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연주하는 임태경을 참 많이 좋아한다.
처음에 그가 "크로스오버 테너"라는 다소 생소한 장르를 이야기하면서 1집 앨범을 냈을 때
그냥 "팝페라"라고 하면 되는 거 아닌가 혼자 투덜거렸었다.
그런데 확실히 그의 연주는 임형주의 연주와는 분명 다르다.
열심히 임태경의 연주에 푹 빠져 있을 때 그의 뮤지컬 데뷔 소식을 들었다.
김혜린의 동명 만화로 만든 창작뮤지컬 <불의 검> 주인공으로 이소정과 함께 공연한다는...
참 손발이 오그라드는 연기였지만
뮤지컬 첫도전이라는 풋풋함과 그리고 무조건 열심히 하는 그의 모습을 보는 건 뭐 그닥 나쁘지 않았었다.
"그대도 살아주오"는 또 얼마나 절절하던지...
그런데 이상한 건,
나는 그의 연주를 들으면 여전히 감동을 받고 위로와 휴식을 받지만
뮤지컬 작품을 보면서는 좀처럼 감동을 받거나 동화되지 못한다는 거다.
그래서 그 이후엔 애써 찾아보지 않았고
몇 번 본 후에는 급기야 이 사람 예전처럼 연주만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마저 생기고 말았다.
(스위니토드, 로미오와 쥴리엣, 초연된 모차르트 ...)
뮤지컬이야 안 보면 그만인데 예전같은 그의 연주를 더이상 들을 수 없다는 게 일단 지독한 불만이었다.
목소리를 다리와 바꾼 인어공주가 되는 건 아닌가 싶어 안타까웠다.
그러기엔 그의 연주가 너무 아깝고 또 아까웠다.
성남아트센터에서 다시 <모차르트>가 올려진다고 했을 때
솔직히 나는 그 먼 곳까지 찾아가 보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파격적인 수요일 낮공연 할인(R석 40%)이 아니었다면 분명 찾아보진 않았을거다.
거기다가 4인 4색(임태경, 김준수, 박은태, 전동석)을 내세우는 전 캐스팅을 섭렵할 마음은 애당초 없었고
시간을 맞추다 보니 띵동! 당첨(?)된게 임태경 캐스팅이었다.
(뭐 그닥 선택이라고 할만큼 폭이 넓진 않았지만...)
세종문화회관에서 초연 때는 임태경과 박은태 두 캐스팅을 챙겨 봤었는데
개인적으론 박은태 모차르트가 더 마음에 와 닿았었다.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뮤지컬 배우 박은태!
발성과 약간 이상한 딕션, 대사할 때의 성량만 해결한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을텐데...)
성남 공연은 일단 무대 세트와 음향, 오케스트라가 세종문화회관 때보다 훨씬 웅장하고 좋아졌다.
초연때는 뭔가 빈틈이 많이 보이는 무대라 전체적으로 휑했었고
모든 대사들은 동굴 속에서 웅웅 거리는 것처럼 들렸는데
성남 무대는 충만까지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빈틈이 보이진 않았다.
특히 조명은 참 좋았다.
그리고 모차르트 임태경!
백만년만에 뮤지컬 무대에 서있는 임태경에게 감동받았다.
도대체 이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거지?
아마도 임태경이 모차르트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예전에는 작품을 따라가기에도 급급하고 허덕였는데 이날 공연에서는 전체적으로 작품을 끌고 가더라.
어색했던 감정표현과 동작도 믿어지지 않을만큼 자연스러웠다.
3월에 있었던 그의 단독 콘서트가 변화의 계기가 됐을까?
뮤지컬 배우로서의 그의 변화와 발전이 나는 놀라웠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사람... 드디어 배우가 되려나 보다...
어쩌면... 어쩌면...
이제부터 임태경는 연주가 임태경과 뮤지컬 배우 임태경의 두 길을 잘 걸어갈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아무래도 그가 평형과 균형, 그리고 조화를 드디어 뮤지컬 무대에서 찾아낸 모양이다.
그의 모차르트 연기는!
아름답고 섬세하고 그리고 안스러웠다.
정확한 음과 성량, 발음으로 연주하던 넘버들 역시 훌륭하고 아름다웠다.
