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9. 2. 12. 08:58

 

<레드>

 

시 : 2019.01.06. ~ 2019.02.10.

장소 :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극본 : 존 로건(John Logan)

무대 : 여신동

연출 : 김태훈

출연 : 강신일, 정보석 (마크 로스코) / 김도빈, 박정복 (캔)

제작 : (주)신시컴퍼니

 

2011년 동국대학교 이해랑 예술극장 초연.

2013년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2015년,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

2016년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그리고 2019년 또 다시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그 다섯번의 시즌 공연을 다 봤다.

그 결과 여전히 "마스 로스코=강신일"이라는 공식은 유효하고 강력하다.

이번이 어쩌면 강신일 배우의 마지막 마크 로스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비난 나뿐만이 아니었다.

강신일 스스로도 두 달 동안 이 작품을 못하겠노라 고사했단다.

하면 할수록 감당해야 하는 무게감이 엄청난 작품이고 인물이기에...(이건 내 생각)

강필석 캔을 제외하고는 매번 캔에 대한 불만이 있었는데

아주 오랫만에 김도빈 캔이 그 갈증을 해소해줬다.

먀크 로스코로 인해 변화되는 캔의 모습을 드라마틱하게 잘 보여줬고

특히 표정과 눈빛이 참 좋았다.

 

이 작품이 2인극이 아닌 1인극이다.

"캔"이라는 가상의 존재는 다름 아닌 "마크 로스코" 자신이다.

현실의 마크 로스코와 예술가로서의 마크 로스코 자아와의 대면과 충돌.
그리고 결말.

극 속에서 씨그램 빌딩 벽화 작업을 취소하는 전화를 건 후

마크 로스코는 캔을 가차없이 해고한다.

화해모드에서 또 다시 격렬해지는 두 사람의 목소리.

해고의 이유를 묻는 캔에게 돼도 않는 이유를 들먹이던 마크 로스코가 결국 진심을 이야기한다.

"네 세상은 제 밖에 있으니까!"

해방감이 느껴질 정도로 후련했던 대사였지만

그 해방감만큼의 고통도 함께 느껴야하는 대사였다.

"너 자신의 삶을 살아!

 사람들을 향해 네 주먹을 휘두르고, 네 주장을 펼치고, 사람들이 널 보게 해야 해!"

그렇게 마크 로스코는 예술가로서의 자아를 해방시켰다.

그리고 현실 속 로스코는...

스스로 손목을 그어 육체에서 조차도 벗어난다.

그야말로 완벽하고 완전한 침묵의 구현이다.

그토록 두려워하던 "Black"의 세계로 가장 강렬하게(Red) 들어가버린 마크 로스코.

이건 환의일까? 비극일까?

 

그는 자신이 선택한 죽음으로 이런 말을 하고싶었던건 아니었을까?

다 이루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6. 7. 7. 08:57

 

<레드>

 

일시 : 2016.06.05. ~ 2016.07.10.

장소 :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극본 : 존 로건 (John Logan)

무대 : 여신동

연출 : 김태훈

출연 : 강신일, 한명구 (마크 로스코) / 카이, 박정복 (캔)

제작 : (주)신시컴퍼니

 

<레드> 두번째 관람.

작품 속에서 로스코가 켄에게 이런 말을 한다.

"한 번 눈길을주고나면 그것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상황은 다르지만 이 작품을 처음 본 후 내가 꼭 그랬다.

관음과 집착.

그것에 대해 오래 생각했었다.

언쟁이 아니라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싸움을 몰래 훔쳐보고 있다는 느낌.

들킬까봐 조마조마한데 그래도 결말은 꼭 알아야겠다는 다짐.

그야말로 "비극적"이다.

2015년 스페인을 여행할 때 내 옵션은 두 가지 였다.

"스페인-파리" 아니면 "스페인 - 이탈리아"

후자쪽으로 일정을 결정한건 순전히 이 작품 때문이었다.

이 연극에서 마크 로스코가 언급한 두 곳을 직접 내 눈으로 보고 싶었다.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과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메디치가 도서관.

결론은 두 곳 모두 겉모습만 보고 돌아섰지만  그것만으로도 심장이 떨렸었다.

실제로 마크 로스코가 그랬단다.

