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2. 7. 25. 07:31

좀 특이하고 재미(?)있는 책을 읽었다.

아이티 출신 작가 다니 라페리에르의 소설 <슬픔이 춤춘다>

다니 라페리에르는 아이티에서 캐나다로 망명한 소설가란다.

아이티 작가의 작품은 처음 읽는거라 긴장했었다.

책을 펼치는 순간 이게 소설 맞나 싶어 다시 살펴봤다.

행과 열이 정돈된 긴 서사시의 느낌.

그러다 중간준간 단문의 산문 구조가 나온다.

왠 멋을 이렇게 냈나 싶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구성 자체가 이야기의 흐름과 딱 맞아떨어진다.

상당히 매력적이고 흥미로웠다.

2009년 프랑스에서 메디치상을 받은수상작이란다.

메디치상은 프랑스 3대 문학상 중 하나로 세계적으로 권위가 있는 상이다.

(오르한 파묵, 폴 오스터 등 우연히도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이 상을 많이 수상했다 ^^)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참 담담하고 그리고 사려깊게 썼다.

조근조근한 회고록 내지는 묵상집 같은 느낌.

책의 주인공도 아이티를 떠나 있던 사람이다.

아버지의 부고를 알리기 위해 어머니를 찾은 아들.

그러나 귀향의 장면은 마치 스쳐지나가듯 짧고 간결하다.

고향에서조차 이방인이 된 사람.

그리고 가족이지만 함께 모여 산 시간과 함께 한 추억이 거의 없는 사람들.

무덤덤할만큼 단백한 이들의 관계에  왜 자꾸 울컥하면서 가슴을 쳤을까?

슬픔이.... 춤춘다...는 책의 제목은 참 적절하고 정확했다.

분명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실루엣으로 남은 사람들의 움직임.

그 뭉둥그려진 움직임이 참 아프고 슬프고 서럽다.

 

우리는 두 개의 삶을 산다.

하나는 우리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린 시절부터

우리가 아는 사람들에 속하는 나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아... 하고 잠시 멈칫했다.

그랬구나.

나도 이런 이유로 현실과 나 자신 사이에 점점 거리감을 느꼈던 거구나...

책의 구절이 내게 답을 줬다.

 

사람들은 항상 자신 앞에 너무나 많은 희망을 두고

자신 뒤에는 너무나 많은 실망을 둔다.

삶은 죽은 시간 없이 흘러가는

긴 리본이다.

그리고 유연한 순간 속에서 희망과 실망이 교대한다.

 

나를 담은 글을 읽으면 섬득하다.

그러나 외면할 수 없다.

이 책은 아마도 오랜 시간을 나와 함께 할 것 같다.

나는...

사실 그랬다.

무덤덤한 춤을 추며 오래고 깊은 슬픔을 차곡차곡 달래고 싶었다.

나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1. 4. 18. 06:22
폴 오스터의 소설은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폴 오스터의 세계는 항상 몇 가지의 세계가 함께 공존한다.
그리고 그런 연결되어 있기도 전혀 그렇지 않기도 하다.
그의 소설 제목처럼 그건 보이는 세계이면서
동시에 보이지 않는 상상과 공상이 만들어낸 세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부적인 스토리텔러 폴 오스터를 거쳐가면
그 세계는 현실보다 더 생생해서 지금 살고 있는 세계를 공상화한다.
그을 읽고 있으면 내가 화자가 되고 서술자가 되어 주도적으로 이야기 속으로 파고든다.
이건 일종의 마력이고 중독이다.
때론 진심으로 궁금하다.
내가 지금 몹쓸 흑마술에 걸린건 아닌지가...


각 장마다 시점과 서술자가 달라지고
믿어지지 않는 새로운 사실의 등장과 폭로는
읽는 사람을 불연듯 섬득하게 만든다.
어쩌면 소설 속 인물 워커의 말처럼 좀 혐오스러운 이야기일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읽기를 그만둔다면,
보른의 말처럼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 보이는 세상에서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은?
혹은 지금 보이는 세상이 내게 보이지 않는 것은?
책은 철학적인 질문으로 나를 내몬다.
나는 이 모든 사람들이 쏟아내는 폭로같은 진실들을 믿을 수 있을까?
아니면 진짜 진실이라는 게 이 중에 있기는 한걸까?
오스터의 글은 점점 재미와 함께 무거운 중압감을 남긴다.
그의 앞으로의 글들이 그래서 나는 조금씩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그의 세계가 내겐 moon hill 이다.

