
서서히 화석이 되는 루게릭 병을 진단받고서도 말이다.
캐서린은 급기야 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베토벤의 스케치가 남아있는 베토벤하우스로 날아간다.
독일의 본으로... 그것도 혼자서..
캐서린의 집착과 베토벤의 집착은,
놀랍도록 닮아있다.



현재와 19세기가 한 무대 위에서 공존하는 모습은
이 연극의 대사를 그래도 빌려 표현하자면,
"여기서부터 용들이 산다!"
딱 그렇다.
베토벤 문서연구소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장면에서 천정의 조명이 순차적으로 내려오는 모습,
악보를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스크린에 비쳐지던 베토벤의 실제 스케치들.
그리고 무대 한 켠에서 라이브로 연주되는 디아벨리 변주곡들.
어떤 형태로 두 세계를 보여줄까 궁금했는데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깔금하고 매력적이다.
도저히 산만할 틈조차 없다.
무대에는 악보들로 빽빽하다.
시간을 가르는 것 같은 커다란 테이블.
시각적인 장치들이 너무 커서 배우들의 연기를 왜소하게 만든다는 평도 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전혀 그렇지 않는다.
왜소해지기에는 배우들의 열정이 너무 대단했다.
특히 캐서린 윤소정씨.
대상포진을 앓고 있다고해서 걱정했는데 그 걱정이 무색할만큼 아름다웠다.
지난 봄 <에이미>를 보면서도 감탄했는데 이번 역할도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어떻게 그 많은 대사들을 그렇게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까?



원작자 모이시스 카프먼은 작가 노트에서
이 희곡에는 무대 위 등장인물 외에 2명의 등장인물이 더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음악이고, 다른 하나는 극에서 영상으로 나타나는 베토벤의 오리지널 스케치들.
영상을 보면서 잠깐 소름이 돋았다.
그냥 그 천재성이 섬뜩함으로 다가왔다고 할까?

"이 희곡은 디아벨리 변주곡의 탄생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토대로 하지만 나는 이 이야기를 허구의 관점에서 들여다보려고 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역사적 사건의 재구성이라기보다는 삶의 한순간에 대한 일련의 변주라 하겠다."  -    모이시스 카우프먼 메모

묘하게 연결되는 장면 전환들도 상당히 좋았다.
무대 위에 7명이 전부 나와서 서로 중첩되는 대사를 하는 장면은
와, 정말 황홀하더라.
내겐 그 순간이 베토벤과 캐서린이 동일화되는 장면처럼 느껴졌다.
연극을 보기 전에 캐서린과 베토벤이 대화를 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이 장면 덕분에 실제로 두 사람이 대화하는 모습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기원""변모"
나는 이 연극을 두 단어로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 두 단어의 합일은 바로 "예술"이다.
케서린은 "예술"을 통해 베토벤과 딸 클라라를 이해하게 되고
딸 클라라 역시 "예술"을 통해 엄마 캐서린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 연극은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던거다.
기원을 쫒는 과정, 그리고 변모해가는 과정.
그래서 천재성이 번득이는 "예술"이 탄생되는 과정.
그야말로 여기서부터 용들이 산다...



연극의 스토리텔러가 캐서린에서 베토벤으로 그리고 클라라로 전환되는 것 역시도
하나의 변주였음을 연극을 다 본 후에 깨달았다.
그리고 날조된 기록을 남긴 베토벤의 비서 쉰들러도
비엔나의 50인 음악가에게 변주곡을 의뢰한 악보 출판업자 디아벨리도,
그리고 클라라의 연인 마이크와 베토벤 하우스의 거투루트까지도 전부 하나의 변주였음도...
그러니까 모든 사람의 삶은 전부 "변주"인거다.
그렇다면 이제 확실해진 거 아닌가?
삶은 충분히 아름다운 과정 속에 있다.

연극 <33개의 변주곡>
내게 참 다양하고 광범위한 아름다움을 남겼다.
아무래도 이 작품...
오래오래 간직될 것 같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4. 12. 06:28


일 시 : 2010.04.06 ~2010.05.05
장 소 :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출 연 : 박지일, 서주희, 김세동, 오지혜
극 본 : 야스미나 레자
연 출 : 한태숙



수컷들의 수다, 연극 <아트>의 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또 다른 사회 풍자 코메디 연극 <대학살의 신>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되는 그 치열(?)하고도 어이없는 상황에 대한 유쾌하면서도 히스테릭한 이야기다.
출연하는 배우들의 내공만으로도 기대가 됐던 작품이다.
초연이라 망설이지 않았느냐고?
대답은 "Never!"다.
배우도 그렇고 연출가(한태숙)도 그렇고 기본 이상은 일단 베이스에 깔고 생각해도 무방한 작품.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100분 동안 두 부부의 기상천외한 행동에 어이없어 하면서도
이 코메디가 웃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실제 현실이라는 걸 절감하게 만드는 그 씁쓸함이라니...
글쎄, 이게 우리나라 상황이라면,
미안하지만 솔직히 상상만으로도 겁이 난다.
결코 코메디가 아닐 것만 같아서...
(아이 문제라면 왜 부모들은 이성과 상식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되는 걸까?)



