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ra'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3.10.18 Fira의 아침
  2. 2013.10.17 Fira의 Sun-set
  3. 2013.10.15 Santorini - 늦은 오후의 Fira
  4. 2013.10.14 산토리니(Thira) - 피라 (Fira)
여행후 끄적끄적2013. 10. 18. 08:55

새벽에 눈이 떠졌다.

창문 커튼 틈으로 수영장 물빛에 비친 청록색 하늘이 깨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구나...

해가 지는 모습은 그렇게 챙겨서 바라봤으면서

해가 뜨는 순간은 놓치고 있었구나...

세수를 하고 머리를 눌러쓰고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늦은 밤에 야간페리로 다시 아테네로 들어가야 하기에 Fira의 아침을 볼 시간이 지금밖에 없다는 절박함이

아직 어두운 Fira의 거리로 발을 옮기게 했다.

언제 이곳을 또 다시 오게 될까?

어쩌면 이런 센치한 감정도 한 몫 했을거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숙소를 나와 길 위에 발은 얹는 순간 텅 빈 "고요"와 대면했다.

꽤 늦게까지 북적거렸던 Fira가 완벽하게 비어 있었다.

조용하고 적막해서 먼 곳에서 부는 바람 소리가 귓가에 선명했다.

덜컥 무섬증이 일었지만 '언제 다시 볼게 될까...' 라는 생각이 나를 앞으로 걷게 했다.

골목길을 만난 깨어있는 불빛들.

낮익은 풍경들에게 짧게 작별을 고했는지도...

산토리니에 3박 4일을 머무르는 동안 이제 고작 Fira만 언급했을 뿐인데

지금 나는 Fira가 참 그립다.

포카리스웨트 광고때문에 로망이 된 Oia보다 나는 Fira가 훨씬 더 좋았다.

아마도 내가 산토리니를 다시 찾게 된다면 그건 순전히 Fira 때문일거다.

아직 어린 조카들이 있어서 그 유명한 와이너리 투어도, 볼케이노 투어도 결국은 못했지만

Fira에는 지치지 않고 걸을 수 있는 "길"이 있어서 내내 행복했다.

Fira의 그 길들이...

지금도 나는 사무치고 그립다.

 

이제 막 문을 열기 시작한 빵집에서 풍기는 고소한 빵냄새,

창가에 서서 파티쉐가 아침을 여는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 봤다.

고소하고 따뜻하고 부지런한 움직임.

뒤돌아선 파티쉐가 웃으며 윙크와 함께 손키스를 날린다.

나도 따라했다.

그냥 좀 고소해지고 싶어서...

피라 구항구(old port)로 이어지는 588 계단 앞에서는 잠Rks 망설이기도 했다.

내려가볼까? 아님 그냥 지나칠까?

결국...

내려가보기로 했다.

평소같았으면 사람이 없는 길은 궁금해도 가지 않는 편인데

이날 나는 좀 용감하과 과감해지기로 했다.

여행자니까... 그러나 마지막이니까...

 

구 항구로 이어지는 길은

원래는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갔다가 동키택시(Donkey Taxi)라는 당나귀를 타고 올라오는 길이다.

한 낮에는 이렇게 사람과 동키택시로 복잡하고 번잡한 곳이

텅 비어 있으니 완전히 다른 곳 같았다.

솔직히 말하면...

588계단은 내려가는 일은 그다지 운치있고 낭만적인 길이 아니었다.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당나귀들의 배설물을 피해다녀야했고

지독한 냄새때문에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연신 코를 쥐고 걸어야만했다.

'도대체 여기 왜 온거지?'

혼자 타박도 하면서...

(어떤 냄새를 상상하든 그 이상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결론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아무도 없는 구항구에서 혼자 아침바다는 독차지하는 기회가 쉽게 오는 건 아닐테니까.

예전에는 페리가 들어오는 주항구였는데

지금은 페리는 전부 신항구로만 들어오고

이곳은 볼케이노 투어 걑은 로컬 투어를 위한 배들이 주로 정박한다.

이른 아침이라 관광객은 보이지 않았지만

배를 손보는 현지인들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오르막이라 훨씬 더 힘들었지만

번호가 지워진 계단을 보는 것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bar 중 하나라는 프랑코스 바(Franco's Bar)를 보는 것도 참 좋았다.

(그 전날 이곳에서 차를 마실까 한참을 고민하다 혼자라서 포기했었는데 지금 그게 너무 후회된다)

언제나 반짝반짝 빛나는 Fira의 아침은 아주 단백한 수채화 같았다.

 

혼자 흐뭇한 마음으로 숙소에 들어갔더니 조카들이 나를 보너니 깜짝 놀란다.

이유는 하나!

지독한 냄새가 나서...

충분히 이해한다.

내 스스로도 오래 묵힌 두엄더미 위를 구르고 온 게 아닌가 싶었으니까!

후다닥 욕실로 들어가면서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피라의 낯과 밤, 그리고 아침을 모두 기억할 수 있게 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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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 끄적끄적2013. 10. 17. 08:11

이 여행은 눈(目)의 여행이었다.

