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1. 1. 31. 06:33
방송작가가 여행을 다녀와서 책을 냈다.
별 유명한 작가도 아니고 특별히 재미난 내용도 아니었던지 그닥 인기있는 책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어느날 잘 알지 못하는 연예인이 자신의 별로 잘 알려지지 않은 책을 방송에 들고 나서 소개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팔린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책이 팔려나갔다.
그는 말했다.
로토에 맞았다고...
내가 생각해도 이건 확실히 대박이다.
그 남자는 그 로토맞은 돈으로 또 다시 여행길에 올랐다.
한 겨울의 아이슬란드로...
해가 지지 않는 백야가 있고, 찬란한 오로라가 하늘에 떠 있는 그곳으로...



<나만 위로할 것>
책은 참 이기적인 제목을 달고 있다.
그러나 여행은 그런거 아닌가?
나만 위로하기 위해서 떠나는 지극히 이기적인 과정...

...... 나의 도시는 내게 영감을 주었고 내가 살아야 할 이유와 목표도 주었다. 가끔 도시를 떠나 한적한 시골이나 전원에 있으면 나는 지루했고, 뭔가 하지 않는 것이 한없이 불안하고 초조했다. 나는 전형적인 도시인이었고 내 도시를 사랑했다.
하지만, 어느 날 병을 얻었다. 그날 이후 나는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이 무서웠고, 꽉 막힌 도로 위에서 견딜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고, 화려하게 빛나는 조명들을 바라볼 때마다 불안했다.
그런 날들이 계속되자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광활한 평야와 사람과 문명이 없는 텅 빈 풍경을 갈망하게 되었다. 그 풍경에는 끝없이 줄지어선 차들도, 화려한 조명들도, 그리고 저마다 다르거나 고집 센 사람들도 없었다. 내가 지금 이야기하는 건 광활한 대자연을 말하는 것 아닌, 말 그대로 스스로 고립된 텅 빈 곳을 동경하게 된 것이다.
나는 그런 곳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강원도의 고한부터 러시아 시베리아 호수, 미국 중부의 사막, 아무도 없고 바다거북만 살고 있는 퍼스의 해변, 눈이 허리까지 내리는 핀란드의 숲, 그리고 낮게 부는 바람소리만이 전부인 아이슬란드...... 이런 곳에서 나는 평온을 만났다. 작동되지 않던 뇌는 제대로 된 생각이라는 걸 하게 됐고, 입만 열면 허황된 꿈을 읊어대던 입은 침묵하게 되었다. 그동안 어긋나 잇던 206개의 뼈들이 다시 재조립되는 기분이 들었다 ......


솔직히 책을 통틀어 마음에 드는 대목은 이 부분 뿐이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감상적인 글들.
저자는 추위속에서 앞니마저도 잃었다는데
책을 통해 읽는 추위는 아무래도 현실적이지 않다.
고립된 텅 빈 곳...
그 곳을 찾고 싶은 열망과 깊은 향수.
이기적인 제목과 그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다.
내가 이 책을 읽은 건...



알랭 드 보통이 아니라면 공항으로 여행가겠다는 사람이 있을까?
그리고 프랑스가 아니라면 작가에게 이런 제안을 한 나라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나 꿍짝이 잘 맞는 조합이다.
책 속에 사진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
공항 한복판에 놓여진 커다란 하얀 책상, 노트북, 그리고 물병과 컵.
뭔가를 열심히 보고 있는 알랭 드 보통.
그가 공항의 안내인인줄 알았던지 여행객들은 그에게 길을 묻는다.
(여기나 거기나 작가를 알아보지 못하는 건 마찬가진가보다. 그래도 알랭 드 보통인데....
 하긴 누가 상상이나 할까? 세계적인 그 알랭 드 보통이 지금 공한 한복판 책상에 앉아 있으리라고...)
2009년 여름, 뜻밖에 알랭 드 보통은 히드로 공항 관계자의 초청을 받았단다.
공항의 첫 "상주작가"가 되어 세계에서 가장 바쁜 공항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권한을 주겠다는 것!
제안을 수락한 그가 일주일동안 공항에서 한 일은
"지켜보는" 일이었다.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을(노동자들), 그리고 공항을 이용하고 있는 사람들을...
유명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리처드 베이커의 사진이
이 이례적인 여행서의 재미와 특별함을 더한다.



