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끄적 끄적...2013. 1. 18. 08:29

1년에 한 번씩 내가 근무하는 영상의학과는 1박 2일로 workshop을 간다.

2012년 한해동안은 JCI 인증과 국내 인증 때문에 여러가지로 지치고 힘들었을 직원들이라

이번 workshop은 특별한 이벤트 없이 진행할 예정이다.

개원했을 때만해도 8명이었는데

어느새 영상의학과 우리과 직원이 25명 정도가 됐다.

그동안 들고 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개원멤버가 아직 6명이나 남아 있어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직원이 많이지면서 알 듯 말듯한 직원도 생겼고

심지어는 한 번도 같이 일해보지 못한 직원들도 있다.

(특히 나처럼 초음파실에서 10년 넘게 있는 근무하고 있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래서 이번 workshop의 컨셉은 "Who Are You?"로 정하고

직원들이 각자 만든 PT로 멋진(?) 자기소개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참신한 아이디어와 멋진 PT 능력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자기소개서를 기획하고 공표했더니 의외로 어려워 하는 눈치다.

부담갖지 말고 자유로운 형식으로 만들라고 했는데도 난감한 모양이다.

이해된다.

나를 들여다 보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니까.

쏙스럽기도 하고 유치하기도 하겠지만

아마도 오랫만에 "나"라는 사람의 이력에 대해 짧게라도 살펴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나도 잠시 나를 생각해봤다.

(아마도 내가 1순위로 발표하게 되지 않을까?)

이 병원 근무 13년차를 들어가면서 여러가지 생각들이 스쳐간다.

얼마나 더 이 병원에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니 왠지 묵직한 심정도 되고...

 

기억하자!

내가 지나왔던 자리를,

현재 내가 있는 이 자리를,

그리고 앞으로 내가 지나갈 자리를...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0. 5. 5. 12:27
지난 주말에 1박 2일(5월 1일 ~ 5월 2일)로 함평을 다녀왔다.
함께 책을 읽고 공부하는 팀에서
<나비의 꿈>이란 책을 읽고 계획한 여행이었다.
출발할 때는 워낙 먼 거리라 조금 걱정스럽긴 했지만 역시 다녀오길 잘한 것 같다.
책으로만 읽은 것과
실제로 내가 눈으로 보고 온 것과의 차이는 확실히 다르다.
체감(體感)이라는 거 어떤 의미인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온 동네가 전부 나비로 뒤덮여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대략 6시 시간 정도 걸려 드디어 도착한 팬션.
"황토와 들꽃세상"
폐교를 중심으로 한옥식으로 지은 작은 황토방이 주변경관과 아주 잘 어우러져 있다.
자연학습장처럼 꾸며놓은 팬션은
옛스런 정취와 함께 많은 볼거리를 제공했다.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꽃들이 천지다. 더불어 초보자의 카메라도 무지 바빠진다)
가족 단위로 여행 온 사람들이 많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따뜻하고 흐뭇했다.



함평은 나비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는 모든 곳들이
보랏빛 패랭이꽃 천지이다.
바닥에 납짝 엎드러있는 겸손한(?) 패랭이꽃 무더기를 보는 건 신선한 경험이었다.
팬션 안에도 역시 패랭이꽃과 여러 종류의 작은 들꽃들로 가득하다.
제비꽃, 할미꽃, 초롱꽃...
허리 굽은 할미꽃이 지면 민들레와 비슷한 모습이 된다는 걸 이곳에서 처음 봤다.
녹조로 가득한 연못이며 키 큰 대나무 숲과 산책로.
고요한 마음으로 찬찬히 할 걸음씩 걸을 수 있는 평화를 선물받은 느낌.



팬션 주변을 다니면서 참 많은 사진을 찍었다.
시간이 늦어 나비축제에 입장할 순 없었지만
팬션의 풍경을 보는 것 만으로도 여행의 피로가 가시는 느낌이다.
이런 풍경들...
얼마나 오랫만에 두 눈에 담아 보는지...
혼자서 많이 애뜻하고 다정해했다.