그리고 눈으로 본 것들에 대한 기록이 끝나야 비로소 이번 여행도 끝이 날테다.

혼자 여행을 하면 생각들이 피어나는 걸 그대로 지켜보고 생각이 원하는대로 움직이게 하지만

조카들과의 여행은 또 그만큼의 눈높이와 키맞춤이 필요했다.

그래선지 잠깐잠깐씩 뜻하지 않은 혼자만의 시간이 생기면

(가령 동생과의 약간의 불화??? 아니면 다 잠들어있는 새벽 시간의 산책. 늦은 오후의 산보...)

혼자 내쳐 숙소를 나와 근방을 걷고 또 걸었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풍경.

Fira의 sun-set이 내겐 그랬다.

사람이 죽어 한을 남기면 그게 모두 붉은 놀이 된다는데...

그래서 놀빛이 붉을수록 죽은 사람이 한이 많다는 뜻이라는데...

평소같았으면 이 말에 동의했을거다.

그러나 이곳 Fira에서만큼은 절대 이 말에 동의가 되지 않았다.

Fira의 석양에는 흥겨운 축제의 뒷끝같은 묘한 흥분감이 느껴졌다.

포악한 그리움도 없었고, 곱씹는 후회도 없었고, 미래에 대한 기대도 없었고

단지 그 순간을 "바라보는 시선"만 남았다.

"view"라는 단어가 주는 "느림"의 의미를 golden street의 벤치에 앉아 오래 생각했다.

주변 여행객의 소란함도, 상점의 불빛도 모두 fade out 되버리는 것 같은 시간.

바다 위레 떨어지는 해와

붉게 물드는 하늘.

그리고 그걸 처음부터 끝까지 목격하는 나.

세상이 오직 이 세가지로만 이루어진 것 같다.

마치 꿈 없는 잠 속에 빠져있는 느낌.

잠의 힘은,

참 쎄다...

 

물이 있는 풍경은 사람을 착하게 만든다는데,

내가 지금 착해지려는 중인가?

풍경은 그대로 반사판이 되어 나를 되비춘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고...

사실은,

되묻고 싶었다.

아직 더 생각해야 하느냐고...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3. 10. 15. 07:50

유명한 만화 영화 <아스테릭스>에 나오는 오벨릭스<obelix)의 이름을 따서 만든 수블라키 전문점.

책자를 통해서도 여행자를 통해서도 참 많이 들었던 음식점이다.

피라 버스 정류장에 근처에 있는 "오벨릭스"에서 산토리니에서의 첫 식사를 주문했다.

그리스셀러드와 치킨수블라키와 포크수블라키.

수블라키(Soublaki)는 그리스식 케밥인데

꼬치에 끼운 고운 고기를  빵과 타치키(Tzatzili)라는 소스와 함께 먹는 음식이다.

타자키는 마늘, 오이, 허브를 넣어서 만든 그리스 전통 요커트로 

신맛이 강하지만 깔끔한 뒷맛이 있어서 고기의 느끼함을 잡아준다.

신선하고 달콤한 그리스 야채가 듬뿍 들어간 수블라키는

포크수블라키가 좀 질기긴 했지만 치킨수블라키는 아주 맛있었다.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했던 건 "그리스 샐러드"

햇빛이 좋아서 그런지 이곳의 야채는 단맛이 강하고 종류가 다양하다.

토마토, 오이, 피망, 올리브와 갖가지 야채에 두툼한 페타치즈가 덩어리째 올려져 나오는데

짠 맛이 강한 이 치즈가 참 묘하게 중독성이 있다.

그래선지 산토리니에 머무르는 동안 어느 식당을 가든 그리스 샐러드는 꼭 주문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실패하 적이 없을만큼 탁월한 메뉴였다.

지금도 제일 생각나는 게 바로 이 그리스 샐러드!

야채의 신선함과 페다치즈의 고소함, 그리고 올리브 기름의 단백함까지 꿈처럼 내내 그립다.

이렇게 그리울 줄 알았다면 그때 더 많이 먹을걸 그랬다.

 

저녁을 먹고 둘러본 해저물 무렵의 피라.

눈부신 한낮의 피라와는 또 다른 모습이 내 앞에 펼쳐진다.

한 낮의 태양 빛을 햐얀 건물 외벽이 그대로 품고 있다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뿜어내는 것 같다.

무방비 상태로 빛의 폭격 속에 노출되는 기분이란!

풍경 속에서 사람이 이렇게까지 몽롱해질 수 있다는 걸 온 몸으로 체감한 순간이다.

시간도 공간도 일시에 경계가 허물어져버리고...

그렇구나!

이곳 피라는,

햇살이 품은 비밀을 다 알고 있는 곳이구나... 

 

저물녁의 Fira

한 낯의 짱짱한 햇빛이 서서히 바람에게 자리를 내준다.

이때부터 바람속을 이리저리 거니는 소풍(逍風)의 시간이 시작된다.

늦은 오후의 피라는 그렇게 내게 작은 설렘을 안겨줬다.

아주 단순하고 정직하게 기억들이

피라의 석양 속에 하나씩 풀어져 나오려고 한다.

