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3. 5. 17. 20:16

너무나 아프고, 서럽게 읽은 책이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와 함게 묶어서 우리 시대의 부모에게 헌정하고 싶은 책이다.

연거푸 2번을 읽었다.

읽을 때마다 죄스러웠고 아팠고 먹먹했다.

내 역시도 부모의 '빨대'였음을 감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 그날 아침 한 염부가 죽은채 발견되었다....

첫문장부터 나는 무책으로 무너졌다.

소금을 만드는 사람이, 자기 몸 속의 소금을 챙기지 못한채

과도한 노동으로 철저하게 무너지고 쪼그라들어

결국 입 속에 한웅큼의 소금과 함께 소금밭에서 일생을 마감한 염부1을 죽음을 보면서 나는 인정했다.

뭔가 잘못됐다는 걸.

그리고 그 잘못된 게 끝이 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걸.

신경숙은 <엄마를 부탁해>에서 말했다.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했다는 걸 몰랐다고...

그런데 박범신의 <소금>은 내게 묻는다.

세상 끝에 혼자 버려진 아비에게 너는 언제까지 빨대를 꽂을거냐고...

염부였던 아비가 소금밭에서 죽었다!

홀로 땡볕에서 소금에 반사되는 모든 빛을 온전히 홀로 받아내서면서 버티고 버티던 그 염부를 죽인 건,

소금이 아니다. 햇빛이 아니다.

그를 죽인 건 바로 나다!

박범신의 40번째 장편소설 <소금>은 내게 살인의 이유를 물어왔다.

대답할 말이... 없다.

소설의 문장처럼,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은, 아버지이기 때문에, '치사한 굴욕'과 '쓴맛의 어둠'을 줄기차게 견뎌온 것이었다.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였듯, 아버지 역시 처츰부터 아버지라고만 생각했다.

아버지의 푸르른 청춘!

그런 것 따위는 관심도, 상상도, 생각도 못했었다.

막내딸의 생일에 실종된 시우의 아비도

아들의 대학등록금을 위해 부두 하역군으로 '치사해, 치사해"를 입에 달고 살던 명우의 아비도 모두 굴욕을 견디며 살아왔다.

아비가 정말 다 그런거라면!

모든 아비가 다 그렇게 치사하게 산는 거라면!

그 아비들이... 어쩌나...

우린 어떻게 해야 하나...

 

...... 애비들이 치사하면 세상이 모두 치사해진다는 아버지의 말은 하나도 그른 데가 없었다. 치사한 아버지들과 치사함을 견뎌내는 아버지들에겐 모두 '새끼'들이 딸려 있었고, 아버지들의 소망과 달리, 그 새끼들 역시 치사하게 살아가며 "치사해, 치사해, 치사해!"를 대물림받는 중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는 꼭 둘로 나눠야 한단다.

하나는 스스로 가출을 꿈꾸는 아버지와

다른 하나는 처자식들이 가출하기를 꿈꾸는 아버지로.

농담같은 이 말이 목울대를 막는다.

핏줄이라는 이름으로 아비에게 내미는 자식의 빈 손은 차라리 폭력이고 폭압이다.

이걸 이 책은 뼈 아프게 실감케 만든다.

마치 내 가슴 우에 수인번호가 찍히는 것 같다.

꽃을 들고 괴로운 얼굴빛으로 막 가라앉아가는 아버지.

책의 표지를 보는 게 힘겨워 나는 책장을 덮지도 못하고 활자 앞에 무력하게 무너졌다.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 '핏줄'이라는 이름으로 된 빨대는 늘 면죄부를 얻었다.

사람들은 핏줄, 핏줄이라고 말하면서 '핏줄'에서 감동받도록 교육되었다. 핏줄조차 이미 단맛의 빨대들로 맺어져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사람들은 '사랑'이라고 불렀다. 사랑이 빨대로 둔갑했지만 핏줄이기 때문에 그냥 사랑인 줄만 알았다. 빨대를 들고 기웃거리는 젊은이들은 어디에서든 볼 수 있었다. 일차적인 표적은 아버지였다. 스물이 넘은 자식들조차 핏줄이므로 늙어가는 아비에게 빨대를 꽂아도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 흔한 일이 되었다. 모두 그 체제가 만든 덫이었다.

