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0. 4. 21. 06:31
일  시 : 2010. 04. 17. ~ 2010. 04.25.
장  소 :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극  본 : 노시노부 코죠우
연  출 : 류주연
출  연 : 남명렬, 예수정, 김정영, 오일영, 장용철, 권지숙, 김원진, 신용진, 신용숙,




"잠들지 못하는 아빠와 일어나지 못하는 나 중에서 어떤 쪽이 더 불행해?"
어느날 딸이 이런 질문을 한다면,
아빠는 어떤 대답을 딸에게 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그 딸이 이미 3년 전 무참히 살해당한 딸이라면?
연극 <기묘여행>의 시작은 이렇다.
자신의 베개가 있어야 잠을 잘 수 있는 아빠와
꼭 그 자명종 소리여야만 잠에서 깰 수 있는 딸의 실랑이는
차라리 마음이 들뜨게 만들고 심지어 다정한 모습에 귀엽성까지 느껴진다.
그러나 여행의 비일상을 이야기하면서 여행가방을 정리하는  아빠의 가방 속에
청테이프, 로프, 염산, 드릴, 전기톱이 하나씩 등장하면
극은 분위기는 묘한 반전을 이룬다.
그래, 정말 이 여행은 <기묘여행>이 되겠구나...

 

연극 <기묘여행>의 원작은 2004년 일본의 토시노부 코죠우가 쓴 작품이다.
살해당한 딸의 부모(남명렬, 예수정)와 딸을 죽인 청년의 부모(오일영,김정영)가 만나서
사형이 확실시 되고 있는 살인자의 면회를 위해 함께 교도소를 찾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극에선 묘하게도 살인의 동기나 정황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아무래도 의도적인듯...)
그러니까 딸의 아버지는.
지금 여행가방을 싸면서 혹시 있을 기회를 위해 철저한 복수를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그의 무거운 가방은 그래서 이제 의미가 부여된다.
기회가 왔을 때 절대로 실수해서는 안 되니까,
그 짧은 순간에 가능한 모든 방법 중 한가지를 확실하게 선택해야 성공시켜야 하니까...
반대로 가해자의 부모는 지금 "희망"을 간절히 소망하고 있는 중이다.
항소를 포기한 아들에게 "살아야만 속죄도 할 수 있다"고 설득하고
가능하다면 피해자 부모가 아들에게 이 말을 해주시길 간곡히 부탁한다.
(그것도 여러번...)

이들의 1박 2일의 여정은
지금 방금 이렇게 시작됐다.
죽이려는 자와 살리려는 자의 동행...
  

 

우리나라 무대 배경은 일본의 배경과는 많이 다르지만
무대 뒤를 따라 둥그렇게 나 있던 길과 분위기 따라 달라지던 스크린 배경은
때론 아름답기도, 때론 섬득하기도 하다.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살인과 사형제도에 대한 이야기.
그러면서도 왠지 이질감과 동감을 동시에 주는 코믹한 설정들과 대사들.
교도관이었을때 사형집행 경험이 있다고 말한 코디네이터 "테라하라"의 한 마디가 귀에 선하다.
"인권이 도대체 뭡니까?"
연극은 피를 토하듯 섬득하면서도 평화롭고 고요하다.
이들을 감싸는 묘한 기운에 나는 평온함마저도 느낀다.
그러나 진짜 그럴까?
"눈 뜰 수 없는 난 너무 불행해!"
극에 나오는 모든 이들의 심정이 살해된 가오루의 심정과 같지 않았을까?
지금도 자신의 마음은 살의로 가득하지만 죽일순 없다고 말하는 아빠와
무표정한 얼굴로 사건을 지켜보다
살해자와의 면회에서 가오루를 돌려달라며 의자를 집어던지는 엄마 역시도
결국 눈 뜰 수 없는 사람들이었던 건 아닐까?
이들을 눈 뜨게 하는 방법은 아무래도 가오루라는 자명종 하나 뿐인지도...



이상하지?
난 아버지의 마지막 대사를 들으면서
깊은 감동을 느끼면서 동시에 참을 수 없는 살의를 느꼈다.
그리고 그 느낌의 시작은 딸이 아빠에게 들려주는 칼이 몸 속으로 들어오는 소리를 이야기할 때부터였다.
"뜨거운 물을 끼얹는 것 같이 뜨거워져서 소리가 났어!
 칼이 밀리는 소리, 피가 막 흘러나오는 소리.
 몸안으로부터 직접 들리는 우물거리는 이상한 소리
 어떤 악기로도 낼 수 없는 소리. 잊자마!, 아빠!"

혼(魂)인 딸의 대사가 끝나고
무대 스크린이 피가 튀듯 검묽게 변해가는 장면에선 "번쩍!"
휴즈가 끊겨버린다.
강렬하고 치명적인 뭔가가 가슴을 그대로 들이받는 느낌이다.
그래, 이제 이 말(馬) 위에서 도저히 유턴할 수는 없겠구나....

