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3. 8. 30. 08:23

<Thrill Me>

일시 : 2013.05.17. ~ 2013.09.29.

장소 : The STAGE

대본,작사,작곡 : 스티븐 돌기노프

연출 : 쿠리야마 타미야

무대 : 이토 마사코

조명 : 가츠시바 지로

출연 : 오종혁, 박영수, 신성민 (나-네이슨)

        정상윤임병근, 이동하 (그-리차드) 

        신재영, 곽혜근 (피아니스트)

제작 : (주)뮤지컬해븐, CJE&M

 

드디어 기대했던 정상윤, 오종혁 페어의 <쓰릴미>를 봤다.

좋은 자리는 꿈도 안 꿨었는데 왠일인지 두번째줄 가운데 자리가 예매됐다.

(예매하면서도 혼자 깜짝 놀랐다 )

어쩌다보니 벌써 일곱번째 관람이고, 시즌2는 네번째 관람이다.

시즌2의 키워드는 배우 정상윤!

최고의 네이슨을 보여줬던 정상윤이 역할을 바꿔서 시즌2에서는 리처드로 무대에 선다. 

네이슨을 속속들이 너무나 잘 아는 리처드의 등장!

목격"의 이유가 너무나 충분했다.

오종혁이 정글로 떠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두 페어의 시작이 뒤로 밀린게 야속할 정도다.

게다가 회차도 그리 많지 않아 사람의 근성을 쓰릴하게 자극한다.

 

공연장 입구에서 어셔에게 피아니스트가 누군지 물었다.

신재영이란다.

혼자 생각일지는 모르겠지만 신재영과 정상윤은 서로 호흡을 공유하는 것 같다.

서로가 서로의 연주와 연기를 읽으면서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

그래서 정상윤과 신재영이 만나면 훨씬 더 집중이 잘돼고 감정이입도 잘된다.

그러니 오늘 공연...

기대해도 충분히 좋겠다!

 

정상윤과 오종혁.

일단 두 배우 모두 너무나 영리했다.

특히 시간의 공백을 이용한 건 다른 페어들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다.

몇몇 장면에서 두 배우 전부 대사 사이의 텀을 일부러 길게 끄는데 개인적으로 아주 좋았다.

오종혁 "나"는 정상윤 "그" 앞에서 천진한 아이 같다.

"그"가 곁에 있어만 준다면 뭐가 됐든 다 감수하면서 행복을 느낄 그런 사람처럼 느껴진다.

극이 진행될수록 오종혁의 "나"에 점점 폭풍 몰입된다.

초반엔 목소리톤이 너무 작아 주춤했는데 의도적이었던 것 같고

후반부로 갈수록 강단있고 집요하고 간절해진다.

"Nothing like a fire"에서 표정도 좋았고 감정도 좋았고 마지막 장면 미소도 아주 좋았다.

"My glasses"에서는 정상윤에게 밀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아주 짱짱하고 팽팽했다.

"정글의 법칙" 때문에 쌔까맣게 탄 모습만 빼면 전체적으로 아주 좋았다.

법을 공부하는 뛰어난 인간"으로 보이는 게 아니라 왜소하고 볼품없는 농촌총각처럼 보여서...

(솔직히 이건 대략 난감하더라)

 

나는 이 작품에서 타자기 소리를 많이 의식하는 편인데

정상윤은 확실히 타자기라는 소품을 의도적으로 잘 이용한다.

아마도 협박편지 줄 수까지 계산해서 타자기를 움직이는 것 같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이런 디테일에 신경쓰는 배우가 의외로 적다.

이 작품만해도 단 한 번도 타자기 줄을 바꾸지 않는 배우들이 꽤 많다.

계약서도 그렇고, 협박편지도 그렇고 분명 한 줄이 아닌데...

게다가 정상윤의 타자기 소리는 일종의 대화같다.

감정과 상황를 계산한 리듬이라는 게 확연히 느껴진다.

정상윤의 리처드.

이마를 보여서 그런지 살이 좀 찐 것 같은 둔한 느낌이라 솔직히 처음엔 놀랐다.

