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 책거리2010. 4. 22. 08:19

<그건, 사랑이었네> - 한비야 

그건 사랑이었네

저는 개인적으로 목소리 크고 수다스러운 사람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왠지 시비를 걸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말이죠.
그런 저의 기준으로 따진다면 일단 "한비야"는 좋은 점수를 받기가 아무래도 어려운 사람이죠.
참 많이 일을 만들어서, 참 많이 지치지도 않고, 참 많이 치열하게, 참 열심히 하면서 사는 사람, 한비야!
얼마 전에는 가을에 함께 커피를 마시고 싶은 지식인 2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1위는 안철수, 3위는 공지영이었죠)
“바람의 딸”로 지구를 걸어서 세 바퀴 반이나 돌아야 했고, 돌아와서는 다시 우리나라도  돌아줘야 했고, 그 뒤엔 불혹의 나이로 주위의 반대를 뿌리치고 중국으로 날아가 어학공부도 해야 했고, 그런 과정들을 또 몇 권의 책으로 열심히 써내야 했고...  다행히(?) 그 책들이 나란히 베스트셀러에 올라서 어느 정도 수확도 있었겠지만 말이죠.
참 복 많은 사람이라고 무작정 생각하기도 했었죠.
그녀의 책들을 차례차례 읽으면서도 솔직히 별다른 감흥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하기도 했었죠.
“한비야와 나는 참 궁합이 안 맞는 상대구나” 라고...
이제와 10년 넘게 안 맞았던 궁합이 돌연 한 권의 책으로 찰떡궁합이 된 건 아니지만 분명 그녀에게 받은 메시지가 있음을 부정할 순 없습니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던가요!
“무릎팍 도사”에 나와 강호동 앞에서 “조조조조~~~”을 외치던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자주 “울울울울~~~”에 빠져 있던 저는 웃을 수밖에 없었죠.
우리 둘이 만나면 완벽한 “조울증”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예전에 읽었던 그녀의 책 <중국견문론>에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길을 모르면 물어보면 될 것이고, 길을 잃으면 다시 돌아가 처음부터 시작하면 될 것이다“라고...
그러니까 일단은 떠나보라는 말이었죠.
떠나라는 이야기만 들어도 온 몸이 저릿저릿했던 저는 그녀를 향한 노골적인 부러움과 시기심만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둘의 궁합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을 거란 생각도 이제와 하게 되네요.
<여행서>로만 익숙했던 한비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온전히 여행서 같지 않았던 그녀의 글들.
투박하고 촌스러운 문체, 심지어는 너무나 개인적인 말투들을 남발하는 걸 보면서 사이비 작가라는 생각까지도 들었습니다.
그런 그가 급기야 더 개인적인 책을 냈네요.
<그건, 사람이었네>
책의 서두에서 밝혔듯 그녀는 이 책을 언니로써, 누나로써 동생들에게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마음으로 편하게 썼다고 밝혔습니다.
“청춘”들을 위한 글!
아마 이 책의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래서 ‘내가 지금 청춘인가?’하는 애매한 시기의 사람들(?)에겐 어쩌면 이 책은 특별한 이야기가 아닐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제가 굳이 소개하는 이유는 단 하나,
그녀의 눈부신 “청춘” 때문입니다.
40의 나이에 중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날 때도 기겁을 했었는데, 51살의 나이로 미국 보스턴 테프츠 대학에서 본격적인 구호 이론을 공부하겠다며 또 다시 작년 9월 유학의 길을 떠났습니다.
....... 현실 불가능한 일이라고 해도 단 한 번도 이룰 수 없는 꿈을 꾸어보지 않은 청춘, 단 한 번도 현실 밖의 일을 상상조차 하지 않는 청춘, 그 청춘은 청춘도 아니다. 허무맹랑하고 황당무계해 보이는 꿈이라도 가슴 가득 품고 설레어보아야 청춘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야말로 눈부신 젊음의 특권이 아니겠는가? ......
그녀의 글처럼 도무지 그녀의 “청춘”은 끝이 날 줄 모르네요.
9년간 함께 했던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도 그만 두고 그녀는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갔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청춘”이라는 건 “나이”와는 하등 상관관계가 없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린 청춘”은 생동감과 활기참, 그리고 도전 정신이라면, 시간을 지나온 “성숙된 청춘”은 지식과 지혜, 명석함으로 비롯된 현실감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늦은 시작이 두렵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그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을 아마도 그녀 한비야는 알아버린 것 같습니다.
이기지 못했다면 적어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동행하는 방법을 알게 됐는지도요.
그리고 그 방법 중 하나에는 그녀가 항상 말하는 “1년에 100권 책읽기”도 분명 포함되어 있을 겁니다.

