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8. 4. 26. 08:01

비셰흐라드 (Vyšeehrad)에 있는 

성 페트르와 성 파블 성당(Kostel Sv. Petra a Pavla)은 11세기에 만들어졌다.

친숙한 이름으로 말하면 성 베드로와 바울 성당

처음 건축됐을때는 하늘로 쭉쭉 뻗은 고딕양식이었지만

증축과 보수를 거쳐 지금은 여러 양식이 혼재한 성당이 됐다.

유럽의 성당들은 500년도 우수은 시간이라

하나의 건축양식으로 만들어진 성당을 찾는다는건 사실 불가능하다.

 

 

예수가 죽임을 당할때 천국의 열쇠를 맡겼다는 베드로와,

기독교인을 박해하러 가던 중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회계 후 그리스도 전파에 일생을 바친 바울.

기독교를 대표하는 사도 2인.

조금씩 흐려지는 날씨.

그래서 더 장엄하고 고적했다.

패밀리 티켓이 구입해 안으로 들어갔다.

(패밀리 티켓은 100czk)

 

 

화려하고 선명한 스테인드 글라스에 감탄이 절로 났다.

주제단의 웅장함과 천장의 프레스코화를 보고 있으니 

시간이 그대로 정지된 느낌이다.

아들을 안고 하늘을 향해 절규하는 2개의 조각상.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피에타는 신성이 아닌 모성을 대변하기에 더 비극적이고 애절하다.

이날 성당에는 우리 세 사람이 전부였다.

그냥... 이 모든게 마치 준비된 고요 같았다.

일부러 이곳을 찾아온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 

온전한 이 시간이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베드로와 사울,

그리고 우리...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5. 10. 29. 08:31

성모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피에타(Pieta)는

산 피에트로 대성당에서 가장 유명한 조각상이다.

미켈란젤로가 1499년  피에타를 만들었을 때는 나이는 고작 24세였다.

완성된 작품을 보고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저 나이에 만들 수 있는 작품이 아니라고, 분명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을거라고...

미켈란젤로는 화가 났다.

그래서 베드로성당 문이 닫힐 즈음 들어가 몰래 숨어있다가

성모마리아의 오른쪽 옷깃에 서명을 남긴다.

"피렌체에서 온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만들다"

그렇게 피에타는 미켈란젤로의 서명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작품이 됐다.

피에타란 성모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품에 안고 있는 형상 자체를 뜻하며

라틴어 원뜻은 "자비를 베푸소서"이다.

이 작품은 작가에 대한 구설수도 있었지만

그후에는 마리아의 얼굴이 너무 젊다는 비난을 듣기도 했고

예수에 비해 마리아가 너무 크게 조각됐다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그렇다면 정확한 인체의 비율을 작품 속에 추구했던 미켈란젤로가 실수를 했던걸까?

그걸 알기 위해서 피에타를 위에서 내려다 봐야만 한다.

정면이 아니라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리아가 예수님보다 더 작아 보인다.

미켈란젤로의 의도는 그랬단다.

피에타는 인간이 시선이 아닌 신이 내려다보기에 가장 좋은 각도와 비율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가이드가 보여준 포토북 사진을 보면서 그렇구나... 이해했다.

책 한 권이 전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사진으로만 구성된 책을 보고 머릿속에 불이 켜졌다.

어디가면 구입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구하기 힘들거란다.

그래서 사진 좀 찍을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흥쾌히 건네준다.

한 장 한 장 넘기는데 볼수록 황홀해서 그대로 들고 도망가고 싶었다.

진심으로...

 

 

정말 대리석이 맞나????

눈으로 보고 있는데도 도저히 믿겨지지가 않더라.

그야말로 넋을 놓았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미켈란젤로는 대리석에 광채를 내기 위해 가죽으로 600만번 이상을 문지르고 또 문질렀단다.