(왜 "리처드"는 가르마를 타서 꼭 이마를 훤히 보여줘야만 하는 걸까? 이거 좀 탈피하면 안될까???)

연기도 기대와는 다르게 의외로 평범하게 가는구나 싶었는데

극이 진행될수록 정상윤의 진면목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젠틀한 싸이코를 보는 느낌.

살짝 중년의 포스가 풍기긴 했지만 감정도 표정도 아주 좋았고 목소리톤과 움직임은 은근히 섹시하다.

(<쓰릴미>에 농촌총각과 섹시한 중년이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의 표현이 너무나 좋았더라는...)

그동안은 몰랐었는데 정상윤의 "fear"를 들으면서

"그"가 "나"를 이용만 했던 게 아니라 진짜 사랑도 했었구나 알게 됐다.

정상윤의 "fear"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두려워하는 모습을 끝까지 보이지 않겠다는 다짐이 담겨있다.

그 장면에서 정상윤 "그"가 보여준 눈물!

이건 아무래도 기억에 아주 오래 남을 것 같다.

한 번도 생각한적 없었다.

"fear"에서 "그"가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게 되리라는 걸. 

확실하다!

이건 "나"의 일방적인 감정이 아니었던거다.

"그"의 동조와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던거다.

어쩌면...

이 작품에서 정말 비극적인 인물은 "그"인지도 모르겠다.

정상윤, 오종혁!

이 두 사람이 <쓰릴미>를 완전히 다르게 보고 느끼게 만들었다.

 

신재영의 피아노 연주는 정말 끝장이었고

신재영과 정상윤 두 사람은 서로 교감하는게 확실히 맞는 것 같다.

이날도 이 둘은  제3의 배역을 만들어냈고

그 제3의 배역은 때로는 해설자로, 때로는 지켜보는 시선으로 충실히 작품에 참여했다. 

오정혁, 정상윤, 신재영.

이 세 사람이 이번 시즌 최고의 <쓰릴미>를 내게 선사했다.

(피아니스트도 배우들처럼 스케쥴을 미리 공지해주면 정말 좋겠다.)

다시 이 셋이 만드는 <쓰릴미>를 보고 싶은데 문제는 내 시간이 없다는 거!

아마도 정상윤은 다음 시즌에도 "그"로 출연할 게 확실하니 다음번을 기다려보자.

 

<쓰릴미>는 정상윤이고, 정상윤은 <쓰릴미>다.

적어도  이건 내게 있어선 완벽한 공식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3. 6. 7. 08:30

<Thrill Me>

일시 : 2013.05.17. ~ 2013.09.29.

장소 : The STAGE

대본,작사,작곡 : 스티븐 돌기노프

연출 : 쿠리야마 타미야

무대 : 이토 마사코

조명 : 가츠시바 지로

출연 : 정상윤, 전성우 (나-네이슨) / 송원근, 이재균 (그-리차드) 

        신재영, 곽혜근 (피아니스트)

제작 : (주)뮤지컬해븐, CJE&M

 

드디어 <Thrill Me>가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정상윤의 "나"를 볼 수 있게 됐다.

2011년 충무아트홀 블랙에서 네번째로 공연이 올려졌을때 김재범과 장현덕 공연을 보고 맘을 접었었다.

그래서 그 이후에 들어간 정상윤의 "나"까지 접어야 했다.

그 이후에 연출가의 망언(?)때문에 불매운동까지 벌어지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 좋은 작품이 구설수에 오르는 걸 보는 건 참 아픈 일이었다.

결국 2011년 공연은,

작품은 작품대로, 배우는 배우대로, 관객은 관객대로 온통 상처뿐인 공연이 되버렸다.

아마도 <쓰릴미> 역사상 가장 thrill한 사건이 아니었을까 싶다.

다시 돌아온 <쓰릴미>가 그래서 걱정스러웠다.

