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3. 7. 24. 08:30

<두 도시 이야기>

일시 : 2013.06.18. ~ 2013.08.11.

장소 : 샤롯데씨어터

원작 : 찰스 디킨스

대본, 작사, 작곡 : 질 산토리엘로

연출 : 제임스 바버

음악감독 : 강수진

출연 : 류정한, 윤형렬, 서범석 (시드니 칼튼)

        카이, 최수형 (찰스 다네이) / 최현주, 임혜영 (루시 마네뜨)

        신영숙, 백민정 (마담 드파르지) / 김도형, 김봉환 (마네뜨박사)

        임현수, 배준성, 김대종, 박송권, 김덕환, 전국향 외

제작 : (주)비오엠코리아, 롯데엔터테인먼트

 

원래 <두 도시 이야기>는 류정한 찰스 다네이 이외의 다른 캐스팅은 볼 마음이 전혀 없었다.

(너무 고집스런 편애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그런데 한 장의 사진을 봤다.

눈가에 눈물이 가득한 서범석의 커튼콜 사진.

그리고 카이와의 "Let her be a chile"를 동영상으로 봤다.

느낌이... 좋았다.

둘의 목소리는 꽤 잘 어울렸다.

그래서 서범석 찰스 다네이를 한 번 보기로 했다.

가능하면 카이와 서범석 캐스팅으로 보고 싶었는데 캐스팅이 예의치가 않았다.

다 포기했다.

서범석, 임혜영, 최수형, 백민정, 김봉환.

거의 무모한 컈스팅이었지만 삼성카드 1+1 이벤트에 좌석도 좋아서 그냥 가기로 했다.

<레베카> 이후에 많이 좋아졌다는 임혜영도 궁금하기도 했고...

그런데 주말을 지나고 출근했더니 인터넷에 <두 도시 이야기>가 전례에 없는 대박을 치고 있었다.

작품 때문이 아니라 사인회 운운한  배우 백민정의 SNS 때문에...

배우의 공식 사과에도 불구하고 급기야 일요일 저녁 공연의 배우가 신영숙으로 교체됐다.

파장이 크겠다.

작품에게도, 배우에게도...

<쓰릴미>와 <라카지>의 보이콧 사태도 다시 회자되면서 공연계가  뒤숭숭해졌다.

개인적으로 SNS을 기피하고 안 하는 입장이라 잘 모르겠지만

뭐가 됐든 서로 다 조심은 해야 될 것 같다.

공연 후, 에너지가 다 소진한 상태에서의 사인회.

배우에게 너무 힘들고 피곤하고 피하고 싶은 이벤트일 수 있다.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페이크가 됐든, 철면피가 됐든 숨길 수 있어야 했다.

그건 수고와 힘듬은  배우들끼리 술자리에서 안주 삼아 이야기하고 흘려보냈어야 했다.

그리고 이 한 번의 사건으로 배우 백민정을 마녀사냥하듯 몰아치는 것도 과히 보기 좋지는 않다.

걱정스러웠는데 결국 백민정과 임혜영에게 징계 비슷한 조치가 취해졌다.

백민정 6회 출연 정지, 임혜영 3회 출연 정지!

참 여러 사람이 상처받고 아프게 됐다.

워낙에 애정하는 작품이라 공연 전체의 사기가 떨어지거나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그런데 그녀는 왜 그랬을까?

어려서, 뭘 몰라서 그랬다고 하기엔 19년 차라는 그녀의 경력이 민방하다.

더불에 이정열까지도 욕을 먹고 있는 것 같아 참 씁쓸하다.

여러가지로 안타깝다.

어쩌다보니 재공연 세 번 관람 전부 마담 드파르지가 백민정이었다.

신영숙과 비교해서 대등할 수는 도저히 없었겠지만

세 번 관람 중 그래도 이날 공연의 제일 좋았았는데...

(이날 너무 몰입해서 그런 발언을 했을까??? 그래도!!!!)

뭐 좋은 이야기도 아닌데 이제 이 이야기는 그만~~~!

 

서범석의 시드니.

너무 깊다.

배우의 개인적인 깊이감이 엄청나서 급기야 관객이 시드니의 감정에 스며들 여유조차 안 준다.

남주 주인공이 아니라 마지 비련의 여주인공을 보는 느낌이다.

이건 염세가 아니라 일종의 기벽에 가까운 중독이다.

게다가 모든 노래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다.

Reflection은 환상속에 너무 빠져 비애가 절망이 느껴질 틈이 없었고

I can't recall은 벅찬 감격과 설렘이 아닌 곧 폭발할 것 같은 과도한 격정이 앞선다.