 <연출가 류주연>

살해된 딸 가오루의 아버지역으로 극의 전체적인 흐름을 끌고갔던
배우 남명렬 역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로
극의 마지막 부분을 꼽았다.
“살의로 가득하지만 도저히 죽일 수는 없다”
원혼(怨魂)인 딸 앞에선 복수하겠다 말하고 철저히 준비하지만 
결국 사형수 앞에선 무방비상태로 땀만 뻘뻘 흘리다 나오는 아버지.
인형을 찌르는 장면에서는 배우 입장에서 굉장히 연기하기 어려웠노라 그는 말한다.
더불어 관객들도 그 장면에서 배우가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까지도 전한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과 머릿속에 있는 풍경 중 어떤 게 진짜일까?”
당신이라면 이 질문에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연극 <기묘연극>
생명과 인간 존엄에 대한 이야기 이전에
어쩌면 나 자신에 대한 정확한 폭로인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4. 16. 06:30

2002년 알렉상드르 뒤마(1802~1870) 탄생 200주년을 맞아서 믿음사에서 그의 대표작 <몬테크리스토 백작> 완역본 5권이 출판됐다.
프랑스에서는 <암굴왕>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이 소설은 1845년 당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뒤마는 작품 <삼총사>, <철가면> 등도 역시 성공을 이뤘고 현재까지도 프랑스 대중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작가로 알려져있따.
그의 아들 소(小)뒤마도 <춘희>로 유명한 작가다.
부전자전.
가끔 이럴 때보면 글솜씨도 되물림이 되는구나 싶어 부럽기까지 하다.

솔직히 말하면 5권이나 되는 이 책을 그것도 완역본으로  굳이 찾아서 읽게 된 건,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로 유명한 "프랑크 와일드 혼"의 새작품 뮤지컬   <몬테크리스토>를 위해서였다.
잘 아는 내용이라고 생각하고 점검 차원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완역본이 주는 재미는 특별했다.
그리고 절감했다.
제목을 아는 것과 내용을 아는 것과는 아주 다르다는 사실을...
솔직히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내용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에 사람들이 제일 먼저 <로미오와 줄리엣>을 꼽는 것 마냥 일종의 오류다.
잘 알고 있다는 착각에서 비롯된 오류.


이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파리 경찰청 기록보관소에 묻혀 있던 한 사건, 1807년 프랑스 남부 출신의 피코라는 한 청년이 영국 스파이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던 실제 사건이 소설의 모티브다.
카페를 경영하던 마티외 루피앙이 피코와 그의 약혼녀 마르가리타와의 사랑을 시기한 나머지 친구인 피코를 모함한 것이다. 피코는 피에몬테에 연금되었다가, 프네스트렐의 한 성에 감금되었다. 거기서 그는 어떤 이탈리아 사람을 알게 되고, 그 사람이 가족에게 버림받은 채 죽게 되자 피코에게 보물이 숨겨진 장소를 알려준다.
1814년 나폴레옹의 몰락으로 자유를 찾은 피코는 이름을 조제프 뤼셰르로 고치고, 보물을 찾은 후 파리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마가리타는 이미 루피앙과 결혼한 뒤였다. 피코는 변장을 하고 체포 당시의 상황을 잘 알고 있던 알뤼에게 접근하여 거액의 다이아몬드를 주면서 자신을 파멸시킨 사람들과 그 음모의 전말을 알아낸다.
그리하여 자신의 적들을 찾아 복수를 시작한다.
(소설과 완전히 똑 같은 내용...)
이 실제 사건은 소설 속에서 피코가 일등항해사 에드몽 당테스로, 이탈리아 죄수는 파리아 신부로 재탄생된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14년 동안 지하 토굴에 감금되는 당테스의 삶,
이 소설은 모든 탈옥소설, 복수소설의 모티브가 됐다고 한다.
5권의 완역본의 분량이 부담스럽긴 했지만 정말 순식간에 읽을 수 있을 만큼 재미있다.
유명한 영화 <빠삐용> 벼랑 끝 감옥도 이 소설에서 차용한 것이란다.
실제로 마르세유에 있는 이프 성에는 소설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모습이 그럴듯하게 꾸며져 있기도 하단다.
당테스가 갇혀 있던 토굴과 파리아 신부의 토굴, 그리고 두 사람이 오가던 비밀 통로와,
당테스가 시신을 넣는 부대에 담긴 채 바다에 던져졌던 감옥문도 그대로 만들어 있다니
소설의 인기의 정도가 어느 정도 실감이 되기도 한다.



4월 21일 시작하는 뮤지컬 <몬테크리스토> 때문에 찾아 읽었는데 소설적인 재미가 참 많아서 즐거웠다.
소설 속에서 몬테크리스토는 복수만을 꿈꾸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신비에 가득찬 뱀파이어같은 그가 어떻게 뮤지컬에 그려질지
지금 상당히 궁금해하는 중이다.
(그리고 나는 뮤지컬이 시작되는 첫날 확인하러 간다. 음하하)
더불어 죽어야 사는 남자 "류정한"의 모습도 궁금하고...
(류정한! 그는 뮤지컬 작품 속에서 정말 많이 죽었다.)