한때 나는 이 작품을 1년 365일 매일 공연하는 전용극장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딱 <그날들>의 강태을 심정 ^^)

2008년 충무아트홀 초연 공연을 빼고는 매번 관람했는데

그때마다 정말 좋은 작품이구나 수없이 생각했었다.

다시 신촌 스테이지로 돌아온 <쓰릴미>는 일본의 스텝들이 대거 참여했다.

연출, 조명, 그리고 무대 디자인까지.

쓰릴미의 미묘한 질감은 쿠라야마 타미야는 도대체 어떻게 해석하고 풀어냈을까?

배우들은 과연 그걸 또 어떻게 이해하고 표현했을까?

궁금했다. 아주 많이...

 

혼자 정했던 첫관람의 원칙이 있다.

꼭 정상윤의 "나"를 먼저 보겠다는 원칙!

개인적으로 <쓰릴미>에서 "나"를 가장 잘 표현한 배우가 정상윤이라고 생각한다.

찌질하면서도 은밀하고 그러면서도 어떤 때는 저돌적이고 치밀한 "그"를 배우 정상윤은

특유의 섬세함 연기와표정으로 정말 잘 표현한다.

그래서 내겐 쓰릴미와 정상윤은 일종의 동의어 관계인 샘이다.

다시 돌아온 <쓰릴미>의 정상윤 네이슨은,

역시나 너무 좋았다.

더 섬세해졌고, 더 남성적이었고, 더 치밀하고 완벽했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정말 압권이다.

한숨과 함께 옅은 미소를 띄우며 마지막 "쓰릴미"로 되뇌는 정상윤의 나.

끔찍하게 매력적이다.

다만 송원근 "그"와 미묘하게 발란스가 안 맞는게 아쉽다.

송원근 "그"가 결코 못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런데 보여지는 이미지 때문일까?

송원근의 얼굴이 너무 작고 아이들스러워서 오히려 "그"보다는 "나"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 두 배우가 비슷한 연령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연상연하 페어를 보는 느낌이다.

(당연히 정상윤이 연상이고, 송원근이 연하)

정상윤은...

이 작품에 남다른 예정이 있는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연기가 가능할까?

그가 "아니, 아니, 아니"를 세 번 반복하는 장면은 소름이 돋는다.

목소리톤과 감정이 전부 다 다르고 게다가 뭔가 조여오는 느낌은 점점 상승된다.

아! 도저히 피할 수 없겠구나... 라고 체념하게 만든다.

정상윤.

아주 압도적이었고, 주도적이었다,

<쓰릴미>의 "나"는 확실히 그가 갑이고 진실이다.

(그런데 정상윤 손, 괜찮을까?)

 

송원근의 그는,

나쁘지 않았다.

어려운 작품이고, 처음 그 역할을 한다는 걸 감안하면

작품 해석도 좋았고, 인물도 잘 만들었다.

단지 그가 너무 아이돌스러운 외모를 가졌다는 게 문제다.

게다가 아이를 유괴하는 장면은 엄청나게 스타일리시하다.

이렇게 스타일리시한 사람이 유괴를 하면 금방 범인으로 지목돼 곧 잡히고 말 것 같다. (ㅠㅠ)

그리고 "그"가 바닥에 눕는 장면은 난감하다.

그 이후 "나"가 대사할 때 "그"의 모습이 너무 애매해져 버린다.

인물도 아니고, 배경도 아니고, 상황도 아니고, 심리도 아니고...

(이건 배우가 감당할 몫이 아니라 순전히 연출이 감당할 몫이다!)

만약 송원근 "그"가  정상윤 "나"가 아닌 다른 "나"를 만난다면!

송원근의 말대로 이 작품은 그의 터닝포인트가 되고도 남겠다.

정상윤이 좀 애매해지긴 하는데 크로스 캐스팅을 기대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중반 이후 새로운 캐스팅이 발표된다고 하니 그것도 기다려보고!

 

무대를 2층으로 분리한 건 좋았는데

사각의 링을 연상시키는 메인 무대는 너무 낯설다.

그와 나를 졸지에 피튀기며 사생결단으로 싸워야하는 파이터로 만들어 버리는 것 같아서...

