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7. 8. 25. 13:49

 

<3일간의 비>

 

일시 : 2017.07.11. ~ 2017.09.10.

장소 : 아트원씨어터 2관

대본 : 리처드 그린버그 (Richard Greenberg)

연출 : 오만석

피아노 : 김희은

출연 : 최재웅, 윤박 (워커 & 네트) / 이명행, 서현우 (핍 & 테오) / 최유송, 이윤지 (낸 & 라이나)

제작 : (주)악어컴퍼니

 

개인적으로...

나는 배우 오만석보다 연출 오만석을 더 좋아한다.

연출자이 시선뿐만 아니라 배우의 시선까지도 함께 담겨있어서일거다.

이 연극도 가령 연출자의 시선으로만 봤다면,

지금과 같은 각색이 나오진 못했을것 같다.

아마 원작 그대로 작품을 올렸다면 지루했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니까 각색의 좋은 예, 연출의 좋은 예라 하겠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1인 2역.

익숙한 패턴이지만 익숙하지 않은 뭔가가 있다.

이런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는,

각오를 단단히 해야할 것 같다.

템포로 표현하지면 아주 느리게...에 해당하는 lento다.

강약으로 따지면 약...약...약...약...의 느낌.

난 참 좋더라.

여백으로 가득한 네트의 일기장처럼.

 

비어있는 곳은,

사실 비어있는게 아니다.

그 속에 더 많은 진실들이 담겨있다.

나는 1960년의 네트, 테오, 라이나도 슬프지만

1995년의 워커, 핍, 낸은 더 슬프다.

세대와 세대는 정말 끊어질 수 없는건가?

우리 모두는 전 세대와 뒷 세대에 연결되어 있다는 말.

믿고 싶지 않지만 인정을 안할 수도 없다.

 

그냥 그런 생각을 했다.

무언가를 기다리지도 말고, 무언가가 되지도 말고

그냥 "나"로 존재하자고.

generation의 종말.

비장한 구호처럼 들리겠지만 사실은 그게 평온이라고...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4. 9. 11. 05:28

<The Pride>

일시 : 2014.08.16. ~ 2014.11.02.

장소 : 아트원씨어터 2관

극작 : 알렉시 켐벨 (Alexi Kaye Campgell)

연출 : 김동연

출연 : 이명행, 정상윤 (필립) / 박은석, 오종혁 (올리버)

        김소진, 김지현 (실비아) / 최대훈, 김종구 (멀티)

기획 : 연극열전

 

감히 말하건데 나는...

이 작품과 완벽히 소통하고, 그리고 완벽히 대화한다.

마치 누군가 내 속으로 들어와 대사 하나하나를 직접 끄집어낸것 같다.

올리버가 고대도시 델포이에서 들었다는 혼자만의 신탁의 소리가,

지금 내게도 선명히 들린다.

먼 과거에 살고 있는 내가 지금의 나를 향해 던지는 질문들.

대답... 해주고 싶다. 간절히... 

이 작품을 앞으로 내가 몇 번을 더 보게 될까?

많이 힘들어 온 몸이 녹아내릴 것 같을 때,

진심으로 다가오는 토닥임과 위로가 필요할 때.

포악스런 욕심과 미움으로 망신창이가 될 때.

작은 온기라도 누군가와 기꺼이 나누고 싶을 때.

이 모든 순간들과 닿을때마다 나는 이 연극을 그리워하고 찾게 될거다.

올리버에게 감사하기 위해,

필립에게 감사하기 위해,

실비아에게 감사하기 위해...

그리하여 내가 온전한 나로 설 수 있도록!

 

<The Pride> 두번째 만남.

박은석 올리버와 김지현 실비아는 그 사이 더 깊어졌다.

김종구의 2막 첫씬 역시도 여전히 처음처럼 좋다.

25년의 역사...

그래, 그건 누가 뭐래도 사랑이다.

극과 극을 오가는 감정들.

시간과 시간이 교차되는 상황들을 어쩌면 그렇게 완벽하게 통제하면서 표현하는지...

도대체 이 역할들을 매번 어떻게 감당할까!

배우란,

참 위대하고 아픈 직업이다.

 

정상윤 필립은,

초반에 박은석 올리버에게 밀리는 느낌이었는데 의도적이었다는 걸 나중에 이해했다.

그리고 역시나 정상윤의 섬세함과 디테일한 감정 표현은 너무나 간곡하더라.

특히 1막 마지막 장면은,

많이 아팠다.

서로에게 상처를 남긴 광폭한 관계후 올리버를 떠나보낸 필립.

스스로 홀로 남겨진 필립의 눈과 입은,

여전히 단 한 사람만을 부르고 찾는다.

아주 간절히, 그리고 아주 절망적이게...

"올리버..."

 

반복되는 대사와, 상황들, 그리고 장면들.

필립에게 손을 뻗는 올리버의 그 조심스럽고 간절한 떨림까지.

(이 표현 정말 너무나 좋다. 과거의 모습도, 현재의 모습도 모두)

참 아득하고 아프다.

이 사랑...을

어떻게든 지켜주고 싶다.

 

"사랑"이라는거.

그건 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간절함의 문제다.

남자를 사랑하든, 여자를 사랑하든, 혹은 다른 무언가를 사랑하든.

간절하게 부를 수 있는 이름이 있고

그 이름이 닿을 곳이 결국 있다면,

그건 "사랑"이다.

