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5. 5. 6. 08:13

 

<리어왕>

 

일시 : 2015.04.16. ~ 2015.05.10.

장소 : 명동예술극장

극작 : 윌리엄 세익스피어

윤색 : 고연옥

번역, 연출 : 윤광진

무대 : 이태섭

출연 : 장두이, 조명진, 서주희, 이영숙, 오동식, 이윤재, 이동준, 서은경,

        이갑선, 유상재, 이기돈, 송의동, 김성환, 홍아론, 이승헌, 송호진

제작 : 국립극단

 

<리어왕>은 1605년 세익스피어가 41세에 쓴 희곡으로 인간 영혼이 겪는 시련을 가장 절실하게 묘사한 비극이라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세익스피어의 작품은 한결같이 지금 읽어도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생각이 전혀 안들만큼 앞서간다.

게다가 재미까지 있다.

그러나 그 재미 속의 통찰력은 깊고 어렵다.

그래서 생각없이 책을 읽거나, 연극을 보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는 작품이다.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일거다.

세익스피어의 작품이 올라올따마다 관람이 망설여졌던건.

무식의 소치가 드러나는 것도 두렵고

또 다시 고전(古傳)앞에서 고전(苦戰)을 면치 못하는 나를 보는 것도 안스럽고 해서...

그렇게 혼자만의 고민 끝에 관람을 결정한 작품이 바로 <리어왕>이다.

일단 국립극단과 명동예술극장이 다시 만났다는데 애정이 급상승했고

또 그냥 지나치기엔 배우진이 최상이었다.

작품 한 편에 이 모든 배우들을 다 만날 수 있다는건 다시 없을 기회고 잿팟이다.

걱정과 망설임따윈 던져두고 극장으로 향했다.

 

명동예술극장의 세계고전 시리즈 첫번재 작품 세익스피어의 <리어왕>

도대체 이 작품에 대해 내가 감히 뭐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엄청난 광풍(狂風)이었고, 페부를 부수는 일침이었다.

다시 없을 명작.

요근래 몇 년 동안 본 모든 작품을 통틀어 Top of the Top이다.

세익스피어의 대사들에 이렇게까지 직격탄을 맞고 너덜거리게 된 건 난생 처음이다.

연극이 아니라 현실이더라.

과거가 아니라 지금이더라.

보여지는게 아니라 오감으로 그대로 느껴지는 모든 순간이었다.

내가 아비를 배반한 거너릴이었고 리건이었고, 에드먼드였고 

내가 딸들을 저주하고 폭풍우치는 황야에서 미쳐 날뛰는 리어왕이었고  

내가 리어왕을 돕다 눈이 파내지는 클로스터 백작이었고,

내가 살아남기 위해 넝마를 걸치고 미친척 위장한 에드거였다.

윤광진 연출이 그랬다.

리어왕은 에베레스트와 같아서 정상을 허락하지 않는 자리라고.

그래서 높이를 측정할 수 없다고.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했는지 뼛속까지 제대로 느꼈다.

 

위태롭게 허공에 매달린 무대 위로 그대로 쏟아져 내리던 2톤의 물줄기는

느닷없는 마주침이었기에 더 충격적이었다.

이런 무대가... 이런 표현이... 가능한 거구나...

게다가 배우들의 연기는 공포심이 느껴질 정도로 섬득했다.

그야말로 광기(狂氣)가 광기(光氣)로 화하더라.

배우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대로 하나의 만신전(萬神殿)이었다고 말하면 이해가 될까?

특히 리어왕 장두이와 글로스터 백작 조명진, 에드거 이갑선의 연기는 정점에 또 다시 정점을 찍었다.

도저히 안되겠다.

세익스피어의 원작을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그것도 아주 충실하고 꼼꼼하게 번역된 책을 찾아서!

 

세상에!

이 작품이 나를 고전의 폭풍우 속으로 들어서게 하려나보다.

그럴거라면 제대로 빠져봐야겠다.

또 다시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될지라도...

 

"비야, 쏟아져 내려라!

 천지를 진동시키는 너 천둥아!

  이 세상 둥근 땅덩이를 납작하게 때려라!

 창조의 모태를 부수고 배은방덕한 인간의 씨를 말려 버려라"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4. 11. 25. 08:34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일시 : 2014.09.27. ~ 2014.11.20.

장소 : DCF대명문화공장 2관 라이프웨이홀

극작, 각색 : 추민주

연출 : 김태형

총감독 : 김조광수

출연 : 정동화, 박성훈 (민수) / 오의식, 강정우 (티나)

        차수연, 손지윤 (효진) / 이갑선, 김대종 (왕언니)

        우지순, 이이림 (경남) / 구도균, 이정수 (주노)

        리안나 (서영), 김효숙 (엄마)

제작 : 대명문화공장

 

<두결한장>

영화로 먼저 만들어졌을때 송용진이 출연한다고 해서 잠깐 관심을 갖긴했지만 정작 개봉했을땐 챙겨보지 못했었다.

솔직히 김조광수의 올드한 감성을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음악극으로 만들어진다고 해서 이번엔 한 번 챙겨봐야겠구나 생각했다..