"나는 단지 기본적인 인간 감정들, 즉 비극, 황홀, 숙명 등을 표현하는 데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

 관람자와 내 작품 사이에는 아무것도 놓여서는 안 된다. 내 작품 앞에서 해야 할 일은 침묵이다"

너무나 자신만만해서 거부감마저 느껴지지만

마크 로스코가 표현한 색채 앞에 서면 이 말에 합당함을 절로 인정하게 된다.

그런데 왜?

왜 그랬을까?

예술의 본질이 사람을 치유하는 것이라고 말했던 그가 왜 스스로 죽음을 택했을까?

그렇다면 그의 선택은 완성된 치유였을까?

아니면 끝을 본 자의 자기파괴였을까?

그 질문에 가장 근접한 답을 찾으려면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을 찾아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로스코 채플"

자연채광 아래 벽을 따라 둥그렇게 자리잡은 검은색의 그림 14편.

 

 

결말은 다시 비극적이다.

"나는 생명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 그림에는 관심이 없다"

부럽지만 또 부러운만큼 두렵다.

생명. 숨결.

단순한 표현 속에 담겨있는 복잡한 감정들.

2015년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마크 로스코 전시회가 있었을때

나는 일부러 관람하지 않았다.

로스코의 색채를 눈 앞에서 감당할 자신이 도저히 없었다.

치유가 아닌 도발이 될까봐 두려웠었고

그 선택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두 번째로 이 연극을 보면서

나는 연극보다 로스코와 그의 생애, 

그리고 그의 작품에 대해 더 많이 생각했다.

내 옆으로 한 세대가...

조용히 지나가고 있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6. 6. 24. 09:57

 

<레드>

 

일시 : 2016.06.05. ~ 2016.07.10.

장소 :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극본 : 존 로건 (John Logan)

무대 : 여신동

연출 : 김태훈

출연 : 강신일, 한명구 (마크 로스코) / 카이, 박정복 (캔)

제작 : (주)신시컴퍼니

 

엄청 간절하게 기다렸는데 정말 돌아왔다.

2011년 이해랑극장에서부터 내게 hell of hell을 선사한 마크 로스코 강신일.

그 후 2013년 자유소극장에서 또 다시 그의 로스코에 납짝 엎드렸었다.

2013년 세번째 공연은 강신일 로스코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혼자 심드렁해버렸다.

(한명구도, 박은석도 내가 무지 좋아하는 배우들임에도 불구하고!)

2011년 <레드> 초연때 오경택 연출이 그랬다.

마크 로스코는 강신일 선생님밖에 생각이 안 났다고...

연출가의 홍보용 멘트 혹은 대선배 추켜세우기의 일환일거라 생각했는데

작품을 보고 난 후 바로 그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는걸 100% 이해했다.

그게 시작이다.

네번째 올라온 <레드>를 다 챙겨보게 된 것도,

강신일이 나오는 연극은 가능하면 다 챙겨보자 작정한 것도.

 

이번 시즌은 강신일 로스코의 복귀도 기대됐지만

지금껏 뮤지컬 무대에만 섰던 카이의 첫 연극 도전이라는 것도 기대됐다.

속으로 생각했다.

'첫 연극인데 너무 쎈 작품을 만나 고생 꽤 하겠네...'

역시나 카이도 백 번 공감한 모양이다.

대자연 앞에 선 느낌이란다.

두려운데, 하고 싶고 그래서 해야 겠다고 결심했단다.

목숨을 걸고 등반하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그리고 카이의 도전은 아름다웠다.

물론 발성도 템포도 성급했지만 좋은 작품을 만났고 좋은 선배를 만났다.

지금까지 했던 뮤지컬들은 두꺼운 분장에 가려져 그 뒤에 기꺼이 숨을 수 있지만

<레드>는 온전히 카이의 맨얼굴이 그대로 드러나는 작품이다.

작은 표정 하나까지도 결코 허투루 할 수 없는 작품.

아마도 카이는 이 작품을 아주 오랫동안 가슴에 담아두게 될 것 같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 작품에 코멘트를 다는 것만큼 면목없는 짓이 있을까?

심지어 이 작품은 BGM까지도 수시로 심장을 덜컹이게 한다.

어떻게 그렇게 매 장면마다 절묘한 음악이 나오는지.

대사들은 왜 그렇게 정확하고 확고한지.

편애가 아니라 광기에 가까운 사랑이다.

