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1. 3. 10. 06:19
공선옥의 글을 읽으면 소름이 오싹오싹 끼친다.
그녀의 글들은 아름답고 절절하고 측은하다.
뭔가 내 것이 있다면 그대로 퍼주고 싶은 인물들을 읽으며
나는 여러번 작고 조용히
그러나 결정적으로 위로받았다.
그녀의 글들은 때론 내겐 몸에 좋은 약이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소설 공모에 당선하고 받은 첫 상금으로
그녀는 조그만 밥상을 샀노라 말했다.
그때까지 움막같은 샛집에서 그녀는 아이들과 함께 맨 바닥에 밥과 찬을 부려놓고 밥을 먹었노라 말했다.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울컥했다.
그랬구나...
그래서 그녀의 글이 이렇게 뜨거운 김이 펄펄 나는 밥처럼
사생결단으로 치열하고 처절하고 서글펐구나.
폭력보다 더 파괴적인 것이 내 속에 정통으로 어퍼컷을 날린다.
아파라... 아파라...
그런데 나는 그 뭇매를 앞으로더 한참을 더 받아내고 싶다.
그것도 철저히 일방적으로...



꽃 진 자리
영희는 언제 우는가
도넛과 토마토
아무도 모르는 가을
명랑한 밤길
빗속에서
언덕 너머 눈구름
비오는 달밤
79년의 아이
지독한 우정
폐경 전야
별이 총총한 언덕



전남 곡성 출생, 전남대 국문과 졸업.
어쩌면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전남 곡성군 삼기면 의암 110번지!
살아본 적은 없지만 주민등록에 적혀있는 내 본적지.
그래서 그녀의 글들은 구절구절이 대를 이어 연결된 핏줄과 뼈마디가 내지르는 외침같이 느껴졌는지도.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살>, <내가 가장 예뼜을 때>
공선옥의 소설 제목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문득 서럽고 고되다.
그리고 <명랑한 밤길>에 담겨있는 12편의 단편들을 읽으면서도
나는 꺼이꺼이 속울음을 울며 가슴을 쳤다.
윤자, 경자, 문희, 인자, 연희......
어쩌자고 인물들은 이름조차도 서럽게 촌스럽고 보잘 것 없는지...
심지어 이름조차 갖지 못한 아내와 남편들을 읽으면서
나는 이 희망없는 사람들이,
구석을 찾아들어가는 게 습관인 사람들이 마치 내 몸의 일부인냥 아팠다.
재혼가정의 아비의 아들 쉽쇅끼와 어미의 아들 괴쇅끼의 엉겨붙음은
차라리 인간적이고 정직해서 생의 활기마저 느껴졌다.
결손가정, 가난, 물난리, 치매, 우울증...
눅눅하다 못해 물에 온 몸이 담겨 축축 가라앉는 이야기.
그럼에도 그 속에 어김없이 생의 떳떳함과 결연함이 있다.
어쩌면 그건 생의 변방에서 함께 살아온 사람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느낌인지도 모르겠다.
치열하고 구질구질하기 한 이야기는
그 궁색함과 초라함으로 오히려 장관을 이룬다.
12편의 단편들을 다 읽고 나서
나는 그만 울고 싶어졌다.
곡을 하듯 서럽게 서럽게 울음을 토해내고 싶었다.

...... 그려, 울어라, 울어, 하먼, 밥 묵고 살라면 울어야제. 울어야 밥맛 나고 밥 묵어야 심이 나제. 별것이나 있간디. 암것도 없어. 태나서 우는 놈이 사는 벱이여. 울어야 산 목심이여. 그저 내 울음이 내 묵심줄이여. 뜨건 눈물 퐁퐁 쏟아가매, 팥죽 같은 땀 펄펄 흘려가매. 아이갸, 죽을 목심은 울지도 못헌단게. 나는 울지도 못혀. 심이 없어 울지도 못혀. 젊어 울제 늙어 못 울어. 울지도 못허는 나는 갈랑게 너거들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석달 열흘간을 션허거 울어부러라 ......

실껏 울고나면,
이 말 때문에 또 위로가 되지 않을까?
진심으로 나는 산 목심이고 싶어,
죽을 것처럼 석달 열흘간을 울고 싶다.
손바닥으로 땅을 치고 온 몸으로 발버둥치면서...
또 모르지,
몸을 산발로 풀어헤치고 억척스럽게 울고 나면
살아낼 새로운 힘이
오도독 오도독 독하게 생겨날지도...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11. 9. 06:01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 - 배용준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

일본에 사는 저희 언니의 말입니다.

