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0. 9. 15. 05:49

양화진 문화원 목요강좌가 다시 시작됐다.
지난주 목요일 가야금 연주자 황병기 선생님의 강의가 있어서 오랫만에 양화진을 다녀왔다.
<침향무>, <비단길> , <미궁>, <춘설>, <달아 노피곰>
"황병기의 음악은 모순을 명상하는 것이다"
"하이스피드 시대의 정신적인 해독제다"
그의 음악에 대해서 사람들은 말한다.
나 역시도 그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저절로 가만히 있게 된다.
그리고 그건 책을 읽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만드는
완벽한 고요함이자 경건함이다.
바짝 다가와있는 내면과의 조우...
때로는 현실처럼 섬득하고 때로는 꿈결같이 황홀하다.



황병기 선생님은 1936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다.
사회자 김종찬님이 청중들에게 정통적인 서울 사투리를 듣게 될 것이라고 말했는데
뭐랄까, 말씀하시는 게 꼿꼿하고 단정하셨다.
(그런데 지금 서울 사람들이 서울 사투리를 알까?)
가야금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황병기 선생님은 음악이 아닌 법학을 전공하셨다.
서울대 법대 2학년 때 KBS 주최 전국 국악 공쿠르에서 1등을 하면서 음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단다.
사실 본인은 가야금을 업으로 삼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극장지배인, 화학공장 관리인, 영화사 사장 등 여러 직업을 거쳤고
38살에 음악을 직업으로 삼을 것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때까지 가야금을 놓치 않았고 대학에서 계속 가야금을 가르쳤다고 한다)
본인은 15살에 가야금을 처음 알게 됐는데
모든 악기 연주는 정신적인 수양이나 연주가 아니라 육체적인 연주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매일 단련해야만 한다고...



선생님은 한국음악을 두고 음 하나하나가 마치 붓글씨를 쓰는 것 같다는 표현을 하셨는데
강연을 듣는 모든 사람들이 그 의미를 충분히 이해했다.
청구영언에 나온 시조 한 소절을 불러주셨는데
정말 딱 그 느낌이었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한국의 소리는 실한 소리, 영근 소리, 공력이 담긴 소리라고 한다.
그래서 공든 힘이 담겨있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그런 소리를 우리는 얼마나 이해하고 느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씁쓸할 뿐이다.
어쩌다 우리는 클래식보다 국악에서 더 멀어지게 됐을까?
소위 가방끈이 길다고 하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우리 음악을 더 안 듣는다는 선생님의 지적은
스스로도 면목없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가방끈도 길지 않으면서 나는 왜 국악을 모르는가...)



한국음악이 지향하는 것은 생명체로서의 인간의 희열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말씀도 하셨다.
우리 음악이 어렵다고 생각하고 점점 듣지 않게 되고 멀어지게 되는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마음을 여는 게 중요하단다.
음악을 듣는 것도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편견을 없애는 것이 그 시작이라고...
더불어 예술을 향유하는데까지 애국심을 발휘할 필요는 없다는 충고도 남기셨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솔직히 우리나라 음악 교육은 전혀 애국심 운운할 꺼리조차 없긴 하다.
멀리도 아니고 내가 중고등학교다닐 때만 생각해도
음악시간에 국악을 배웠던 기억은 고작 서너번에 불과했던 것 같다.
어릴때부터 배우고 접해야 들을 줄도 안다는데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교육은 우리 음악과 오히려 멀어지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달라졌으리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황병기의 "비단길">

황병기 선생님은 지금 74세다.
강연이 끝난 후 누군가가 질문을 했다.
만약에 음악을 업으로 삼기로 결정한 38세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하시겠느냐고...
선생님의 대답이 참 멋지셨다.
"늙어 가는 재미가 활홀하다"
그러고 싶다.
나중에 나 역시도 고희가 훨씬 지났을 때
스스로에게 늙어가는 재미가 황홀하다 말할 수 있기를...
그렇다면
일가를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
황병기 선생님의 말씀은
그분의 해왔던 가야금 연주만큼이나 청연했고 고요했고
그리고 평온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10. 3. 4. 05:53
 <달의 바다> - 정한아


 

2008년에 대한민국 최초 우주인 이소연씨가 소유즈 우주선을 타고 모두가 꿈꾸던 지구 저 너머를 다녀왔던 일을 기억하시죠? 성공적으로 우주 정거장에 도킹도 하고...

그동안 파란만장한 나름의 사연도 많았고...

그때 100% 우리 기술을 가지고 우주로 떠난 게 아니라 말들도 참 많았고 그리고 고산씨의 탈락 때문에 좀 씁쓸한 분위기까지 있긴 했지만 어쨌든 기념할 만한 일이긴 했었습니다.

(그런데 고산씨는 정말 현대판 문익점의 역할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걸까요? 그렇다면 일생에 한번 밖에 없는 절호의 기회를 애국심의 일환으로 정말 그렇게 놓쳐버릴 수 있었던 걸까요??? 시간이 이렇게 많이 흘렀는데도 저는 아직까지 정말 궁금합니다.)

