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2.07.13 <토지> - 박경리
  2. 2011.03.28 <상실의 풍경> - 조정래
  3. 2010.04.22 달동네 책거리 89 : <그건, 사랑이었네>
읽고 끄적 끄적...2012. 7. 13. 08:05

드디어 <토지>를 완독했다.

그야말로 방대한 분량이었고 장구한 역사였고 대단한 노고였다.

<태백산맥>, <장길산>, <아리랑> 처럼 10권으로 된 대하소설을 읽고 나서도

한참이나 그 뿌듯함과 마치 뭔가를 해낸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하는데

토지는 무려 21권의 분량이었다.

작가 박경리가 문학적으로 어떤 일을 해낸건지

읽으면서 그 경외감이 들었다.

박경리는 위대한 사람이다.

단지 <토지>를 탈고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미 범인일 수 없다.

내 기억에 드라마도 두 번 제작됐던 것 같다.

1980년대 KBS에서 제작했었고 그 때 서희 역을 최수지였다.

(지금 뭘하고 사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2004년 SBS에서 제작했었고 김현주가 서희 역을 했었다.

드라마에 대한 기억은 그러나 전혀 없다.

작가 박경리는 문학을 업으로 삼는 후배들에게 참 많은 것을 남겼다.

지금도 원주에 있는 "토지문학관"에는 매일 박경리가 김매던 논밭을 보며

열심히 글을 쓰고 있는 작가들이 많으리라.

둥지 속에 있는 어린 새처럼.

 

 

...... 외치고 외치며, 춤을 추고, 두 팔을 번쩍번쩍 쳐들며, 눈물을 흘리다가는 소리 내어 웃고, 푸른 하늘에는 실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

 

장구한 <토지>의 21권의 마지막 문장이다.

오랜 억압이 일시에 풀렸을 때 사람들은 어떤 심정이 될까?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나는 맥이 순간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장중하고 비장한 마무리를 예감했던 것도 아닌데

평사리의 최서희가 되버렸다.

온 몸을 위감은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지는 느낌.

후련하면서도 아득했다.

일시에 혼백이 잠시 몸을 빠져나간듯한 혼몽함.

그래서 일부러 다른 책을 얼른 펼쳤다.

빠져나와야 할 것 같아서... 

<토지> 5부작은 참 이력도 분분하다.

1부는 1969년부터 1972년 9월까지 "현대문학"에 연재,

2부는 1972년 10월부터 1975년 10월까니 "문학사상"에,

3부는 1978년부터 "주부생활"에 연재

4부는 1983년부터 "정경문화"와 "월간경향'에 나눠서 연재

5부는 1992년부터 "문화일보"에 연재해서 1994년 8월 15일 완결됐다.

무려 25년 동안 6개 문예지와 잡지를 거쳐온 셈이다.

이 긴 시간동안 이야기의 흐름을 놓지 않고 산다는 게 어떤 느낌일까?

때론 지긋지긋했을테고 때론 감당하기 버거울 수도 있었겠다.

잉크를 채우는 만년필로 원고지에 꾹꾹 자필로 이야기를 엮었을 박경리의 손끝이 마냥 위대하고 신성스럽다.

10병 중 8병의 잉크를 다 쓰고 열리지 않은 2병의 잉크를 사용하기 위해

박경리는 뚜껑에 송곳을 대고 구멍을 뚫었단다.

그러면서 안심했단다.

그 심정 감히 불경스럽게도 조금 이해가 된다.

개인사도 결코 수월하지 않았던 박경리.

아마도 그는 다른 세상에서도 이곳에서처럼

자신이 키운 고추를 타고 갈무리하면서 만년필을 꾹꾹 눌러 글을 쓰고 있지 않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문학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면,

그가 누구든그들의 인생엔 아무런 죄 없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1. 3. 28. 06:35

조정래의 1970년대  초기작품을 모아 재판된 책 <상실의 풍경>
그를 두고 왜 대가라는 말을 거침없이 쓰는지 충분히 알 것 같다.
<태백산맥> 10권, <아리랑> 12권, 그리고 한강 <10권>
나는 그동안 그의 대하소설이나 장편소설에만 너무 익숙했었는지도 모른다.
그건 분량이 주는 위대함과 동시에 내용이 주는 거대함의 압도이기도 했다.
그의 단편들을 눈에 담는건,
조금은 당혹스럽고 익숙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런,
몇 장을 읽지도 않았는데도 그만 그 속에 푹 빠지고 만다.
작가 조정래는 또 다시 70년대 그 격변의 현장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 역사가... 그 시간이...
명확하고 분명하게 실감된다.
그의 글들은 내가 결코 알지 못할 시간들을 직접 체험하고 육화하게 한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할까???