할 수만 있다면 텍스트를 오도독 씹어먹고 싶다.

그래서 <레드>가 내 속에서 영원히 살았으면 좋겠다.

아! 레드...레드...레드...

 

* 연극 <레드>에 나오는 음악 리스트 (출처 :신시컴퍼니 블로그)

 

http://blog.naver.com/seenseecom/220357457492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5. 5. 19. 08:41

 

<레드>

 

일시 : 2015.05.03. ~ 2015.05.31.

장소 :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

극본 : 존 로건 (John Logan)

무대 : 여신동

연출 : 김태훈

출연 : 정보석, 한명구 (Mark Rothko) / 박은석, 박정복 (Ken)

주최 : 신시컴퍼니

 

연극 <레드> 두번째 관람.

그리고 결정했다.

이 두 번의 관람으로 이번 시즌 <레드>는 끝내자고.

이 강렬하고 아름다운 텍스트를 아직은 초,재연의 기억으로 간직하자고.

그래도 이번 시즌도 첫 관람보다는 두번째 관람이 훨씬 좋았다.

한명구 배우가 그답지 않게 대사를 여러 차례 씹는 걸 제외하면... ^^

 

원형(原形)이라는게 있다.

아마도 강신일 로스코, 강필석 켄이 내겐 <레드>의 원형이 되버린 모양이다.

내가 이 작품에서 의미있게 생각하는 대사는 처음과 마지막에 나오는 로스코의 질문이다.

"뭐가 보이지?"

똑 같은 단어의 조합이지만 처음과 마지막 질문의 뉘앙스는 완전히 다르다.

켄이 작업실에 처음 온 날의 "뭐가 보이지?"는

정해진 이미지, 강요된 대답이 이미 존재했다.

즉, 켄의 시선이 아닌 로스코의 시선에 지배당한 질문이었다.

넌 내가 정해좋은 이걸 봐야만 해!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켄에게 자신만의 세상을 위해 떠나라며 던지는 "붜가 보이지?"에는

켄의 시선이, 켄의 의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

네가 보는 그것을 찾아 넌 지금 떠나야만 해!

 

어쩌면 그건 로스코가 로스코에게 보내는 경고였는지도 모르겠다.

결국은 두 자아의 치열한 싸움, 

이 작품이 보여주고 싶었던게 그게 아닐까?

켄은 로스코의 과거이기도 하고,

로스코의 현재이기도 하고,

로스코의 미래이기도 하다.

로스코이기도 하고, 로스코가 아니기도 하고, 로스코 그 너머이기도 한 존재.

작품의 크라이막스는 그래서 로스코가 아닌 "켄"이다.

 

아무래도 조만간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을 찾게 될 것 같다.

마크 로스코, 그를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해

그의 레드를 직접 두 눈으로 마주봐야겠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5. 5. 12. 07:59

 

<레드>

 

일시 : 2015.05.03. ~ 2015.05.31.

장소 :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

극본 : 존 로건 (John Logan)

무대 : 여신동

연출 : 김태훈

출연 : 정보석, 한명구 (Mark Rothko) / 박은석, 박정복 (Ken)

주최 : 신시컴퍼니

 

많이 놀랐다.

마크 로스코(Mark Rothko)였고, 연극 레드(Red)였다.

게다가 한명구와 박은석이었다.

그런데 왜 강렬하지도, 치열하지도 않았을까?

이유가 뭘까 혼자서 혼란스러워 하는 중이다.

동국대학교 이해랑예술극장에서의 초연과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재연을 보면서 미학적인 아름다움에 경의롭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대사 하나 하나가 전부 클라세가 되어 가슴속으로 담겼는데 즈금의 <레드>는 아직은 그렇지 않다.

역시나 <레드>는 쉽지 않는 텍스트로구나.. 절감했다.

연출도 김태훈이었고 무대도 여신동이 맞는데 왜 이런 이질감이 느껴졌을까?

그런 생각을 들더라.

먄약에 내가 초연과 재연을 보지 않고 지금 이 작품을 처음 보는 거라면 어땠을까?

 

고백컨데...

이 작품에서 배우 강신일의 존재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거대했고 지대했다.

작품의 무게감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게 믿어지지 않는다.

강신일은 로스코 자체였고,

로스코는 강신일로 인해 다시 재현됐었다.