이 소설에서 오스터가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현실 속에 어떤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에 그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이 벌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에(기억이든 환상이든 우연이든) 그 사건이 존재한다. 이렇게 볼 때 나라는 존재가 먼저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생각해 내는 이야기가 먼저 있고 그 이야기 속의 나는 얼마든지 <그>로 대체 가능하다.... 다시 말해 어떤 사람이 갖고 있는 - 꾸며낸 것이든 혹은 꾸며내지 않은 것이든 - 일관된 이야기가 그 사람의 자아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인간들은 모두 호모 파블라토르(Homo fabulator, 이야기를 말하는 사람)다 

작품 속에서 <보이지 않는 invisible>이라는 단어가 명시적으로 사용된 문장을 이러하다.
.... 나 자신을 1인칭으로 서술함으로써, 나는 나 자신을 질식시켰고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내가 찾고 있던 것을 찾는 게 불가능해졌다.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떨어트릴 필요가 있었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나 자신과 나의 주제(바로 나 자신) 사이에 약간의 공간을 두는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나>는 <그>가 되었다.
나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나를 <그>나 <너>라고 보게 된다는 것이다.



작가 김연수를 이야기할 때 항상 나오는 책이 바로 이 책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였다.
문단계에서 오래전부터 주목받고 있는 그의 작품을 그래도 몇 편 찾아 읽었고,
읽고 나서 혀를 내눌렀었는데
공교롭게도 이 책은 매번 놓였었다.
드디어... 드디어.. 읽어버렸다.
김연수.
그는 아무래도 신내림을 받은 사람인 것 같다.
그것도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그의 몸 속에 웅크리고 있는 게 분명하다.
참 볼품없는 억지스런 엉김이지만 내 또래의 나이다.
고작 그정도의 나이테밖에 갖지 못한  그가
조선 시대를 이야기하고, 신민지 시대를 이야기하고
만주 지역을 이야기하고, 혜초의 왕오천국국전을 이야기한다.
그것도 기록된 역사를 철저히 불신하면서 완벽하게 고립의 언어로 말이다.
그의 글들은 비극적이라는 표현이 희극적으로 들릴만큼 비의적이다.
이미 늙어버린 그의 언어는 세상 그 어떤 생물보다 생명력있게 펄덕인다.
그 펄덕임이 문득 무섭다.
마치 그게 유일한 생명력 같아서...
꼭 태고의 눈으로 뒤덮인 낭가파르파트 꼭대기에서 홀로 조난당한 느낌이다.
참. 비.극.적.이.다.
인간도, 인간이 만든 모든 역사도 신기루가 되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그만둘까?
그만둘 용기도, 허세도 없는 인간은
신기루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 신기루 속으로 자진해서 들어간다.
별 수 있나!
인간은 이해될 수 없는 존재고,
역사는 믿을 수 없는 존재인데...
달리 무슨 방법이 있을까!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1. 1. 15. 06:21
참 이 양반 OO법도 참 많다.
이번에는 이외수의 비상법이란다.
역시나 정태련이 그림을 그리고...
이외수를 좋아하는 작가의 리스트에 올려본 적은 없지만
정말이지 생존법이니, 비상법이나 이제 그만큼 했으면 됐으니
다 때려치우고시고 제발 소설 좀 쓰셨으면 좋겠다.
이러다 외모뿐만 아니라 글쟁이로서도 기인되시겠다 싶어 좀 걱정스럽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책들...
참 나를 불편하게 한다.
두꺼운 종이를 사용해(남들은 고급지라고 하겠지만....) 들고다니기에 무겁고
읽을 부분보다 여백이 더 많아 왠지 속았다는 느낌도 들고
특히나 요즘같은 칼바람엔 책장을 넘기느라 손도 너무 부산하고 처량하다.
(주제 사라마구나 폴 오스터의 첫줄부터 끝줄까지 빽빽하게 채워진 글이 마구마구 그리워지고)
명상 좀 하면서 인간답게 살라고 강요하는 것 같아서 그렇고,
남들은 잘 그렸다고 할지 모르지만 왠지 좀 괴기스런 그림들에 섬뜩섬뜩하다.
더군다나 내가 참 무서워하는 곤충의 왕국이 시리즈로 들어 있다.
꽃들은 또 얼마나 황량하던지...
명상을 하고 싶다가도 당췌 무서워서...
이제 며느님도 신춘문예 당선하셔서 후배작가가 되셨는데
네비게이션도 안 나온다는 그 좋은 감성마을에서 싱싱한 글 좀 써 주셨으면...
트위터 글에만 매진하지 마시고...
하악하악!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10. 10. 5. 05:24