매장면마다 딱 어울리는 호흡과 감정까지...
내가 초연 캐스팅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던가!
재공연되는 작품에 은근히 초연멤버가 그대로 나오기를 바라고
가능하면 초연멤버가 많이 캐스팅된 날로 선택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무시하진 못할 것 같다.
(실재로 초연보다 재공연이 형편없었던 경우도 꽤 있긴 했다.)
임태경, 신영숙, 서범석, 이경미 초연 캐스팅과
이정열, 에녹, 임강희, 커버이긴 했지만 박혜나 콘스탄체의 호흡은 나쁘지 않았다.
생각보다 박혜나 콘스탄체와 에녹이 너무 잘해서 놀랐다.
캐스팅보드에 혼자 의상없는 사진으로 올라가있던 박혜나는
정선아 콘스탄체의 인지도가 워낙 높아서 주눅들지 않을까 좀 걱정을 했는데
당돌할만큼 너무 잘해내서 놀랐다.
에녹은 다소 과장된 슈카네더였지만 그게 나쁘게 보이지 않더다.
오히려 지금까지 본 슈카네더 중에서 단연 최고였다.
군무장면에서 동작을 하나 표현해도 눈에 띄게, 더 크게, 더 힘있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 에녹이라는 가수출신 뮤지컬 배우가 멋진 주인공이 될 날이 오겠구나 생각했다.
그만큼 에녹의 밉지 않은 과장된 연기는 열의와 열정, 그리고 노력과 연습의 흔적이 역력하다.
서범석의 레오폴트는 여전히 깊은 인상과 진정성을 안겨준다.
좀처럼 실망감을 안겨주지 않는 배우 서범석!
이 사람의 모든 무대는 언제나 치열하고 아름답다.
(초연때 나는 이 작품이 서범석때문에 "레오폴드 모차르트"로 제목을 바꿔야 한다고까지 생각했었다.)
이정열의 주교는 약간 가볍다는 느낌이 들었고
란넬의 임강희는 초연 배혜선의 존재감을 더 부각시켜 안타까웠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세종문화회관에서의 <모차르트>보다는 훨씬 더 발전된 작품이 나왔다.
다시 그 먼 곳까지까지 찾아가 보게 되진 않겠지만
이번 시즌을 놓쳤다면 아마도 꽤나 후회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이렇게 충만한 느낌, 정말 오랫만이라 아직도 멍하다...)
그리고 임태경의 새로운 모습을 목격한 것 그 자체만으로도
먼 길을 찾아간 보람은 충분히 있었다.
앞으로 뮤지컬 배우로서의 임태경의 다음 행보를
나는 조금씩 기대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쩌다보니 요즘에 예술의 전당 발걸음이 잦다.
조만간에 한가람 미술관도 찾아가봐야하는데...
예당의 자유소극장은 규모나 음향시설이나 딱 맘에 드는데
문제는 너무 멀다는 사실...
그래도 지금까지 자유소극장에서 본 작품들은 다 느낌이 좋았다. (주로 연극)
음악이 있는 연극 <미드썸머 Midsummer> 역시도.
OD 뮤지컬 컴퍼니가 벌써 10주년이 됐단다.
나름대로 기념(?)을 하고 싶었는지 "아주 특별한 2인극" 3편을 기획했고, 그 첫 작품이 바로 연극 <미드썸머>였다.
다른 두 작품은 10월에 공연될 뮤지컬 <The Stoy of My Life>와 연극 <The Blue Room>
(두 작품 역시나 기대중인 1인 ^^)
10년만에 처음으로 소극장 연극에 도전한다는 OD는 꽤 괜찮은 시도라를 한 셈이다.
대형뮤지컬 기획사 OD가 왠일이지 싶다가다 역시나 신춘수 대표가 참 영리한 사람이란 생각도 하게 된다.
제대로 이룬것 하나 없이 대충 살아온 조직의 똘마니 밥 역에 서범석, 이석준이
쿨한 이혼 전문 변호사 헬러나 역에 탤렌트 예지원이 캐스팅됐다.
출연진도 꽤 괜찮지만 궁금했던 건 양정웅 연출이었다.