강신일 로스코와 강필석 켄의 갈등은 다툼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소신을 건 치열한 논쟁이었다.

두 사람이 보여준 세대와 세대의 갈등은

마크 로스코를 켄으로, 켄을 마크 로스코로 만드는 일종의 융화였다.

지금처럼 서로 조롱하고 다그치고 징징대는 모습은 확실히 아니었다.

한명구와 박은석 배우 모두 아직까지는 역할에 완전히 동화되지는 못한 느낌이다.

한명구 로스코는,

곤조로 가득한 예술가의 아우라보다 고집불통 외골수의 호통이 더 많이 느껴졌다.

박은석 켄은,

목소리톤이 가늘고 높아서 개구진 느낌이 강했다.

 

무대 위에 놓여진 그림들의 색감도,

크기가 달라진 로스코의 책상과 놓여진 위치도

바퀴를 달아 움직이게 만든 작업테이블도 어딘지 낯설고 산만하다.

<레드>가 맞긴 한데 아진 완전한 <레드>가 아닌 느낌.

그냥... 좀 그림움이 가득해져버렸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4. 1. 23. 08:43

<레드>

일시 : 2013.12.21. ~ 2014.01.26.

장소 :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극본 : 존 로건 (John Logan)

무대 : 여신동

연출 : 김태훈

출연 : 강신일 (마크 로스코) / 강필석, 한지상 (캔)

주최 : 신시컴퍼니, 예술의 전당

 

이보다 더 미학적인 작품이 있을까?

보는 내내 열망보다 더 붉은 질투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은 <레드>가 유일하다.

공유의 욕망보다 혼자만 알고 싶은 독점의 욕망을 품게 만드는 그런 작품.

관능과 관음의 끝으로 나를 몰어 넣는다.

어떻게 이 작품은 나를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사로잡을 수 있었을까?

작품 자체도, 배우들의 연기도, 여신동의 무대도, 김태훈의 해석도 황홀하다.

솔직히... 온 몸에소름이 끼칠 정도다.

바라건데 신시컴퍼니는 더 자주 이 작품을 올려줬으면 좋겠다.

그것도 가능하다면 장기 공연으로...

(배우들에게는 참 미안한 말이긴 하겠지만...) 

이 작품을 텍스트로 삼고 단어 하나하나까지 분석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아마도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뭔가가 끊임없이 나올것임에 분명하다.

이 작품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힘들지만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 역시도 힘들다.

마크 로스코가 캔이 되고 캔이 마크 로스코가 되는 관계.

그리고 공간에 놓임으로써 시간까지 확장되는 그림.

붉은색이 주조를 이루는 이 그림들은 가장 완벽한 말이다.

그것도 혼자서 되뇌이는 독백이 아니라 함께 부딪치면서 나누는 대화.

격렬한 실체다.

이 모든것들이 다!

 

한지상 캔이 마스 로스코를 통해 뭔가를 깨달아 자기 길을 찾은 사람이라면

강필석 캔은 마스 로스코를 이해함으로써 자기 길을 찾은 사람 같다.

그래서 한지상 캔은 교화적이고, 강필석 캔은 치열하다.

그리고 그건 폭풍전야의 고요함같은 치열함이다.

한지상 캔이 명확한 근거없이 자신감으로 무장한 대학 신입생 느낌이라면

강필석 캔은 산전수전을 조금씩 겪어낸 대학원 졸업반 느낌이다.

강필석이 이 작품을 다시 준비하면서 연출에게 그랬단다.

"캔을 내가 해도 될까? 마크 로스코가 너무나 이해가 돼!"

시간은...

강필석의 고백처럼 캔을 어느새 마크 로스코이게 만든다.

그리고 자만심과 자신만만함으로 똘똘 뭉친 마크 로스코가 나는 참 아프고 아프게 다가왔다.

아마도 실제로 마크 로스코는 시그램 빌딩의 벽화를 주문받는 순간부터

예술의 목적과 이유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지 않았을까?

나는 캔이라는 가상의 존재가 마크 로스코 자신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마크 로스코와 마크 로스코 사이의 배틀이었던거다!

두 사람의 대화가 아닌 한 사람의 입을 통해 표현되는 치열한 갈등이고 고민의 언어들이다.

 

내 안에 적이 있고, 적 안에도 내가 있다.