<환상의 책> - 폴 오스터

 환상의 책

폴 오스터...
참 매력적이고 그리고 신비감 가득한 미국 작가입니다.
개인적으로 “폴 오스터”와 터키의 국민 작가 “오르한 파묵”을 자꾸 비교하게 되는데요, 두 사람 모두 신비적 탐미주의자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오르한 파묵”은 환상 속에서 현실을 이야기한다면 “폴 오스터”는 정확히 그 반대의 방법을 택하죠. 현실 속에서 환상을 이야기하는...
그러면서도 두 작가의 이야기 방식은 참 묘하게 닮아있습니다.
“오르한 파묵”이 지적이고 명석한 백과사전적인 글을 치열하고 아름답게 쓴다면, “폴 오스터”는 가십거리스러운 사건을 잡아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현실감을 갖게 만듭니다.
둘 다 범접할 수 없는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 낸 작가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두 사람의 책을 우리나라에 번역하는 번역가도 멋진 한 쌍의 페어를 연출합니다.
“오프한 파묵”에게는 번역가 “정영목”이, “폴 오스터”에게는 번역가 “황보석”이...
아마도 두 이국의 작가가 다른 번역가들을 만났다면 과연 지금과 같은 느낌을 전달받을 수는 없을 것이라 감히 단정합니다.

폴 오스터의 소설들...
참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읽기를 쉽게 포기하게 만드는 책이기도 하죠.
소위 말하는 고비를 넘어야만 폴 오스터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단 그 고비를 넘기면 손에서 놓기가 싫어질 정도죠. 그런데 그 고비라는 게 좀처럼 넘기가 힘들다는 게 문젭니다.
읽지 않고 포기하는 자에게는 결코 비밀의 문이 열리지 않으리라는 묵시록 같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 현재 그의 소설은 전부 14권이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저는 정확히 8권의 소설을 읽었네요.
개인적으로 폴 오스터의 화두(話頭)는 실종과 풍자, 그리고 미스터리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읽은 폴 오스터의 거의 모든 주인공들은 결국은 실종을 선택하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숱한 미스터리와 세상을 향한 풍자를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길고 긴 실종의 과정은 동양의 선(仙) 사상과 묘하게 닮아있기도 합니다.
2002년 쓰여진 이 책의 원제는 “Book of illusion"입니다.
2008년 우리나라에 발표된 “환상의 책”이라는 제목보다는 “Book if illusion"이라는 원제가 확실히 더 폴 오스터스럽네요.
"illusion"이라는 뜻에는 왠지 은밀하고 비밀스런 느낌이 있는데, "환상"이라는 단어는 허황된 눈속임과 노골적인 드러냄이 느껴지기 때문이죠.
“Book of illusion"의 첫 장은 프랑스 낭만주의 작가 “샤토브리앙”의 짧은 글로 시작됩니다.
...... 인간은 하나의 동일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끝에서 끝까지 이르는 여러 다른 삶을 살며 그것이 바로 비극의 원인이다 .....

그러니까 이 책은 두 사람이지만 동시에 같은 사람이기도 했던 누군가에 대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두 사람의 같지만 다른 삶 이야기, 그리고 추적과 멈춤, 끌어당김과 거부가 잔잔하지만 집요하게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건 모든 인간의 모습, 그것이기도 하죠.