게다가 바닥과 높이도 꽤 있어서 배우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모습이 몰입도를 방해한다.

그 메인 무대의 바닥이 슬라이딩으로 열리는 건 개인적으론 최악이었다.

차라리 메인 무대가 아예 좌우로 확 벌어지면서

가운데 공간을 완전히 들어냈다면 좋았을텐데...

직선으로 교차하면서  조명은 정말 좋았다.

인물의 심리에 따라 배우의 얼굴에 조명을 바로 비춰서 명암의 효과를 살린 건 기가 막히다.

소리의 효과를 위해 일부러 바닥을 나무로 처리한 것도 신선하다.

개인적으로 2010년 무대에 올해 조명을 적용하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빛과 소리.

이 둘의 절묘한 조화가 이번 공연 표현의 핵(核)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무지 남성적이고 치열하고 저돌적이었다.

(사각의 링은 그런 의미였을까???)

 

피아니스트 신재영.

조금 삐걱대는 부분이 있긴 했지만

멋진 스토리텔러의 역할을 충분히 해줬다.

2층에 있는 피아노의 위치가 좀 애매하긴한데

오히려 그 위치가 제 3의 인물(파아니스트)이 둘의 관계를 훔쳐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였나?

문득 피아니스트도 인물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그곳에서는 지금 두 개의 진술이 함께 진행되는 중인거다.

음성으로만 들리는 두 사람에게 하는 가석방을 위한 심의 진술과

피아노 선율로 상징되는 제3의 인물에게 고백하는 진짜 진실.

story in story.

아니, 어쩌면 정말 그런지도....

 

여전하구나,

이 작품!

나를 또 다시 thrill하게 만들 작정인가보다

Thrill Me...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09. 11. 7. 06:09



스티븐 손드하임의 문제작 <암살자들>
2005년도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초연됐을 때
관람 후 머리가 복잡하고 어지러웠다.
내 손에 한 자루 총이 들려있었다면 어쩌면
가차없이 대통령을 향해서가 아니라 내 머리통을 향해 쏘지 않았을까 생각했었던 기억도... ^^
엄기준, 오만석, 최재웅, 송영규, 박정환, 최민철, 김무열, 오세준, 홍윤희, 한혜숙...
지금은 정말 엄청난 배우들이 되어 버린 사람들이 출연했던 뮤지컬 <어쌔신>
내용이 어쨌든 간에 일단 별들의 전쟁이라고 생각했었다.
당대 뮤지컬 좀 한다는 남자 배우들이 모두 참여했던 작품 <어쌔신>
그리고 나는 <어쌔신>을
명성과 출연진보다도
보고 난 후 곱씹을수록 묘하게 점점 더 좋아졌던 작품으로 기억한다.
손드하임의 매력은 내게는 그렇다.
두고두고 소처럼 오랜 되새김질을 하게 만드는 사람
<스위니토드>를 보면서도 <컴퍼니>를 보면서도 그랬다.
<어쌔신>과 달랐다면 두 작품은 모두 보면서 바로 느낌이 왔었다는 것.
하지만 어쨌든 손드하임의 작품 모두는 내게 곱씹을수록 더 깊은 매력으로 다가온다.


           <2005년 공연 포스터>              < 2009년 포스터>

--> 개인적으로 2005년도 포스터가 맘에 든다.
       2009년도 포스터는 너무 소란스럽고 수다스럽다. 

