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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0.06 <순수 박물관 1,2> - 오르한 파묵
  2. 2009.01.07 달동네 책거리 20 : <책도둑>
읽고 끄적 끄적...2010. 10. 6. 06:31
오르한 파묵!
또 다시 이 사람에게 완벽하게 매혹당하다.
이런 이야기일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첫 장편소설
오르한 파묵은 말했다.
"나는 이 소설로 기억될 것이다”

5월에 우리나라에 출판됐을 당시에 바로 손에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펼쳐보지 않았었다.
오래오래 숨겨놨었다.
힘들 때, 지칠 때, 위로가 필요할 때 펼쳐보리라 다짐했었다.
지금은 더 오래 이 책을 간직했어야 했던건 아닌가 후회하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휩싸이면 제자리를 찾기가 또 얼마나 버거울까?
단지 소설책일뿐인데도 나는 이 매혹과 질투와 신비에 화가 난다.
오르한 파묵의 책을 읽는 동안은
나는 먹지 않아도, 자지 않아도 괜찮다.
허기도 졸음도 그의 책을 손에 잡는 동안만은 저절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버린다.
오르한 파묵!
비참함이 느껴질 정도로 나를 완벽히 매혹시키는 작가!
그것도 여러 번,
철저히 치명적으로...



한 여자와 만나 44일 동안 사랑하고,
339일 동안 그녀를 찾아 헤맸으며,
2864일 동안 그녀를 바라본 한 남자.


또 다시 신물나는 사랑 이야기라고?
맞다!
그러면서 동시에 아니다.
한 사람을 너무 사랑한다고해서
그 사람의 입과 손이 닿았다는 이유만으로 담배꽁초 4,213개를 집에 모아놓는 사람이 있을까?
귀걸이, 소금통, 도자기 개인형, 화장수 병, 라크 잔, 설탕통, 모과를 가는 강판 등은 어떤가?
이 정도의 집착이라면 사랑이 아니라
단지 도착적인 정신병의 일종이라고 판단하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인정하고 희망하게 된다.
언제가 꼭 "순수 박물관"을 방문하리라.
그래서 케말이 수집하고 보관했던 퓌순의 흔적이 남겨진 이 모든 물건들을 두 눈으로 확인하리라.
물론 "순수 박물관"을 방문할 땐 반드시 이 책을 들고 가게 될 것이다.
책 안에 있는 1회 무표 입장권을 보여주면서 말이다.
너무 책 속에 빠진 생각이라고 말하고 싶을까?
역시나 그렇지 않다.
올해 하반기에 터키 이스탄불에 "순수 박물관"이 정말로 일반에 공개된단다.
(계획대로라면 8월에 이미 공개됐을지도 모르겠다)
소설의 주요 배경이 된 이스탄불 추쿠르주마에 있는 퓌순의 집.
그곳을 방문하면 소설에 나오는 모든 물건들을 실제로 볼 수 있단다.
번역자의 말처럼 이야기가 책에서 나와 현실에 존재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되는 셈이다. 
소설의 모든 것들을 재현한,
작가가 창조한 한 편의 소설이 이렇게 현실로 재현된다는 게 신비롭다.
문학이 현실을 새롭게 창조할 수 있다는 사실!
글의 힘에 전율이 인다.
...... 오르한 파묵이라는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는 가장 큰 보람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의 작품을 전 세계에서 누구보다 먼저 읽어 볼 수 있는 특권을 갖는 것이며, 처음 읽는 순수한 감동과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 답하겠다. 그러므로 이후에 이어질 지옥과도 같은 번역의 고통을 이겨 낼 수 있는 힘도 아울려 얻는 것이라고 ......
번역자 이난아는 말했다.
나는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번역자가 너무 부러워서 불같은 질투가 난다.