오래 전에 실종된, 그래서 죽었다고 믿어지는 무성 코미디 배우 “헥터 만”, 그리고 얼마 전 비행기 사고로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이를 잃고 스스로를 불행의 삶 속으로 밀어 넣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는 대학교수 “데이비드 짐머”.
어느 날, 데이비드는 TV를 통해 헥터 만이 출연한 오래된 무성 코미디 영화 한 편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헥터의 콧수염과 양복은 그에게 깊은 아우라를 남기죠.
절망 속에 살던 대학교수 짐머는 세상에 남겨진 헥터의 무성영화 12편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서 몇 개월 동안 세계를 돌아다닙니다. 그리고는 다시 9개월 동안 칩거하듯 세상과 단절한 체 헥터 만에 대한 집필을 시작하고 드디어 <헥터 만의 무성 세계>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날 우편함에 배달된 한 통의 편지.
헥터 만의 부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이 쓴 편지의 내용은 "그가 당신을 만나고 싶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데이비드는 처음에는 이 편지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가 진짜 헥터 만인지 어떻게 아느냐는 답장에 그녀는 다시 편지를 보냅니다.
“제 말이 진실임을 아시는 유일한 방법은 초청을 받아들이시는 것입니다.”
편지는 계속 이어집니다.
“그 사람이 1929년 할리우드를 떠난 뒤 여러 편의 장편 특작 영화들을 쓰고 감독했다는 말씀을 드린다면 오시겠다는 마음이 드실는지요? 헥터는 이미 아흔이고 나날이 건강을 잃어 가고 있어요. 그 사람은 제게 남긴 유언장에다 자신이 세상을 뜨고 나서 24시간 내에 그 필름들과 원본을 모두 파기하라고 했는데, 저로서는 그 사람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녀의 편지 내용대로라면 헥터 만은 스스로 자발적인 실종을 선택했다는 이야기네요.
이 대목에서 주인공보다 오히려 제가 더 헥터 만의 진실을 추적하고 싶어지는 열망이 가득합니다.
다행히 그를 데리고 가기 위해 한 여자가 등장합니다.
헥터 만의 전기를 쓰고 있다는, 헥터 만과 함께 영화를 만들었던 카메라맨의 딸 엘머가.
함께 뉴멕시코 블루스톤 농장을 향하면서 데이비드는 헥터 만의 모든 생애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듣게 됩니다.
그야말로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나다니엘 호손의 <모반>처럼 그를 산 채로 먹어치워 버렸습니다.
영화배우로서의 헥터 만의 삶, 그리고 스스로 실종을 선택하고 콧수염을 자르고 양복을 벗고 허먼 레서로의 삶, 얼굴을 가면으로 가리고 라이브 포르노 공연배우로 살았던 삶.
그는 그 삶들이 자신에 대한 보복 내지는 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죽음보다 단순하고 파멸보다 더 나은 방법, 끝장을 보지 않고서도 자신을 계속 죽여 나갈 수 있는 방법으로 그는 타락을 선택했던 거죠.
... 만약 내 삶을 구할 생각이라면 그 삶을 파멸시키기 일보 직전까지 가야 한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고 재미있는 건,
헥터 만의 삶이 바로 데이비드의 삶이기도 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분명 다른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어쩌면 두 사람의 삶이 이렇게까지 동일할 수 가 있을까요?
“도플갱어” 혹은 “평행이론”이었을까요?