더 큰 나라가 더 작은 나라를 빨고, 더 힘센 우두머리가 힘없는 졸개들을 빠는 빨대와 깔때기의 구조야말로 자본주의적 세계 구조였다.

핏줄이라고 그것을 넘어설 수는 없었다.

......아버지들은 근엄했지만 아무 힘이 없었다.

체제에 편입돼 과실을 따 오는 대표 선수로서 그럴듯해 보이긴 했지만, 가족들이 거대한 소비 체제에 들어 있는 한 어버지에겐 그 체제를 방어할 항거 능력이 전무했다. 핏줄에게 빠리고 핏줄의, 핏줄의, 핏줄에게도 빨렸다. 핏줄이라는 강력한 이데올로기를 명분으로 삼은 저들이 자신들의 깔때기를 채우기 위해 그 구조를 전적으로 허락하고 돕기 때문이었다. 성장한 자식을 독립시키겠다고해도, 핏줄이므로 아버지만이 비난받는 이 구조는, 체제의 입장에선 양보할 수 없는 규범이었다 ......

 

세상에 가장 힘든 노동이 바로 소금밭에서 일하는 염부의 노동이란다.

그 염부의 노동으로 소금은 세상의 모든 맛을 다 갖게 된다.

단맛, 신맛, 짠맛, 쓴맛,

소금의 맛은...

단지 짠맛만이 전부는 아니었구나!

소금이 가진 세상의 이 모든 맛이

힙겹고 치사한 노동에 팔리고 자식들에게 굽을 등을 빨리는 아비의 모든 것이라는 걸.

이 소설을 읽으며 아프게 아프게 깨닫았다.

이 치사한 세상을 살아내는 걸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이 사실은 아비들였음을 나는 몰랐다.

아니 모른척 했다.

그래서 끝내 시우에게 돌아가지 않는 아비가 나는 다행스러웠다.

 

아마도 나는 이 책을 다시 또 읽게 될거다.

읽을 때마다 나는 끝없는 참회록에 얼굴을 들지 못하게 될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다시 이 책을 읽게 될거다.

날마다 고통스럽고 날마다 황홀하기 위해서.

(아마도 나는 황홀보다는 고통쪽에 더 많이 머무를 수밖에 없겠지만...)

 

차디찬 소금이 입 안에 가득하다.

이 소금은 어떻해야 하나... 나는.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1. 5. 26. 06:07
한국과 미국의 엄마를 읽다.
<엄마를 부탁해>는 이제서야 읽은 건 아니고
다시 손에 잡은 책이다.
아무래도 내가 지금 어떤 울림을 찾고 있는 중인가보다.
치치고 힘들 때 위로받을 수 있는 완벽한 장소는 역시 엄마,
그 품 속이다.


전미 그리고 영어권에서 출판돼 호평을 받고 있다는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엄마를 잃어버린지 일주일째다...
첫문장부터 사람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면서 억장을 무너뜨린 책.
이 책은 내게 살면서 계속 곱씹으며 몇 번씩 읽게 될 책 중 한 권이다.
책 속의 엄마는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나는 이 이야기가 마냥 현실처럼 느껴져
어쩐지 서울역 역사를 지날 때도 몇 번씩 두리번거리게 된다.
뼈가 드러나는 발로 파란 슬리퍼를 신고 있는 그 엄마가 꼭 어딘가에서 아직 헤메고 있을 것 같아서...
모녀관계는 서로 아주 잘 알거나 타인보다도 더 모르거나 둘 중 하나란다.
뜨끔하다.
나 역시도 그렇지 않은가 말이다.
엄마라는 말에는 친근감만이 아니라 나 좀 돌봐줘 라는 호소가 배어 있다는데
참 열심히 모른척 하며 사는 사람이 바로 딸들이다.
정말 엄마들은 이 모든 걸 어떻게 매일매일 감당하며 살았을까?
박소녀라는 할머니의 이름은 그래서 더 서럽다.
...... 너에게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였다. 너의 엄마에게도 첫걸음을 뗄 때가 있었다거나 세살 때가 있었다거나 열두살 혹은 스무살이 있었다는 것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너는 처음부터 엄마를 엄마로만 여겼다.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난 인간으로...
그 엄마가 말한다.
...... 나는 이제 갈란다 ...... 라고.
죽어서도 이 집 사람으로 있는 것은 벅차고 힘에 겹다고.
오십년도 넘게 이 집서 살았으니까 이제는 좀 놔달라고.
나는 그냥 내 집으로 가서 쉬겠다고...
그 엄마가 자신의 엄마의 무릎을 찾아 태어난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또 다시 이기적으로 "그럼 나는...." 이라고 묻는다.