일본 아주머니들이 왜 그렇게 욘사마에 열광하는지 모르겠다는 핀잔성 발언을 하는 저에게 배용준이란 한국배우가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얼마나 유명하고 대단한 위치에 있는 줄 아느냐며 해 준 말이었죠.

욘사마랑 같이 여객선을 타고 여행하는 크루즈 상품이 판매된다면 그 상품은 수 초 만에 대박 매진이 될 것이고, 그렇게 바다 위를 함께 여행하는 어느 날, 정말 아무런 이유도 없이 욘사마가 ”뛰어!“라고 외치면 의심의 여지도 없이 배 위의 모든 여자들이(남자들은 물론 아니고) 거침없이 푸른 바다 속으로 줄줄이 뛰어 내릴 거라고...

언니의 말을 듣고 배용준의 입지가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솔직히 좀 공포스럽긴 했죠.

사이비 종교의 집단 최면 상태가 떠올랐기에...

거대 한류산업의 최대 기업체 배용준이 자신의 이름으로 여행 에세이를 출판했습니다.

“연예인 프리미엄”

저는 개인적으로 이 책이 연예인 프리미엄의 극대화를 보여주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의 질적인 부분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책을 만든 모든 과정과 배용준이 선택한 여행의 여정들, 그리고 만나게 된 모든 사람들에 대한 언급이죠.

우리같은 일반인들에게 감히 금지된 혹은 쉽게 허락되지 않은 곳을 직접 보고 경험하고 온 특별한 사람의 기록!

딱 배용준이기에 만들 수 있었던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마음 한켠으론 뭉클한 동정심이 일기도 했죠.

조금은 두려웠습니다.

배용준의 여행길을 함께 동행하는 게 아니라, 그의 외로움을 들여다보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스러움...

책을 집필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그는 말합니다.

어느 날 일본에서의 인터뷰 중 한 기자에게 “혹시 추천 해주고 싶은 한국의 여행지나 명소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게 됐다고 합니다.

“부끄러웠지만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

그의 솔직한 고백이었답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고 하네요.

“......잘 알지 못했던 우리 문화를 알아 나가면서 나는 내 자신을 다시 찾고 싶었고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전히 외롭고 또 그리운 것을 찾고 싶은 한 인간으로서 다시 서고 싶은 심정이 들었던 것 같다......”

그의 마음속에는 아마도 자신조차도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커다란 구멍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다르게 숨쉬는 방법을 선택하게 된 건지도요...


"떠나다 - 머물다 - 버리다 - 사색하다 - 돌아오다 - 다시 떠나다 "
그가 선택한 여행의 루트입니다.

그 각각의 여정 속엔 딱히 타이틀과 어울리지 않은 부분들도 많이 있긴 하지만 그는 이런 감성의 루트로 여행을 이어갑니다.

떠남을 준비하면서 그는 정갈하고 소담한 아침상을 받는 것으로 그 여행을 시작하죠.

“일상의 단순함이 큰 의미를 줄 수 있듯이, 매일 차려먹는 단순하고 소박한 가정식이 내 활력의 근본이었다”고 말하는 배용준.


늦은 가을의 끝자락 생애 최초의 김장을 통해 힘찬 겨울나기 갈무리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 그 여행의 끝에 그는 자신만의 래시피로 김장을 하고 싶다는 소망도, 지인들과 소박한 김장모임을 만들고 싶다는 바램도. 우리나라 김치명가를 찾아 떠나는 또 다른 소망의 여행도 꿈꿉니다.

옻칠공예와 전통한지, 템플 스테이, 차, 도자기 속으로의 잠깐 동안의 멈춤.

(모두 오랜 시간을 들여 곱게 곱게 그리고 고요히 정제되고 있는 것들이죠.)



우리나라보다 오히려 일본에서 더 유명한 옻칠공예 장인 전용복 선생(그가 일본의 세이코 시계와 함께 만든 자계 손목시계는 최고 9억 원을 호가하는 엄청난 명품 예술품으로 인정받고 있죠)과의 만남, 천 년의 세월을 견뎌온 전통 한지의 신비감, 이상하게도 건강한 식욕을 솟구치게 만드는 발우공양, 야생차밭에서 채다(採茶)된 덖음차의 깊고 고요한 맛. 흙과 하나가 되는 도공의 물레와 춤추는 불꽃 가마 앞.