특별한 조명이 설치된 것도 아닌데 피에타 안쪽에서부터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이는건

미켈란젤로가 오랜시간 공들인 수작업의 결과라 하겠다.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바티칸 박물관전"을 했을때 피에타 카피작도 함께 왔었는데

그때의 느낌과는 완전히 달랐다.

확실히 다른 모든 것을 정지시키는 위대함이더라.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해져서

카메라 줌을 최대한으로 당겼다.

더이상 줌이 안된다는게...  처음으로 원망스러웠다.

(이런 갈증때문에  사란들이 대포같은 렌즈를 사는 모양이다...)

 

지금의 피에타는 이렇게 방탄유리 안에 들어가 있지만

1972년까지는 그대로 개방된 상태로 전시됐었다.

1972년 한 남자가 망치를 들고 피에타를 손상시키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 남자는 호주 이민자 라즐로 토스였는데

마리아의 코와 왼쪽 눈꺼풀을 부수고

왼쪽 팔꿈치와 머리 베일 일부를 파손시켰다.

체포후 자신이 예수라고 주장했다는데 정신이상자로 판명이 났고

피에타는 긴 시간 복원에 들어간다.

그리고 복원이 끝난 뒤에는 또 다시 발생할지 모를 훼손사건 방지를 위에

바티칸에서 유일하게 방탄유리 안에 들어가게 됐다.

그래서 바티칸 박물관에서는 셀카봉을 꺼내면 제지를 당한다.

작품 전부가 그대로 노출된 상태라 셀카봉을 휘두르다 엄청난 재앙이 발생할 수 있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한국 사람들은 셀카만 찍으면 정신줄을 놓기 때문에 특히나 주의를 요한다고.

(실제로 그런 유사한 사건이 바티칸에서 일어났었단다...)

한국인의 셀카봉 사랑이 심각하긴 하다.

나도 불쑥불쑥 들어오는 셀카봉때문에 몇 번이나 깜작 놀랐는지 모른다.

셀카봉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부탁컨데 때와 장소는 꼭 가려줬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간곡히 부탁한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8. 12. 21. 10:55

  <엄마를 부탁해> -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그녀가 낸 작품들은 모조리 읽었습니다.

하다못해 산문집까지도...

제게 있어 신경숙은 질투의 대상이이기도 했고,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고, 그리고 실망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그녀만의 독특한 감성과 글쓰기에 얼추 젖어버렸다고 할까요?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의 제 느낌들이 작가로서의 그녀에 대한 종착역은 결단코 아닐 거라는 사실입니다.


이 사람...

평범한 일상을 너무 아프게 써 어느 날은 혼자 화가 났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면은... 나를 들여다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뜨끔한 자괴함과 부끄러운 속내를 들킴에 대한 막무가내의 억지였던 건 같네요.

“풍금이 있던 자리”

가령 그녀의 글쓰기는 그렇습니다.

풍금이 있는 자리가 아니라 풍금이 있던 자리인 거죠.

화자가 바로 <나>여야 하는 이야기를 그녀는 <당신>으로 바꿔놓습니다.

그녀의 모태 신앙 같은 도시 정읍, 그리고 차마 분명한 이름조차 갖지 못한 체 등장하는 이니셜의 인물들...

게다가 대화조차도 문장부호 없이 그대로 써버리는 당혹감...

<리진>이라는 소설을 통해서 잠깐 다른 방식의 글쓰기를 시도했던 그녀가 다시 초기작으로 돌아왔네요.

지극히 “신경숙다운” 소설과 함께요...


철들기 시작한 딸들 중 “엄마”라는 이름에 가슴 아프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이 책은 모태로부터 시작된 자식들의 원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총 5장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엄마를 잃어버린지 일주일째다”.....

지독한 두통과 점점 잃어가는 기억들, 수시로 찾아오는 통증을 숨기고 노부부는 자식이 있는 서울로 올라옵니다.