Let' her be a child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통곡하는 느낌이고...

난감하다.

다가가서 달래줘야 하나???

이런 시드니를 본다는 건...

솔직히 많이 당혹스럽다.

내가 생각하는 시드니는 "슬픔"이 전부가 아니다.

시드니라는 인물은,

비록 간절히 바랬던 한 여인의 사랑은 얻지는 못했지만

루시의 가족을 통해 더 큰 사랑을 알게 된 사람이다.

그가 그렇게 변할 수 있었던 건 "슬픔"이 아닌 "보고픔" 그것이었다.

어린 루시가 아빠를 보고 싶어했던 그 마음.

루시가 죽음이 예정된 남편을 온 가족의 목숨을 걸고서라도 보고 싶어했던 그 마음.

찰스가 시드니에게 루시를 부탁하면서까지 보고 싶어했던 그 마음.

그리고 그들이 행복를 죽어서라도 보고 싶어했던 시드니의 그 마음.

이 모든 "보고픔"을 "슬픔" 하나만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다.

그런데 서범석은 시드니는...

홀로 이 슬픔 속에 너무 깊이 빠져버렸다.

개인적으로 나는 배우 서범석의 연기과 노래를 아주 좋아한다.

그래서 그가 새로운 작품을 하면 일부러 챙겨서 보는 편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배우가 감정에 너무 빠져버려 배역을 의도만큼 충분히 표현해내지 못했다.

게다가 대사는 마치 대본을 읽는 것 처럼 어색하다.

도대체 왜지?

서범석이 왜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거지?

당혹스럽다.

아무래도 그가 감정 컨트롤에 실패한 것 같다.

마지막 대사는 울음으로 완전히 무너졌다.

"나는 내가 했던 그 어떤 일보다 가치있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난 내가 알던 어떤 휴식처보다 더 평온한 곳으로 가려고 합니다!"

이 대사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아주 당당하고 확신에 찬 상태에서 했어야 했다.

눈 속에 눈물이 담겨도 절대로 대사 속에는 눈물이 담겨서는 안된다.

그러나 서범석의 대사는 단어 하나하나가 그대로 통곡이었다.

단어 끝이 선명하지 않고 흐려졌다.

어떻게든 버텨내길 바랬는데...

아주 의연하게 빛나는 별빛이길 바랬는데... 

 

임혜영 루시도 작년 보다는 확실히 좋아졌다.

그러나 그녀가 보여주는 루시는 사랑과 보호를 받고 자란 귀한 외동딸의 이미지가 강하다.

이런 순수한 사랑스러움에 최현주 루시가 품는 강인함까지 갖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선지 그녀의 "Without you"에는 두려움이 가득하다.

잃어야 하는 것과 지켜야 하는 것 사이에서의 번민과 그래도 견디겠다는 결정에 대한 힘이 부족하다.

루시가 갖는 내면의 굳건하고 강인한 힘.

그걸 표현하지 못한 건 영 아쉽다.

최수형 다네이는 연기와 노래에 전체적으로 힘이 빠져서 그전보다 훨씬 좋았다.

투사같던 이미지가 줄어드니 사랑에 빠져버린 한 남자의 모습이 오롯이 보인다.

과거의 기억과 함께 봉인된 김봉환 마네트 박사도

부성애가 비로소 살아났다.

다행스럽다.

그리고 브라스가 활개치던 오케스트라의 경박함도 거의 사라져서 좋았다.

 

시드니의 첫등장은 류정한 방식이 확실히 더 좋았고

(도대체 왜 바뀐거지????)

2막에서 로리와 시드니와의 대화장면은 솔직히 아주 절망적이었다.

"내가 자네 아버지가 아닌 건 정말 하늘에 감사할 일"이라니????

시드니가 은밀한 결심을 하는 의미심장한 이 장면이

이 대화때문에 숭고함이 코믹으로 유체이탈되는 느낌이다.

(제발 허무개그같은 이 장면은 삭제됐으면...)

앙상블의 힘은 역시 참 좋다.

 

사실 서범석 시드니에 대한 기대감으로 관람을 결정했던건데...

그래도 다행이다.

기대했던 이외의 것들에서 좋은 느낌들을 받았으니.

그걸로도 괜찮다.

<두 도시 이야기>니까...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9. 24. 08:18

<A Tale of Two Cities> 

일시 : 2012.08.24. ~ 2012.10.07.