“책”
제게는 심장이 뛰고 가슴이 설레는 최고의 단어입니다.
어릴 적 제 꿈 중의 하나는 책을 읽다 눈이 멀어버리는 것이었죠. 그리고 이 어린 꿈이 “오르한 파묵”이라는 터키작가에게 맹목적인 사랑을 품게 만든 이유이기도 합니다.
참 어이없고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그런 소망을 품었던 때가 정말 있었습니다.
제가 “책”이라는 세계에 대해 품고 있는 생각과 정확히 일치하는 생각을 그녀 한비야도 하고 있습니다.
...... "독서"의 즐거움이란 책 읽는 그 자체뿐만이 아니라 도서관에 가서 책을 찾는 기대감, 찾아내서 빌려올 때의 뿌듯함, 이미 대출된 책의 차례를 기다리는 설렘, 점심을 굶어가며 모은 돈으로 서점에 가서 내 책을 사는 기쁨, 그 책을 책장에 꽃아 놓고 보는 흐뭇함, 그 책을 누군가에게 빌려주고 돌려받는 날까지 괜히 조마조마해지는 조바심까지를 포함한다......
저는 이런 마음을 “판타지”라고 이름 붙이기도 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 처음으로 아르바이트해서 받은 돈으로 제일 먼저 한 일은,
조정래의 <태백산맥> 10권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종로서적에서 이틀에 나눠 5권씩 구입해 들고 오면서 내가 세상에서 제일 큰 부자가 된 것만 같았습니다. 얼얼했던 손의 기억도 아직까지 생생합니다.
그리고 그 책은 여전히 지금까지도 제 손길을 받고 있죠.(이 책 정말 많이 읽었네요......)
사람이 사람으로서 품위를 지키며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물의 최소량은 하루에 15리터라고 합니다.
저는 그 자리에 하루에 “15장의 책읽기”가 포함되는 날이 꼭 왔으면 좋겠다고 꿈꿉니다.
책이 없었다면,
아마도 저는 참 재미없게 그리고 참 많이 힘들게 세상을 살아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이유로 책은,
저에게 있어 생명의 또 다른 숨구멍입니다...

* 문득 궁금해집니다.
  당신에게 “책”은 무엇입니까?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4. 13. 22:08
  <1만 시간 동안의 남미1,2,3> - 박민우


1만 시간 동안의 남미

 
봄이 되니까 자꾸 바람나려고 하지 않으세요?
이러다간 아무래도 옆구리에 날개라도 돋지 않을까 싶으신 분, 일상을 버리고 훌쩍 내가 모르는 어떤 곳으로 떠나고 싶으신 분, 여기 아닌 다른 곳이라면 어디라도 환영인 분, 급기야 누가 나를 유괴(이 나이에 꿈도 야무지게....)라도 해서 딴 곳에 데려다 준다면....을 꿈꾸고 계신 분...
봄의 신기루에 온 몸이 나른하신 분들 많으시죠?
떠나면 모든 게 다 괜찮을 것 같은 마음...
오늘은 그 마음을 한번 따라가보려구요.
사람의 오감을 자극하는 여행서는,
지친 일상의 활력소가 되어 주기도 합니다.
물론 어설픈 여행서는 허황된 환상을 심어주는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시키기도 하죠(아시죠? “사진과 실물은 다를 수 있습니다”..... 여행서를 보면 전 항상 이 문구가 떠오르거든요 ^^)