...... 내가 태어난 어두운 집 마루에 엄마가 앉아 있네. 엄마가 얼굴을 들고 나를 보네...엄마가 파란 슬리퍼에 움푹 파인 내 발등을 들여다보네. 내 발들은 푹 파인 상처 속으로 뼈가 드러나 보이네. 엄마의 얼굴이 슬픔으로 일그러지네. 저 얼굴은 내가 죽은 아이를 낳았을 때 장롱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네. 내 새끼. 엄마가 양팔을 벌리네, 엄마가 방금 죽은 아이를 품에 안듯이 나의 겨드랑이에 팔을 집어넣네. 내 발에서 파란 슬리퍼를 벗기고 나의 두발을 엄마의 무릎으로 끌어올리네. 엄마는 웃지 않네. 울지도 않네.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

엄마!
엄마가 가버리면...
그럼 나는 이제 어떻해?


처음에 사람들은 아들을 보고 부러워했다.
18개월도 안 된 아이가 신문을 읽고 책의 내용을 줄줄이 말할 때
사람들은 그 아이를 천재라고 불렀다.
그러나 아이의 천재성은 그렇게 활자 속에서만 살아있다.
일반적인 신체발달도 따라오지 못하고 또래 집단 속에서 어울리지도 못하고
아들은 구석에서 언제나 조용히 책장만을 넘긴다.
아이의 세계는 오로지 책 속에, 활자 속에만 있다.
아스퍼거 증후군(Asperger syndrome)
사회적 상호작용에 어려움을 겪고
관심사와 활동에 상동증이 나타나는 자폐 스텍프럼 장애(ASD)의 일종.
다른 ASD와는 달리 일반적으로 언어능력이나 인지발달 지연을 발생하지 않지만
서투른 동작과 특이한 언어사용이 보고된단다.
책 속의 벤 역시도 초고도 비만과 배설조절 능력 상실, 화가 나면 과격한 행동을 한다.
너무나 자랑스러웠던 아이가
이제는 숨기고 싶은 괴물로 변해버린 상황.
오랜 싸움 끝에 눈물로써 엄마가 내린 결론은,
아이를 (이제는 아이라고 하기엔 이미 장년에 속하지만 엄마에게 모든 자식들은 여전히 언제나 아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였다.
내 아이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
그래서 아이를 평범하게 만들려는 숱한 시도들을
이제 엄마는 중단할 것이다.
그리고 모자(母子)는 서로 공존하고 의지하면서 평화롭게 사는 방법을 하나하나 배워갈 것이다.
아마도 확실히!

새상의 모든 엄마들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엄마는 상식적으로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온 인생이 아니란다.
엄마가 할 수 없는 일까지도 오직 엄마라는 이유때문에 다 해내며 살아온 존재가 바로 엄마다.
우리에게 엄마의 존재는 어떤 의미일까?
절대로 엄마처럼은 살지 않겠다고 여러번 다짐하는 자식들은, 아니 나는!
결코 모르는 게 아니었다.
단지 언제나 열심히 모르는척 하려고 최대한 외면했을 뿐이라는 걸.
어떤 엄마도 결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는 걸
우리는 영원히 잊어버린 척 살기로 작정했는지도 모르겠다.
잊어버렸기에
그래서 잃어버렸는지도...