<2005년/2009년 어쌔신 Casting>

존 윌크스 부스    : 엄기준(2005) - 강태을(2009)                 찰리 귀토        : 송영규(2005) - 김대종(2009)
새뮤얼 비크        : 오만석(2005) - 한지상(2009)                 레온 촐고즈     : 최민철(2005) - 이   석(2009)
쥬세페 장가라     : 박정환(2005) - 이창용(2009)                 존 헝클리        : 김무열(2005) - 김대명(2009)
리넷 스퀴키 프롬 : 한혜숙(2005) - 임문희(2009)                 사라 제인 무어 : 홍윤희(2005) - 최혁주(2009) 
오스왈드 & 발라디어 : 최재웅(2005)  - 최재웅, 이경수(2009)



역대 미 대통령을 암살한 9명 모두를 한자리에 불러 모으다...
이 발상 자체만으로도 지극히 매력적이다.
징하게 살 맛 나는(?) 지금의 우리 현실을 향해
유쾌한 한방을 날리는 개운함이라는 말도 꼭 해두자.
"대통령을 겨냥한 총구"라니...
무모할지라도,
상상만으로도 짜릿하지 않은가? 



사진은 많이 흔들렸지만 일부러 찾아본 캐스팅이다.
최재웅의 오스왈드!
얼마 전 계원예고때부터 절친이었던 조승우와 함께 촬영한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으로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신인남우상을 수상하기도 한 최재웅.
(그의 "뇌전"은 참 인상적이었다. 그의 다음 영화를 나는 기대한다...)
초연때 그의 목소리는 그 숱한 별들 앞에서도 귀에 속속 들어왔었다.
그때 이 사람이 출연하는 작품은 꼭 챙겨봐야지 혼자 다짐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사실은 그의 작품을 참 많이 안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무대가 좋다. 
느긋한 믿음감이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
(더불어 나 또한 너무 느긋해져서 다음에... 다음에... 하면서 놓쳐버린 그의 작품들이 숱하게 많다... ^^;;)
그런 그가 다음 작품으로 선택한 게 뮤지컬 <헤드윅>이다. 
당연히 나는 이번에도 그의 <헤드윅> 역시나 무지 궁금하다.
(헤드윅은 초연 때 조승우, 김다현, 송용진, 오만석 4명의 캐스팅를 전부 봤다. 그 이후엔? 안 봤다. 어쩌다보니...)
물론 무지 이쁘겠지... 그럼 다른 것들은?


          <오스왈드 & 발라디어 : 최재웅>                     <존 윌크스 부스 : 강태을>

프레스콜 사진 속에 담긴 그의 얼굴은 좀 불안했다.
그래도 무대 위에서 확인해야 옳은 거라 느긋하게(?) 생각하고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찾게 된 신촌의 The Stage
전체적으로 극은 초연때보다도 너무 많이 가벼워지고 코믹해졌다.
초연때 거부감을 느꼈던 사람들이 많았기에 나름데로 쉽게 다가가기 위한 방법이었을까?
좀 아쉽다.
아니 사실은 너무 많이 아쉽다.
블랙 코미디같은 날선 예리함과 이유있는 비꼼이 사라졌다.
초연의 기억을 미련맞은 소처럼 너무 오래 곱씹었던가?
장난기 넘친 발라디어에 순간 멈칫하다.
그러나 최재웅의 오스왈드는 오히려 더 깊어졌다.
이게 바로 그의 진면목이구나...
하나의 극 속에서 그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두 가지의 인물로 등장한다.
<어쌔신>의 대표 주인공을 사람들은 존 윌크스 부스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은 바로 오스왈드가 진짜 주인공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모든 이야기는 오스왈드의 선택에 의해 귀결되기에...
그의 선택이 없다면 결코 8명의 암살자들 모두가
시공을 초월해 한자리에 모일 수 없을테니까... ^^



스티븐 손드하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만든 사람이라고 하면 다들 무릎을 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류(어쌔신, 스위니토드)의 손드하임 작품들이 훨씬 좋다.
뭐 인간 자체가 우중중하고 전체적으로 조증모드라서 그럴 수도 있긴 하겠지만...
초연의 무대와 다르게
무대 양 편으로 피아노 두 대가 놓여있다.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하는 배우들...
<쓰릴 미> 때도 그랬지만 단지 피아노 하나만으로
극을 전개시킬 수 있다는 게 신비스럽다.
그리고 더 신비한 건,
피아노 하나만으로도 그 느낌이 충분히 전달된다는 사실이다.
화려한 음악에 익숙한 사람에겐 어쩌면 너무 단조롭게만 들려 심심했을 수도 있었으리라.
그들에게 살짝 말해주고 싶다.
원래 암살은 단조롭고 은밀한 거라고...
비겁하게 숨어서 조용히 숨을 죽이며 기다리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결정적으로 더 비겁하게 몸을 숨기고 한 지점(가슴팍 또는 머리통)을 향해 총을 쏘는 거라고...
준비동작이 화려할수록
발각의 위험은 오히려 증가한다.