읽는 동안 저 또한 그가 머물렀던 곳을 신기한 풍광을 보듯 기웃거립니다.

(우리의 전통 문화를 신기한 이국의 풍경을 보듯 바라보고 있는 제 모습이 어쩐지 처량하기까지 합니다.)

부럽다는 생각.

이런 대가들의 작업장을 방문해서 고급의 전통문화의 진수와, 그 정신의 정갈함을 직접 보고 체화할 수 있는 사람... 과연 얼마나 될까요?

초특급 배우 배용준이기에 방문이 허락된 곳도 분명 여러 곳 있기에 괴리감이 느껴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일반인에겐 공개되지 않는, 어떤 의미에선 선택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진정한 노블리스 고급 문화의 한 단면을 보는 심정은 열등감 비슷한 자괴감까지 들게 합니다.

물론 전통한지를 만드는 열악한 환경에 대한 토로나 점점 사라져가는 가양주에 대한 안타까움에 대한 기록도 있습니다. 만약 누구라도 관심만 가져준다면 살려낼 수 있는 전통에 대한 안타까운 현실고백들 말이죠.

점점 잊혀져가는 그래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전통 문화에 대한 개인적인 안타까움과 관심은 급기야 그의 집에 옻칠 공예 작업대를 들여놓고 하고, 도자기를 만드는 물레와 가마를 들여놓게까지 했습니다.

대단하다는 생각도 물론 들지만 어쨌든 세상 다수의 사람들은 아무리 관심이 깊어도 쉽게 이런 것들을 구비하며 탐구할만한 여유가 없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관심은 있지만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동경이 대부분 사람들의 심경이죠.

아마도 배용준이란 한 사람이 이런 것들에 대해 관심에 갖게 된 이유는 “깊이에 대한 외로움”이 그 원류가 아닐까 가늠합니다.

환하게 비춰지는 스포트라이트 앞에서, 숱한 파파라치들과 그를 향한 시선들 속에서 어쩌면 그는 깊은 곳으로 잠시 침참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죠.

“우선 향은 단내가 났다. 차분하게 눌려있는 기운이다. 맛은 대체로 맑았다. 색은 약간 황금빛이 돌았다. 그리고 배에서부터 팔다리로 따뜻한 기운이 펴져나갔다...... 녹색의 진함이 강렬하고, 색이 맛으로 고스란히 전달된다. 부드러운 거품과 은은한 향이 점점 강해지면서 몸 속까지 푸르게 만들어 버릴 것만 같다.”

한 잔의 덖음차를 목울대로 넘기는 그의 느낌이 어쩐지 저는 절절하게 느껴졌습니다.

그에게 필요했던 건 “휴(休)”였던 것 같네요.

그 방법으로 그가 선택한 것이 바로 문화 속으로의 정중동(靜中動)이었음을 조금씩 이해하고 다독이듯 보듬게 됩니다.

주춧돌만 남은 황량한 폐사지 앞에서 버림으로 다시 흥하는 문화를 생각하고 한글과 세종대왕, 경복궁과 천상열차분야지도의 현대적 해석과 적용을 깊게 깊게 음미하고, 국립중앙박물관 앞에서 원류에 대한 탐구로 미래의 길을 찾으려고 그는 노력합니다.


“'미지의 것'을 마음에 품고 살 때 그것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유익한가를 나는 알고 있다. 그것은 사람을 순수하고 겸손해지게 한다. 그리고 노력하게 하며 반짝이게 한다. 배움의 열의를 갖게 한다. 너무 많으면 바보가 되고, 너무 적으면 교만하게 만들지만 적당히 가지면 유익한 것이 바로 그 미지의 것이다.”

그의 여행을 압축한 문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가 꿈꿨던 “휴(休)”라는 건 그러니까 방황하지 않는 법을 찾아내는 것이었네요.

아마도 그는 또 다른 책을 다시 쓰게 되겠죠.

하고 싶은 말들이 아직은 많이 남아있는 것 같거든요.


그리고 이 책 한 권으론 그 말들을 충분히 담을 수 없었다는 것까지요...

바람이 있다면 다음에 만들어지게 될 책은 조금 더 정직했으면(그냥 여러 가지 의미에서요)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한류의 열풍을 타고 일본에서도 폭발적인 주문이 이어지고 있는 책이니까요. 그들에게 번역본으로 책이 출판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구절들이 상당히 있습니다.

