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밤'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4.01.20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 - 정유정
  2. 2013.07.15 <28> - 정유정
  3. 2011.06.01 <7년의 밤> - 정유정
읽고 끄적 끄적...2014. 1. 20. 10:44

2007년 7월에 출판된 정유정의 소설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

참 독특한 이력을 가진 작가 정유정,

간호사로 현업에서 꽤 오랫동안 일을 했고, 건강보험 심사평가원에서 일하기도 했던 그녀는

이젠 완전히 전업작가가 됐다.

그것도 꽤 괜찮은...

아마도 직업적인 유사성때문에 더 관심을 갖게 됐는지도 모르겠지만

소재도, 이야기 구성도, 문체도. 표현도 참 좋다.

<내 심장을 쏴라>에서 시작된 정유정읽기는

<7년의 밤>으로 그리고 작년 <28>로 이어졌다.

세 편 다 소재가 너무나 달라서 깜짝 놀랐다.

이 이야기들을 쓰기 위한 취재들을 정유정은 어떻게 했을까?

상상력과 재능도 물론 탁월하지만

그녀의 글 속엔 발로 뛰어서 알아낸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생동감이 있다. 

정유정은 정말이지 천상 이야기꾼이구나 싶다.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

어쩌다 순서가 역행하긴 했지만 이 책 역시도 너무나 재미있고 흥미진진했다.

<내 심장을 쏴라>와 비슷한 호흡과 속도감은 두번째라고  제법 익숙해졌는지

나름대로 즐기면서 읽어나갔다.

그게 장점이자 단점.

아마도 세번째 장편 <7년의 밤>도 이런류의 소설이었다면

지금과 같은 정유정은 없지 않았을까 싶다.

이야기는 딱 "청소년"스러운 혼란과 무질서, 그러면서도 어른인척하는 아이스러움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깊이보다는 잠깐씩 느껴지는 번득임이 아주 신선했다.

정말 그렇다.

세상에는 자기가 그 입장이 되지 않으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진실이라는 게 있다.

그래서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는게 정답일지도 모르겠다.

이 아이들은...

시간의 변두리에서 만나질 수 있는 아이들이고

우리 역시 그 시간의 변두리를 지나왔다.

그때를 우리는 과연 기억할 수 있을까?

아직 한참을 더 커야만 어른이 되는 아이들인데...

그 아이들이 내게 무거운 화두를 남긴다

 

비.밀.

시간이 공간으로 이동하는 그 순간을

나는 "비밀"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 비밀의 시간에 귀기울이는 것.

그게 쓰는 이유고, 읽는 이유고, 살아내는 이유다.

정유정도, 나도!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3. 7. 15. 09:03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정유정의 소설을.

<7년의 밤> 이후 2년 3개월이라는 시간을 공들인 끝에 출판된 <28>

이런 참담한 이야기를 쓰느라고 그랬구나...

이 글을 쓰면서 그녀는 또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까,

그걸 생각하니 가슴 끝이 뭉클하다.

후반부로 갈수록 책을 덮고 큰숨을 쉬어야만했다.

이렇게 몸을 아프게 하는 책은,

책장을 넘기는 손끝조차도 떨린다.

이 이야기 끝을 알아야 할까?

나는 일말의 희망이라도 보게 될까?

유기견 보호소 드림랜드에서 나는 드림을 꿈꾸게 될까?

처음에 아이디타로드(Iditarod) 경주 부분을 읽을 때까지는

아! 색다른 이야기가 시작되려는구나 생각했었다.

이렇게 참담하고 아픈 이야기일줄은....

온통 눈으로 뒤덮인 시베리아 벌판에서 홀로 개썰매를 끌고 가는 심정이 되버렸다.

화양 28일의 엄청난 속도를 온 몸으로 감당하면서 나는 극한의 공포와 살의(殺意)를 느꼈다.

화이트아웃!

차라리 내게 어서 빨리 설맹(雪盲)이 찾아와주길 바라고 또 바랐다.

진심으로... 

이 뜨거운 불볕 도시 "화양"이 나를 완전히 연소시키기 전에!

