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마르크 함싱크(Marc Hampsink )는 1973년 부산에서 출생,
7살에 벨기에로 입양돼 유럽에서 완벽하게 외국인으로 성장한 사람이다.
그는 모국에인 네덜란드어 외에 영어, 불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그리스어, 라틴어, 한문 등
총 13개 국어를 그것도 능통하게 구사할 줄 아는 멀티링구어란다.
(그런데 여기에 한국어는 없다...쩝!)
이 책은 한 가지 언어로 쓰여진 게 아니라
마르크 함싱크가 구사할 수 있는 온갖 언어로 쓰여졌다고 한다.
(아마도 표현의 묘미에 더 적합한 언어를 선택했겠지만)
그래서 원고가 번역가의 손에 들어왔을 때 그녀는 경악을 했다고...
글의 서두에 밝힌 내용이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이 글은 영국계 보험회사에 다니는 저자의 일,
즉 보험 조사에서 시작됐단다.
보험 의뢰기 들어오면 그것이 가치가 있는지 조사하고 판단하는 것이
작가가 하는 일이란다.
극동의 조그만 나라 한국에서 대략 18세기 경에 쓰인 <진암집(晉菴集>이라는 책 역시
그런 절차를 밟기 위해 작가의 손에 들어왔다.
책의 저자는 조선의 21대 왕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진암 이천보였다.
그런데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막 시작된 시기 조선에서 벌어진 비밀스런운 사건이
이 책 속에 도사리고 있었던 거다.
정사인 <조선왕조실록>에는 이천보가 67세의 나이로 천수를 누리고 조용히 병사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그 외의 다른 기록들은 모두 끔찍하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며 기록되어 있단다.
그리고 이천보뿐만 아니라 당시 좌의정 이후, 우의정 민백상도 그 자살 행렬에 합류했고...
250년 전 삼정승의 잇따른 자살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세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비밀은 무엇일까?
이 책은 그러니까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다.
어느 늦여름 밤.
조정의 최고 권력인 영중추부사, 좌의정, 우의정이 비밀스런 회동을 한다.
깊어진 세자의 병과 증세에 대한 의논을 하는 자리였다..
그리고 어느날, 어의 한 명이 집에서 죽은 체로 발견된다.
죽은 어의는 바로 세자의 병이 무엇인지 단서를 가지고 있던 유일한 목격자였다.
총명하고 어진 세자를 고통과 광기로 내몰게 한 병의 정체는 도대체 무었이었을까?
급기야 아비의 노여움까지 받아 좁은 뒤주 속에 갇혀 죽는 운명까지 이르게 한 병의 정체는?
충격적인 내용이지만
이 책에는 세자의 지병이 성병, 즉 매독이었다고 밝힌다.
그리고 그 배경엔 다름 아닌 화완옹주의 사가에서 출입한 한 여승이 연계되어 있다.
이 책에서는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권력에 욕심을 낸 화완옹주가 자신의 동생을 왕위에 오르지 못하게 하려고
사가의 여자를 끌어들인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긴다.
이쯤 되면 좀 독하지 않는가?
권력의 향기라는 게...
이야기는 아주 참신하다거나 흥미진진하지는 않다.
다만 이 모든 이야기를 이국의 이방인에 의해 쓰여졌다는 사실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작가는 한국어도 모를 만큼 한국에 대해 무지한 완벽한 외국인으로 성장한 사람이다.
이국의 눈엔 동양의 역사는 어느 정도 신비로 보이겠겠지만
우리의 옛 역사와 관련된 명칭과 단어들을 찾느라 여러 날 고심했을 것을 생각하니 숙연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 수고를 생각하고 읽으면
이야기 구성도 꽤나 치밀하고 꽉 차있다.
다만 인물 내부로 깊숙이 들어가지 못한 약점이 있긴 하지만
한 번 손에 잡고 읽어보라고 권할 만한 책이다.
작가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생각하고 읽는다면
오히려 놀라움을 느끼게 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