레온 촐고츠의 이석, 찰리 귀토의 김대종, 새무얼 비크의 한지상
세 명이 눈에 띈다.
레온 촐고츠의 촛점 없던 멍한 눈빛과
(이석씨의 성공적인, 그리고 현재진행형인 다이어트에 박수를...)
환상에 빠져 자신만의 "케세라세라" 의 세계에 빠져있던 찰리 귀토.
두 사람은 초연의 느낌보다 개인적으론 더 맘에 든다.
그리고 초연시 오만석의 했던 새무얼 비크 역을 했던 한지상.
군 입대 전 마지막 작품이라고 했던가.
아마도 그는 군생활 중 후회는 없겠구나 싶다.
적당한 광기와 빈정거림, 그리고 번특이며 굴러다니던(?) 눈동자.
상당히 파격적으로 나오는 인물 새무얼 비크(대사의 대부분이 욕설 같은 느낌이라서... ^^';;)
한지상은 대체로 두려움 없이 잘 해낸 것 같다.
한동안 그는 금단현상에 시달리겠구나... 무대 위의 시간들이 그리워서..
아쉬웠다면 하얀 옷의 산타...
어두운 극의 분위기와 선명하게 대비되기에 그리 어색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어쩐지 산타는 빨간색이여야 맞는 것 같다.
(습관이란 이렇게 무섭다. ^^)



존 윌크스 부스 강태을.
개인적으로 엄기준의 존 윌크스 부스도 맘에 들진 않았지만
강태을의 부스는 너무 코믹스럽다.
(이 사람이 요즘 뮤지컬계의 꽃미남이라고 불린다. 나는 딱히...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이 인물을 어떻게 해석했던걸까?
무대 위에서 제일 이해가 안 가는 인물이었다.
코믹해도 "신념"과 "확신"은 있어야 하는데 그의 부스에게선 그런 것들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더 사격장 주인 같았다면 내 답답함이 이해가 될까?
그리고 리넷 스퀴키 프롬의 임문희.
그녀에게 미안하지만 실망했다는 말 또한 남겨두자.
역 자체가 상당히 "똘기" 흐르는 배역이긴 하지만
그렇게 극심한(?) 백치미까지 소유한 보기드문(?) 인물은 절대 아닐거라고 생각한다. 


                        <2005년 빨간 산타 복장의 오만석 새무얼 비크>

놀이동산의 페러이드를 본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소극장 도전은 참 좋았는데
그 의도만큼 작품이 잘 나와주지 않은 것 같다.
오랫만에 다시 무대에 올려진다고 했을 때 개인적으로 많이 기대했었는데
결론은 기대한 것 보다 너무나 많이 아쉽다.
또 다시 미련한 소가 될 작정을 했었는데 돼새김할 게 별로 없다.
텅 빈 위를 들여다보는 미련한 소의 당혹감이라니...

중요한 건,
"정조준"이다.
정확한 목표를 향해 정확한 조준을 해야만 정확히 꿰뚫을 수 있다는 사실.
그런데 그들의 조준은 아무래도 좀 빗나간 것 같다.
목표물을 향해 잘 발사된 총알마저도
옆의 총알에 의해 궤도를 이탈하고 만다.
결국은,
방향을 잃은 총알 세례까지 피해야하는 
황당한 슬랩스틱 코믹버전 총격전을 본 기분이다.
공연이 끝나고 지상으로 복귀하는 어깨가
왠지 뻐근하고 묵직하다.

"그래, 결코 총질은 아무나 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선량한(?) 시민이 피해를 볼 수도 있으니까..."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