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3. 7. 17. 08:18

신간이 출판될때마다 꼭 챙겨서 읽는 편이지만

솔직히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매니아는 아니다.

어쩌다보니 우리나라에 출판된 그의 책을 다 읽기는 했지만

그건 어쩌면 일종의 습관같은 거일수도 있다.

그의 책을 읽고 있으면

하얀 양떼 가죽을 뒤집어 쓰고 우물 속에 쪼그리고 앉아

적당한 간격으로 맥주를 들이키면서 서서히 몽롱한 상태로 빠지는 느낌이랄까?

거기에 한 가지를 취가하자면 장어덮밥 정도가 있을지도 모르겠고...

(그런데 맥주도, 장어도 내 취향은 아니라서...)

이런 이야기 주변에 책 좀 읽는 사람들에게 하면 막 웃는다.

어쩜 그렇게 딱 무라카미 하루키라고!

게다가 이 책은 시작도 하기 전에 두 가지가 무시무시했다.

일단 엄청나게 긴 제목이 무시무시했고

어떻게든 이 책의 판권을 차지하기 위한 출판사의 사투도 무시무시했다.

게다가 출판 하루 만에 전국의 서점가를 완저히 휩쓸어버린 것도 것도 무시무시했다.

이건 정말이지 근래에 보기 드문 쓰나미였다.

아! 그런데 민음사 너무 급했나보다.

오타가 너무 많다. ㅠ.ㅠ

적어도 다섯 개 정도 발견한 것 같다.

(양억관의 번역은 확실히 좋았고!)

 

 

레드, 블루, 화이트, 블랙 색채 가득한 네 명의 고교 동창생과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

나고야를 떠나 홀로 도코로 진한간 다자키는

영문도 모른 채 대학교 2학년 때

흐트러짐 없이 조화롭고 친밀한 이들 그룹으로부터 그야말로 가차없이 추방당힌다.

"스스로에게 물어봐!"

모호하고 잔인한 말과 함께!

16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36살이 된 다자키는 타의에 의한 자의(?)로 이들 한 명씩 찾아가 당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들에게서 듣게 된 이야기는 이렇다.

그가 추방된 건 시로를 강간해서라고.

시로가 그 상황을 너무도 상세하게 고백해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게다가 그에게 어이없는 누명(?)을 씌운 시로는 몇 년 전에 교살된 채로 삼일만에 발견됐단다.

급기야 일본을 떠나 필란드에 살고 있는 예리까지 찾아간다.

그런데 그녀는 처음부터 시로의 말을 믿지 않았었다고 말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추방시킨 이유는

"내가 유즈를 지켜야만 했기 때문이야.

 그 애가 정신적으로 그만큼 심각한 문제를 끌어안고 있었어.

 그만큼 절박한 지점까지 가 버렸어."

순간, 감이 왔다.

이들 모두가 사실은 공통체의 와해를 간절히 바랬다는 걸.

일종의 희생자가 필요했던 걱다.

...... 고등학교 시절, 다섯 명은 빈틈 하나 없이 거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그들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했다. 구성원 모두가 거기에서 깊은 행복을 맛보았다. 그러나 그런 최고의 행복이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다. 낙원은 언젠가는 사라지는 것이다. 사람은 제각기 다른 속도로 성장해 가고, 나아가는 방향도 다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피할 수 없는 위화감이 생겨났을 것이다. 미묘한 균열도 나타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윽고 미묘한이란 말로는 처리할 수 없는 뭔가가 되었을 것임에 분명하다.

시로의 정신은 아마도 그런 다가올 미래의 압박을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시로는 아마도 그런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끊임없이 감정 조절을 요구하는 긴밀한 인간관계를 더는 버텨 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녀는 그 정도로 강인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시로는 쓰쿠루를 배신자로 만들어 버렸다. 다자키 쓰쿠루라면 그런 입장에 처한다 해도 나름대로 잘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직관이 시로에게 있었을 것이다 ......

이 부분을 읽어 나가면서,

나는 이 책을 좋아하기로 작정했다.