...... 만약 화성인을 데리고 우리의 현대 문명을 관통하는 다양한 주제들 - 테크놀로지에 대한 우리의 신앙에서부터 자연 파괴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상호 관계성에서부터 여행을 로맨틱하게 하는 마음과 태도에 이르기까지 - 를 깔끔하게 포착할 수 있는 어떤 장소에 데려가야 한다면, 우리가 가야 할 곳은 공항밖에 없을 것이다. 온갖 소란과 교차 속에서 아름답고 흥미롭게 펼쳐지는 공항 풍경은 현대 문명의 상상력의 중심에 자리한다 ......

1. 접근
2. 출발
3. 게이트 너머
4. 도착

공항만큼 사람을 설래게 하는 시작이 있을까?
어쩌면 모든 마법같은 신기루의 시작은 바로 이곳에서부터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먼 곳으로의 여행의 구체적으로 실감나는 것도.
쉬는 날이면 일부러 공항을 찾는다는 사람의 심정을 나는 알 것 같다.
그는 설래고 싶었으리라.
비록 그게 여행객의 표정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노곤함을 보는 일이 될지라도
공항은 언제나 꿈꾸게 한다.
알랭 드 보통의 말처럼
공항은 현대 문명의 사상력,
그 중심에 확실히 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10. 2. 10. 06:20
<크리에이티브 마인드> - 허버트 마이어스, 리처드 거스트먼

 

크리에이티브 마인드

맨 처음 책을 손을 잡게 되면 잡는 순간 느낌이 오는 책이 있습니다.

저의 경우는 오르한 파묵의 모든 책들이 그랬고(정말로 그의 모든 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알랭 드 보통, 주제 사라마구가 그랬습니다.

(솔직히 더 많이 있긴 한데. 뭐 하자는 플레이가 될까봐 그만 하렵니다...)

이 책 <크리에이티브 마인드>는 책 표지부터 저한테 말을 거는 느낌이 들었던 책입니다.(이런 순간엔 마치 내가 책으로 빙의 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면 믿으시겠어요?)

어쩐지 자꾸 저를 부르는 것 같아 단번에 집어 들었습니다.

사실 다른 책을 소개하려고 했는데 저의 생각을 급선회시킨 짜릿한 장본인 되시겠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무지 무지 무지 무지 재미있는 책입니다.

이 책의 저자들 역시 엄청난 창의력을 가진 디자이너로 세계 유수의 상들을 싹들이 한 우리 기준에서 생각하면 선택받은 극히 적은 소수인들입니다.

한마디로 사람 주눅 들게 하는 인간들이란 뜻이죠.

이 책에서 우린 그런 무시무시한 인간들을 자그만치 20명이나 만나야 합니다.

근데 매력적인 건 책장을 넘길수록 이 무시무시한 인간들이 마치 바로 내 옆에 앉아 조곤조곤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는 겁니다.

처음엔 무지 부담스러웠죠.(이들이 좀 대단한 사람들이라 말이죠... 저 실제가 아님을 알면서도 당황하고 몸 둘 바를 몰라하고 있더랬습니다)

그런데 읽다보니까, 글쎄 제가 이 사람들한테 완전 집중하고 있는 겁니다. 더 이야기해달라고 떼를 쓰는 마음으로요.(이거 빙의 맞죠? 정신분열인가?)


요즘엔 사실 "창조"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실정이긴 합니다.

얼마나 창조할 게 많으면 정당에서도 창조를 이름으로 내세우며 목에 핏대를 세우시겠어요?(것도 영 창조적이지 않게시리... 모냥 빠지게....)

예술계는 물론이고 과학ㆍ기업ㆍ정치에 이르기까지 이 말을 쓰지 않으면 오히려 어색할 지경이기까지 하죠. 서점에만 나가봐도 창조, 창의력 관련 서적이 봇물처럼 쏟아져 아예 대형 서점엔 '창조력 계발'이라는 부스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을 정돕니다. 하지만 이런 책들은 대개 창조적인 인물들의 삶과 업적을 정말 그야말로 열심히 추적해 나열하는 수준이죠.

그러면서 평범한 우리 인간들 엄청 기운 빠지게 만드는 예기치 못한 역효과를 만드는 불상사까지 낳기도 하죠.


이 책엔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육성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저널리스트, 기자, 연출가, 극작가, 작가, 경영인, 건축가, 영화감독, 작곡가, 디자이너, 유리조형가, 화가, 퍼스널컴퓨터 발명가, 박물관장, 조각가, 사진작가....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일을 즐긴다”는 아주 단순한 명제였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일을 통해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하고 싶다는 소망이었구요.

그들은 또한 말합니다.

창조적인 사람은 개방적이라고요, 그들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 합니다. 그들은 알고 있었던 거죠. 공동 작업이 얼마나 창조적일 수 있는지를, 그리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전체”가 창조되는 짜릿함을요.