이 이야기는 일종의 “미궁”입니다.
비극적이면서 동시에 희망을 주는 결말.
어쩌면 “믿거나 말거나”류의 황당한 결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 읽고 나면 말이죠. 이런 생각을 심각하게 하게 됩니다.
“이게 정말 허구일까?”
폴 오스터의 이야기의 끝은 항상 그렇습니다.
“당신들이 이 책을 읽고 있을 때면 이 책을 쓴 사람이 벌써 오래전에 죽었다고 믿어도 좋다.”
이런 신비주의가 무책임의 한 형태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세상 모든 사람의 삶은 어쨌든 모두 익명성의 보장이고, 실종이고 그리고 은밀함의 추구임에는 분명하죠.
“나는 빌려다 쓰는 삶을 살고 있었다.”
폴 오스터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매번 이런 고백을 합니다. 그렇게 말함으로써 읽는 이에게 당신의 지금 삶은 어떠며 은밀한 질문을 던지죠.
만약에 빌려다 쓰는 삶이라고 느낀다면 그것은 단지 잠시 동안의 실종이라고 말합니다.
조만간 누군가에 의해 진실이 담긴 삶의 문이 열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당신의 이야기는 맨 처음부터 다시 새롭게 시작될 거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은밀하고 비밀스럽게 잘 보관하고 있어야 한다고 충고하는 셈이죠.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읽고 있다는 느낌.
그러데 그 이야기는 앞으로도 결코 끝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는 알아야 할 이야기가 있고 알지 않는 게 오히려 더 좋은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알고난 전과 후가 극명하게 달라지는 경우에는 더더욱 말이죠.
저는 말이죠. 책을 읽으면 매번 그 책 속으로의 실종을 간절히 꿈꿉니다.
내 책이라는 소유욕보다 내 이야기라는 소유욕이 백배는 더 강하죠.
그래서 늘 또 다른 이야기를 찾아 나서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폴 오스터의 <환상의 책>
그 속에서 제 맘 같은 구절이 있어 에필로그로 남겨봅니다.

...... 여기까지 온 당신들은 실로 위대하다 ......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6. 3. 06:43
오랫만에 폴 오스터의 소설을 읽다.
<기록실로의 여행>
사진으로 본 폴 오스터는 마치 사립탐정같은 느낌을 준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의 소설 속에는 사립탐정이 많이 등장한다.
뭔가 확실히 2%쯤 부족한 느낌을 주는...



"폴 오스터"
천상 이야기꾼인 이 사람을 어떻게 할까? (^^)
마치 그동안의 자기 작품들에 대한 참신한 헌사라고 할까?
<기록실로의 여행> 속에는 그가 창조해낸 소설속 인물들이 등장한다.
<뉴욕 3부작>의 피터 스틸먼, 대니얼 퀸 그리고 쇼,
<거대한 괴물>의 벤저민 삭스, <달의 궁전>의 마르코 포그,
데이비드 짐머는 <환상의 책>의 주인공이었고 <신탁의 밤>에 나온 존트로즈까지...
기억을 잃은 "미스터 블랭크"에게 질문하는 것 같다.
"저한테 왜 그랬나요?"라고...
그러니까 "기록실"이란 "미스터 블랭크"라는 의미심장한 이름으로 대변되는
스토리텔러 폴 오스터의 머릿속이라고 이해해도 무방할 듯.
소설의 시선을 철저히 "관찰자"의 입장이다.
재미있고 그리고 독특하다.
소설 속에서 소설의 온갖 기법과 요소들을 뒤엎는 방식.
폴 오스터는 망각의 상태에 있는 "미스터 블랭크"라는 자신의 대용물(?)을 소설 속에 등장시켜
그가 창조한 모든 인물들과 대면하게 만든다.



감시카메라와 미이크가 설치된 방에 살고 있는 미스터 블랭크.
"기억하지 못하시겠지만 우리는 선생께서 해달라는 데로 해드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를 찾아온 의사가 남긴 말과 식사때마다 삼켜야 하는 알약들.
그리고 타자 원고 한 묶음.
원고의 결말을 이야기해달라는 의사 파.

"창조자는 자신의 창조물에 대해 과연 전권을 소유해도 되는가?"
등장하는 인물들을 쫒아가면서 생각하게 되는 질문이다.
소설가가 이런 질문이 화두처럼 주어진다면 막막할텐데
폴 오스터는 이걸 가지고 이렇게 멋진 이야기를 또 창조해냈다.
무섭다. 이 사람...
이 책을 읽으면 우리가 알앗던 모든 결론들이
어느날 송두리째 바뀔 수도 있을거난 상상까지 하게 된다.
어쩌면 나도 내 기억 속 인물들에게 
기억하지 못하는 가혹한 짓을 했을 수도 있다는 사실...
폴 오스터의 문학 세계가
느닷없이 내 등골을 서늘하게 만든다.