완벽하고 절실하게 공감했기 때문이다.

이건 좀 위험한 발언이긴한데,

나란 인간은 가족이라는 공통체에서도 자발적으로 탈락하고픈 욕망이 강하기 때문에!

다자키와 나와의 차이점은,

존재를 부정당한 사람과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의 차이, 거기에 있다.

 

이쯤되면 이제 말해도 되겠다.

지금껏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중에서 가장 좋았노라고...

책의 앞, 혹은 뒤에 작가의 변이나 작품 해설, 번역가의 소감 따위 없이

아주 냉정하고 깔끔하게 책장을 덮게 만든 것도 완벽하다.

그런데 한 가지는 영 아쉽다.

그레이 하이다의 존재가 정말 어이없이 실종돼 버렸다는 거.

실종된 채로 끝났다는 거.

그러다보니 죽음의 승계를 받았다는 의문의 피아니스트 이야기조차 신비감이 희미해져버렸다.

(그레이라는 색깔이 품고 있는 희미함에서 비롯된, 완벽히 의도된 실종이었을까???)

 

읽을수록 알겠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인 그가

굳이 어른아이의 성장소설을 쓴 의도를!

......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은 조화만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다.오히려 상처와 상처로 깊이 연결된 것이다. 아픔과 아픔으로 나약함과 나약함으로 이어진다. 비통한 절규를 내포하지 않은 고요는 없으며 땅 위에 피 흘리지 않는 용서는 없고, 가슴 아픈 상실을 통과하지 않는 수용은 없다. 그것이 진정한 조화의 근저에 있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이번엔 내게 강력한 펀치를, 그것도 아주 제대로 날렸다.

젠장!

온 몸이 얼얼하다.

 

인생은 길고 때로는 가혹하다.

희생자가 필요할 경우도 있다.

누군가가 그 역할을 해야만 한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1. 7. 06:26

<책도둑 1,2> - 마커스 주삭

책도둑. 1

이 책은 슬픈 책입니다.
너무나 슬퍼서 잠깐 읽는 사람의 모든 것을 멈추게 만들어 버릴 만큼요.
<전쟁> 그 낯설고 아득한 세계에 대한 이야기..
그러나 너무나 천진하고 아름다워서 설핏 나도 모르게 전쟁을 꿈꾸게 만들기도 하고, 그러다 몸서리를 치며 악몽 속에서 깨어나 누가 들을까봐 목소리를 죽여 가며 울게 만드는 내용입니다.
절대로 내 울음을 누가 훔쳐보게 해서는 안 되는...

여기, 이야기를 시작하는 사람, 아니 뭔가가 있습니다.

바로 죽음의 신입니다.
전쟁으로 인해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는 '나'는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색깔의 변화를 냄새로 음미하면서 가끔 세상에 대한 한 눈 팔기를 통해 작업의 고단함을 잠시 잊기도 합니다. 어느 날 기차 안에서 한 소년의 영혼을 품에 안다 9살짜리 소녀(소년의 누나)를 만나게 되죠.
그 소녀가 바로 우리의 책도둑... 그녀입니다.

주인공 소녀의 이름은 리젤. 남동생을 하얗게 얼어붙은 땅에 묻은 리젤은 친어머니와도 헤어지고 양부모 밑에서 새롭게 생활합니다.(동생의 차가운 무덤 속에서 그녀는 책도둑의 첫 번째 책을 갖습니다)
극악스럽고 항상 욕을 달고 사는 양어머니 로자 후버만과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칠쟁이 양아버지 한스 후버만, 그리고 마라토너 제시 오언스를 너무나 찬양하는 나머지 얼굴에 숯칠을 하고 온동네를 뛰어 다니던 유일한 친구 루니 슈타이너, 그리고 그들의 지하실에 잠시 숨겨 두었던 유태인 막스 판덴부르크..
그리고 그녀에게 책을 훔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준 시장 부인까지...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생생하며 그리고 정말 삶을 위하여 한 순간도 최선을 다하지 않은 순간이 없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정직하게 아름다우며, 아름답게 즐거워하며, 즐거워하면서 서로 은밀히 소통을 나누는 너무나 평범하고 소박한 정말이지 딱 우리네 같은 사람들입니다.