이 모든 전문적인 글들(특히 옆에 따로 기재되어 있는 각주같은 것들)이 분명 배용준의 머릿속에서 나온 건 아닐 텐데 참고한 문헌에 대한 명확한 기재가 없다는 게 좀 그렇습니다, 그리고 사진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죠. 더불어 본인이 찍은 사진과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을 좀 구별했다면 그 느낌도 남다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마치 이 모든 사진들을 그가 찍은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하죠.

물론 책을 보고 있으면 그의 얼굴이 담긴 사진들이 많기 때문에 뭐 굳이 포토그래퍼들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죠.

그리고 띄어쓰기가 잘못 된 곳도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일정한 그의 감정에서 살짝 벗어나는 어투들도 간혹 보입니다. 다른 사람의 손길이 닿은 흔적 같은 거죠.

뭐, 그렇더라도 이런 시도는 박수를 보내기에 충분하다 생각합니다.
잊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한 안스러움을 일깨워주니까요. 그리고 이 책을 만들기 위해 그가 찾았을 숱한 자료들과 책들에 대한 탐구도 눈부십니다. 모든 구술(口述)들까지도 말입니다.


녹차가 채집시기에 따라 세작, 중작, 대작이 구분된다는 것도, 세종대왕이 즉위 후 처음 한 말이 “우리 논의합시다!”였다는 사실도, 노비들에게 출산휴가를 주었다는 사실도, 도자기를 굽는 가마에는 적어도 한번에 1톤의 나무가 필요하다는 것도 모두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

우리 전통 문화에 대한 고급스러움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는 걸 책을 덮은 후 이해하게 됐습니다.

비록 그것이 소수에게만 허락되는 문화일지라도 그 소수의 사람이 의해 다수의 사람에게 전달되기를 그는 꿈꿨던 거죠.

“유명인이 되기에 앞서 진정한 문화인이 되라.”

그가 방문했던 사찰의 큰 스님이 그에게 신신당부한 말이라고 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 남들이 보기에는 내가 인기와 명예로 정말 풍요로울 거라 생각하겠지만 나는 내가 그것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죽는 것이다라고 항상 스스로 되뇌인다. 아직 그렇게까지 무뎌지고 싶지는 않다. 나는 언제나 꿈을 꿀 것이고 꿈을 꾸고 있어야 내가 살아가는 것이니까 .......

척박할수록 더 질기게 발휘되는 게 인간의 잠재력이라고 합니다.

그 잠재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우리 전통 문화의 정수인 원칙, 정성, 노력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반드시 필요하겠죠.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동시대 사람들이 함께 꾸어가는 꿈이 바로 “문화”라고 하네요.

아마도 그는 그 “문화”를 공유함으로써 소통을 꿈꾸려 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타인과의 소통,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소통까지 말이죠.

그는 이 책을 통해 분명 낯선 말걸기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어쩐지 잘 들었노라고 가만히 대답해주고 싶어지네요.

어쩌면 이 대답이 문화 공유를 꿈꾸는 우리 모두의 첫 교감이 되 줄지도 모르니까요.

어쩌면 정말 그럴지도요...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9. 8. 05:28
 <내가 가장 예뻤을 때> - 공선옥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작가 공선옥!

얼마전 그녀가 올해 7월에 제 24회 만해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소설집 <나는 죽지 않겠다>, <명랑한 밤길>이 그 수장작이라고 하네요. 제가 그녀의 책으로 처음 읽었던 건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 살>이라는 소설이었습니다. 두 여자의 삶이 어찌나 가슴 짠하던지 그만 덜컥 화가 나기도 했죠. 도대체 왜 나는 그녀의 글을 전적으로 이해하는가? 그리고 전적으로 의지하는가? 어느 날은 속이 상하기까지 했습니다.

1964년 전라남도 곡성 출생....

그녀의 말투가, 하다못해 그녀의 글 속에 나오는 투박한 사투리나 함지박만하게 쏟아내는 푸짐한 욕설들이 그토록 낯설지 않았던 건 “곡성”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네요. “전남 곡성군 삼기면....”으로 시작되는 저의 본적지. 그래서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의 대사나 문체들 그리고 느낌들에서 근원적인 포근함과 따뜻함, 그리고 도망가고 싶은 욕구마저도 느끼게 된 거라는 걸 이제는 이해합니다.

“본적지”라는 이름의 고향!