세상 모든 엄마들을...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정말 어떻게 해야 하나...
정말...
Posted by Book끄-Book끄
그냥 끄적 끄적...2011. 3. 31. 15:55


미국에서 4월 5일 출간되는 신경숙의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Please Look After Mom·번역 김지영)에 대한 미 언론과 서점들의 호평이 잇따르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사전 제작한 4월 3일자 북 섹션에서 ‘엄마를 부탁해’에 대해 한 면 전체(광고 제외)로 북리뷰를 싣고, “모성(母性)의 신비에 대한 날 것 그대로의 헌사(Raw Tribute to the Mysteries of Motherhood)”라고 호평했다.

이 신문은 지하철 서울역에서 아버지의 손을 놓친 뒤 실종된 엄마를 찾아 나서는 자식들의 시선으로 그려낸 ‘엄마를 부탁해’의 줄거리를 자세하게 서술한 뒤, “신경숙 소설의 문장들은 다 큰 어른 독자들마저도 자주 움찔움찔하게 만든다”고 평했다. 그리고는 “서로를 잘 알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 사이에 얼마나 큰 틈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는 소설”이라면서 “너무 아름답고 슬퍼서 잊히지 않을 정도의 여백이 있는 신경숙의 작품은 화자를 계속 옮겨가며 놀라울 만큼 속도감 있고 강력하게 슬픔을 표현했다”고 적었다. 
 

미국판 표지 <엄마를 부탁해>


또 유명 패션지인 엘르 4월호는 “모성의 비밀스러운 희생과 몽상을 그려낸 감동적인 초상화. 한국인들의 경험에 뿌리를 둔 소설을 국제적인 성공으로 끌어올렸다”고 했고, 서평전문지 북리스트는 “날카롭고 베는듯한 문장. 강력한 감동”이라고 극찬했다. 미국의 유명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가 발행하는 O매거진은 4월호에서 ‘지금 선택해야 할 톱 10’으로 ‘엄마를 부탁해’를 꼽았고, 아마존닷컴도 ‘4월의 특별한 책’으로 이 책을 선정했다.

‘엄마를 부탁해’는 미국 유명 출판사인 크노프(Knopf)에서 초판 10만부를 찍었고, 이례적으로 공식 발매도 전에 2판에 들어가는 등 연일 화제를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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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기쁘고 황홀하다.
그리고 미국에 이어 영국에서도 곧 출판될 예정이란다.
그런데 과연 영미권 사람들이 엄마를 향한 이 절절함과 냉정함을 얼마나 알아챌 수 있을까?
첫 문장부터 숨이 탁 막혔던 소설이다.
"엄마를 잃어버린지 일주일째다"
엄마를 잃음으로써 자식을은 태어난 곳도 돌아갈 곳도 모두 잃었다.
그리고 잃은체로 살아간다.
꼭 여기저기 찢기고 뜯겨야만 난파선이 되는 건 아니다.
이 복잡하고 아리고 가슴 뜯기는 감정을 그들이 과연 온전히 이해해줄 수 있을까?
그들에게 정말 말하고 싶다.
엄마를 부탁한다고...

* 그런데 미국판 표지는 정말 못봐주겠다.
   책의 감성을 송두리째 침몰시킨다.
   이게 최선입니까? 정말 최선이예요?
   진심으로 묻고 싶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6. 11. 06:30
신경숙이 새로운 장편소설을 썼다.
<엄마를 부탁해>로 공전의 베스트셀러를 만들었던 그녀가 1년만에 다시 선보인 소설.
놀랍다. 그녀의 바지런함이...