굶주림..

우리는 이 책에서 또 다른 이유의 굶주림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소녀가 책을 훔치는 이유였던(그런데 솔직히 훔친다는 인상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굶주림. 너무나 간절한 책을 읽고 싶다는  굶주림...
소녀는 전쟁 중에도 책과 과자가 놓여있는 탁자에서 아무 망설임 없이 오로지 책만을 집어 들고 나옵니다.
리젤이 읽은 책 속의 활자는 고스란히 말이 되고 그리고 모든 것들을 향한 소통이 되죠.
소녀는 책을 얻기도 하고 그리고 한 사람씩 사랑하는 사람을 잃기도 합니다.
그건 책과 사람의 교환도 아니고 죽음의 신에 의한 거래나 잘못에 대한 댓가도 아닙니다.
그건 단지 전쟁이라는 상황... 그것 때문이었죠.
죽음의 신도 개입하지 못하는 전쟁의 상황.
오히려 죽음의 신은 이 상황이 신물이 납니다. 그래서 시작된 한 눈 팔기의 상대가 리젤이 됐고 우리는 분명 죽음의 신이 화자인 책에서 리젤의 시선으로 세상을 만나게 됩니다.
마치 리젤의 일기를 들여다 보고 있다는 느낌...
결코 일기 형식으로 쓰여진 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책에서 일기를 읽고 있다는 은밀함과 비밀스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글 중간 중간 나오는 그림도 그리고 막스가 지은 책(리젤의 생일 선물도 건네진)에서도 모두 일기를 보고 있다는 착각을 갖게 하죠.
실제로 이 책은 안네의 일기와 비슷한 평가를 받고도 있습니다.
숨겨준 자와, 숨겨진 자의 차이라고 할까요.

작가 마커스 주삭은 나치 독일을 체험한 부모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모티브(끌려가는 유대인의 행렬에 몰래 빵을 주는 장면)로 삼아 이 소설을 썼다고 합니다.
1868년생 작가가, 소위 새파랗게 젊은 놈이 자신이 겪어 보지도 않는 전쟁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 낼 수 있다니...
책의 내용보다 이 작가가 더 무섭다는 생각까지 들게 했습니다.
어쩌면 그는 천재일지도 모른다는 부러운 생각까지 어쩔 수 없이 들게 만들었습니다.
이 책은 살아남음에 대한 소설이 아닙니다.
그러나 살아남음에 대해서, 그래서 살아가야 함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이지 저 또한,
어딘가에서 책도둑으로 다시 살아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음을 고백하게 되네요...

보너스 팁...

역시나 이 소설도 지금 미국에서 영화로 제작되고 있다고 하네요.
그리고 이 책을 번역한 번역가 정영목님에 대해서도 한 마디..
현재 가장 활발한 활동하는 영미문학 번역가로 <눈먼 자들의 도시>(정영목의 첫 번재 번역작입니다), <눈뜬 자들의 도시>, 그리고 알랭 드 보통의 거의 모든 작품들이 이 번역가의 손을 통해 우리나라에 소개됐죠.
개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3인의 번역가 중 한 명입니다.(정영목, 이난아, 양억관)
일부러라도 이 분이 번역한 책들은 놓치지 않고 찾아보는 편입니다.
거의 원작의 느낌을 그대로 전달해 주고, 그리고 문학적인 표현이나 유머러스한 표현까지도 놓치지 않고 그대로 문장 속에 스며들게 하는 번역가죠.
그래서 이 분이 번역한 책은 일단 기본 그 이상은 된다고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혹 관심이 있는 분들은 도서관에 있는 알랭 드 보통의 책들을 읽어 보시면 이 번역가의 또 다른 장점과 매력을 느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참고로 멋진 프랑스 작가 알랭 드 보통의 책들도 찾아 읽어 보시라 권해드리면서,
이상 달동네 책거리였습니다. ^^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