재주와 재능을 혼동하는 사람은 중심까지도 흔들릴수 있다.

그러나...

흔들려야 중심이 보이고 그래야 중심이 필요하다.

단 한번도 흔들리지 않았다면

중심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더 많이 흔들리라고,

그것도 노골적으로 치열하게 흔들리라고.

그래야 흔들리는 관계 속에 중심이 보일거라고.

<레드>가 내게 말을 건다.

 

"뭐가 보이나?"

마크 로스코의 물음에 나는 뭐라고 대답할까?

나는 지금...

그걸 찾고 있는 중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4. 1. 8. 09:05

<레드>

일시 : 2013.12.21. ~ 2014.01.26.

장소 :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극본 : 존 로건 (John Logan)

무대 : 여신동

연출 : 김태훈

출연 : 강신일 (마크 로스코) / 강필석, 한지상 (캔)

주최 : 신시컴퍼니, 예술의 전당

 

<레드>는 어떻게 매번 내 가슴을 이렇게까지 살아 숨쉬게 만들까!

이건 감동과 경탄을 넘어 저절로 두 무릎을 꿇게 만들어 버린다.

설명이 불가할 존경심.

아주 잔혹할 정도다.

2년 전에 느꼈던 무시무시한 떨림도 다 무시하고

지금 또 다시 철저하게 매혹당했다.

엄청 센 놈을 제대로 만났다.

마크 로스코를 연기한 강신일 배우는,

존재 자체가 하나의 완벽한 텍스트였고 클라세였다.

<광부화가들>때도 완벽하게 나를 사로잡더니

<레드>의 마크 로스코는 숨통까지 쥐고 흔든다.

도대체 그 누가 무대 위에서 마크 로스코를 연기한 강신일보다 더 젊고 강렬할 수 있을까?

한참 어린 한지상조차도 그의 젊음을 당해낼 재간이 없어 보인다.

단언컨데 한지상은,

이 작품이 끝내고 나면 분명히 달라져있을거다.

초연부터 함께 하지 못한게 질투가 날 정도었다는 한지상은

마크 로스코의 캔이기도 했고,

강신일의 캔이기도 했다.

 

- 뭐가 보여?

- 레드요!

 

작품의 시작과 끝에 나오는 로스코와 캔의 대사.

똑같은 질문과 똑같은 대답.

그러나 작품을 보고 나면 알게 된다.

이건 결코 똑같은 질문일 수도

똑같은 대답일 수도 없다는 걸!

 

실제로 마크 로스코는

1958년에 뉴욕 맨허튼에 위치한 시그램 빌딩에 들어설 포시즌 레스토랑의 벽화를 의뢰 받았다.

그런데 그림을 다 완성시켜놓고 갑자기 계약을 파기해버렸다.

그 당시 화가의 변심(?)은 "시그램 사건"이라고 불리며 꽤 이슈가 됐었던 모양이다.

마크 로스코는 왜 갑자기 그런 결정을 내렸던걸까?

이 작품의 이렇게 의도도 시작도 질문에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레드"란 도대체 뭘까?

작품 속에서 배틀처럼 두 사람이 레드에 연상되는 이미지들 나열 속에 답이 있을까?

삶, 생명, 열정, 근원. 움직임, 에너지.레드 와인, 헤돋이, 드레스텐의 야간 폭격, 루소의 태양, 엘 그레코의 망토...

그러나 이 작품이 진짜로 내게 묻어왔던 건 "너 자신만의 레드"가 무엇인가 였다.

생각이라는 걸 해봤다.

평생 단 한 번이라도 인간이 되어 보라는 로스코의 충고대로.

나 자신만의 레드!

그건 바로 "관계(rapport)"다.

그것도 아주 정직하고 순수한 집중을 필요로 하는 관계!

생명도, 예술도, 사랑도 모두 관계의 문제다.

어떤 관계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사랑도, 삶도, 예술도 달라진다.

그리고 그 관계에 집중할 수 있다면 인간은 무서울 정도로 치열해진다.

"관능"은 바로 그곳에 있다.

시간과 공간, 성별과 섹슈얼리즘을 뛰어넘는 "관능"

난 <레드>를 통해서 그걸 읽었고, 그걸 봤고, 그걸 느꼈다.

이 느낌들... 이 감정들... 이 전율들...