장소 : 충무아트홀 대극장

원작 : 찰스 디킨스

대본, 작사, 작곡 : 질 산토리엘로

연출 : 한진섭

음악감독 : 김문정

제작 : (주)비오엠코리아

출연 : 류정한, 윤형렬 (시드니 칼튼)

        전동석, 카이 (찰스 다네이)

        임혜영, 최현주 (루시 마네트)

        김도형 (마네트 박사)

        이정화, 신영숙 (마담 드파르지)

        이종문 (어니스트 드파르지)

        정상훈 (존 바사드), 박성환 (제리 크런처)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 네번째 관람.

이 작품은 고전적이고 장엄하며 동시에 선하고 착하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음 한구석이 조용히 정화되면서 일종의 씻김굿을 한 듯한 후련함과 맑은 비움이 느껴진다.

Heart to Heart

모든 걸 그저 놓고 순수하게 교감하면서 마음으로 본다는 건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작품.

적어도 내게는 참 장하고 참 착한 작품이다.

그래서 나는 또 눈을 뗄 수가 없다.

 

다른 건 다 빼고 오늘은 맘에 오롯이 담긴 넘버 이야기를 해보련다.

"You'll Never Be Alone"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를 만나서 부르는 루시의 노래.

최현주 루시의 음색은 떨렸고 그리고 조심스러우면서도 맘속에 오래 담아놓은 그리움을 그대로 꺼내놓는다.

루시는 그동안 참 아팠고 외로웠지만 정말 잘 견디며 자랐구나.

이 곡을 들으면서 나는 혼자 견뎌낸 루시의 아픈 성장기가 한번에 읽히는 느낌이었다.

또 다른 떨림의 노래 "Without a Word"

앞의 노래에서 루시의 과거를 읽었다면 이 노래에서는 미래를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이 노래를 부르는 최현주 루시는 온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시무시하다.

한 곡 안에 상승하는 감정의 변화를 너무나 잘 표현했다.

사랑받는 아름다운 여자가

아내로써, 엄마로써 모든 건 지키고 감내하겠노라 다짐하는 모습은 참 숭고하고 눈물겹다.

최현주 루시는...

감정표현이 정말 아름답다.

그녀가 루시를 표현하는 게 아니라 그녀 자체가 정말 루시같다.

참 대단한 배우다. 최현주는!

 

전동석 다네이와 김도형 마네트 박사의 "The Promise"

아내와 연인을 생각는 두 사람의 심정이 참 절묘하게 교차되는 노래다.

서로의 목소리톤도 상당히 잘 어울리고 뭐랄까 뭔가 따듯하게 보듬는 느낌이랄까?

전동석은 프리뷰 공연때보다 훨씬 안정된 모습을 보여줘서 관람이 즐거웠다.

전동석은 김도형과의 듀엣곡과 솔로록이 시드니나 루시와의 듀엣곡보다 개인적으로 훨씬 듣기 좋다.

특히 Gabelle의 편지를 받고 다시 프랑스로 돌아갈 것을 결심하는 노래 " I Always Knew "는 정말 최고다.

감정표현이 점점 좋아져서 이 녀석의 "젊은 베르테르 슬픔"이 조금씩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Let Her Be a Child"는 깊은 고뇌를 표현하기에 아직 전동석의 나이와 경력이 너무 젊다.

목소리는 참 좋은데...

솔직히 한 번도 이 녀석에게 가능성을 본 적이 없었는데

<엘리자벳>과 <두 도시 이야기>를 보고 난 뒤에는 10년 뒤가 참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점점 뮤지컬 배우로 제대로 만들어지고 있는 중인것 같다.

 

류정한 시드니 칼든.

세번째 류시드니 관람이었는데 점점 감성적으로 완숙해지고 뭐랄까 그윽해졌다.

액팅과 대사가 아니라 감성 자체로 무대를 채운다는 건 또 얼마나 고되고 힘든 일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정한 시드니는 내게 새로운 기쁨과 충만함을 안겨줬다.

"Reflection"

꼭 사춘기 소년 같았다.

진심으로 좋아하지만 좋아한다고 말도 못하고 일부러 아닌 척하면서 혼자 부정하는 모습.

결국은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체념하는 모습.

순수하면서도 어리석은 사춘기 소년의 모습 그대로였다.

"I Can't recall"

환희와 기쁨이 가득찬 자심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

과연 사람이 일생에서 몇 번이나 자신의 감정을 이렇게 그대로 100% 드러낼 수 있을까?

이 노래는 시드니 인생의 반전이 시작되는 아주 결정적인 노래다.

류정한은 보고 있는 사람마저도 참 벅차오르게 만들만큼 이 한 곡에 이 모든 간정의 변화들을 담았다.

사춘기 소년에서 아예 순진무구한 아이로 다시 태어나는 느낌이다.