어느날,
"미스 블랭크"와 대면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서 있을지도... 
자!, 이제 부실한 기억력을 점검할 시간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2. 25. 06:00

오늘 같은 날씨에 읽기에 딱 좋은 소설.
그동안 폴 오스터의 책들을 그래도 꽤 읽었고
그 책들 모두 재미있었지만
이번에 읽은 <환상의 책>이 제일 마음에 든다.
왠지 묘한 이질감과 미궁 속에 빠지는 느낌.
책을 읽는 내내 가야금 연주자 황병기의 "미궁"을 떠올렸다.
그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괴기스러운 음악을 차마 끌 용기조차 내지 못했다.
말 그대로 나는 완전히, 그리고 완벽히 얼어있었다.
그대로 고정돼버렸던 무시무시한 기억.
내가 간직한 최고의 아름답고도 섬뜩하고도 그리고 끔찍했던 음악 "미궁"
물론 그 정도의 충격을 줄 수 있는 무언가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긴 하지만
이 책도 왠지 다른 세계를 들여다보는 관음의 시선과 귀를 갖게 한다.



"Book of illusion"
원제가 더 매력적이고 직접적인 책.
"illusion"이라는 뜻에는 왠지 은밀하고 비밀스런 느낌이 있는데
"환상"이라고 번역했을 땐 왠지 허황된 눈속임같은 느낌가 강하다.
그래서 번역된 책을 볼 때는 항상 그 원제를 찾아보는 게 중요한 포인트!
탐정소설과 연예소설이 영화적으로 뒤섞여 있는 책.
책을 보면서 스크린을 보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드는 책.
그러면서도 열렬히
인간의 주체성과 자아에 대한 깊은 생각과 고민을 하게 만드는 책.
스스로에 대한 진실성에 연타를 가한다.
그래서 읽는 사람을 당혹하고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는 책.



오래 전에 실종된 무성 코메디 영화배우 헥터 만과
평행이론 같은 삶을 사는 대학교수이자 작가 데이비드 짐머.
그 두 사람의 같지만 다른 이야기, 그리고 추적과 멈춤, 끌어당김과 거부들...
책의 시작에는 샤토브리앙의 글이 헌사처럼 적혀있다.
...... 인간은 하나의 동일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끝에서 끝까지 이르는 여러 다른 삶을 살며 그것이 바로 비극의 원인이다 ..... 

비극적이면서도 동시에 유쾌한 희망을 함께 건네는 결말에
유난히 나는 신나했다.
"믿거나 말거나"의 뉘앙스로 끝을 맺는 폴 오스터의 글들은
오히려 그렇게 함으로써 이 모든 이야기가 마치 사실이었던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한다.
어딘가  헥터 만이 출연한 <마틴 프로스트의 내면적인 삶>, <투명 인간> 같은 영화가 있을 것만 같고
어딘가 데이비드 짐머가 쓴 <헥터 만의 무성 세계>라는 책이 있을 것만 같아
그것들을 찾아 나서고 싶은 욕구마저 안긴다.
마치 삼원색 같은 책,
그러면서도 어느새 무지개의 다채로움까지 선사한다.
폴 오스터의 세계.
늘 유사하면서도 결코 한번도 같지 않았던 그의 세계.
그가 만들어내는 환상의 세계들이 나는 아직도 많이 궁금하다.



그의 세계를 하나하나 섭렵해나가는 재미는 그래서 항상 새롭고 신비롭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읽은 세계들이 더 많다는 사실.
그리고 그의 책을 읽게 되는 이유는
내게 늘 실종을 꿈꾸게 한다는 사실.
그게 포인트다. ^^

<국내에 소개된 폴 오스터의 작품>

  • 고독의 발명 (The Invention of Solitude) (1982)
  • 뉴욕 삼부작 (The New York Trilogy) (1987)
  • 폐허의 도시 (In The Country of Last Things) (1987)
  • 달의 궁전 (Moon Palace) (1989)
  • 우연의 음악 (The Music of Chance) (1990)
  • 거대한 괴물 (Leviathan) (1992)
  •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Auggie Wren's Christmas Story) (1992)
  • 공중 곡예사 (Mr. Vertigo) (1994)
  • 빵굽는 타자기 (Hand To Mouth) (1997)
  • 동행 (Timbuktu) (1999)
  • 환상의 책 (The Book of Illusions) (2002)
  • 신탁의 밤 (Oracle Night) (2004)
  • 브루클린 풍자극 (The Brooklyn Follies) (2005)
  • 어둠속의 남자 (Man in the Dark) (2008)
  •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09. 3. 25. 22:08
    책에 흥미를 잃었던 적이 있던가?
    <읽음>은 때론  유일한 탈출구이자
    최상의 자극제였기에...