이 기억들을 나는 어떻게 할까?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3. 10. 14. 08:06

그리스의 환성의 섬 "Santorini"

공식 명칭인 "Thira"보다 산토리니로 더 알려진 이곳은 결혼하는 사람들이 신혼여행으로 가장 가고 싶어하는 곳이기도 하다.

면인들의 섬인 이곳을 조카녀석들과 정말 용감하게 다녀왔다.

아테네에 피레우스 항구에서 아침 7시 10분에 출발하는 고속페리.

여행 계획을 세울 때 비행기를 이용할지 페리로 갈지를 두고 꽤 오래 고민하다

그러다 좀 힘들어도 조카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시켜주고 싶어서 산토리니로 들어갈 때는 고속페리로

나올 때는 야간페리 침대칸을 선택했다..

혹시 배멀미가 심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바다가 잔잔해서 약간 울렁거리는 정도로 그쳤다.

이번 여행에서 날씨가 참 많은 도움을 줬다.

맨 앞자리 좌석이라 창으로 밖이 잘 보이겠구나 싶어 좋아했는데

그 자리가 하필이면 여행객들의 짐을 올려놓는 곳이었다.

정말 야무지게 차곡차곡 가려지는 시야를 보면서 참 여행객이 많구나... 생각했다.

하긴 나도 지금 여행중이니까!

 

신항구 Athinios port에서 내려서 Fira로 가기 위에 로컬버스를 탔다.

굽이굽이 산길을 넘는 버스를 통해 바라보는 풍경은 정말 꿈결 같다.

방금 내가 내렸던 페리에 산토리니를 떠나는 사람들이 타는 모습과

더 먼저 떠난 페리가 남긴 비행운같은 물결의 흔적들.

아마 그 순간이었을거다.

이 여행에서 처음으로 여행자의 마음이 됐던 게!

아마 나는 그때 그 물결속에 풀어졌던 건지도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무심한 마음을 가지기 시작한 것도...

 

Fira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서 지도를 보고 숙소를 찾아갔다.

지금도 신기한 게 난 결코 지도를 보고 길을 찾는 그런 종류의 인간이 아니다.

그게 코 앞의 길일지라도...

그런데 지도를 보고 찾아갔다!

조카들의 말똥말똥한 눈망울이 그걸 가능하게 하더라.

산토리니는 어디를 가든 꼭 Fira 버스정류장에서 로컬버스를 타고 이동해야만 하는데

다행히 숙소가 이 버스 정류장에서 그리 멀리 않은 곳에 있었다.

탁 트인 호텔 앞 뷰도 너무나 좋았지만

문만 열면 바로 수영장이라 조카들이 너무나 좋아했다.

도착하자마자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풍덩!

게다가 길만 건너면 바로 "카르푸"라서 그것도 너무 좋았다.

(3박 4일 동안 참 알뜰하게, 자주 이용했던 곳!)

 

그리스는 바다를 가를듯 쑥 밀고 들어간 곳이라서 늘 거센 바람이 그칠 줄 모른단다.

그 바람이 포도와 오이, 올리브를 익게 만들고

종을 치는 사람이 없어도 교회 종탑에서 종이 울리게 한다.

산토리니를 다니면서 정말 많이 봤던 종탑들...

때로는 교회였고, 때로는 음식점이었고, 때로는 묘지이기도 했던 곳.

그러니까 이곳들이 모두 바람이 드나드는 길이었던거다.

산토리니가 메마르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섬 도처에 바람의 통로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 바람 속에 물의 기운도 함께 이동하기 때문에...

뜨거운 지중해의 햇살을 감당할 수 있는 이유가 이 바람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여행에서 아크로폴리스에 이어 두번째 대면한 "바람")

 

초등학생 조카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다보니 아무래도 무리하게 움직일 수 없어서

도착 첫날은 피라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걸로 만족했다.

(페리 보딩때문에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부산을 떨었던 탓에...)

그리스의 섬들이 다 그렇겠지만 이곳 산토리니의 피라는 "햇살"이 유난히 좋았다.

눈을 뜨고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기가 힘들만큼 강렬했지만

그 강렬함은 주변을 넓고 부드럽게 감싸안는 포근함이었다.

어쩐지 피라의 햇살 속에 서있으니 나까지도 말갛게 행궈지는 기분이다.

조카들의 웃음소리도 발랄하게 사방을  뛰어다닌다.

하늘을 보는 것도, 바다를 보는 것도 눈부시게 예뻐서

이곳에서라면 풍경 속에 한 입에 삼켜져도 진심으로 행복할것 같았다.

하얀 풍경 속에 서 있어보니 

왜 흰색이 무채색인지 정확히 알겠다.

흰색은 주변의 색에 쉽게 흡수되고, 주변의 색에 쉽게 번진다.

흰색이 눈부신 건 아마도 그래서가 아닐까?

하얀 건물이 뿜어내는 햇살의 빛남은

그 어떤 보석의 반짝임보다 화려하고 눈부셨다.

아마도 그 순간이었나보다.

"햇살"을 향한 불같은 질투가 시작된 게!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