어쩌면 누군가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단지 서류 속에만 존재하는 아버지의 땅일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언젠가는 한번쯤 돌아보게 되는 그런 곳, 실질적이든 아니면 마음 안에서든 찾게 되는 부모의 땅, 그리고 내 생명의 시작이었던 땅.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이 책을 읽으면서 실제로 살아보지 않은 제 본적지에 대한 희미한 동경에 많이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렇다면 이 책 속에 도대체 뭐가 들어 있었던 걸까요?


이미 위로 딸을 셋이나 둔 집에 네 번째 딸이 태어납니다. 부아가 난 할아버지는 이름을 지어달라는 아들에 말에 한마디 합니다.

"니무랄 것! 암꺼나 허라고 혀!”

그래서 네 번째 딸의 이름은 “암꺼나 혀”의 “해금”이 되어 버렸습니다.

순금, 정금, 영금, 해금 그리고 마지막 5번째 딸 영미(“영미”라는 이름은 내리 다섯의 딸을 낳은 어미가 “금”자에 대해 갖는 마지막 반항이자 일종의 시위였던건 아닐지...)

딸 다섯의 넷째 딸이라니, 그 존재성마저도 너무나 희미한 “마해금” 그녀가 이 책의 서술자입니다. 그녀는 이제 스무 살 무렵을 살고 있는, 그리고 광주라는 대도시가 스무 살인 그녀 삶의 근원지죠.

처음 “광주”라는 지명을 봤을 때, 조심스러웠습니다. 그 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가? 그렇다면 어쩐지 자신이 없을 것 같아서요.... 그러나 다행히 이 책은 그런 제 두려움을 살짝 피해갑니다. 그렇다고 아예 관계가 없는 건 아닙니다. 해금은 광주민주화항쟁 때 공중에서 날아오는 유탄에 친구 경애를 잃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은 그들 친구들에게 분명 어떤 형태로든 변화를 가져오죠.

이제부터 우리는 5명의 여자들과 4명의 남자들. 아직 스무 살인 그들의 지나온 시간들을 정해진 순서 없이 마구잡이로 만나야 합니다.

경애의 갑작스런 죽음에 "세상 사람들은 왜 아무렇지 않지?“라고 반문하며 방황하던 친구 수경은 끝내 저수지에 뛰어 듭니다.

느닷없이 남편이 데리고 들어온 두 번째 마누라를 피해 딸의 자취방으로 찾아든 할머니같은 승희 모친은 추위에 떨며 찾아온 딸의 친구 해금에게 따뜻한 밥을 지어줍니다.

꾸역꾸역 울음과 함께 밥을 넘기는 해금에게 그 어미는 말합니다.

"악아, 우지 마라! 사는 것은 죄가 아닌 게로 우지를 마라!“

그렇게 등을 다독여 주던 승희 어머니는 그 밤, 돌아오지 않는 딸을 내내 기다리며 차디찬 딸의 자취방에서 뇌출혈로 사망을 하고, 그 딸은 그 사실에 충격을 받아 친구들 곁을 떠나 헤매다 배부른 모습으로 어느 날 그들 앞에 다시 나타납니다.

승희에게 마음을 주고 있던 누군가는 방황으로 시간을 보내고,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승희와 승희가 낳은 아들 승춘과 함께 따뜻하게 살고픈 꿈을 키워내고 있습니다.

잘 다니던 대학을 그만 둔 친구 정신은 노동자가 되어 민중 해방의 길로 들어서고, 온 동네 자랑꺼리였던 서울대생 승규 또한 학생운동에 점점 더 깊게 참여하게 됩니다.

누군가 생각합니다.

“꼭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같아...”

그리고 도 누군가는 말합니다.

“아무리 죽을 맛이라지만 죽는 것 보단 낫잖아”


돈이 없다며 월급을 밀려온 사장은 젊은 여자를 끼고 관광호텔을 드나들고, 제 노동의 가치가 무시되고 짓밟히는 세상을 실제로 겪은 만영은 사장의 기름진 얼굴 위로 뜨겁고 기름진 고기 석쇠를 던져버립니다. 와이셔츠 공장에 취직을 한 해금은 상대보다 힘이 세다고, 더 많이 배웠다고, 더 많이 가졌다고, 더 우월하다고 믿는 자들이 부리는 오만과 횡포와 모욕과 폭력과 무례함을 이제 조금씩 경험하게 됩니다.

해금은 언제가 친구 정신이 한 말을 떠올립니다.