불혹을 넘긴 배우가 보여주는 순수한 모습은 감동적이었고 신선했다.

"If Dreams Came Ture"

사랑하지만 가질 수 없는 여인을 다른 남자에게 보내야만 하는 시드니의 심정.

그 여인의 곁에서, 그 여인의 행복을 지켜보며 절망하고, 분노하고 그리고 인정하는 모습.

기쁨과 환희에 찬 다네이와 쓸쓸하고 아련한 시드니의 목소리는 서로 대비되면서도 절묘한 하모니를 이룬다.

(남자들의 듀엣, 황홀할만큼 정말 멋지다!)

"Let Her Be a Child"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제일 감동적는 노래.

어린 루시의 자장가에 이어지는 시드니와 찰스의 듀엣곡.

가사도 너무 가슴 아프고 멜로디로 그렇고, 두 사람의 음색도 너무 아프다.

같은 기도를 하고 있지만 다른 선택과 결심을 하는 두 사람.

이 노래 때문에 얼마나 여러번 가슴이 무너졌던지...

시드니는 이 노래는 혼자만의 정화(淨化)와 결단의 의식이었다.

참 아픈 노래지만 그래서 더 아름다운 노래다.

 

칼튼의 편지에서 이어지는 처형 장면.

재봉사 클로단의 노래는 일종의 평온이고 안식이다.

진심으로 모든 걸 놓고 평온해질 수 있었다.

그건 체념이나 좌절이 아니라 완성과 이룸의 완결이었다.

어쩌면... 어쩌면...

정말 사랑이라는 게 불가능을 가능케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사람을, 그의 주변을 위해서 내 모든 걸 다 버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선택한 시드니의 죽음은 단지 한 여자를 위한 희생은 아니었다.

"또 그녀의 딸과 그녀의 가족을 위해서..."

이런 삶...

불가능한 이 삶을 어쩌자고 다시 꿈꾸고 싶어진다.

위험한 삶을 기대하게 한다.

비록 잠깐의 시간 동안만이라도...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8. 31. 07:50

<The Tale of Two Cities>

일시 : 2012.08.24. ~ 2012.10.07.

장소 : 충무아트홀 대극장

원작 : 찰스 디킨스

대본, 작사, 작곡 : 질 산토리엘로

연출 : 한진섭

음악감독 : 김문정

제작 : (주)비오엠코리아

출연 : 류정한, 윤형렬(시드니 칼튼)

        전동석, 카이 (찰스 다네이)

        임혜영, 최현주 (루시 마네트)

        이정화, 신영숙 (마담 드파르지)

        김도형 (마네트 박사), 이종문 (어니스트 드파르지)

        정상훈 (존 바사드), 박성환(제리 크런처)

        배준성, 임재청, 김용수, 전국향 외

 

그래, 내가 바랐던 게 이런 거였다.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극적인 스토리.

주연뿐만 아니라 조연, 앙상블에게까지 골고루 시선을 주면서 집중과 이완, 완급의 호흡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그런 작품.

게다가 음악은 장엄하면서 기품있어 마치 한 편의 웅장한 교향곡을 듣는 듯한 충만감이 느껴지는 그런 작품.

<A Tale of Two Cities>는

조금씩 무뎌지는 내 오감을 깨우는 일종의 반란같은 작품이었다.

황홀하고 그리고 매혹적이다.

보는 내내 옴짝달짝하지 못하게 만들 정도로 끈질기게 매혹적인 작품.

처음엔 분명히 천천히 끌렸을 뿐이었다,

그러다 급격히 쏠리고, 결국에는 어쩔 도리없이 일방적으로 완벽하게 홀리고 만다.

매혹은 위험하다.

매혹당하는 자 뿐만 아니라 매혹하는 자까지도 치명상을 입기 때문에...

지독하다.

이런 매혹은.

정말이지 견뎌내기가 참 힘겹다.

슬픔이든, 절망이든, 사랑이든, 아픔이든 그것에 관해 이야기 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

그래서 말하련다. 

견딤을 위해...

 

유혹 중 가장 강한 유혹은 닿을 수 없는, 결코 닿아서는 안 될 것에 사로잡혀버리는 경우다.

그리고 인간은 결국 파멸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유혹과 싸운다.

시드니 칼튼이란 인물도 이 치명적인 유혹에 빠져버렸다.

그러나 결국은 그 유혹과 싸우기를 스스로 포기한다.

아주 당당하고 고결하게...
눈으로 봐야만, 손으로만 만져야만 믿을 수 있는 사랑은 단수가 낮은 사랑이다.

그리워하는 마음이 보고 만지는 마음보다 훨씨 깊고 곡진하다.