글로 표현한다는게 가능은 할까?

침묵밖에는 도무지 답이 없다.

그리고 로스코의 말처럼 침묵은 언제나 정확하다.

 

2011년 오경택 연출의 초연과 비교하면,

김태훈 연출의 <레드> BGM처럼 깔렸던 음악이 조금 더 부각됐고

대사들도 일부 친절해졌다.

그래도 역시나 치열함과 아름다움엔 변함이 없다.

여신동의 무대는 군더더기가 없이 작품의 필요를 충족시켰고

자유소극장도 초연의 이해랑예술극장보다 작업실 느낌이 더 강해서 좋았다

장소를 만들어낸다는게 그림에만 해당되는게 아님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공연 장소도, 무대도, 배우도, 연출도 더없이 극적이다.

그야말로 엄청난 rapport를 목격했다.

 

커튼콜에서 한지상의 모습은

배우로서 아주 말갛고 깨끗한 맨얼굴 그대로였다.

자신이 지금 너무나 벅차고 행복한 시간을 지내고 있다는걸 그대로 보여줬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가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걸 지켜보는 느낌.

강신일은 한지상을 최대한 끌어내줬고

한지상은 그걸 놓치지 않고 또 다시 자신을 끌어올리더라.

솔직히 나는 한지상이 이 작품을 하기에는 연극적으로 부족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강필석 캔을 예매해놓고 망설였었다.)

그런데 기대했던 것 이상을 보여줘서 놀랐다.

멋졌다.

두 배우 모두!

 

이 작품...

배우에게도 관객에게도

너무나 뜨겁고 치열하다.

이 맹렬한 질투를,

나는 내내 어떻게 감당할까!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3. 10. 5. 16:07

<광부화가들>

일시 : 2013.09.13. ~ 2013.10.13.

장소 : 명동예술극장

극작 : 리 홀 (Lee Hall)

번역, 연출 : 이상우

출연 : 강신일(올리버), 김승욱(조지), 김중기(라이언), 민복기(해리),    

        채국희(헬렌), 송재룡 (지미), 이원호, 권진란, 김용현

제작 : 명동예술극장

 

2010년 명동예술극장에 올려졌을때 꼭 봐야지 하면서 놓쳐버린 작품이다.

다시 올려지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고맙게도 더 매력적인 캐스팅으로 돌아왔다.

강신일 한 명 만으로도 망설일 이유가 전혀 없는 그런 작품.

연극 <레드>에 이어 두번째 화가 역할.

개인적으로 강신일의 대사톤을 너무나 좋아한다.

조근조근하면서 사람을 단번에 사로잡아 극 속으로 빨려들게 만드는 목소리.

그래서 강신일이 출연하는 연극은 꼭 놓치지 않고 보는 편이다.

그가 연말에 다시 <레드>의 마크 로스코로 돌아온단다.

강필석과 한지상과 함께...

덕분에 올 연말은 좋은 작품으로 마무리할 수 있겠다.

<광부화가들>은 강신일 뿐만 아니라 믿을 수 있는 극단 차이무의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그래서인지 연극 <거기>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이상우 연출이 초연보다 전체적으로 유머러스하게 끌고 가고 싶었다는데 의도만큼 된 것 같다.

아주 무겁지도, 아주 가볍지도 않으면서 때때로 묵직한 뭔가를 던져준다.

보면서 계속 뮤지컬 <빌리엘리어트>가 떠올랐는데 역시나 리 홀의 극작이었다.

(사전 정보 전혀 없이 갔더니만...)

실제 광산촌 출신인 리 홀(Lee Hall)에게 광부와 광산의 이야기는 절대적인 트라우마이자 창작의 근원인 모양이다.

올리버 킬번을 연기한 배우 강신일의 인터뷰 내용도 아주 인상적이다.

 

“제가 2,30대였을 때 연기하면서는 배우 개인적으론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내 안에 어떤 이가 들어온다는 느낌을 받았던 적이 많았어요. 연극 속 ‘올리버’가 겪게 되는 비슷한 경험이죠. 이제 나이 50이 지나서 배우로서 그런 것을 유지하는 것도 힘들지만, 더 크게 발전을 시키지 못한 건 아닌가. 그 동안 영화나 드라마에서 여러 역을 맡으면서 너무 타성에 젖어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됐어요. 제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면서 연습하고 있습니다.”