퓌순과 케말.
그 둘의 사랑은 이루어졌을까?
이루워졌을 수도 있고 이루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인생은 절대로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고 했던가?
그렇더라도 이 사랑은 충분히 의미있고 그리고 완벽하게 아름답다.
사랑하는 사람이 눈 앞에서 사라졌을 때 삶의 모든 광채도 함께 사라졌다고 말하는 사랑.
그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한순간에 제자리를 찾는 것 같고,
세상이 의미 있고 아름다운 곳으로 변해버린다는 사랑.
그녀와 한 집에 살 수 없기에 그녀의 손길이 닿았던 물건들을 하나하나 훔치는 사랑.
그 사소한 물건들은 아름다운 순간을 연상시키는 물건을 넘어, 순간의 일부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집착적으로 사랑하지만 '소유할 수 없는' 누군가에게서 어떤 일부를 떼어 내는 행복이란다.
9년의 기다림 끝에 함께 할 수 있게 된 두 사람의 최후가 되어버린 밤.
신파라고 작위적이라고 비난하진 말자.
이 책을 읽으면 소설속 이야기는 그대로 현실이 된다.
그것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생생한 현실.
나는 내 가슴팍으로 운전대가 꽃힌 것처럼 내내 극심하게 아팠다.
그리고 그 고통은 묘하게 육체의 통증을 동반했다.
영리한 사람들은 인생이 아름다운 것이며,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라는 것을 잘 안단다.
그런데 나중에는 행복하다고 말하는 건 바보들 뿐이라나!
"순수 박물관"은 그런 바보들을 위한 책이며 장소다.
점점 사라지고 희미해지는 "시간"이  하나의 "공간"으로 형체를 갖게 되는 곳.
<순수 박물관>
터키에 가게 되면 꼭 이곳에서 하루를 보내리라. 
꼭 그렇게 하리라...

너는 한때 나의 연인이었지
내 곁에 있을 때조차 나의 그리움이었지
지금 너는 다른 사랑을 찾았어
행복이 너의 것이길
고통과 번민은 나의 것이니
삶이 너의 것이 되길, 너의 것이 되길


<순수 박물관>을 탈고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오르한 파묵은 이미 새로운 소설 집필에 착수했단다.
그러니 견디자, 버티자.
그의 글을 읽기 위해서라면 긴 노동같은 기다림도 나는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
괜찮다.
견딜 수 있다,
버틸 수 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1. 7. 06:26

<책도둑 1,2> - 마커스 주삭

책도둑. 1

이 책은 슬픈 책입니다.
너무나 슬퍼서 잠깐 읽는 사람의 모든 것을 멈추게 만들어 버릴 만큼요.
<전쟁> 그 낯설고 아득한 세계에 대한 이야기..
그러나 너무나 천진하고 아름다워서 설핏 나도 모르게 전쟁을 꿈꾸게 만들기도 하고, 그러다 몸서리를 치며 악몽 속에서 깨어나 누가 들을까봐 목소리를 죽여 가며 울게 만드는 내용입니다.
절대로 내 울음을 누가 훔쳐보게 해서는 안 되는...

여기, 이야기를 시작하는 사람, 아니 뭔가가 있습니다.

바로 죽음의 신입니다.
전쟁으로 인해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는 '나'는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색깔의 변화를 냄새로 음미하면서 가끔 세상에 대한 한 눈 팔기를 통해 작업의 고단함을 잠시 잊기도 합니다. 어느 날 기차 안에서 한 소년의 영혼을 품에 안다 9살짜리 소녀(소년의 누나)를 만나게 되죠.
그 소녀가 바로 우리의 책도둑... 그녀입니다.

주인공 소녀의 이름은 리젤. 남동생을 하얗게 얼어붙은 땅에 묻은 리젤은 친어머니와도 헤어지고 양부모 밑에서 새롭게 생활합니다.(동생의 차가운 무덤 속에서 그녀는 책도둑의 첫 번째 책을 갖습니다)
극악스럽고 항상 욕을 달고 사는 양어머니 로자 후버만과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칠쟁이 양아버지 한스 후버만, 그리고 마라토너 제시 오언스를 너무나 찬양하는 나머지 얼굴에 숯칠을 하고 온동네를 뛰어 다니던 유일한 친구 루니 슈타이너, 그리고 그들의 지하실에 잠시 숨겨 두었던 유태인 막스 판덴부르크..
그리고 그녀에게 책을 훔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준 시장 부인까지...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생생하며 그리고 정말 삶을 위하여 한 순간도 최선을 다하지 않은 순간이 없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정직하게 아름다우며, 아름답게 즐거워하며, 즐거워하면서 서로 은밀히 소통을 나누는 너무나 평범하고 소박한 정말이지 딱 우리네 같은 사람들입니다.