세익스피어의 원작 <한 여름 밤의 꿈>을 새롭게 구성한 작품이라니
아마도 양정웅 연출이 딱이다 싶긴 했을거다.
한국 연극 최초로 런던 바비컨 센터에 초청돼
세계무대에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젊은 연출가 양정웅은
연극계 대표적 스타일리스트로 불리면서 독창적이면서 파격적인 감각을 선보였다.
이 작품은 그에게도 첫 상업 연극 도전이라 어떻게 연출했을지 많이 궁금했고 기대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공을 하루 앞두고서야 겨우 보게 됐다니...)
밥과 헬레나를 연기하는 두 배우는 2시간여 동안 시종일관 바쁘다.
무대를 한 번도 떠나지 않으면서
해설과 연기, 통기타연주, 의상, 심지어는 무대 셋트까지도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
부산스러울것 같은데 역시나 여우같은 두 배우는 순간순간 잘도 요리하더라.
극 중간에 발생하는 돌발상황에 대한 두 사람의 에드립 연기도 너무 재미있었다.
기타 어깨끈이 빠져서 다시 끼우는 서범석의 능청스러운 앙탈에 관객들도 박장대소하더라.
연극의 묘미는 그런 것 같다.
같은 작품이지만 그날의 상황이나 실수에 따라 즉흥적이고 본능적으로 대처하는 배우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거.
(아무래도 뮤지컬은 연극보다는 그런 면에서는 실수가 훨씬 적으니까...)
물론 실수가 너무 잦으면 배우로써의 역량과 자질이 심히 의심스러워지겠지만
이날의 공연은 즐기기에 딱 적당한 정도여서 유쾌했다.
<미스터 마우스>의 인우를 떠올리게 하는 서범석의 자폐 연기도 반가웠고...
늘 느끼는 거지만 서범석의 딕션은 참 정확하고 느낌 있다.
별 볼일 없는 조직의 똘마니 역은 또 얼마나 잘 어울리던지.
25살의 서범석은 또 얼마나 꽃미남이던지... 하하하!
예지원이 TV나 영화말고 무대 연기를 예전에 했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가끔 무대에서 그녀를 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밥은 그래도 더블 캐스팅이지만 헬레나는 예지원 원캐스팅이었다.
이 작품에서 진정한 멀티맨(멀티걸?)의 모습을 보여주던 배우 예진원!
딕션도 얼마나 좋던지 정말 깜짝 놀랐다.
물론 작품 자체가 그녀의 전문분야라고 할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물이긴 했지만
개인적으론 배우 예지원을 새롭게 발견했다.
노래도 정말 느낌있게 잘 불러서 또 다시 놀랐다.
‘Change is possible’
극에 등장하는 이 말이 그녀에게 정말 딱 어울린다.
그야말로 팔색조의 모습을 보여주던 예지원은
스스럼없이 객석으로 뛰어들어 관객을 연극 속으로 직접 끌여들인다.
과장된 연기를 하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선을 잘 유지하는 균형감각도 너무 좋았다.
원캐스팅으로 2달 동안의 공연을 너무나 멋지게 잘 끌어온 배우 예지원은
큰박수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멋진 배우, 예지원!
midsummer는 일년 중 밤이 가장 짧은 하지(夏至)를 말한다.
꼭 사랑이니 청춘이니 인생이니 이런 거창한 것들이 아니어도 좋다.
살면서 짧게 지나가는 게 어디 이것들 뿐일까!
모든 건 다 잠깐이다.
그래서 바로 지금이 제일 좋은 순간이라고 연극이,
밥과 헬레나가 무딘 나를 향해 말하는 것 같다. ‘Change is possible’
생각하지도 못한 뜻밖의 일탈일지라도
지금 이 순간에 이루어지는 거라면
그래, 그게 전부인거다.
그게 제일 좋은 거다.
사랑은 아프게 해. 사랑은 널 다치게도 해.
사랑은 마음을 아프게 해. 어떻게든 애써도.
사랑은 아프게 해, 사랑은 널 다치게도 해.
사랑은 마음을 아프게 해. 가끔씩 다시 원해도.
이렇게 바로 곁에 있는듯한 우리,
거기에 멀리 보이는 산만큼의 거리.
이렇게 멀리 느껴지는 우리,
거기에 커다란 바다와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