"엄마를 잃어버린지 일주일째다"
<엄마를 부탁해>는 첫 문장부터 이미 내 숨을 턱 조여 왔었다.
차마 다음 줄을 읽지도 못하고 한참을 허망해하던 기억...
엄마를 잃음으로서 놓쳐버린 그 가족들이 원망스러웠고 그런 이야기를 쓴 신경숙이 원망스러웠었다.
엄마에게 그래서는 안 된다고...
왜 당신은 늘 비극보다 더 아픈 이야기만 만드냐고...
책 장을 한장씩 넘길 때마다 마디마디로 날카로운 얼음이 박이는 것 같이 아프고 얼얼했었다.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의 피에타 상 앞에서
나는 차마 고해성사도 하지 못했다.
내가 엄마를 놓친 것 같아서...

그런 그녀가 이제 뭘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신경숙의 일곱 번 째 소설의 시작은 이랬다.

......그가 나에게로 전화를 걸어온 것은 팔 년 만이었다.
나는 단 번에 그 목소리를 알아들었다.....



그녀는 이제 놓쳐버린 청춘을 이야기하려는가?
일곱 번째 장편을 앞에 두고 그녀는 말했다.
"여러 개의 종이 동시에 울려 퍼지는 것 같은 사랑 이야기. 청춘소설을 쓰고 싶었노라" 고...
한국어를 쓰는 작가로서 우리말로 씌어진 아름답고 품격 있는 청춘소설이 있었으면 했었노라고...
그녀가 선택한 단어가 나는 당황스럽다.
책장을 넘기면서 자꾸 그 "품격"이라는 낱말이 발목을 잡는다.
(그녀가 이런 단어를 사용하던 사람이었던가????)
"이번 소설은 멀어져가는 가까운 사람들을 보내주는 마음이 읽혔으면 좋겠고
슬픔에 빠진 사람들을 위로하려는 나의 마음이 전달되었으면 합니다"

정윤 - 단이, 이명서 - 홍미루
그리고 마치 시인 오규원을 떠올리게 하는 윤교수.
그녀의 글 속에서 이렇게 많은 인물들을 동시에 만나야 했던 적이 있던가?
놀랐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에 이름이 주어져서...
그녀의 K와, P, J에 익숙했던 나는 또 다시 당황한다.
그녀는 청춘을 현실화하고 싶었던 걸까?
남산 밑에 있던 과거의 서울예전을 떠올리는 풍경들과 거리들,
그리고 주말이면 내가 숱하게 헤매고 다니는 대학로의 골목들...
나도 늘 궁금했옸다.
다들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

...... 팔 년 전이나 지금이나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그냥 흘러가는 법 또한 없다. 팔 년 만에 전화를 걸어온 그에게 어디야? 하고 담담하게 묻는 순간, 이제 내 마음속에 그에게 하지 못한 말들이 쌓여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아 있는 격렬한 감정을 숨기느라 잘 지내고 있는 시늉을 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정말 담담하게 그에게 어디야? 하고 묻고 있었으니까. 의문과 슬픔을 품은 채 나를 무작정 걷게 하던 그 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쓰라린 마음들은. 혼자 있을 때면 창을 든 사냥꾼처럼 내 마음을 들쑤셔대던 아픔들은 어디로 스며들고 버려졌기에 나는 이렇게 견딜 만해졌을까. 이것이 인생인가. 시간이 쉬지 않고 흐른다는 게 안타까우면서도 다행스러운 것응 이 때문인가. 소용돌이치는 물살에 휘말려 헤어나올 길 없는 것 같았을 때 지금은 잊고 그 누군가 해줬던 말. 지금이 지나면 또다른 시간이 온다고 했던 그 말은 이렇게 증명되기도 하나보다. 이 순간이 지나간다는 것은 가장 큰 고난의 시절을 보내고 있는 이에게나 지금 충만한 시절을 보내고 있는 이에게나 모두 적절한 말이다. 어떤 이에게는 견딜 힘을 주고, 어떤 이에게는 겸손한 힘을 줄 테니까 ......