여행의 첫 날,
작은 꽃들과 평온한 풍경과 인사하느라 내 눈은 바빴다.
피로와 낯섬과 고단함이 슬며시 자리를 물러난다.
어쩌면 이곳 사람들은
성공한 축제를 잘 유지하기 위해 이렇게 열심히 가꾸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비 = 희망"
그들이 만든 키워드는 그렇게 시간을 두고 가꿔지고 숙성되고 있는건지도...
풍경에 빠져 나는 그만 마음이 후해지고 말았다.



내게 에피타이저의 유혹은
이렇게 강렬하고
그리고 아주 은밀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4. 21. 06:31
일  시 : 2010. 04. 17. ~ 2010. 04.25.
장  소 :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극  본 : 노시노부 코죠우
연  출 : 류주연
출  연 : 남명렬, 예수정, 김정영, 오일영, 장용철, 권지숙, 김원진, 신용진, 신용숙,




"잠들지 못하는 아빠와 일어나지 못하는 나 중에서 어떤 쪽이 더 불행해?"
어느날 딸이 이런 질문을 한다면,
아빠는 어떤 대답을 딸에게 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그 딸이 이미 3년 전 무참히 살해당한 딸이라면?
연극 <기묘여행>의 시작은 이렇다.
자신의 베개가 있어야 잠을 잘 수 있는 아빠와
꼭 그 자명종 소리여야만 잠에서 깰 수 있는 딸의 실랑이는
차라리 마음이 들뜨게 만들고 심지어 다정한 모습에 귀엽성까지 느껴진다.
그러나 여행의 비일상을 이야기하면서 여행가방을 정리하는  아빠의 가방 속에
청테이프, 로프, 염산, 드릴, 전기톱이 하나씩 등장하면
극은 분위기는 묘한 반전을 이룬다.
그래, 정말 이 여행은 <기묘여행>이 되겠구나...

 

연극 <기묘여행>의 원작은 2004년 일본의 토시노부 코죠우가 쓴 작품이다.
살해당한 딸의 부모(남명렬, 예수정)와 딸을 죽인 청년의 부모(오일영,김정영)가 만나서
사형이 확실시 되고 있는 살인자의 면회를 위해 함께 교도소를 찾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극에선 묘하게도 살인의 동기나 정황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아무래도 의도적인듯...)
그러니까 딸의 아버지는.
지금 여행가방을 싸면서 혹시 있을 기회를 위해 철저한 복수를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그의 무거운 가방은 그래서 이제 의미가 부여된다.
기회가 왔을 때 절대로 실수해서는 안 되니까,
그 짧은 순간에 가능한 모든 방법 중 한가지를 확실하게 선택해야 성공시켜야 하니까...
반대로 가해자의 부모는 지금 "희망"을 간절히 소망하고 있는 중이다.
항소를 포기한 아들에게 "살아야만 속죄도 할 수 있다"고 설득하고
가능하다면 피해자 부모가 아들에게 이 말을 해주시길 간곡히 부탁한다.
(그것도 여러번...)

이들의 1박 2일의 여정은
지금 방금 이렇게 시작됐다.
죽이려는 자와 살리려는 자의 동행...
  

 

우리나라 무대 배경은 일본의 배경과는 많이 다르지만
무대 뒤를 따라 둥그렇게 나 있던 길과 분위기 따라 달라지던 스크린 배경은
때론 아름답기도, 때론 섬득하기도 하다.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살인과 사형제도에 대한 이야기.
그러면서도 왠지 이질감과 동감을 동시에 주는 코믹한 설정들과 대사들.
교도관이었을때 사형집행 경험이 있다고 말한 코디네이터 "테라하라"의 한 마디가 귀에 선하다.
"인권이 도대체 뭡니까?"
연극은 피를 토하듯 섬득하면서도 평화롭고 고요하다.
이들을 감싸는 묘한 기운에 나는 평온함마저도 느낀다.
그러나 진짜 그럴까?
"눈 뜰 수 없는 난 너무 불행해!"
극에 나오는 모든 이들의 심정이 살해된 가오루의 심정과 같지 않았을까?
지금도 자신의 마음은 살의로 가득하지만 죽일순 없다고 말하는 아빠와
무표정한 얼굴로 사건을 지켜보다
살해자와의 면회에서 가오루를 돌려달라며 의자를 집어던지는 엄마 역시도
결국 눈 뜰 수 없는 사람들이었던 건 아닐까?
이들을 눈 뜨게 하는 방법은 아무래도 가오루라는 자명종 하나 뿐인지도...