    그의 혹은 그녀의 언어가
    다가와,
    온 몸을 관통하는 느낌

    소망했었던 기억 하나.
    "책을 읽다 눈 멀었으면..."


    저벅저벅
    거침없이 들어오는
    환상들, 현실들, 추억들...


    폴 오스터!
    당신의 지배를
    지금은 완벽히
    인...정...합...니...다...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네요.
    나의 넬라 판타지아...
    Posted by Book끄-Book끄
    그냥 끄적 끄적...2008. 12. 21. 21:35


    내겐 그렇다.
    책들이 가득한 곳이 바로 판타지아.
    나의 영원한 이상향.



    눈 오는 오후
    영풍 문고 다녀오다.
    책 앞의 사람들...
    뒷 모습까지도 정겹다.



    소설 부문 베스트 셀러 목록을 보다.
    와~~~
    주제 사라마구의 책이 2위를 할 수도 있구나..
    영화의 영향력이라고 해도.
    다행스럽고 즐겁다.


    시 부문 베스트 셀러도 살짝 살펴보고...


    비소설 부문은 역시...
    미국 역사를 새롭게 쓸 버락 오바마의 책이 올라와 있다.
    그와 관련된 책이 서가에 그야말로 쫙~~~ 깔려 있다.
    (사실 나 역시도 그가 참 궁금하다)


    국내 베스트 셀러 작가들의
    짧은 말들...
    다른 곳에서 만났으면
    어색했을텐데.... ^^


    가끔 궁금하다.
    김 훈님은 <밥벌이의 지겨움>을 정말 느꼈을까? ^^


    이제 고인이 되어
    더 이상, 어떠한 글도
    발표하지 못 할 이청준 님의 말까지...


    신경숙...
    지금 참 행복하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에게서 엄마를 불러냈으니까....


    출입구 쪽에선
    신경숙의 책과 관련해서
    이벤트를 벌이고 있었다.
    트리를 장식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엽서들..


    엄마에게 보내는 엽서...



    그냥 맘이 촉촉해졌다.
    서점 안이 엄마 품 같은 느낌...
    편안하고 따뜻한 온기.


    요즘 한창 빠져있는
    내 환상의 일등 공신
    르 클레지오의 책들...
    순간 욕심쟁이가 되고도 싶었는데... ^^


    폴 오스터..
    당신 여기서 만나니 정말 반가워요~~~


    한국 문단의 국민 어머니 박완서님....
    당신이 잉태한 자식들이 여기 가득하네요.
    당신 속으로 난 자식들은,
    어쩐지 따뜻하고 다정해...
    한 번씩 쓰다듬게 된다는 거 아세요?



    기욤 뮈소...
    한국에 꼭 와보고 싶어지겠어요.
    이렇게 당신 책이 사랑받고 있으니...
    어쩐지 셈이 나네요.



    순간 철렁한 느낌.
    <아름다운 마무리>라...
    솔직히 고백하면 아직은 못 할 것 같다.
    법정 스님의 맘 속 처럼 그렇게 청명하고 고요할 자신...
    아직은 없으니까...


    이쁜 카드들도
    축복을 써 줄 누군가을 기다리고 있고.


    2009년 열심히 준비하고 계획하라고
    다이어리들이 말을 건다.
    글쎄...
    정말 그래야만 하겠지!!!


    거대한 환상의 보고을 뒤로 하고..
    그 환상의 조각 3개를 품고 돌아오다.
    벌써부터 맘이 설래는 건...
    책들이 일제히 말을 거는 듯.
    음....
    지금부터는 오직 선택의 시간.
    This is the moment~~~~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