너무 많은 인물들이 나오고,
너무 많은 사건들이 나오고,
(실종, 분신, 거식, 죽음, 상처, 흔적, 군 의문사, 시위대.... 아, 숨차다!)
너무 많은 대화들이 오가고,
너무 많은 암시들과 시간들이 나온다.
그리고 결국 이 모든 것들은 눈군가의 "죽음"으로 실종되고,
그 실종을 누군가는 또 찾아나서고,
남겨진 사람들은 견디듯 살아간다.
그러다 때론 견딘다는 것조차 의도적이든 아니든 잊혀짐으로 성큼성큼 넘어가기도...

그랬던가?
죽음을 앞에 둔 윤교수가 남긴 손바닥 글씨처럼
모든 것엔 끝이 찾아오던가!
소설 속 청춘인 명서는 윤에게 말한다.
"어서 세월이 많이 흘러갔으면 좋겠다. 용서할 수는 없어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주 힘센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이가 들면 용서할 수 없는 게 이해가 됐던가?
그러나 내 세월은 자주 곡해를 이해라고 아득바득 우기게 만들더라...
그래서 오해할 수 있는 시간이 차라리 덜 빡빡했노라고...


모르겠다.
나는 이 "청춘"들을 이해하고 싶지 않아 지금 어깨가 뻐근하다.
아니 오히려 털어내고 싶다.
그들 청춘의 마지막 모습처럼.
한 밤 중에 산에 올라 소나무 위의 더깨처럼 쌓인 눈을 장대로 힘껏 털어내듯.
그랬었나?
나의 청춘도 섬처럼 고립되어 블멸의 풍경으로 각인되어 있었나?
것도 아니라면,
아직까지 내 청춘은 내내 현재진행형으로 고립중인가?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09. 1. 5. 23:17
 

o 왼손을 쓰면 인생에 울 일이 많이 생긴다.

o 안다고 말할 수 없게 되는 때

o 당신은 이 집을 내키는 대로 떠났다가 돌아오면서도 아내가 이 집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을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o 아내의 손길이 스치는 곳은 곧 비옥해지고 무엇이든 싹이 트고 자라고 열매를 맺었다.

o 엄마 소리 지른 거 너무 싫어하셨는데...... 모두들 엄마한테 소리지르쟎아요.

o 말이란 게 다 할 때가 있는 법인디...

   나는 평생 니 엄마한테 말을 안하거나 할 때를 놓치거나 알아주겠거니 하며 살았고나. 인자는 무슨 말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디 들을 사람이 없구나.

o 엄마를 모르겠어. 엄마를 잃어버렸다는 것 밖에는...

o  너에게 사과하러 왔는데.... 나는 이제 갈란다.

o 나는 당신이 좋았고. 행복할 때보다 불안할 때 당신을 찾아갈 수 있어서 나는 내 인생을 건너올 수 있었다
   는 그 말을 하려고 왔소.

o 나는 알고 있었재. 내가 어느 날인가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있어요, 난 이제 이 집
   에서 나갈라요.

o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

o 엄마는 엄마가 할 수 없는 일까지도 다 해내며 살았던 것 같아. 그러느라 엄마는 텅텅 비어갔던 거야. 나는
   엄마처럼 못 사는데 엄마라고 그렇게 살고 싶었을까?

o 인생에 단 한 번도 좋은 상황에 놓인 적이 없던 엄마, 너에게 언제나 최상의 것을 주려고 그리 노력했던 엄
   마...


Posted by Book끄-Book끄
그냥 끄적 끄적...2008. 12. 21. 21:35


내겐 그렇다.
책들이 가득한 곳이 바로 판타지아.
나의 영원한 이상향.



눈 오는 오후
영풍 문고 다녀오다.
책 앞의 사람들...
뒷 모습까지도 정겹다.



소설 부문 베스트 셀러 목록을 보다.
와~~~
주제 사라마구의 책이 2위를 할 수도 있구나..
영화의 영향력이라고 해도.
다행스럽고 즐겁다.


시 부문 베스트 셀러도 살짝 살펴보고...