요즘 제가 절실히 느끼고 있는 부분입니다.

공동 작업의 엄청난 “창조성”을요...

예전엔 혼자 잘 하면 된다는 생각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혼자 잘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오히려 타인을 탓하게 되고, 다른 사람의 실수를 습관으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이 책 아주 못쓰겠습니다. 과거의 안 좋은 모습을 고백까지 하게 만드니...)

다행인 것은,

요즘은 함께 일하는 즐거움에 대해 깨달았다는 겁니다.(완전 기특한 버전...)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얻어지는 증대 효과도 전 정말 느끼고 있거든요.

이 책의 표현 데로 정말 짜릿한 흥분이었습니다.

이런 제 마음이 아무래도 이 책을 불렀던 것 같습니다.

(확실히 책에는 영혼이라는 게 있는 것 같습니다...)


책을 보면서 저는 짧은 <독서노트> 같을 걸 기록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이 책은 제 노트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고 그리고 문장 전체를 그대로 받아 적은 부분들도 참 많이 있습니다.

힘이 되는 구절들과 만나는 건 일종의 축복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창조성”은 사람의 본성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있다고 합니다. 그걸 어떻게 발견하느냐는 누구도 뭐라고 이야기 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단지 내가 나의 창조성을, 타인의 창조성을 꺾는 그런 사람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이 책의 소개된 “스티븐 홀”이라는 건축가는 말합니다.

“창조성은,

예술 활동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

상상력은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 꼭 필요한 핵심이다.

이런 것들이 없다면 우리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저는 지금 살아있는 걸까요?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09. 11. 12. 05:47
내가 알랭 드 보통을 좋아하는 정도는?
보통 - 조금 - 많이 - 무지 많이 ^^
이 독톡한 글쓰기 작가를 몰랐다면 무척이나 서운하지 않았을까 싶다.
"알랭 드 보통-정영목"의 조합은 묘한 흥분감과 짜릿함을 안긴다.
알앵 드 보통의 글들을 정영목이 아닌 다른 번역가에 의한 책으로 읽었다면
나는 지금처럼 그를 좋아하게 됐을까?
극도록 지적이며 탐미주의적인 완벽한 조합



현대 사회의 일에 대한 에세이.
어떻게 이런 책을 쓸 생각을 했을까?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우리는 사랑일까>,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그가 쓴 소설들을 읽으면서 그 독특함이 너무 신선해서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런데 그가 쓴 에세이들은 소설보다 그 풍미가 훨씬 더 놀랍다.
<행복의 건축> <여행의 기술>, <동물원에 가기>에 이어
이 책 <일의 기쁨과 슬픔>까지...
처음엔 그가 무지 나이 많은 작가일거라 생각했었는데
고작 1969년 생이란다.
그의 재능과 박학다식함이 부럽다.
훔치고 싶은 재능.
이 사람의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불가능한 범죄를 꿈꾸게 된다.
지독하게 매력적인 나쁜 사람... ^^



이런 제목을 가지고 글을 쓸 엄두를 누가 낼까?
전문적으로 쓰면 독자를 외면하고 지식 자량만 했다고 비난받을 테고
소개하듯 대강의 것들을 쓰면 새롭지 않다고 비난받기에 딱 좋은 재료들.
도저히 대중화된 소재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들의 향연.
10개의 글들 전부의 맛과 향이 독특하고 유별나다.
사랑에만 기쁨과 슬픔이 있는 게 아니라
일에도 분명 기쁨과 슬픔이 있다는 거...
찬찬히 오래 돌아보며 생각하게 하는 에세이다.
나는 내 일에 대해 어떤 의미와 감정을 가지고 있을까?
내 일에 대한 고백서 같은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바람도.
어렵겠지만...



읽고 난 후 한참을 멍하게 앉아있는 내게
번역가 정영목의 글의 눈에 들어온다.

알랭 드 보통은 타의에 의해 관찰자가 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관찰자의 자리에 서게 된 경우다. 그가 스스로 그런 자리를 택하고 또 그 자리의 이점을 충실히 살려나가는 점도 훌륭하지만, 그의 장점은 일을 원경으로 포착하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유자재로 줌을 당겼다 놓았다 하면서도 초점을 놓치지 않는 것처럼, 원경, 중경, 근경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입체감을 살려가면서 일을 명상한다는 것이 그의 진짜 장점인 듯하다. 그 덕분에 우리는 우리 마음의 미세한 떨림에 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동시에 그 떨림이 놓인 크고 웅대한 맥락까지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 딱 이거다.
내가 지금 정신적인 공황상태에 빠져 있는 이유...
그의 zoom in, zoom out에 완전히 내가 놀아난 상태.
어떻게 글 하나 가지고 사람을 이렇게 들었다 놨다를 할 수 있는 거지?
또 두 손, 두 발 다 들게 된다.
"알았다구요! 이번에도 내가 완벽히 졌다구요!'
결국 또 인정하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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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선 관찰하기 :
나는 이 책의 부두에서 신전에 이르기까지, 의회에서 회계 사무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18세기의 도시 풍경화와 비슷한 기능을 하기를 바란다..... 이 포괄적인 장면은 일이 인간의 벌집 안에서 우리 각자에게 부여하는 자리를 일깨워주는 역할을 한다.