예전의 우리네 아버지들의 발걸음.

아내와 같은 속도로 함께 나란히 걸어가는 게 마치 무슨 대단한 흉이라는 되는 냥 성큼성큼 앞서 갑니다.

자식들의 마중을 마다하고 지하철을 탄 남편의 등골이 순간 오싹합니다.

글조차 읽지 못하는 그 아내가 열차를 타지 못했던 거죠.

성급히 남편은 남영역에서 되집어 전철을 타고 서울역으로 향합니다.

그러나 아내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렇게 4명의 다 큰 자식들은 속수무책으로 어미를 잃습니다.

 

각각의 장은 큰딸, 맏아들,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다시 큰딸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큰딸의 이야기는 “너(2인칭)”의 시점으로, 맏아들의 이야기는 “그(3인칭)”의 시점으로, 아버지의 이야기는 “당신(2인칭)”의 시점으로, 그리고 어머니의 이야기는 “나(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엄마를 찾는 전단지를 만들기 위해 모인 가족들은 서로에게 긁힌 상처를 드러내며 새로운 상처를 만듭니다.

그들에게 던져진 화두 두 가지!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나?”

“엄마가 홀로 남겨지고 있을 때 나는 무엇을 했는가?”

이제 그들은 전단지를 보고 연락한 내용을 따라 엄마를 찾아 헤맵니다.

그들이 찾아간 곳은 예전에 그들의 첫 직장이 있었던 곳이고, 본인 명의의 첫 집을 장만했던 곳 등, 모두 그네들의 흔적이 스친 곳이기도 합니다.

엄마는 정말 그 곳을 다녀갔던 걸까요?

파란 슬리퍼에 뼈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상한 발을 끌고...


우리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엄마에겐 사연이 없다고... 엄만 그냥 처음부터 엄마일 뿐이라고...

어쩌면 이해할 마음조차도 미처 갖지 못할 만큼 자식으로서의 이기심이 너무 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엄마에게도 돌아가 편히 쉬고 싶은 집이 있었을 테고, 그리고 그 엄마에게도 무릎을 베고 누우면 다독여 줄 엄마가 일평생 필요했을 거라는 걸, 우리는 정말 알고 있었을까요???

그런 엄마가 어느 날, 우리들에게 말합니다.

“나는 이제 갈란다... 잘 있으시오”


엄마를 잃어버린 지, 9개월째...

작가인 큰딸은 이탈리아 성 베드로 성당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녀는 그 곳에서 여동생의 편지를 떠올리며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 앞에 섭니다.

“....... 엄마는 엄마가 할 수 없는 일까지도 다 해내며 살았던 것 같아. 그러느라 엄마는 텅텅 비어갔던 거야. 나는 엄마처럼 못 사는데 엄마라고 그렇게 살고 싶었을까?......”
감히 누가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까요?

“엄마니까....엄마란 다 그런 존재니까....”

저는 죽어도 이렇게 말 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소리조차 죽이며 흐느꼈던 내 어미의 아픈 통곡과 내 손을 붙잡고 놓지 않던 내 어미의 거친 손이 지금 저를 여기에 있게 했으니까요...

결국,

이 책은 또 제 이야기이기도 한 셈이네요.


피에타 상...

죽은 예수를 품에 안고 고통과 절망의 순간을 이겨내고 있는 성모 마리아.

어미의 무릎, 제 2의 모태 속에서 아들은 드디어 평온을 맞이합니다.

어미의 손길이 스치기만 하면 이제 모든 고통과 절망은 사라져 흔적도 없어질 테죠.

비로소 모든 잃은 생명 또한 비옥해져 싹이 틀 것이며 자라나 열매를 맺게 될 겁니다.

내 어머니...

어미의 생명은 그렇게 나에게로 옮겨옵니다.....

아무래도 저는 이제 제 자신에게도 말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엄마를 부탁해...” 라고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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