우주선이 발사되는 걸 보면서 문득 <달의 바다>가 생각났더랬죠.
뭐 내용적인 면에서 그랬던 건 아니고 오로지 달이라는 우주적인 존재 때문이긴 했지만...


<달의 바다>는 1982년 출생한 작가 정한아의 첫 번째 장편입니다.

25세라는 어린 나이에 제 12회 문학동네 작가상을 수상한 정말 파릇하게 반짝거리는 작가라고 소개하고 싶네요.

젊은 여성작가의 요즘 트랜드는 적당히 가벼운 유머와 더 가벼운 성의 조합, 그리고 아직 미성숙한 찌찔이들의 독립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기대고픈 구차함을 뛰어넘는 강렬한 소망, 모든 것에 무심한 듯 대범함을 가장한 완전한 정체성 포기... 뭐 대략 이렇거든요.

처음 이 책을 봤을 땐 그런 종류의 소설이겠거니 생각했습니다.(선입견을 버려야하는데...)

또 여지없이 뒷통수를 강타당했다는.....(당시에는 맞아도 싸지!!...싶었습니다.)


이 책은 5년째 언론사 입사시험에 떨어진 '나'의 이야기와 우주비행사 고모가 보내온 편지가 현실-환상(편지)의 구도로 서로 교차되는 형식입니다.

계속해서 떨어지는 입사시험으로 인해 길어지는 백수생활을 하고 있는 27세 “나(은미)”는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막막함에 머리카락마저 한 움큼씩 빠지는 신세죠.  급기야 유쾌한(?) 자살까지도 대책 없이 꿈꾸게까지 됩니다.

이런 그녀는 오년 전 소식이 끊긴 고모가 미항공우주국(NASA)의 우주비행사가 되어 있다는 소식을 은밀하게 할머니에게 전달받고 그 고모를 만나러 가게 되죠.  

다른 식구들 몰래 할머니에게 보내온 고모의 편지에는 생경하기만 한 우주의 풍경과 우주비행사로서의 일상생활이 정말 실감나게 그려져 있습니다.(저 몰랐던 사실을 이 책에서 꽤나 많이 알게 됐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작가의 역량에 박수 세 번~~ 짝짝짝!!!)

은미는 단짝친구 민이(성적 소수자로 남자랍니다...)와 편지에 있는 주소만을 그야말로 달랑 들고 플로리다행 비행기에 오릅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만난 고모는 NASA 직원이 아닌 우주 테마파크에서 샌드위치를 파는 스낵바의 주인일 뿐입니다. 그것도 폐에 낭종이 생겨 호흡이 곤란한 지경에 처해 있는...(생명의 위협까지도 받고 있는 상태인데도 고모는 너무나 생기발랄합니다.)


고모는 왜 ‘거짓말’을 했을까요?

고모가 어렸을 때 함께 텔레비전을 보던 할머니는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하는 모습을 보고 탄성을 지릅니다.

"나는 오래 전부터 어쩐지 달에 마음이 끌렸어"라고 말하는 할머니를 보며 어린 고모는 말하죠.
"엄마, 그럼 나중에 우린 달에 가서 살아요"

할머니는 대답합니다
"그래, 꼭 그러자"

달에 살고 싶다는 꿈을 품고 있던 할머니는 우주비행사인 딸이 보낸 편지를 읽으며 그 딸이 자신의 꿈을 대신 실현하고 있는 것만 같아 가슴이 벅차기까지 했을 겁니다.

고모의 편지는 그러니까 할머니를 위한 아름다운 거짓일 수 있는거죠.
그러나 동시에 그 편지 속 고모의 현실은 무엇보다도 사실적이고 치열하기에 완벽한 진실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할머니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서 고모는 말합니다.

“언제든지 명령이 떨어지면 저는 이곳에서 완전히 정착할 준비를 시작해야 해요. 그 때가 되면 더 이상 편지는 쓰지 못할 거예요. 다이아몬드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달의 바닷가에 제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밤하늘의 저 먼 데를 쳐다보면 아름답고 둥근 행성 한구석에서 엄마의 딸이 반짝, 하고 빛나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그때부터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는 거죠. 진짜 이야기는 긍정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언제나 엄마가 말씀해주셨잖아요?”

죽음을 통째로 들어 달로 옮기려는 듯한 시도처럼 보였습니다. 
이 모든 게 비록 위장된 거짓말일지라도 고모의 편지 속에는 희망이, 꿈이 그대로 살아있었네요.
묘한 울림에 가슴이 잠시 뻐근했었습니다.

통째로 들어서 제 독서노트에 옮겼던 기억이 새롭네요.


“진짜 같은 거짓말을 쓰고 싶었다”

정한아라는 젊은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이고 쓰고 싶었던 글이라고 하네요.

이쯤 되는 거짓말이라면...

저는 골백번이라도 당신 말은 사실은 "진실"이었노라고 기꺼이 말해줄 수 있을것 같습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