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5. 6. 29. 08:30

카사 밀라 제일 꼭대기 층에는

가우디의 건축세계를 볼 수 있는 전시관이 마련되어 있다.

사실 카사 바트요와 카사 밀라 중에서 카사 밀라의 내부 관람을 선택한건

이 작은 전시관이 주는 묘한 아우라 때문이었다.

뭔가 비밀로 가득한 곳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신비감. 

어두운 공간 속,

끝없이 이어지는 돔 아래에서 불현듯 만나게 되는 하얀 건물 모형은

그게 실제가 아니라는걸 잘 앎에도 불구하고 신성하다는 느낌을 주더라.

이렇게 건물 전체를 한 눈에,

그것도 내부 구조까지 훤히 들여다 본다는건

잠깐이지만 신의 눈을 가진 듯한 우월감에 빠지게 했다.

가우디가 디자인한 의자 중에서 탐이 나는 의자가 하나 있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다정하게 앉을 수 있는 2인용 의자.

하지만 등을 대고 앉으면 개인의 공간과 시선이 확보되는 거리가 생긴다.

어딘지 "부부"의 모습을 떠오르게 만든 의자라 혼자 슬몃 웃었다.

 

 

카사 밀라는 현재 카이사 카탈루냐 은행이 소유하고 있고

여전히 아파트먼트 형태의 주거공간을 그대로 유지 하고 있다.

이 중 일부가 공개되어 있어 직점 볼 수도 있는데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의 가구와 생활용품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하지만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역시나 가우디의 원칙 그대로 "빛"이다.

창문을 통해 쏟아지는 자연광을 보면서

아... 이런 곳에서 살면 매일마다 단잠을 잘 수 있겠구나... 싶었다.

세상 어디에도 햇빛을 이기는 밝음은 없는 모양이다.

가우디는 그 빛은 이곳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누릴 수 있게 해줬고...

비가 오는 날은 건물 가운데로 떨어지는 빗줄기가

또 다른 빛이 되어 줬을테다.

건물주 입장에서 공간을 휑하게 비워놨으니 본전 생각이 간절했겠지만

가우디 덕에 지금 나는 꿈의 주거공간 한복판을 꿈처럼 거닐게 됐다.

적어도 카사 밀라에서는 숨막힐 일이 전혀 없겠다.

건물도, 사람도. 햇빛까지도 다.

 

 

가우디가 디자인한 귀여운 문고리들.

생김새도 다 다르지만 하나하나 잡아보면 그립감이 다 편하다.

손 전체에 혹은 손가락 하나에 자연스럽게 감기는 느낌.

이 문고리를 위해 가우디는 수없이 그림을 그렸을테고

만들고나서는 몇 번씩이고 직접 잡아봤을테고

그리고 또 다시 수정하고 보완했을테다.

이 작은 소품 하나에까지도...

 

 

정성과 시간이 비례하는건 아니지만

그 둘이 비례하는 순간

작업은 기술이 아닌 예술로 변한다.

 

가우디는 그걸 알았다.

그는,

확실히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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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 끄적끄적2015. 6. 26. 08:18

가우디의 또 다른 걸작 카사 밀라 (Casa Mila)는

카사 바트요를 보고 반해버린 밀라 이 캄프스가 가우디에게 직접 의뢰해 만든 건물이다.

지금은 20세기 건축 베스트 10에 들어갈 정도로 유명한 곳이지만

완공 당시에는 엄청난 비난을 받아서

비행기 격납고, 지진 난 집, 말법집, 고기 파이 등 비아냥거리는 병칭들을 많이 받았다.

지금도 건물 앞에는 "La Pedrera"라는 현판(?)이 서있는데

이 단어도 "채석장"이란 뜻이다.

내 눈에는 아무리봐도 채석장처럼 보이지 않는데

스페인 사람들은 뭘 보고 이런 이름을 붙었을까???

(내가 스페인 채석장이 어떻게 생각는지 당췌 몰라서...)

 

 

카사 밀라는 카탈루나 몬세라트 산을 모티브로 지은 아파트먼트로

유려한 곡선의 미가 극대화 된 건물이다.