비소설 부문은 역시...
미국 역사를 새롭게 쓸 버락 오바마의 책이 올라와 있다.
그와 관련된 책이 서가에 그야말로 쫙~~~ 깔려 있다.
(사실 나 역시도 그가 참 궁금하다)


국내 베스트 셀러 작가들의
짧은 말들...
다른 곳에서 만났으면
어색했을텐데.... ^^


가끔 궁금하다.
김 훈님은 <밥벌이의 지겨움>을 정말 느꼈을까? ^^


이제 고인이 되어
더 이상, 어떠한 글도
발표하지 못 할 이청준 님의 말까지...


신경숙...
지금 참 행복하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에게서 엄마를 불러냈으니까....


출입구 쪽에선
신경숙의 책과 관련해서
이벤트를 벌이고 있었다.
트리를 장식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엽서들..


엄마에게 보내는 엽서...



그냥 맘이 촉촉해졌다.
서점 안이 엄마 품 같은 느낌...
편안하고 따뜻한 온기.


요즘 한창 빠져있는
내 환상의 일등 공신
르 클레지오의 책들...
순간 욕심쟁이가 되고도 싶었는데... ^^


폴 오스터..
당신 여기서 만나니 정말 반가워요~~~


한국 문단의 국민 어머니 박완서님....
당신이 잉태한 자식들이 여기 가득하네요.
당신 속으로 난 자식들은,
어쩐지 따뜻하고 다정해...
한 번씩 쓰다듬게 된다는 거 아세요?



기욤 뮈소...
한국에 꼭 와보고 싶어지겠어요.
이렇게 당신 책이 사랑받고 있으니...
어쩐지 셈이 나네요.



순간 철렁한 느낌.
<아름다운 마무리>라...
솔직히 고백하면 아직은 못 할 것 같다.
법정 스님의 맘 속 처럼 그렇게 청명하고 고요할 자신...
아직은 없으니까...


이쁜 카드들도
축복을 써 줄 누군가을 기다리고 있고.


2009년 열심히 준비하고 계획하라고
다이어리들이 말을 건다.
글쎄...
정말 그래야만 하겠지!!!


거대한 환상의 보고을 뒤로 하고..
그 환상의 조각 3개를 품고 돌아오다.
벌써부터 맘이 설래는 건...
책들이 일제히 말을 거는 듯.
음....
지금부터는 오직 선택의 시간.
This is the moment~~~~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8. 12. 21. 10:55

  <엄마를 부탁해> -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그녀가 낸 작품들은 모조리 읽었습니다.

하다못해 산문집까지도...

제게 있어 신경숙은 질투의 대상이이기도 했고,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고, 그리고 실망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그녀만의 독특한 감성과 글쓰기에 얼추 젖어버렸다고 할까요?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의 제 느낌들이 작가로서의 그녀에 대한 종착역은 결단코 아닐 거라는 사실입니다.


이 사람...

평범한 일상을 너무 아프게 써 어느 날은 혼자 화가 났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면은... 나를 들여다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뜨끔한 자괴함과 부끄러운 속내를 들킴에 대한 막무가내의 억지였던 건 같네요.

“풍금이 있던 자리”

가령 그녀의 글쓰기는 그렇습니다.

풍금이 있는 자리가 아니라 풍금이 있던 자리인 거죠.

화자가 바로 <나>여야 하는 이야기를 그녀는 <당신>으로 바꿔놓습니다.

그녀의 모태 신앙 같은 도시 정읍, 그리고 차마 분명한 이름조차 갖지 못한 체 등장하는 이니셜의 인물들...

게다가 대화조차도 문장부호 없이 그대로 써버리는 당혹감...

<리진>이라는 소설을 통해서 잠깐 다른 방식의 글쓰기를 시도했던 그녀가 다시 초기작으로 돌아왔네요.

지극히 “신경숙다운” 소설과 함께요...


철들기 시작한 딸들 중 “엄마”라는 이름에 가슴 아프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이 책은 모태로부터 시작된 자식들의 원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총 5장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엄마를 잃어버린지 일주일째다”.....