“그것들과 맞서기 위해선 우선은 그 오만과 횡포와 모욕과 폭력과 무례함을 견뎌내야 한다고. 모든 오만한 자들이, 모든 무뢰배들이 스스로 부끄러워할 때까지, 견디고 견뎌서, 그 견디는 힘으로 우리가 아름다워지자고. 왜냐하면 모든 추함은 모든 아름다움 앞에선 결국 무릎을 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오늘, 저 무뢰배의 오만이 횡행할 수 있는 이 야만의 구조, 이 동물적 상황을 나는 견뎌야만 한다고. 저항하기 위해 견딜 것, 아름다워지기 위해 지금은 견뎌야만 한다고....”

구로공단 여공들의 시위.

해금은 자신이 인간이기 위하여. 그리하여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인간의 시간 쪽으로 돌려놓기 위하여 운동장 한가운데로 달려 나갑니다.

유리를 밟아 피투성이에 퉁퉁 부은 발이 된 해금, 얼굴에 피멍이 든 정신은 승규가 붙잡혀 심한 고문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 승규는 부모에게조차 알리지 못한 체 그대로 군대로 끌려가게 되죠.

보름이면 다가올 아들의 첫휴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승규 모친에게 전해지는 소식.

아들이 군대에서 머리에 총을 쏘고 자살했다는 청천벽력같은 사실.

어미는 내 자식이 그럴리라 없다며 통곡하고 또 통곡합니다.

그 시대, 모든 어미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 통곡은 아마도 그 어미의 모든 일생동안 결코 그치지 않고 이어지리라는 걸 한자리에 모인 친구들 모두 가슴으로 느낍니다.

그들은 생각합니다.

우리는 단지 혹독한 겨울을 견디어내고 있을 뿐이라고.

그들이 가장 예뻤던 때, 스무 살의 겨울 말입니다.


인생에는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온다고 합니다.

“이전”과 “이후‘가 확연히 구분되는 순간 말이죠. 그런 순간은, 예기치 않게 혹은 법칙처럼 결국은 누구에게나 오고야 만다고 합니다.

이 책, <내가 가장 예뻤을 때>가 바로 그 “이전”과 “이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불과 얼만 전에 우리는 “이전”과 “이후”가 구분되는 순간을 지나왔습니다. 어쩌면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광주”라는 지명에 그리고 그 때 그곳을 살아내고 지켜왔던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살아낸 “가장 예뻤던 때”에 말이죠.

빚을 진 자에겐 언제나 “의무”가 남습니다.

언젠가 그 빚을 제 힘으로 갚아야 하다는 실질적인 의무 이외에도 꼭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도덕적인 의무까지도요.

당신이 가장 예뻤던 때? 그때를 당신은 기억하고 있습니까?

그때를 지나왔다면, 혹은 아직 지나오지 않았다면 기억하십시오.

그 순간을 어떻게 살아냈느냐에 따라 당신의 빚이 조금은 감면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요.

모른 척 하고 싶다면 당신은 아마도 평생을 도덕적인 빚쟁이로 살아내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치열하게, 당당하게, 그리고 절실하게

견디라고, 지키라고, 이겨내라고... 그리고 살아내라고

이 책 <내가 가장 예뻤던 때>가 말해주네요.

어쩌면 이 책은,

그러니까 “가장 예뻤던 때”를 살아온 그들이 내게 남겨준 화두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가장 예뻤던 때?”
내게는 그때가 과연 언제였을까요?


* 작가 공선옥의 이력이 참 눈물겹네요.
작가가 되기 전 그녀의 직업은 한달 동안 밤낮없이 일을 해야 손에 19만원을 쥘 수 있는 미싱사였다고 합니다. 우연히 동료가 응모해준 소설이 당선돼서 통장에 입금된 60만원의 거금을 보고 그녀는 무척 놀랐다고 하네요.

먼저, 40만원으로 방을 얻고 그 다음으로 밥상을 샀다는 그녀. 늘 밥상 없이 방바닥에 차려놓고 먹던 밥이 내내 서러웠던 거죠. 뜨거운 밥과 찬을 밥상 위에 차려놓고 아이들을 앉혀 놓고 그녀는 그제서야 말했다고 합니다.

“이제야 살 길이 생겼다”고.....

말하자면, 그녀가 쓴 글들은 전부 생존과 결부된 처절한 사투였던 셈입니다.

밥상 위, 한 술 밥의 의미가 문득 처연하게 느껴집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