이렇게 멀쩡하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거실이
(비록 그게 상대편에게 보여지기 위한 가식일지라도 말이다)
이야기의 끝엔 결국 난장판 초토화가 된다.
아주 고상하고 예의바르지만 그러면서도 묘하게 신경전으로 시작되는 연극 <대학살의 신>
이야기의 발단은 분명 11살 사내 아이들이었다.
"그러니까... 4월 3일 오후 5시30분 뒤낭 공원에서 막대기로 중무장한 열한 살의 페르디낭이 우리 아들 브루노의 안면을 정통으로 가격했습니다. 이 결과로 우리 아들 브루노는 앞니 두 개가 나갔고 그 중에서도 오른쪽 앞니는 신경이 끊어졌습니다."
검사가 사건 개요를 읽어나가듯,
피해자 브루노의 엄마 베로니카(오지혜)가 두 부모가 이렇게 모이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그리고 가해자 페르디앙 부모는 지금 그 "중무장"이란 단어가 몹시 거슬리는 중이다.
그러니까 브루노의 부모는 이 사건을 명백한 "아동 폭력 사태"로 보고
재발 방지를 위해 마녀사냥을 하겠다는 의도가 숨겨져있다.
그러나 모르시는 말씀!
자기 자식이 "마녀사냥"의 희생물이 되는 걸 그냥 보고만 있겠는가?
그 자식이 비록 야만인(?)일지라도 말이다.
페르디앙의 부모는 오히려 철저한 진상규명이 우선이라고 주장한다.
"폭력의 원인을 누가 유발했는가?"가 중요하다는 입장.
(그 이면엔 당신 아들이 원인제공자라는 노골적인 질책이 담겨있다.)



연극은 다채롭고 그리고 확실히 재미있다.
자기 아들을 다치게 한 아이의 부모에게
우리는 이렇게 교양있는 사람들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일종의 기선 제압 목적으로...)
일부러 비싼 꽃을 사서 집안을 꾸미고 차와 파이를 대접하는 브루노 부부의 교양을 가장한 속물근성과
어찌됐든 사과하기 위해 찾아온 브로노 집에서
끊임없이 전화를 받는 변호사 알랭(박지일)의 모습.
게다가 페르디앙의 엄마 아네뜨(서주희)는 급기야 추대라고 할 수 있는 행동까지 보인다.
멋지게 꾸며놓은 거실에 토사물을 뿜어놓는가하면
젠 체하기 위해 꾸며놓은 꽃들로 거실 여기저기를 그야말로 완벽하게 패대기친다.
(근데 도대체 왜 내 속이 다 시원한거지??? 어찌됐든...)



품격과 교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네 사람.
(순전히 희망사항이지만)
그러나 이야기는 점점 어이없는 분노와 폭력성에 사로잡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버린다.
고상과 교양이 서서히 분노와 이기의 본능으로 바뀌는 걸 바라보는 건,
유치하면서도 솔직히 뜨끔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식의 문제에 관해서라면
명확한 이성과 지성의 작용이 쉽진 않겠지만
이런 상황이 심심치 않게 현실로 나타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다소(사실은 많이) 민망하고 부끄러워지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부부로서 대비되는 두 커플의 성향(?)도 참 재미있지만
순간순간 편이 바뀌는 모습도 독특한 재미를 준다.
부부로서 서로 으르렁거리다가 어느 순간 남자 대 여자로 또 다시 으르렁거리고
약과 관련되서는 소비자와 공급자의 관계로 으르렁거리고...
이 연극은 일종의 거짓과 은폐.
그리고 교양인의 탈을 쓴 위선에 대한 유쾌한 조롱이라고 할 수 있다.
까발려지는 것에 대한 불편함도 물론 있지만
그것으로 인한 통쾌함은 솔직히 속을 시원하게 만든다.
끊임없이 울려대는 남편의 휴대전화를 화병속에 담그는 장면이라던가
붉은 토사물을 거침없이(?) 뿜어내는 야만에 가까운 분출이 주는 즐거움은
분명 엄청난 대체 만족을 주는 카타르시스다.
코믹하면서도 야비함까지 느껴지던 배우 박지일의 핸드폰 받는 표정이라든가
그걸 바라보며 어이없어 하던 브루노 부부의 표정,
그리고 민망해하면서도 어딘지 고소해하는 알랭의 부인 아네트의 표정까지
네 명의 표정 속에 스스럼없이 나 자신의 표정이 겹쳐진다.



<대학살의 신>이란 제목은 지성인인 척 고상을 떨지만,
결국 다들 서로 헐뜯고 싸우는 인간의 잔인함을 조롱하는 말이란다.
연극적인 코믹이 주는 불편함과 유쾌함은
기본기 빵빵한 네 배우들을 만남으로써 그 재미가 한층 더해진다.
나 자신에 대한 속물근성과의 불쾌한 마주침이기도 하지만 
더불에 유쾌한 반전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토사물...
어떻게 그렇게 완벽하게, 제대로, 손 쓸 수도 없을만큼,
대책없이, 황당하게 뿜어낼 수 있었을까?
그게 연기라면... 이건 정말 완전 대단한거다. ^^



오늘 하루의 "지랄 같음"을 호소하는 아네트의 마지막 모습.
한쪽 알이 빠진 선그라스를 쓰고 철퍼덕 퍼져 앉아 있던 모습이 아직도 임펙트 강하게 남아 있다.
그 모습이 하도 나 같아서...
나 역시도 숱한 지랄 같은 하루 속에 대책없이 퍼질러 앉아 있는 중이니까...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