그리고 그 이름을 부르려면 "용기" 또한 꼭 필요하다.

모든 사랑의 실패는,

따라서 "용기"의 걸여다.

사랑을 인정할 용기,

사랑을 고백할 용기,

사랑을 지켜나갈 용기, 

사랑으로 인해 받은 상처를 다독이고 이겨낼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거짓된 사랑에 흔들리지 않고 당당히 거절할 수 있는 용기.

"실비아"가 바로 그런 용기였다.

실비아의 마지막 대사.

그걸 알았다면,

내 삶은 지금과 아주 많이 달랐으리라.

필립의 말은...

정말이지 아주 정확했다.

"실비아는 항상 옳아요!"

 

내가 멀리서 속삭일께요.

내 목소리가 당신에게 닿을때까지.

당신이 당신에게 닿을때까지.

괜찮아요.

괜찮을거예요

모두 괜찮아질거예요.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4. 8. 25. 08:34

<Pride>

일시 : 2014.08.16. ~ 2014.11.02.

장소 : 아트원씨어터 2관

극작 : 알렉시 켐벨 (Alexi Kaye Campgell)

연출 : 김동연

출연 : 이명행, 정상윤 (필립) / 박은석, 오종혁 (올리버)

        김소진, 김지현 (실비아) / 최대훈, 김종구 (멀티)

기획 : 연극열전

 

정말 정말 정말 좋은 연극을 만났다.

내 영혼의 soul mate 같은 연극 <Pride>

깊은 위로같고, 포근한 다독임 같은 그런 보석보다 더 빛나고 찬란한 연극.

180 분이라는 시간이 너무나 빨리 지나갔다.

끝이 났다는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만큼 완벽히 스며들었다.

이 작품...

아주 진심이고, 아주 진실하다.

많이 슬펐고, 많이 아팠고, 그래서 많이 행복했다.

아주 말갛게 행궈지는 기분이었고, 뭔가 하나의 껍질이 벗겨나가는 느낌이었다.

이 작품을 보기 전과 보고 난 후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있었다.

이 대사들...

이 진심의 대사들을 나는 최대한 오래 마음에 담고,

최대한 오래 기억하게 되리라. 아니 그렇게 될 수밖에는 도저히 없으리라.

진심으로 다행이다.

이 연극을 만나서.

이 연극을 봐서,

이 연극이 내 마음에 진심으로 닿아서...

그리고 필립과 올리버를 이명행과 박은석이 연기해줘서 정말 다행이다.

 

누군가를 그리워 한다는건,

그 사람의 실체를, 그 사람의 온기를 느끼고 싶다는 의미일까?

하지만 그건 아주 일부다.

우리가 느끼고 싶은건, 간직하고 싶은건, 간절히 원하는건,

그 이상이다. 아니 그 이하다.

필립의 말처럼 내가 누군가를 불렀을때 언제든지 나를 위해 돌아볼 준비가 되어있는 한 사람.

간절한건 그 한 사람의 목소리다.

그 사람이 게이든, 레즈비언이든, 바이든, 스트레이트든 아무 상관없다.

그게 그리운 이유, 살아가는 이유의 전부다.

 

..... 꿈에서 막 깨거나 막 잠들려고 할 때

갑자기 사는게 무지 시시해지면서 그냥 이대로 영원히 잠들어 버렸으면 좋겠다 그럴때 있쟎아

사는 이유보다 덮고 있는 이불이 더 포근하게 느껴질 때,

난 그때 누군가를 부를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봐.

내가 누군가를 부르거나, 날 불러줄 목소리

그 목소리가 닿으면서 시작되는 변화,

그게 사는 이유가 아닐까? ......

 

...... 괜찮아, 모든 것이 괜찮아질거야.

기나긴 시간이 흐르면,

우리에 대해, 자신에 대해

그 어렵고 불안했던 순간들을 이해할 것이고

그리고 지금의 잠 못 이루는 밤들도 가치가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어쩌면 오십, 아니 오백 년 후에도 이 시절을 사는 사람들은

그 시간들로 인해 더 행복해지고 더 현명해질 것이다.

그러니까 괜찮아, 모든 것이 괜찮아질거야.

마치 먼 미래에 이미 모든 것을 거친 내가 나를 다시 위로하듯 다정한 속삭임.

그 위안처럼 목소리가 그렇게 .......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

그건 꼭 누군가 옆에 있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닐거다.

내 진짜 이름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 지금 나를 부르고 있다면...

나는 1958년의 올리버처럼 모든 걸 던지고 그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2014년의 필립처럼 다시 또 돌아갈 수 있을까?

1958년, 2014년 실비아처럼 그 둘을 지켜보고 이해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하지만 만약 그런 순간이 온다면 진심으로 한 번쯤은...

나는 꼭 필립이고 싶다.

올리버이고 싶다.

실비아이고 싶다.

 

그 사람이 누구든 상관없다.

남자든, 여자든, 혹은 아무것도 아니든...

나는... 단지 이야기를 갖고 싶다.

그 이야기가 만드는 역사를 가지고 싶다.

필립과 올리버처럼.

그리고 그들을 지켜내는 실비아처럼...

 

이 연극이...

나를 살게 하리라.

나를 숨쉴 수 있게 하리라.

나를 그대로 나로서 존재하게 하리라.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