비스킷 공장 :
정신이 고결하고 도덕적인 야심이 있는 구성원들은 사회의 방종에 경악했다. 그들은 소비주의를 매도하면서 대신 아름다움과 자연, 예술과 우애를 찬양했다. 그러나 비스킷 회사는 초콜릿 비스킷의 효율적인 생산을 무시하고, 사회의 가장 유능한 구성원들이 혁신적인 마케팅 프로모션 기법을 기밸하면서 인생을 보내는 것을 엄하게 막는 나라들이 너무 버거워 감당하기 힘든 문제에 늘 직면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는 점ㅇ서 의미 있는 곳이다. 그런 나라들은 가난하다. 너무 가난해서 정치적 안정을 보장할 수도 없고, 가장 취약한 상태에 있는 국민을 돌보지도 못한다. 그 결과 이런 나라의 국민은 기근이나 전염병에 목숨을 빼앗긴다. 고상한 나라들은 국민이 굶주리게 놔두는 반면, 자기중심적이고 유치한 나라들은 도넛과 6천 가지 종류의 아이스크림 덕분에 산과 병동과 두개골 스캐닝 기계에 투자할 자원을 갖추고 있다.
암스테르담은 건포도와 꽃의 판매를 기반으로 건설도이ㅓㅆ다. 베네치아의 궁들은 양탄자와 향료 교역에서 생긴 이윤으로 지었다. 설탕은 브리스틀을 건설했다. 상업적인 사회는 종종 비도덕적인 정책을 펼치고, 이상을 무시하고, 이기적인 자유주의에 빠져들지만, 그럼에도 물건이 많은 상점과 돈이 그득한 금고를 갖추어 신전이나 고아원을 건설할 자금을 댈 수 있다.

직업 상담 :
인문적 기술을 이미자신의 찬가를 부를 만큼 불렀으니, 이제 기계적 기술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는데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기계적 기술은 편견 때문에 너무 오래 격하되어왔는데, 인문적 기술은 기계적 기술을 그런 상태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

항공산업 :
할 일이 있을 때는 죽음을 생각하기가 어렵다. 금기라기보다는 그냥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긴다. 일은 그 본성상 그 자신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진지하게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면서 다른 데로는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한다. 일은 우리의 원근감을 파괴해버리는데, 우리는 오히려 바로 그 점 때문에 일에 감사한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1. 7. 06:26

<책도둑 1,2> - 마커스 주삭

책도둑. 1

이 책은 슬픈 책입니다.
너무나 슬퍼서 잠깐 읽는 사람의 모든 것을 멈추게 만들어 버릴 만큼요.
<전쟁> 그 낯설고 아득한 세계에 대한 이야기..
그러나 너무나 천진하고 아름다워서 설핏 나도 모르게 전쟁을 꿈꾸게 만들기도 하고, 그러다 몸서리를 치며 악몽 속에서 깨어나 누가 들을까봐 목소리를 죽여 가며 울게 만드는 내용입니다.
절대로 내 울음을 누가 훔쳐보게 해서는 안 되는...

여기, 이야기를 시작하는 사람, 아니 뭔가가 있습니다.

바로 죽음의 신입니다.
전쟁으로 인해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는 '나'는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색깔의 변화를 냄새로 음미하면서 가끔 세상에 대한 한 눈 팔기를 통해 작업의 고단함을 잠시 잊기도 합니다. 어느 날 기차 안에서 한 소년의 영혼을 품에 안다 9살짜리 소녀(소년의 누나)를 만나게 되죠.
그 소녀가 바로 우리의 책도둑... 그녀입니다.