오직 그 순간, 단 한 번만 들을 수 있는 생의 연주를 남기고 시드니 칼튼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이게 정말 가능한 사랑인가?

결국 사랑은 어찌됐든 환영(illusionism)이다.

환영은 모든 디테일이 완벽할 때에 생겨날 수 있다.

환영을 보는 사람은 그런 이유로 아주 작고 보잘 것 없는 것까지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세세하고 완벽하게 그려낸다.

그래서 환영을 보는 사람은 환영만이 유일한 현실이고 삶이다.

나는 결코 환영을 보는 사람이 아니다.

연극과 뮤지컬을 보면서 늘 저건 단지 극일 뿐이라고.

그러나 이번엔 좀 다르다.

이런 현실이 제발 어딘가에 있어주기를 꿈꾼다.

제기랄!

다시 사랑을 꿈꾸기 시작했다.

 

류정한의 시드니 칼튼은,

광활하고 처연한 비가(悲歌)였다.

놀랐다.

이 사람이 이렇게 섬세하게, 이렇게 세밀하게 표현하는 배우였던가!

그에게 일종의 변화가 왔음을 나는 눈으로, 귀로 확인했다.

(나, 류정한이란 배우를 안지 그래도 나름 꽤 오래됐다)

그렇다면 그에게 무대 배우로서 이런 변화가 온 계기가 도대체 뭐였을까?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었던 그 선택이 이유가 됐는지도 모르겠다)

표정이 훨씬 풍부해졌고 그리고 자유로워졌다.

지금껏 나는 배우 류정한을

섬세함조차도 크게 표현하는 배우라고 생각했었다.

큰 표현 속에 섬세함을 담는 배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두 도시 이야기>에서 배우 류정한의 표현은

너무나 섬세했고 또 섬세했다.

무대 위 그가 보여준 시드니 칼튼의 감정은 비현실적인 인물을 성큼성큼 내 눈 앞으로 현실로 느끼게 했다.

얼마나 놀랍던지...

1막이 런닝타임이 너무 길어서 지루하다는 평이 많은데

개인적으론 시간의 흐름 따윈 의식되지도 않을만큼 깊게 집중할 수 있었다.

reflection, I can't recall, If dreams came true

시드니 칼튼의 부르는 1막 넘버들은 한결같이 오래 그리고 깊게 기억에 담긴다.

특히 If dreams came true는 눈물이 저절로 흐를만큼 처연하고 슬펐다.

자신에게 온 가장 큰 행운이었던 한 여자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한 남자의 처연함이라니...

찰스 다네이의 행복에 겨운 목소리와 대비되는 칼튼의 목소리는

단 한 곡의 노래로 한 남자의 일생 전부를 다 토해내는 것 같았다.

아, 참...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서늘해지면서 아파온다.

결코 폭발하지 않으면서도 사람의 감정을 쥐고 흔드는 류정한의 시드니 칼튼은 참 힘겹고 힘겹다.

이런 힘겨움에도 불구하고 류정한은 이 작품으로 자신이 힐링(heeling) 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어떤 느낌인지 알겠다.

나도 그랬으니까....

 

음악감독 김문정이 이끄는 22인조 오케트라라는 웅장했고

뮤지컬 넘버들은 아름답고 격동적이었다.

특히 남자들의 하모니(김도형-전동석. 류정한-전동석)가 주는 울림이 크다.

배우들은 앙상블까지도 너무나 환상적이고 훌륭했다.

솔직히 이들을 조연이라고, 앙상블이라고 칭하는 건 참 미안한 일이다.

그 순간들 만큼은 누가 뭐래도 완벽한 주연이었고 완벽한 무대 장악이었다.

배우들과 비슷한 옷을 입고 최대한 조심스럽게,

그러면서도 최대한 정확히게 셋트를 이동시키는 무대크루들 모습도 감동적이다.

(뒷모습을 보이며 앉아있는 무대 크루를 보면서 나는 참 따뜻하고 믿음직스러웠다) 

아! 그리고 푸른색(런던)과 붉은색(파리)의 조명도 압권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직 이 작품의 첫인상에서 한 발도 빠져나오 못한 상태다.

다시 보게 되면 객관적인 시각을 조금은 갖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오랫만에 웅장하고 거대한 작품을 만난 것만은 확실하다.

그래서 좀 걱정스럽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한 달에 한 번만 보자는 원칙을 정했는데...

아무래도 이번에는 그 원칙을 지키지 못할 것 같다. 

 

* 공연장을 나오는데 소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한 귀절이 계속 떠올랐다.

  "이렇게 확실한 감정은 일생에 단 한번만 오는 거요"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