무간지옥,

어떠한 구원도 머물지 못할 도시 화양.

나는 그곳에서 나를 지켜낼 수가 없었다.

 

원인체 규명도 되지 않은 '인수공통전염병'인 빨간 눈의 괴질.

받아들일 수 없는 사건은 엄청난 치사률을 보이며 살아 있는 사람들을 삼킨다.

포식의 본능은 단 한번도 쉬지 않고 야수의 그것처럼 맹렬하고 가차없이 물어뜯는다.

그리고 그 야수성에 조금도 뒤지지않고 자행되는 인간의 참상들.

그건 전염병으로 인한 죽음보다 더욱 끔찍하고 포악하고 야만적이었다.

인간들 스스로의 폭력과 증오에서 비롯된 죽음들. 죽음들, 죽음들!

...... 그날의 학살은 화양시내에 남아 있던 군인들의 손에서 시작되고 끝났다. 이후 화양은 콘크리트 덩어리와 시신만 우글대는 정글이 되었다. 빨간 눈은 지옥 불처럼 화양을 태웠다. 용케 불길을 피한 이들은 굶어 죽거나, 얼어 죽거나, 다른 사람들의 손에 죽었다. 약탈, 총질, 강간, 살인, 방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온갖 일들이 매일, 매 순간, 도처에서 일어났다. 서로 죽이고 죽고 분노하고 절망하고 공포에 떨며 고속으로 공멸해갔다. 남은 자들은 서로를 피해 가시 세계 밑에 숨어 지냈다 ......

작가 정유정이 이 이야기의 시놉을 쓴 건

구제역 파동으로 생매장당하던 돼지들의 살처분 동영상을 접하던 밤이었단다.

참담하고 슬프고 부끄럽고 두려웠단다.

그리고 그 뒤에 물음 하나가 남았단다.

"만약 소나 돼지가 아닌 반려동물, 이를테면 개와 인간 사이에 구제역보다 더 치명적인 인수공통전염병이 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 물음은...

결국 "울음"이 되버렸다.

 

모든 살아남고자 하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

'살아남고자 하는 것'이 야만의 "욕망"으로 치달은 세상.

정유정의 <29> 속엔 숨겨질 수 없는 지금의 현실과 사회가 적나라하게 담겨있다.

더불어 1980년대 광주의 참담함까지도 그대로 재현시킨다.

이 끝없는 오버랩.

(글 구성이 서로 오버랩되는 것도  작가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무간지옥의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남는 게 목표라면,

이 책을 덮어라!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은 모르는 게 낫다.

모르는 동안은 절망과 맞닥뜨리지 않아도 될 테니까.

만약 이 모든 것들과 맞설 각오가 되어 있다면.

이제 거침없이 책장을 열어라.

다섯 명의 인물(서재형, 한기준, 김윤주, 노수진, 박동해)과

세 마리의 개(링고, 스타, 쿠키) 중에 당신의 모습이 있다.

찾아라!

당신의 정체를!

 

들리는가!

살육과 살육이 범람하는 그곳에서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목소리가!

그들의 목소리가.

당신의 목소리가.

"살...려...주...세...요...!"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1. 6. 1. 06:38

사실 이 소설을 읽은지는 꽤 됐다.
2009년도 세계문학상 수상작이었던 정유정의 <내 심장을 쏴라>를 읽으면서도,
수리마을 수리정신병원 사람들에 완전히 넋을 잃고 빠졌었는데...
덕분에 작년에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연극으로 올려졌을 때도 놓치지 않고 챙겨 보기까지 했었다.
<7년의 밤>
정유정은 전작 <내 심장을 쏴라> 이후 일체의 작품 발표 없이 이 소설 집필에만 몰두했단다.
이 소설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괴물"이다.
섬득하고 무섭고 치밀하고 그리고 수시로 등골이 오싹해졌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분량이 꽤 되는데도 손에 잡은 순간 끝까지 읽어버리지 않고는 도저히 책을 놓을 수 없다.
"괴물"을 응시하는 내 눈길 속의 엄청난 몰입과 긴장감이란...
이런 세계를 만들어낸 작가의 머릿속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었냔 말이다.
근래 읽은 책 중에서 단연 최고다.
정말 오랫만에 책을 읽으면서,
내내 끝없이 숨막혀봤다.