주인공 소녀의 이름은 리젤. 남동생을 하얗게 얼어붙은 땅에 묻은 리젤은 친어머니와도 헤어지고 양부모 밑에서 새롭게 생활합니다.(동생의 차가운 무덤 속에서 그녀는 책도둑의 첫 번째 책을 갖습니다)
극악스럽고 항상 욕을 달고 사는 양어머니 로자 후버만과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칠쟁이 양아버지 한스 후버만, 그리고 마라토너 제시 오언스를 너무나 찬양하는 나머지 얼굴에 숯칠을 하고 온동네를 뛰어 다니던 유일한 친구 루니 슈타이너, 그리고 그들의 지하실에 잠시 숨겨 두었던 유태인 막스 판덴부르크..
그리고 그녀에게 책을 훔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준 시장 부인까지...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생생하며 그리고 정말 삶을 위하여 한 순간도 최선을 다하지 않은 순간이 없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정직하게 아름다우며, 아름답게 즐거워하며, 즐거워하면서 서로 은밀히 소통을 나누는 너무나 평범하고 소박한 정말이지 딱 우리네 같은 사람들입니다.

굶주림..

우리는 이 책에서 또 다른 이유의 굶주림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소녀가 책을 훔치는 이유였던(그런데 솔직히 훔친다는 인상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굶주림. 너무나 간절한 책을 읽고 싶다는  굶주림...
소녀는 전쟁 중에도 책과 과자가 놓여있는 탁자에서 아무 망설임 없이 오로지 책만을 집어 들고 나옵니다.
리젤이 읽은 책 속의 활자는 고스란히 말이 되고 그리고 모든 것들을 향한 소통이 되죠.
소녀는 책을 얻기도 하고 그리고 한 사람씩 사랑하는 사람을 잃기도 합니다.
그건 책과 사람의 교환도 아니고 죽음의 신에 의한 거래나 잘못에 대한 댓가도 아닙니다.
그건 단지 전쟁이라는 상황... 그것 때문이었죠.
죽음의 신도 개입하지 못하는 전쟁의 상황.
오히려 죽음의 신은 이 상황이 신물이 납니다. 그래서 시작된 한 눈 팔기의 상대가 리젤이 됐고 우리는 분명 죽음의 신이 화자인 책에서 리젤의 시선으로 세상을 만나게 됩니다.
마치 리젤의 일기를 들여다 보고 있다는 느낌...
결코 일기 형식으로 쓰여진 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책에서 일기를 읽고 있다는 은밀함과 비밀스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글 중간 중간 나오는 그림도 그리고 막스가 지은 책(리젤의 생일 선물도 건네진)에서도 모두 일기를 보고 있다는 착각을 갖게 하죠.
실제로 이 책은 안네의 일기와 비슷한 평가를 받고도 있습니다.
숨겨준 자와, 숨겨진 자의 차이라고 할까요.

작가 마커스 주삭은 나치 독일을 체험한 부모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모티브(끌려가는 유대인의 행렬에 몰래 빵을 주는 장면)로 삼아 이 소설을 썼다고 합니다.
1868년생 작가가, 소위 새파랗게 젊은 놈이 자신이 겪어 보지도 않는 전쟁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 낼 수 있다니...
책의 내용보다 이 작가가 더 무섭다는 생각까지 들게 했습니다.
어쩌면 그는 천재일지도 모른다는 부러운 생각까지 어쩔 수 없이 들게 만들었습니다.
이 책은 살아남음에 대한 소설이 아닙니다.
그러나 살아남음에 대해서, 그래서 살아가야 함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이지 저 또한,
어딘가에서 책도둑으로 다시 살아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음을 고백하게 되네요...

보너스 팁...

역시나 이 소설도 지금 미국에서 영화로 제작되고 있다고 하네요.
그리고 이 책을 번역한 번역가 정영목님에 대해서도 한 마디..
현재 가장 활발한 활동하는 영미문학 번역가로 <눈먼 자들의 도시>(정영목의 첫 번재 번역작입니다), <눈뜬 자들의 도시>, 그리고 알랭 드 보통의 거의 모든 작품들이 이 번역가의 손을 통해 우리나라에 소개됐죠.
개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3인의 번역가 중 한 명입니다.(정영목, 이난아, 양억관)
일부러라도 이 분이 번역한 책들은 놓치지 않고 찾아보는 편입니다.
거의 원작의 느낌을 그대로 전달해 주고, 그리고 문학적인 표현이나 유머러스한 표현까지도 놓치지 않고 그대로 문장 속에 스며들게 하는 번역가죠.
그래서 이 분이 번역한 책은 일단 기본 그 이상은 된다고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혹 관심이 있는 분들은 도서관에 있는 알랭 드 보통의 책들을 읽어 보시면 이 번역가의 또 다른 장점과 매력을 느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참고로 멋진 프랑스 작가 알랭 드 보통의 책들도 찾아 읽어 보시라 권해드리면서,
이상 달동네 책거리였습니다. ^^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