 

작품을 보면서 나 역시도 유사한 질문들과 여러번 대면했다.

꼭 예술이 아니더라도...

꼭 정답이 아니더라도...

 

무대 위 3개의 대형 스크린으로 직접 그림을 보여주는 방식도 아주 흥미로웠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고흐, 세잔느의 명화들도 있지만

우드홀 탄광박물관이 영구 소장하고 있다는 실제 애싱턴 그룹의 그림 10점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색감의 차이가 많이 나긴 하지만

정규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광부들이 그렸다는 그림은 충격 그 자체였다.

적어도 내 눈에 이들은 광부가 아닌 천재로 보인다.

"애싱턴 그룹(The Ashington Group)"은 1934년부터 1987년까지 꽤 오래동안 활동했던 실제 광부화가들의 그룹이다.

당시 이들이 영국 화단에 큰 충격을 안겨줬던 것 역시도 사실.

이 작품을 보면서 예술과 노동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했다.

만드는 것과 만들어지는 것에 대해서도...

이들은 유명세를 탔음에도 불구하고 전업화가가 아닌 끝까지 광부라는 직업을 고수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공포와 불안으로 가득한 어둡고 좁은 갱도를 파내는 일을 그들은 왜 그만두지 못했을까?

작품 속에서 지미(송재룡)가 10살에 처음 광부를 하면서 느낀 공포를 눈물로 회상하는 장면을 떠올리면서

나는 올리버 킬번의 선택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 역시도 결혼도 못한채 갱도에서 사망한 형의 처자식을 부양하는 입장이었다.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거절한 이유가

자신의 본질을 지키고 싶어서?

모르겠다.

나라면 헬렌(채국희)의 제안에 고민없이 당장 OK를 했을텐데... 

 

대사들이 가진 힘이 정말 어머어마하다.

어떻게든 이 작품의 대본을 구해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라이언 : 혹시 미술관에 가본 적이 있나요?

광부 : 우리, 이 동네를 떠나본 적이 없습니다!. 광부예요!

라이언 : 그럼, 그림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까? 평생?

광부 : 없는데요!

 

헨리 : 아름다움이라고요? 농담해요? 이 동네에 살아 봤어요? 이 동네 삶에 아름다움이라는 거 없어요!

라이언 : 예술은 나 자신이예요, 예술은 나 자신을 아는 거예요.

 

데이트 미술관 견학 장면에서 고흐의 그림앞에서 광부화가들이 나눈 대화는

개인적으로 이 작품의 정점을 찍는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조지 : 반 고희의 "방"을 보고 있으면 그냥 구경하는 느낌이 아니야!

지미 : 그래, 고흐 머릿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었어!

올리버 : 반 고흐가 말하는 거 같았어. "예술은 생활이다"

헨리 : 진정한 예술은 나누는 거야. 예술은 주인이 없어!

올리버 :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는 거야. 바로 그게 예술이야!

 

이 작품은 자연스럽게 일련의 과정에 집중하게 만든다.

작품 자체의 진행(과정)도, 배우들이 연기하는 방식(과정)도 정말이지 너무나 아름답고 황홀했다.

고의의 "별이 빛나는 밤"같은 작품이었다.

오랫동안 내 속에 밝게 빛날 그런 작품.

다행이다.

긴 여행 후 첫관람한 작품이 이 작품이어서...

노곤한 여독의 피로를 이 작품이 제대로 풀어줬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1. 10. 28. 07:52

<레드>

기간: 2011년 10월 14일~11월 6일
장소: 동국대학교 이해랑예술극장
출연: 강신일, 강필석.
연출: 오경택
극본: 존 로건

이 작품에 대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감히...
앉은 자리에서 쉬지 않고 100번을 보라고 해도 능히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또 다시 보고 싶다며 시위하듯 계속 앉아있을 것 같다.
나를 무기력한 좀비로 만들어버린 작품 <레드>
이 날이 고작 세 번째 공연되는 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공연된 것처럼 두 배우의 호흡이 완벽하게 일치되고 완숙미까지 느껴진다.
심지어 나는 두 배우의 모습에서 질투에 가까운 지독한 관능미까지 느꼈다.