지난 3월말 출판된 이 엄청난 괴물은 벌써 7만부를 돌파했다.
읽으면서도 계속 영화판에서 눈독을 들이겠구나 생각했는데
판권구매 제안서를 보낸 영화사만도 15곳에 넘었다는 후문이다.
결국 5월 12일 위더스 필름이 그 행운을 잡았다.
계약금 1억원에 5%의 런닝 개런티!
지금까지 한국소설 가운데 판권료가 가장 높았던 작품은
1억 5천만원에 판권이 팔린 공지영의 장편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이었는데 
(그것도 한창 한국영화가 잘 나갔을 2001년도에)
정유정의 <7년의 밤>은 러닝 개런티까지 포함하면 기존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셈이란다.
2편의 장편을 쓴 신진 작가에게는 확실히 이례적인 대우가 아닐 수 없다.
그만큼 원작에 대한 확신이 엄청나다는 반증인 셈이다. (그리고 이부분은 완전 동감이다.)
얼마전에 가상 개스팅 이벤트도 있었던 모양이다.
독자들이 원하는 주인공은 최현수 역에 송강호, 김윤석,
사이코패스 오영재 역에 이성재가 1위를 했단다.
이대로만 캐스팅이 된다면 꽤 괜찮은 물건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영화가 개봉되면 당장 달려가서 볼 1인 ^^)


개인병원 물리치료사였던 작은아버지는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작은어머니는 집주인으로부터 집을 비우라는 요구를 받았다.
일가족은 도망치듯, 산본의 한 아파트로 이사했다.
작은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산다는 게 알려질까 봐 전전긍긍했다.
내 사촌들은 나와 화장실조차 함께 쓰고 싶어 하지 않았다.
어쩌다 집 안에서 마주치면 비명부터 질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얼어붙었다.

끝나지 않았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내 인생은 세령목장을 나서던 밤에 이미 끝났는데.
내 이마에는 원죄라는 쇠뿔이 박혔고 아저씨는 나로 인해 떠돌이가 되었다.
세령호사건은 나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해도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내 삶도 변하지 않는다.

동네 여자 아이의 목을 비틀어 살해하고
여자아이의 아버지를 뭉치로 때려죽이고
자기 아내마저 죽여 강에 내던지 사람.
급기야 세령호 수문을 열어 경찰 넷과 한 마을주민 절반을 수장시켜버린 미치광이 살인마 최현수.
7년 전의 사건으로 세상의 도망자가 되어 철저히 숨어사는 아들 최서원.
문득문득 영화 <황해>가 떠오른다.
평범한 소시민의 어떻게 범죄에 내몰리는가를 보여준 그 영화가...
살인자로 세간의 지탄을 받는 최현수보다
아내와 딸에게 교정이라는 명목하에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한 아버지 오영제의 모습이 
나는 더 섬뜩하고 공포스럽다.
7년 전 그 밤!
오영제의 폭력이 없었다면 아마도 최현수의 교통사고도 없었으리라.
그리고 목격자도 없었을거고 
차곡차곡 파괴되는 삶도 없었으리라...

사건 속에 사건이 끝없이 맞물리면서
진실 속에서 또 다른 진실들이 밝혀지고 또 밝혀진다.
사이코패스의 그릇된 부성(?)은 복수라는 이름하에 한 아이의 삶을 7년간 수장시켜버린다.
(이런 삶이라면 도저히 삶이라고 명명하지 못하겠다.)
내가 알고 있는 게 정말 진실일까?
우리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일들은 과연 정말 끝난 게 맞는걸까?
책을 읽은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서늘하다.
내 과거도 어딘가에서 지금 계속되고 있는 건 아닐까?
문득 내 삶이 전부 끝없이 이어지는 몽유같다.
이 이야기는 확실히 나를 죄여온다.
천천히... 그리고 끊임없이...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