건물 외관의 모습은 출렁이는 파도의 느낌 그대로고

베란다의 까만 장식물은 해초를 떠올리게 한다.

바닥에서 위를 쳐다보면 

반짝이는 햇빛과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출렁이는 곡선미로

아주 유쾌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곳.

그야말로 under the sea~~~

 

 

카사 밀라 지붕,

이곳은 외계에서 잘못 추락한 우주인들이 단체로 모여있는 미스테리한 장소다.

(외계인의 실제 용도는 굴뚝과 환기통)

스타워즈의 라스베이터 투구 모티브도 이 지붕에서 시작됐단다.

걱정스러운건,

어느날 이 우주인들이 자기 별을 찾아 다 떠나 버리고

카사 밀라의 지붕이 휑해져버리는건 아닐까다.

건물 외관 뿐만 아니라 지붕 바닥까지도 파도가 넘실거려

하루종일 뛰어놀아도 심심하지 않을 것 같다.

위에서 아래를 바라봐도, 아래에서 위를 바라봐도 출렁이는 파도.

사실 카사 밀라 지붕에서 사람의 흔적없이 사진을 찍는다는건 절대 불가능하다.

그냥 외계인과 지구인과의 만남이라고 생각하고 셔터를 누르면

그게 또 색다른 재미를 준다.

멀리로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과 토레 아그바르가 한 눈에 보이고

건너편엔 카사 밀라의 재해석이라고 할 수 있는 현대식 건물이 마주하고 있다.

(오른쪽에서 두번째 물결무늬 건물)

 

여행자의 회한이지만

가우디를 따라 가면 갈 수록 부러움만 쌓여간다.

일본의 안도 타타오를 바라는건 아니지만

우리나라도 자신만의 미적 기준을 가지고

이렇게 훗날까지 관광자원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건물을 만드는 건축가가 있었으면 참 좋겠다. 

서울을 먹여살리는 건축가.

가슴 뛰지 않을까!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5. 6. 25. 08:35

1905년 짓기 시작해서 1907년 완성된 카사 바트오(Casa Batilo)

이 건물은 사업가 바트요의 의뢰로 가우디가 만들었다.

"뼈로 만든 집"이란 별칭을 가지고 있는 집.

새로 지은 건물은 아니고 기존의 건물을 재건축한거라

무엇보다 기능적으로 튼튼한 건물로 만드는걸 최우선으로 생각했단다.

가우디의 유명세때문에 바로 옆의 카사 이마트예르(Casa Amatller)는 예전만큼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이 건물을 만든 건축가가 가우디의 스승이라던데

그게 맞다면 청출어람 청어람의 전형적인 증거라고 하겠다.

이 건물도 투어가 가능한데 이곳을 몇 번씩 지나다녔봤지만

투어객을 본 기억이 거의 없었다.

오로지 카사 바트요에만 인산인해.

 

 

카사 바트요는 지중해를 테마로 만들어서

내부에 들어가면 바닷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단다.

시간이 없어서 내부 투어는 결국 못했는데

그게 지금까지도 내내 후회가 된다.

지붕까지 올라가 카탈루나 수호신인 용의 비늘을 봤어야 했는데...

내부에서 뼈들 사이로 밖의 모습을 보는 것도 근사했을텐데...

바르셀로나에서 있는 동안 어디로 가든 항상 이 앞을 지나쳐 다녔다. 

하루는 조카녀석이 그러더라.

"이모, 우리 바르셀로나 와서 이 건물만 한 백 번은 본 것 같다. 그치?"

"왜" 싫어!"

"아니, 이쁜 집이라서 기억에 남을 것 같아"

조카녀석이 카사 바트요 내부를 봤다면 그 집에서 살고 싶다고 했을지도 몰랐을텐데...

겉모습을 너무 많이 봤다는 이유로 내부를 홀랑 놓쳐버린 곳.

이곳을 창문을 받치고 있는 다리뼈와 해골모양의 테라스도 신기하지만

건물 외벽 모자이크 장식의 색감이 나는 참 로맨틱하고 예뻐서 자주 넋을 놓고 쳐다봤다.

색색의 고운 꽃가루를 뿌려 놓은 느낌.