오경택 연출은 처음부터 로스코 역에는 깅신일 밖에 없다고 생각했단다.
작품을 보고 나면 연출가의 무한한 신뢰가 결코 빈말이 아님을 절감하게 된다.
내가 본 건 배우 강신일이 아니라
미술사에서 인상파를 끝장낸 실제의 마크 로스코(Mark Rothko,1903~1970)), 그가 분명하다.
오경택 연출의 선택과 믿음이 그저 고맙고 감사하게 느껴질 뿐이다.
연극 <레드>는 고작 3년 밖에 안 된 작품이다.
극본을 쓴 "존 로건"은 미국 최고의 극작가라는 평을 받고 잇는 사람이다.
<글래디에이터>, <스타트랙>, <스위니토드> 같은 굵직한 작품들이 만든 사람이 바로 존 로건이다.
<레드>는 2009년 12월 런던 돈마 웨어하우스 극장에서 초연됐다.
2010년에 브로드웨이 골든 씨어터에서 공연되면서 그해 토니어워즈 연극부분 6개 부분을 석권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조명상, 음향상, 무대디자인상, 남우조연상.
실제로 작품은 정말 어느 한부분 소홀한 곳이 없다.
섬세하고 아름답다못해 극단적으로 탐미적이다.
배우의 연기와 줄거리뿐만 아니라 작품을 구성하는 모든 부분들이 송두리째.
그곳도 피도 눈물도 없이 완벽하게...



할 수만 있다면 작품의 대사 하나하나를
오도독오도독 씹어 삼켜 내 몸 속에 채워두고 싶다.
두 배우는 어떻게 이 대사들을 자기 자신에게 완벽하게 체화(體化)시킬 수 있었을까?
강신일, 강필석 두 배우의 모습을 바라보는 건 
미안할만큼 황홀한 충격이었다.
특히나 두 사람이 커다란 캔버스에 붉은 물감으로 밑칠을 하는 장면에선
점점 가빠지는 숨소리를 들으면서 지독한 관능미에 빠져버렸다.
문득 이런 생각도 했다.
매번 이 역을 어떻게 감당할까?
너무나 완벽하게 연기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덜컥 겁이 났던거다.
이 작품이 끝나면 두 사람...
어떻게 될까???



<레드>는 화가와 조수의 이야기이라지만
구세대와 새로운 세대의 충돌과 대립, 완강함과 유함이기도 하다.
"자식은 아버지를 몰아내야 돼, 존경하지만 살해해야 돼"
극중에서 로스코는 조수 캔에게 말한다.
그러나 자신이 인상파를 몰아냈듯이 누군가 자신을 몰아내고 있을때는 절대적 진실에 도전을 받는양 
거침없이 야만에 가깝게 분노한다.
이기적이지만 예술에 대한 자신만만한 당당함.
그래, 그건 꼭 레드가 갖는 속성과 똑같다.
강렬하고 고집스럽고 고통스럽고 비밀스러운...
레드의 어쩔수 없이 그 안에 끈적거리는 피의 농도가 숨어있다.
그래서 레드는 위험하고 거침없고 그리고 파괴적이다.
"삶에서 내가 딱 두려운 게 하나 있거든. 그건 언젠가 블랙이 레드를 삼켜버릴 거라는 거야"
레드의 종말은 모든 것의 종말이다.
비.극.적.으.로.



모든 장면이 다 기억에 남아있지만
특히 마지막 장면은 압권이다.
캔을 떠나보낸 로스코가 자신의 그림을 대면하고 있는 그 모습.
캔버스의 붉은 빛은 조명이 어두워지면서 점점 블랙으로 변한다.
로스코는 그 블랙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이제 더이상 블랙이 두렵지 않은 건까?

그림에서 제일 중요한 건 사유(思有)라고 로스코가 말했다.

장소를 만들어내는 그림. 교감의 장소가 되는 그림.
그는 보는 사람의
 심장을 멈추게 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고.
사람들이 그림을 보고 생각을 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린다고.
연극을 보고 집요한 담론과 논쟁이 계속해서 나늘 따라다닌다.
로스코는 블랙이 레드를 삼켜버릴까봐 두려웠다지만
나는 레드가 나를 삼켜버릴까봐 두렵다.
"널 저울에 달아봤더니 부족하더리."

실제로 로스코는 1970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의 색 레드는 아직 살아있다.
따라서 로스코는 영원히 불멸(不滅)의 존재가 됐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