쌈바와 화려한 축제의 유토피아, 남미!
그 환상의 나라들을 말 그대로 찌질하고 궁상맞게 여행하고 있는 한 남자가 있습니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운이 없을 수 있을까 싶게 가는 곳마다 속고, 물건을 잃어버리고, 차를 놓치고, 어찌어찌하여 싸구려 골방같은 숙소로만 그것도 겨우 전전하죠.
책을 쓴 작가 박민우.
그가 14달 동안 남미의 구석구석을 여행이 아니라 방랑하면서 겪은 살아있는 날 것들을 그대로 엮은 책입니다.
찌질한 자의 생동감이라니...
그런데 그게 아주 신선하고 그리고 진심으로 부럽기까지 하다는 겁니다.
코에 바람을 넣는 것도 모자라 이젠 아예 온 몸을 들썩이게 만드네요.
뭐 얼마나 대단한 여행서라고 세 권씩이나?????
남미 한 번 여행한 걸로 본전 한번 제대로 뽑으시네~~
처음엔 내가 못 가 본(가 본 곳도 변변찮지만...) 나라를 여행한 운 좋은 사람에게 보내는 개인적인 빈정상함과 부러움의 시선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면 시기심은 점점 사라지고 혼자 깔깔대며 박장대소하게 되죠.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신선합니다.
remarkable!
딱 그래요.
어느 틈에 속편을 열렬히 기대하게까지 만들었으니 이 책, 물건임엔 틀림없습니다.
카피라이터, 기자, 시나리오 작가, 앵커 등 다양한 이력을 가진 박민우는 보헤미안 기질이 다분해 보입니다(그러나 이 사람 “완소남” 혹은 “엄친아”는 결코 아닙니다. 그러기엔 확실히 80% 정도 부족하죠... 약간(?)의 하자가....^^)
이 사람, 여행의 시작부터 왜 이럴까요?
체격만큼이나 부실하다 못해 덜렁대는 성격덕분에 여권을 고이 집에 두고 출발합니다.
결국 호된 신고식이 기다리게 되죠.
그런 그가 감히 말합니다.
“아무리 좋고 좋아도 떠남의 설렘만 못하다“.
이런 상황에선 설득력이 좀 없어 보이긴 하지만, 누군들 그러지 않겠습니까? 변종 돌연변이라 할지라도 나그네의 유전자가 발현되기를 저 역시도 간절히 갈망하고 있는데...
가끔 생각합니다.
여행을 소망하면서 쉽게 이루지 못하는 건,
시간 때문인지 아니면 금전 때문인지 아니면 두려움 때문인지...
모든 걸 뒤로 하고 떠나는 이 남자의 맘 속 자유가 그래서 전 참 좋습니다(그래도 여권까지 뒤로 하고 떠나는 건 아무래도 좀..... ^^;;)
하지만 뭐 좀 어긋나면 어때요?
처음부터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보단 그래도 훨씬 나은 선택 아닌가요?

낮선 곳의 화려한 눈요깃거리들을 소개한다거나, 맛있고 고급스런 혹은 그 나라의 대표적인 민속음식을 소개한다거나 멋진 숙소를 구경하게 될 거란 기대는 이 책에선 버리세요.
대신 우리는 사람을 만나게 될 겁니다.
까만 피부에 초롱한 눈을 가진 맑은 아이같은 사람, 푸짐한 살집에 더 푸짐한 인정을 가진 사람, 그리고 기꺼이 찌질한 여행자를 구원(?)해주는 그때그때 상황에 또 적절하게 등장해주는 멋진 흑기사들을 말이죠.
괜히 저 역시도 함께 손잡고 싶어지는 사람들...
이 사람도 고백하고 있네요.
“여행 중 최고는 사람을 향해 가는 여행이다. 거대한 산맥보다 더 장엄하고, 한낮에 퍼붓는 소나기보다 더 예측하기 힘들다”라고요...
Timing!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주는 것에도 타이밍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멈칫거리면 이미 늦는다고, 생각하고 주저하는 시간은 짧지만, 늦음으로 인한 후회는 너무 길다고...
이 여행서는 재미와 함께 순간순간 이 남자의 단상들이 나올 때면 가슴이 서늘할 정도로 섬뜩해집니다. 그러나 그 섬뜩함은 공포에서 비롯된 것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3권의 책을 전부 읽고 나면,
이 사람 왠지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왠지 사람을 낯설게 대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핸드 드립 커피”
같은 커피를 가지고도 바리스타에 따라, 물의 온도, 핸드 드립의 높이, 그리고 드립 방식에 따라 맛과 향이 천차만별이 되는 커피.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작가가 꼭 이 핸드 드립 커피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쩐지 나를 만나면 내게 적절한 향과 맛으로 이야기할 것 같은 사람.
이런 느낌을 주는 책이라면,
이 책으로의 여행도 꽤 괜찮은 여행이 아닐까요?

근거 없는 자신감도 자신감이라고 하네요. 헛된 자신감으로 돌아오는 부작용보다는, 그 자신감에서 발산되는 무한한 용기와 추진력을 믿으라고.
비록 사실이 아닐지라도, 그 자신감이 과장되었을지라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편이 사람을 훨씬 다부지게 만든다네요.
여행의 매력은... 그래요.
모르는 무언가에, 모르는 누군가에게 조금씩 물들어가면서 결국 “함께”를 얻을 수 있게 된다는 거, 그 약속할 수 없는 “함께”가 때로는 그 무엇보다도 더 견고하고 든든한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는 거.
그래서 사람들은 기꺼이 또 다시 길 위에서 짐을 꾸리게 되나봅니다.
거침없이 다가가기 위해서요.
길을 모르면 어떻고, 길을 잃으면 어떻겠습니까?
모르면 물어보면 될 것이고, 잃었으면 되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찾아가면 될테니까요.
늦어지면, 까짓것 내가 너무 치열하게 헤맸다고 고백해버리는 거죠.
생각해보세요.
사실, 땅에서 발이 떨어지는 모든 순간이 “여행”의 시작입니다.
어때요? 이젠 떠날 준비가 다 되셨나요?
그렇다면 건승하세요.
그리고 돌아와 제게 이야기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모든 순간  “함께”였다고....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