또 다시 꿈결같이 달콤한 가우디의 색감에 빠져버렸다.

 

 

깊은 밤 카사 바트요의 모습은

또 다른 반전을 선사한다.

섬뜩하기도 하고 괴기스럽기도 하고...

하지만 조명을 통해 보이는 해골의 눈은 의외의 귀염성으로 가득하더라.

비유를 하자면,

호기심 많은 거대 우주괴물이 

하필하면 한 밤 중에 지구에 떨어져서

큰 눈을 꿈뻑거리며 열심히 상황파악을 하고 있는 모습 같다.

포도넝클에 떨어져 온 몸에 포도송이를 주렁주렁 매달고서... ^^

 

모든 풍경은,

낯과 밤의 모습이, 새벽의 모습이 완전히 다르다.

그걸 알고 싶다면 방법은 하나.

조금 부지런해지는거.

그것 뿐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5. 6. 12. 09:47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 지하 전시실은

성당의 내외부만큼이나,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그보다 더 인상적인 곳이었다.

성당이 태양빛같은 아우리가 위에서 아래로 쏟아져 나오는 것 같다면

지하 전시실은 부드럽게 감싸안고 곁을 스치가는 느낌이다.

마치 가우디의 숨결처럼...

 

바르셀로나에 있는 동안,

성가족성당을 두 번 갔었고 그때마다 이 지하 전시실을 빼놓차 않고 찾았다.

두번재 방문은 아주 이른 아침.

오픈시간을 착각해서 성당 앞에서 30분을 기다려야만 했다.

기다림마조도 좋은지 조카녀석이 그러더라.

"이모, 우리 여기서 기다리다 1등으로 입장 하자!"

하지만 맞은편 공원 호수에서 물에 비친 성당을 보느라 정신이 팔려서

조카의 소망은 결국 잊혀지고 말았다.

스페인은 그렇더라.

한 눈 팔 곳이 지천이라 도무지 시간이라는게 가늠되지 않더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지하 전시실은.

성당이 지어지는 모든 과정과 완성체의 모습,

그리고 가우디가 이 세상에 바친 모든 영감과 그 부분들이 전시되어 있다.

한켠에서는 열심히 작업중인 분도 보이고...

그냥... 이 모든 것들이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시작됐다는게 믿겨지지 않는다.

이곳이구나.

가우디가 일생을 바친 곳.

죽기 직전까지 그 다음 작업을 생각하느라 다가오는 전차를 피하지 못했던 건축가.

스페인은 그를 성인(聖人)으로 시성(諡聖)하기 위해 노력중이라 했던가!

카톨릭에서 성인으로 시성되기 위해서는

진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거나,

2가지 이상의 기적을 보여주어야만 한단다.

그렇다면 가우디는 이미 성인이 되고도 남지 않을까!

그의 기적은 성당이 완성된 후에도 결코 끝니자 않을테니까...

 

 

가우디의 장례식 모습과

예수님이 돌아가신 나이 33의 비밀이 담긴 마방진의 숫자 풀이,

시대별로 완성된 혹은 완성될 모습을 보여주는 시뮬레이션 그림까지 꼼꼼히 둘러보면서

마지막으로 가우디의 무덥 앞에 섰다.

창문 저 아래 촛불이 조용히 흔들린다. 

한참을 고요히 내려다 봤다.

할 수 있는건 그것 뿐이라서...

저 아래에 가우디가 누워 있구나! 

저기서 내내 이 성당을 받치고, 지키고 있을거라고 생각하니 

또 다시 가슴이 먹먹해온다. 

 

그게 시작이었나보다.

다만 신비였던 가우디가

기적(奇跡)이 되버린게...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5. 6. 5. 08:23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서쪽 수난의 파사드.

이곳엔 예루살렘 성에서부터 십자가에 매달리는 예수의 수난사가 조각되어 있다.

가우디는 생전에  탄생의 파사드만 완성했지만

사후 그의 주머니에서 발견된 쪽지에 수난의 파사드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단다.

그래서 그 쪽지대로 조각가 조셉 마리아 수비라치가 1976년 수난의 파사드 조각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평소 가우디는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라고 말했었고

그걸 증명하듯 그의 건축물에는 유려한 곡선의 미가 아름답게 펼쳐졌었다.