공개된 개스팅도 괜찮았고 오랫만에 이갑선 배우를 무대에서 보고 싶기도 했다.

보고 난 후의 느낌은...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생각했던것보다 훨씬 더 뻔하고 상투적인 스토리라 당황스러웠다.

(영화도 그런가????)

계약결혼이든 뭐든 아무튼 사랑없이 결혼하는 커플과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한 남자만 바라보는 한 남자.

그리고 공식처럼 찾아오는 시한부 인생까지...

정말 온갖 종류의 최류성 소재들이 총망라됐다.

게다가 너무 일방적인 감동과 슬픔을 강요하는것 같아서 개인적으론 좀 불편했다.

내가 무딘건지 아니면 이런 최류성 이야기에 공감을 못해선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저기 훌쩍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너무 민망할 정도로 멀쩡하게 관람했다.

 

관람하는 내내 중심인물인 민수 타나, 효진, 서영의 연기보다

오히려 주변인들의 연기가 훨씬 눈에 더 들어왔.

제일 기대했던 배우도 이갑선 배우였지만

역시나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더라.

배우로서도, 인물로서도 묵직한 중심의 역할을 충분히 감당해내고 보여줘서 감탄했다.

이갑선, 이이림, 구도균 배우가 아니었다면 이 작품을 나는 훨씬 더 밋밋하게 봤을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세 배우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성적소수자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라 용감하고 과감하길 바랬는데.

덜 치열했고, 덜 직접적이었고, 덜 절망적이었다.

신파를 보여주는걸로 끝내서는 안됐다.

잔인할 정도로 정확한 현실을 보여줘야만 했다.

그게 사회적인 퇴출을 넘어 한 사람의 완벽한 매장으로 끝이 난다해도

잔인하게 치열하고 너덜거릴 정도로 고분분투했어야 했다.

이렇게 동화적인 판타지로 끝내버리는건... 

참 씁쓸하고 모호한 환상일 뿐이다.

 

비밀을 간직하고 살아온 사람은 안다.

드러내놓고 산다는게 얼마나 무섭고 거대한 공포인지...

그런데 이 작품 속에는 안타깝게도

그게 없었다.

 

삶은,..

여행일수도 있지만 끔찍한 지옥일 수도 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3. 12. 16. 09:05

<환상동화>

일시 : 2013.12.06. ~ 2013.12.15.

장소 :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

대본, 연출 : 김동연

작곡 : 이재원 

안무 : 송희진

출연 : 오용, 송재룡 (예술광대) / 최요한, 이현철, 이원 (사랑광대)

        이갑선, 최대훈, 홍승진 (전쟁광대) / 양잉꼬, 김채원 (마리)

        김호진, 이현배, 신성민 (한스)

제작 : 시인과 무사, (주)이다엔터테인먼트

 

<환상동화>가 벌써 10주년이 됐단다.

개인적으론 매번 공연될때마다 묘하게 관람이 어긋났던 작품 중 하나!

그래서 이번엔 아예 작정을 하고 예매를 일찍 예매를 했다.

10주년 기념 공연이라는 타이틀에 혹하기도 했지만

오용과 이갑선 배우를 한 무대에서 볼 수 있다는 매리트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연극 <환상동화>는

이야기 자체도 아주 독특하지만 그걸 표현하는 방식이 더 독특하고 신선하다.

지금이야 다양한 장르의 융합이라는 게 별 특별한 것도 아니지만

이걸 10년 전에 시도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전쟁, 사랑, 예술을 의미하는 스토리텔러 광대들.

세 명의 광대에 의해 시작되는 이야기 속의 이야기, 이야기 속의 이야기 그리고 또 이야기...

이야기의 가장 안쪽엔 한스와 마리가 있다.

전쟁 중에 청력을 잃어버린 피아니스트 한스와

시력을 잃어버린 무용수 마리.

세상이라는 건 그렇다.

단 한가지를 잃었을 뿐인데 그게 모든 것을 잃는 게 될 수도 있다.

마리와 한스처럼...

그러나 그 완벽한 절망 속에서도 "이야기"를 만들고 꿈꿀 수 있다면!

우리는 거짓말처럼 또 다시 살아낼 수 있다.

마리와 한스처럼...

 

인간은,

비명 속에서 태어나고 고통 속에서 살다 절망 속에서 죽어간단다.

누가 됐든 결국은 소멸과 파괴를 향해 기를 쓰고 달려가는 게 인간의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기에

이 모든 절망을 딛고 또 악착같이 일어선다.

또 다시 살아내기 위해서...

외로움을 감추기 위해 책을 읽듯

공포와 절망 속에서 다시 일어서기 위해

인간은 이야기를 만든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누군가에겐 희망으로, 위로로, 행복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지도...

 

기대했던 것보다 작품 자체는 살짝 지루했고 조금은 산만했다.

조명과 음향도 아쉬웠고...

그래도 광대 3인방의 연기는 역시나 좋더라.

특히 전쟁 광대 이갑선 배우의 딕션과 톤은 아주 환상적이었다.

앞으로 이갑선 배우의 작품은 일부러라도 찾아보게 될 듯.

작품보다 배우에 대한 여운이 훨씬 더 길고 깊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