소설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모든 복수와 용서가 끝난 후 몬테크리스토는 막시밀리앙이라는 아들같은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한 통 남긴다.

"인간의 지혜는 오직 다음 두 마디 속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기다려라! 그리고 희망을 가져라!"

그런데 몬테크리스토가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몬테크리스토"는 에드몽 당테스가 파리스 신부의 유언을 듣고 찾아간 섬 이름이다.
어마어마한 보물이 숨겨진 섬으로
그 뜻은 "그리스도의 산"이란다.
몰랐었는데 이름이 갖는 의미도 참 재미있다.
원작이 참 여러가지 재미를 내게 선사했다.
더불어 뮤지컬에 대한 기대감도 상승됐다.
결과가 궁금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09. 11. 10. 06:25
<뿌리 깊은 나무> , <바람의 화원>의 작가 이정명의 소설이다.
사실 두 팩션 소설을 인상깊게 봤던 탓에 은근히 기대를 품고 있었다.
읽으면서 자꾸만 앞장을 확인하게 된다.
이 생경한 느낌이라니...
혹시 동명이인 "이정명"의 소설은 아닌가 하는 생각...
(내 이면엔 제발 그랬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교묘하게 짜집기 된 듯한 설정들.
형사추리물? 심리극? 사이코패스? 
아니면 이 모두라고 해둘까?
어떻게 생각하면 비정상적인 판타지라고 할 수도 있겠다.
(무슨 일이 있었던거지? 이정명이란 작가에게?)
그의 장점이었던 특별한 해박함도 찾아보기 어렵다.
굳이 찾아내자면 영어 퍼즐...
퍼즐을 통해 예고되는 다음 살인의 장소
그걸 위해서 이국의 배경과 이국의 인물이 필요했었던 걸까?
아무래도 이정명이란 작가.
추리 소설에 대한 "로망"이 있는 모양이다. ^^
그 로망을 지극히 내수용(?)으로만 풀어내는 게 이 사람에겐 훨씬 더 적절한 방법이었던 것 같다.
물론 이 소설이 재미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기본적으로 이정명은 재미있는,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만드는 작가임에는 분명하다.
찜찜해하면서도 이 책 역시도 빠른 속도로 책장을 넘기게 만든다.



7년 전 자신이 총에 맞아 바다에 빠진 연쇄살인마 데니스 코헨
(그리고 그로 추정되는 사체가 2주 뒤 바다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그가 여전히 살아있다고 확신하는 매코이 형사.
그래서 데니스 코헨을 끝까지 추적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
7년 전의 트라우마로 인해 식물인간이 됐다가
오랜 재활 끝에 머릿속에 범인이 쏜 총알을 박은 채 그대로 살아가야만 하는 남자.
처음부터 결말이 보였다.
매코이의 머릿속 총알이 만들어낸 데니스 코헨.
데니스 코헨은 다름 아닌 매코이 자신이었다.
자신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살인에 대한 스스로의 추적.
그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채 스스로 만든 악에게 끌려다닌 셈이다.
결국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눌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이르고 마는...



자신의 가족까지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믿는 살인마를 증오하면서
(이 부분은 참 좋았다. 두 사람의 서로 다른 기억. 그러면서도 결국은 하나로 통합되는 기억...)
과거의 그와 같은 수법으로 세 건의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
파괴될 수밖에는 도저히 없었겠다.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그의 생존이유는 놈에 대한 복수였으니
그와 자신이 동일인이라는 알게 된 그의 선택은 오히려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연쇄살인에 이어지는 주위 인물들의 다중 살인까지...
의미없는 사체들의 난립니다.
"악"이라는 오랜 트라우마가 남긴 추억의 끝은
허무하다.

하긴 모든 추억들은 전부 그랬던 것 같다.
적당한 변질과 왜곡으로 이어지는
그닥 신뢰성 없는 기억들.
추억을 기억이라고 단정짓지 말자.
당신에게도 또 하는 이면의 자신이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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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잡이들은 낯선 것에 열려 있으며 상식을 뛰어넘는 직관이 있어요. 또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같은 사물을 다른 시각에서 보는 수평적 사고에 능하죠. 레어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가 없는 르네상스, 뉴턴이 없는 근대 과학, 마크 트웨인이 없는 미국 문학, 빌 게이츠가 없는 컴퓨터 산업, 베이브 루스가 없는 미국 야구는 상상할 수 없으니까요.
왼손잡이를 강제로 오른손잡이로 교정하면 폭력적이 될 수도 있죠. 알렉산드로스, 카이사르, 다빈치, 나폴레옹 같은 천재들처럼요.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