하지만 수비라치의 조각들은...

그것과는 정확히 반대로 툭툭 잘려진 직선이 주를 이룬다.

십자가는 공사장에서 사용하는 H빔 철근을 그대로 사용했고

심지어 예수님의 하반신은 맨살이 그대로 노출시켰다.

처음 수난의 파사드가 공개됐을때

신성모독이라며 수비라치를 엄청나게 비난했다는데 그럴만도 했겠다 싶다.

(너무나 패기 만만한 수비라치...)

 

 

수난의 파사드는 왼쪽 아래부터 거꾸로 S자 모양을 따라가며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아쉽게도 오른편에 있는 조각들은 보수중이라 가림막에 가려져 현재는 볼 수가 없다.

예수를 처형하라는 말에 고민하는 빌라도 총독과

첫 닭이 울 때까지 예수를 세 번 부인하는 베드로 조각이 가려져 있는데

가이드가 준비한 자료를 보는 걸로 아쉬움을 달랠 수 밖에 없었다.

파사드 중앙 기둥에는 채찍질을 당하는 예수님이 조각되어 있고,

기둥 뒤에는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의 성경 구절이,

기둥 바로 위에는 처음과 끝을 뜻하는 알파와 오페가가 새겨져 있다.

4대 복음서를 쓴 제자들을 옥수수탑 하단에 모셔놓은것까지는 참 좋았은데

반복적인 sanctus, sanctus, sanctus는 어딘지 이물스럽게 느껴졌다.

글자색이 지금보다 덜 노골적이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들고...

 

 

조각은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전 제자들과의 최후의 만찬을 시작으로

하늘로 승천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황금빛 예수님 형상은 높은 곳에 올려져있어 작아 보이지만 실제 크기는 5m에 달한다.

심지어 머리 하나 길이가 왠만한 성인 키와 비슷하단다.

조각을 자세히 살펴보면 곳곳에 상징들이 많이 보이는데 

그 의미를 생각하면서 보면 수난의 파사드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사진에는 안보이지만 최후의 만찬 조각에는 유다의 발밑에 충성을 상징하는 개가 한 마리 있는데

아마도 예수를 배신을 한 유다를 향한 일종의 조롱이 아니었나 싶다.

유다가 예수님에게 입맞춤하는 조각에는 두 개의 상징이 있는데

유다의 발밑에 사탄을 상징하는 뱀과

예수님 옆에 있는 4x4 마방진이다.

마방진의 숫자는 가로, 세로, 대각선 어느 쪽으로 더하든 33이라는 숫자가 나오는데

33은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의 나이를 뜻한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조각에는

예수님의 오른쪽 발밑에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 조각이.

위에는 부활을 상징하는 달이 조각되어 있다.

이 조각 바로 아래는 십자가를 들고 골고다 언덕에 올라가는 모습인데 

예수님 얼굴에 흐르는 피와 땀을 닦아준 베로니카 성녀가 베일을 들고 있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상징이 있는데,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 조각에서 보이지 않던 얼굴이

바로 여기 베로니카의 손에 들린 베일을 통해 보여진다.

베로니카 성녀 왼쪽 옆에는 투구를 쓴 로마병사가,

그 옆에는 가우디의 옆모습을 그대로 조각해서 넣었다.

(아마도 가우디를 향한 수비라치의 헌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왼쪽 상단에는 죽은 예수의 옷을 누가 가질 것인지 내기하는 3명의 로마 병사가,

그 밑에는 예수가 정말 죽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창으로 찔러보기 위해 다가가는 병사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그리고 나머지 오른쪽 조각들은 보수 중...

(못 본 오른편 조각들을 내 눈으로 볼 수 있는 날이 과연 다시 올까...?)

 

 

하지만...

이 모든 상징들은 성당 앞에 서는 순간 모두 무용지물이 된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당해 말을 한다는게 비루하게 느껴질 뿐이다.

이런 건축물이...

가능한거구나!

 

정말 모르겠다.

사람의 생각이 무서운건지,

사람의 손이 무서운건지.

 

아니면 가우디가 무서운건지...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