누명
선생님 기행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
빙판
어떤 전설
이런 식(式)이더이다
청산댁
거부 반응
상실의 풍경
타이거 메이저 

이젠 전부 역사 속의 일이다.
여순반란사건, 베트남 전쟁,
그리고 월북한 아비로 인한 대를 이은 빨갱이 낙인,
연좌제라는 몰상식의 폭력은 아들의 소위 임관 자격을 박탈함으로써
건장하고 유망한 청년의 일생을 하루 아침에 바닥으로 내동댕이친다.
조정래는 말한다.
"유전병치고도 아주고약한 유전병"이라고...
그런데 지금 이 모든 것들은 정말 과거의 이야기에 불과할까?
전쟁, 피난, 미군, 카투사. 그리고 한국군에 대한 차별...
전후복구 세대들의 지독한 가난과 살아가기 위한 치열함.
한 편 한 편의 역사와 시간을 읽는 건,
곤욕이었고 비참함이었고 억울함이었다.
그리고 아련하게나마 이런 느낌을 갖을 수 있는 마지막 세대가 지금의 나인 것 같다.

조정래를 생각하면 <태백산맥>의 논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보안법상의 이적 표현물과 적에 대한 고무 찬양!
한때 이 책은 절판이 되기도 했었다.
1992년에는 이런 웃지 못한 대검 발표도 있었다.
"학생이나 노동자들이 읽으면 불온서적 소지, 탐독으로 의법 조치할 것이며,
  일반 독자들이 교양으로 읽는 경우에는 무관하다"
정말 황당하지 않나?
누가 읽느냐에 따라 위법의 여부가 결정된다는 사실이...
시덥잖은 권력에서 시작된 폭력은 그 몰상식으로인해 더 잔인하고 비열하고 비겁하다.
그 비바람의 폭력을 고스란히 받으면서 버텼던 직기 조정래가
그래서 나는 신화처럼 위대하고 거대하고 신비롭다.

확실이 전후의 우리 문단은
그로 인해 풍성했고 의미심장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10. 4. 22. 08:19