이상하지?
난 아버지의 마지막 대사를 들으면서
깊은 감동을 느끼면서 동시에 참을 수 없는 살의를 느꼈다.
그리고 그 느낌의 시작은 딸이 아빠에게 들려주는 칼이 몸 속으로 들어오는 소리를 이야기할 때부터였다.
"뜨거운 물을 끼얹는 것 같이 뜨거워져서 소리가 났어!
 칼이 밀리는 소리, 피가 막 흘러나오는 소리.
 몸안으로부터 직접 들리는 우물거리는 이상한 소리
 어떤 악기로도 낼 수 없는 소리. 잊자마!, 아빠!"

혼(魂)인 딸의 대사가 끝나고
무대 스크린이 피가 튀듯 검묽게 변해가는 장면에선 "번쩍!"
휴즈가 끊겨버린다.
강렬하고 치명적인 뭔가가 가슴을 그대로 들이받는 느낌이다.
그래, 이제 이 말(馬) 위에서 도저히 유턴할 수는 없겠구나....

 <연출가 류주연>

살해된 딸 가오루의 아버지역으로 극의 전체적인 흐름을 끌고갔던
배우 남명렬 역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로
극의 마지막 부분을 꼽았다.
“살의로 가득하지만 도저히 죽일 수는 없다”
원혼(怨魂)인 딸 앞에선 복수하겠다 말하고 철저히 준비하지만 
결국 사형수 앞에선 무방비상태로 땀만 뻘뻘 흘리다 나오는 아버지.
인형을 찌르는 장면에서는 배우 입장에서 굉장히 연기하기 어려웠노라 그는 말한다.
더불어 관객들도 그 장면에서 배우가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까지도 전한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과 머릿속에 있는 풍경 중 어떤 게 진짜일까?”
당신이라면 이 질문에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연극 <기묘연극>
생명과 인간 존엄에 대한 이야기 이전에
어쩌면 나 자신에 대한 정확한 폭로인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09. 8. 4. 06:36

주말에 17명 가족 모두와 함께
다녀온 가족 여행
17명이 언제 또 다시 이렇게 모일 수 있을까 싶어
왠지 혼자 애틋했던 마음.



1박 2일 동안 묵었던 한옥팬션
급하게 구한 장소라 내심 걱정스러웠는데
의외로 깨끗하고 넓고,
그리고 창을 열면 확 트인 서해의 뻘을 볼 수 있어 좋았던 곳
또 무지 매섭고 독한 모기들...
내내 우리가 함께(?)했던 달과 오랫만에 본 잠자리
그리고 정말 백만년만에 찍어 본 단체 가족 사진.
(이 사진 한 장만으로도 이 여행을 충분히 너무나 큰 소득이 있었다... ^^)



함께 오른 전등사.
소담스럽고 아담하지만 이야기를 담고 있는 절
절 구석구석에서 만날 수 있는 작을 돌탑들.
탑들 위에 곱게 담겨있을 소원들. 바램들...
그 모든 간절함들...
(카메라 렌즈에 문제가 있어 사진이... ㅠ.ㅠ)



억겁의 세월 동안
전등사의 처마를 이고 있는 형벌을 받고 있는  여인
이 여인의 죄는 언제까지 유효한 걸까?
풍경 소리에 눈을 번쩍 뜨며
아직 남은 죄를 스스로 단죄하고 있을지도...



경내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부레옥잠
꽃의 선명함이 마치 거짓말 같아 당황스럽기도...
이곳의 물꽃들,
어쩌면 다 부처의 환생
그 한 조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도라지꽃, 들국화 그리고
보석같은 햇빛.
눈부시게 빛나는 기억으로 담긴
1박 2일 그 짧은 여행.



발이 푹푹 빠지는 뻘밭의 기억도,
참게를 쫒아 팔둑을 묻었던 기억도,
꼬물꼬물 옆걸음치는 참게의 기억도,
다 기억했으면....
오래오래 잊혀지지 않았으면....

얼굴에 미소 가득할 기억 하나 품다...
<가족>이라는 인연의 기억...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