지독한 두통과 점점 잃어가는 기억들, 수시로 찾아오는 통증을 숨기고 노부부는 자식이 있는 서울로 올라옵니다.

예전의 우리네 아버지들의 발걸음.

아내와 같은 속도로 함께 나란히 걸어가는 게 마치 무슨 대단한 흉이라는 되는 냥 성큼성큼 앞서 갑니다.

자식들의 마중을 마다하고 지하철을 탄 남편의 등골이 순간 오싹합니다.

글조차 읽지 못하는 그 아내가 열차를 타지 못했던 거죠.

성급히 남편은 남영역에서 되집어 전철을 타고 서울역으로 향합니다.

그러나 아내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렇게 4명의 다 큰 자식들은 속수무책으로 어미를 잃습니다.

 

각각의 장은 큰딸, 맏아들,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다시 큰딸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큰딸의 이야기는 “너(2인칭)”의 시점으로, 맏아들의 이야기는 “그(3인칭)”의 시점으로, 아버지의 이야기는 “당신(2인칭)”의 시점으로, 그리고 어머니의 이야기는 “나(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엄마를 찾는 전단지를 만들기 위해 모인 가족들은 서로에게 긁힌 상처를 드러내며 새로운 상처를 만듭니다.

그들에게 던져진 화두 두 가지!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나?”

“엄마가 홀로 남겨지고 있을 때 나는 무엇을 했는가?”

이제 그들은 전단지를 보고 연락한 내용을 따라 엄마를 찾아 헤맵니다.

그들이 찾아간 곳은 예전에 그들의 첫 직장이 있었던 곳이고, 본인 명의의 첫 집을 장만했던 곳 등, 모두 그네들의 흔적이 스친 곳이기도 합니다.

엄마는 정말 그 곳을 다녀갔던 걸까요?

파란 슬리퍼에 뼈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상한 발을 끌고...


우리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엄마에겐 사연이 없다고... 엄만 그냥 처음부터 엄마일 뿐이라고...

어쩌면 이해할 마음조차도 미처 갖지 못할 만큼 자식으로서의 이기심이 너무 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엄마에게도 돌아가 편히 쉬고 싶은 집이 있었을 테고, 그리고 그 엄마에게도 무릎을 베고 누우면 다독여 줄 엄마가 일평생 필요했을 거라는 걸, 우리는 정말 알고 있었을까요???

그런 엄마가 어느 날, 우리들에게 말합니다.

“나는 이제 갈란다... 잘 있으시오”


엄마를 잃어버린 지, 9개월째...

작가인 큰딸은 이탈리아 성 베드로 성당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녀는 그 곳에서 여동생의 편지를 떠올리며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 앞에 섭니다.

“....... 엄마는 엄마가 할 수 없는 일까지도 다 해내며 살았던 것 같아. 그러느라 엄마는 텅텅 비어갔던 거야. 나는 엄마처럼 못 사는데 엄마라고 그렇게 살고 싶었을까?......”
감히 누가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까요?

“엄마니까....엄마란 다 그런 존재니까....”

저는 죽어도 이렇게 말 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소리조차 죽이며 흐느꼈던 내 어미의 아픈 통곡과 내 손을 붙잡고 놓지 않던 내 어미의 거친 손이 지금 저를 여기에 있게 했으니까요...

결국,

이 책은 또 제 이야기이기도 한 셈이네요.


피에타 상...

죽은 예수를 품에 안고 고통과 절망의 순간을 이겨내고 있는 성모 마리아.

어미의 무릎, 제 2의 모태 속에서 아들은 드디어 평온을 맞이합니다.

어미의 손길이 스치기만 하면 이제 모든 고통과 절망은 사라져 흔적도 없어질 테죠.

비로소 모든 잃은 생명 또한 비옥해져 싹이 틀 것이며 자라나 열매를 맺게 될 겁니다.

내 어머니...

어미의 생명은 그렇게 나에게로 옮겨옵니다.....

아무래도 저는 이제 제 자신에게도 말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엄마를 부탁해...” 라고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