<그건, 사랑이었네> - 한비야 

그건 사랑이었네

저는 개인적으로 목소리 크고 수다스러운 사람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왠지 시비를 걸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말이죠.
그런 저의 기준으로 따진다면 일단 "한비야"는 좋은 점수를 받기가 아무래도 어려운 사람이죠.
참 많이 일을 만들어서, 참 많이 지치지도 않고, 참 많이 치열하게, 참 열심히 하면서 사는 사람, 한비야!
얼마 전에는 가을에 함께 커피를 마시고 싶은 지식인 2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1위는 안철수, 3위는 공지영이었죠)
“바람의 딸”로 지구를 걸어서 세 바퀴 반이나 돌아야 했고, 돌아와서는 다시 우리나라도  돌아줘야 했고, 그 뒤엔 불혹의 나이로 주위의 반대를 뿌리치고 중국으로 날아가 어학공부도 해야 했고, 그런 과정들을 또 몇 권의 책으로 열심히 써내야 했고...  다행히(?) 그 책들이 나란히 베스트셀러에 올라서 어느 정도 수확도 있었겠지만 말이죠.
참 복 많은 사람이라고 무작정 생각하기도 했었죠.
그녀의 책들을 차례차례 읽으면서도 솔직히 별다른 감흥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하기도 했었죠.
“한비야와 나는 참 궁합이 안 맞는 상대구나” 라고...
이제와 10년 넘게 안 맞았던 궁합이 돌연 한 권의 책으로 찰떡궁합이 된 건 아니지만 분명 그녀에게 받은 메시지가 있음을 부정할 순 없습니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던가요!
“무릎팍 도사”에 나와 강호동 앞에서 “조조조조~~~”을 외치던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자주 “울울울울~~~”에 빠져 있던 저는 웃을 수밖에 없었죠.
우리 둘이 만나면 완벽한 “조울증”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예전에 읽었던 그녀의 책 <중국견문론>에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길을 모르면 물어보면 될 것이고, 길을 잃으면 다시 돌아가 처음부터 시작하면 될 것이다“라고...
그러니까 일단은 떠나보라는 말이었죠.
떠나라는 이야기만 들어도 온 몸이 저릿저릿했던 저는 그녀를 향한 노골적인 부러움과 시기심만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둘의 궁합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을 거란 생각도 이제와 하게 되네요.
<여행서>로만 익숙했던 한비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온전히 여행서 같지 않았던 그녀의 글들.
투박하고 촌스러운 문체, 심지어는 너무나 개인적인 말투들을 남발하는 걸 보면서 사이비 작가라는 생각까지도 들었습니다.
그런 그가 급기야 더 개인적인 책을 냈네요.
<그건, 사람이었네>
책의 서두에서 밝혔듯 그녀는 이 책을 언니로써, 누나로써 동생들에게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마음으로 편하게 썼다고 밝혔습니다.
“청춘”들을 위한 글!
아마 이 책의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래서 ‘내가 지금 청춘인가?’하는 애매한 시기의 사람들(?)에겐 어쩌면 이 책은 특별한 이야기가 아닐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제가 굳이 소개하는 이유는 단 하나,
그녀의 눈부신 “청춘” 때문입니다.
40의 나이에 중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날 때도 기겁을 했었는데, 51살의 나이로 미국 보스턴 테프츠 대학에서 본격적인 구호 이론을 공부하겠다며 또 다시 작년 9월 유학의 길을 떠났습니다.
....... 현실 불가능한 일이라고 해도 단 한 번도 이룰 수 없는 꿈을 꾸어보지 않은 청춘, 단 한 번도 현실 밖의 일을 상상조차 하지 않는 청춘, 그 청춘은 청춘도 아니다. 허무맹랑하고 황당무계해 보이는 꿈이라도 가슴 가득 품고 설레어보아야 청춘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야말로 눈부신 젊음의 특권이 아니겠는가? ......
그녀의 글처럼 도무지 그녀의 “청춘”은 끝이 날 줄 모르네요.
9년간 함께 했던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도 그만 두고 그녀는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갔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청춘”이라는 건 “나이”와는 하등 상관관계가 없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린 청춘”은 생동감과 활기참, 그리고 도전 정신이라면, 시간을 지나온 “성숙된 청춘”은 지식과 지혜, 명석함으로 비롯된 현실감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늦은 시작이 두렵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그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을 아마도 그녀 한비야는 알아버린 것 같습니다.
이기지 못했다면 적어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동행하는 방법을 알게 됐는지도요.
그리고 그 방법 중 하나에는 그녀가 항상 말하는 “1년에 100권 책읽기”도 분명 포함되어 있을 겁니다.

“책”
제게는 심장이 뛰고 가슴이 설레는 최고의 단어입니다.
어릴 적 제 꿈 중의 하나는 책을 읽다 눈이 멀어버리는 것이었죠. 그리고 이 어린 꿈이 “오르한 파묵”이라는 터키작가에게 맹목적인 사랑을 품게 만든 이유이기도 합니다.
참 어이없고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그런 소망을 품었던 때가 정말 있었습니다.
제가 “책”이라는 세계에 대해 품고 있는 생각과 정확히 일치하는 생각을 그녀 한비야도 하고 있습니다.
...... "독서"의 즐거움이란 책 읽는 그 자체뿐만이 아니라 도서관에 가서 책을 찾는 기대감, 찾아내서 빌려올 때의 뿌듯함, 이미 대출된 책의 차례를 기다리는 설렘, 점심을 굶어가며 모은 돈으로 서점에 가서 내 책을 사는 기쁨, 그 책을 책장에 꽃아 놓고 보는 흐뭇함, 그 책을 누군가에게 빌려주고 돌려받는 날까지 괜히 조마조마해지는 조바심까지를 포함한다......
저는 이런 마음을 “판타지”라고 이름 붙이기도 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 처음으로 아르바이트해서 받은 돈으로 제일 먼저 한 일은,
조정래의 <태백산맥> 10권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종로서적에서 이틀에 나눠 5권씩 구입해 들고 오면서 내가 세상에서 제일 큰 부자가 된 것만 같았습니다. 얼얼했던 손의 기억도 아직까지 생생합니다.
그리고 그 책은 여전히 지금까지도 제 손길을 받고 있죠.(이 책 정말 많이 읽었네요......)
사람이 사람으로서 품위를 지키며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물의 최소량은 하루에 15리터라고 합니다.
저는 그 자리에 하루에 “15장의 책읽기”가 포함되는 날이 꼭 왔으면 좋겠다고 꿈꿉니다.
책이 없었다면,
아마도 저는 참 재미없게 그리고 참 많이 힘들게 세상을 살아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이유로 책은,
저에게 있어 생명의 또 다른 숨구멍입니다...

* 문득 궁금해집니다.
  당신에게 “책”은 무엇입니까?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