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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1.11 <세계의 끝 여자친구> - 김연수
읽고 끄적 끄적...2009. 11. 11. 06:18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나?
아님 "기억" 혹은 "추억"들에 대한 오마쥬?
누군가는 자신이 계획했던 그대로의 삶을 살아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항상 변수와 의외성에 의해
어쩌면 임기응변의 가지를 늘리며 살아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독한 건,
오래 기억에 담기기 때문에...
그래서 때로 살을 저미게 하고
때로는 현실 속에서 다른 세상을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 아닐까?
사랑은 하는 순간에도 환상 속으로 걸어가는 거지만
끝나는 순간부터도 여전히 환상 속의 걸음마다.



"상실감 앞에선 기억 따위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고 했던가?
묵묵히 다가오는 9편의 단편들의 무게감에 어깨가 묵직하다.
따지고 보면 문제작들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 개인적인 일들에 대한 기록.
익숙한 결험도 흔한 이야기도 사실은 아니다.
그런데도 "평범"한 우리네 일상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일종의 "데자뷰" 현상까지...
억지스럽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김연수라는 남성 작가에게
여성성에 대한 데자뷰가 있었던 모양.
그의 감성은 연했고 다정했고 그리고 부드러웠다.



18세의 찬란한 소녀를 향해
"여름 바다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늙어가고 있었다"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사람
(<기억할 만한 지나침>의 시작)
모든 일에는 흔적이 남게 마련이라는 단편 세계의 끝 여자친구>
한 일들은 마음에 남는 게 하나도 없는데
안 한 일들은 해봤자였다고 생각하는데도 잊히질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
하지도 않은 일들이 잊히지도 않는다고...
작가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이주 노동자의 떠듬떠듬한 한국어 발음처럼
어쩐지 생경하다.
그러나 그 생경함을 충분히 이해하게 만드는 낯선 친근함!!!
"김소진"의 글들이 생각났다.
우리 곁에 더 오래있었으면 참 좋았을 소설가 김소진을...
왜 그가 떠올랐을까?
그 수수께끼에 대한 대답을 찾아봐야 겠다.



<달로 간 코미디언>
붕괴와 상실로 실종되는 인간의 삶.
바보스런 슬랩스틱 코미디 안에 갇힌 인간의 삶이
문득 서럽고 처연하다.
아버지가 스스로 선택한 실종을 바라보며
딸은 그 사막 속에서 다시 아버지를 조우하게 될까?
한쪽 끝을 건드리면 다른 한쪽 끝이 열린다고 하는데...
새롭게 열리는 그 끝을 보면
아마도 작가는 모든 연결되는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세계"라는 건 결국
나와 너, 우리에 의한 소통이라는 것.
세계를 거부하겠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소통"의 끈을 끊으면면
모든 것은 거부된다.
밑바닥만큼 처연한 끝이라는 자리...
다시 시작되는 끝이라면 오히려 다행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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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 봤어 :
두 사람은 서로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는 고독 속에서 몇 달을 보내야만 했다. 고통을 피하려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므로 때로는 고통을 피하려고 스스로 죽기도 한다. 해피에게는 아이없이 살아가는 삶이 가장 큰 고통이었다. 그럼에도 계속 살아가겠다고 마음먹게 되는 건, 희망을 찾은 게 아니라 희망을 버렸다는 뜻이었다. 그 사실만은 남편과도 공유랄 수 없었다.

해피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지나가고 난 뒤에도 저 불은 우리의 예상보다 좀더 오랫동안 타오를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 안에서. 내부에서. 그 깊은 곳에서. 어쩌면 우리가 늙어서 죽을 때까지도. 이 우주의 90퍼센트는 그렇게 우리가 볼 수 없는, 하지만 우리에게 오랫동안 영향을 미치는, 그런 불들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물론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그 불들을 보지 못하겠지만.

세계의 끝 여자친구 :
마흔세 살이란 이런 나이야. 반환점을 돌아서 얼마간 그 동안 그랬듯이 열심히 뛰어가다가 무득 깨닫는 거야. 이 길이 언젠가 한번 와본 길이라는 걸, 지금가지 온 만큼 다시 달려가야 이 모든 게 끝나리라는 걸. 그 사람도 그런 게 지겨워서 자살했을 거야.

웃는 듯, 우는 듯, 알렉스, 알렉스 :
수많은 첫 문장들. 그 첫 문장들은 평새에 걸쳐서 고쳐지게 될 것이다. 그들이 어디를 가느냐에 따라서... 그러부터 인생은, 쉬지 않고 바뀌게 된다. 우리가 완벽한 어둠 속으로 들어가기전까지 이야기는 계속 고쳐질 것이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제 그가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서 첫 문장은 달라질 것이다. 그는 어둠 속 첫 문장들 속으로 걸어갔다.

달로 간 코미디언 :
보지 못하게 되면서 시각적 세계가 사라졌듯이 그 시각적 세계 안에서 자신의 몸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존재, 투명인간의 존재, 유령의 존재가 됐다는 걸 알아차렸다.
내가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내가 마치 거기에 없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마주 앉아 있어도 내 얼굴을 보지 않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어차피 나는 앞을 볼 수 없으니까. 그 말은 어차피 남들이 나를 볼 수 없으니까, 라는 말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내 존재 자체가 사라져요. 시각장애의 핵심은 내가 사라진다는 점입니다. 보여져야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슬픔은,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잇다면, 견뎌질 수 있다.
                                                                                        -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김연수 (작가의 말) :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에 회의적이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오해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 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네가 하는 말의 뜻도 나는 모른다, 라고 말해야만 한다.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앙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잇는 것으로만든다. 그러므로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게 핵심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