굶주림..

우리는 이 책에서 또 다른 이유의 굶주림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소녀가 책을 훔치는 이유였던(그런데 솔직히 훔친다는 인상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굶주림. 너무나 간절한 책을 읽고 싶다는  굶주림...
소녀는 전쟁 중에도 책과 과자가 놓여있는 탁자에서 아무 망설임 없이 오로지 책만을 집어 들고 나옵니다.
리젤이 읽은 책 속의 활자는 고스란히 말이 되고 그리고 모든 것들을 향한 소통이 되죠.
소녀는 책을 얻기도 하고 그리고 한 사람씩 사랑하는 사람을 잃기도 합니다.
그건 책과 사람의 교환도 아니고 죽음의 신에 의한 거래나 잘못에 대한 댓가도 아닙니다.
그건 단지 전쟁이라는 상황... 그것 때문이었죠.
죽음의 신도 개입하지 못하는 전쟁의 상황.
오히려 죽음의 신은 이 상황이 신물이 납니다. 그래서 시작된 한 눈 팔기의 상대가 리젤이 됐고 우리는 분명 죽음의 신이 화자인 책에서 리젤의 시선으로 세상을 만나게 됩니다.
마치 리젤의 일기를 들여다 보고 있다는 느낌...
결코 일기 형식으로 쓰여진 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책에서 일기를 읽고 있다는 은밀함과 비밀스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글 중간 중간 나오는 그림도 그리고 막스가 지은 책(리젤의 생일 선물도 건네진)에서도 모두 일기를 보고 있다는 착각을 갖게 하죠.
실제로 이 책은 안네의 일기와 비슷한 평가를 받고도 있습니다.
숨겨준 자와, 숨겨진 자의 차이라고 할까요.

작가 마커스 주삭은 나치 독일을 체험한 부모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모티브(끌려가는 유대인의 행렬에 몰래 빵을 주는 장면)로 삼아 이 소설을 썼다고 합니다.
1868년생 작가가, 소위 새파랗게 젊은 놈이 자신이 겪어 보지도 않는 전쟁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 낼 수 있다니...
책의 내용보다 이 작가가 더 무섭다는 생각까지 들게 했습니다.
어쩌면 그는 천재일지도 모른다는 부러운 생각까지 어쩔 수 없이 들게 만들었습니다.
이 책은 살아남음에 대한 소설이 아닙니다.
그러나 살아남음에 대해서, 그래서 살아가야 함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이지 저 또한,
어딘가에서 책도둑으로 다시 살아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음을 고백하게 되네요...

보너스 팁...

역시나 이 소설도 지금 미국에서 영화로 제작되고 있다고 하네요.
그리고 이 책을 번역한 번역가 정영목님에 대해서도 한 마디..
현재 가장 활발한 활동하는 영미문학 번역가로 <눈먼 자들의 도시>(정영목의 첫 번재 번역작입니다), <눈뜬 자들의 도시>, 그리고 알랭 드 보통의 거의 모든 작품들이 이 번역가의 손을 통해 우리나라에 소개됐죠.
개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3인의 번역가 중 한 명입니다.(정영목, 이난아, 양억관)
일부러라도 이 분이 번역한 책들은 놓치지 않고 찾아보는 편입니다.
거의 원작의 느낌을 그대로 전달해 주고, 그리고 문학적인 표현이나 유머러스한 표현까지도 놓치지 않고 그대로 문장 속에 스며들게 하는 번역가죠.
그래서 이 분이 번역한 책은 일단 기본 그 이상은 된다고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혹 관심이 있는 분들은 도서관에 있는 알랭 드 보통의 책들을 읽어 보시면 이 번역가의 또 다른 장점과 매력을 느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참고로 멋진 프랑스 작가 알랭 드 보통의 책들도 찾아 읽어 보시라 권해드리면서,
이상 달동네 책거리였습니다. ^^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