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6. 2. 17. 08:03

 

<나무 위의 군대>

 

일시 : 2015.12.19. ~ 2016.02.28.

장소 :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원작 : 이노우에 하사시

대본 : 호라이 류타

연출 : 강량원

출연 : 윤상화, 김영민 (분대장) / 성두섭, 신성민 (신병) / 강애심, 유은숙 (여자)

제작 : (주)연극열전

  

예당 오페라극장에서 3시 <레베카>를 본 후에

자유소극장으로 내려와서 연달아 연극 한 편을 봤다.

연극열전 시즌 6 첫번째 작품 <나무 위의 군대>

개인적으론 일본 작품은 잘 안보는 편인데 (코드가 나랑 정말 안맞아서...)

김영민이 출연한다니 그냥 지나쳐지지가 않더라.

보고 난 느낌은...

확실히 일본 작품은 나랑 잘 안맞는다는거!

재미있는건지, 슬픈건지, 아픈건지, 심각한건지... 모르겠다.

사전 정보없이 가긴 했지만

처음엔 식인나무에 대한 이야긴가 생각했고,

그 다음엔 나무의 정령이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이야기인가 생각했고,

그러다 간혹 스탠딩 허무 개그 같다는 생각도 했고,

인간의 수치심에 대한 이야기 싶다가 허깨비같은 국가에 대한 이야기인가 싶기도 하고...

뭐가 됐든 무대를 꽉 채운 커다란 나무의 존재가

어딘지 무색하게 느껴지더라.

 

톡특한 작품이라는 것도 알겠고,

주옥같은 좋은 대사들도 정말 많았고,

배우들의 연기도 시종일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좋았지만

보는 내내 뭔가 개운치 못한 이 느낌적인 느낌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마치 벵골나무 위에 있는 사람이 나인것 같다.

나무에서 내려가야 하는지, 그대로 있어야 하는지.

솔직히 지금까지도 결정을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작품 속에서 신병은 대사가 딱 내 심정이다.

"완전히 뒤죽박죽입니다.

 지켜주고 있는게 무섭고, 무서우면서도 매달리고, 매달리면서도 미워하고, 미워하면서도 믿는 겁니다.

 완전히 뒤죽박죽입니다"

이 말을 하고 신병은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소리를 낸다.

나무의 정령은 그걸 "모순의 소리"라고 부르더라.

 

모순의 소리,

이 작품이 말하고 싶었던게 이거이지 않았을가!

"모순(矛盾)"

그래서 이런 형식과 이런 대사들이 필요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끝나도 끝난게 아니라는 말,

진심으로 진심이다.

 

* 찌질한 연기에 관해서라면 김영민은 비교불능 갑(甲)이다. 

  김영민의 찌질함은 격(格)이 다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5. 28. 14:10

<헤다 가불러>

 

일시 : 2012.05.02. ~ 2012.05.28.

장소 : 명동예술극장

출연 : 이혜영, 강애심, 김수현, 김성미, 김정호, 호산, 임성미

극작 : 헨리크 입센

연출 : 박정희

제작 : 명동예술극장

 

<햄릿 1999> 이후 12년만에 배우 이혜영이 연극 무대에 선다!

그것도 '현대 연극의 아버지'로 불리는 헨리크 입센의 작품으로.

<인형의 집>으로 유명한 입센의 <헤다 가불러>는 세계 초연 이후 120년 만에 우리나라에 초연무대를 갖게 됐다.

그만큼 함부러 도전하기에 어려운 작품이란 의미일까?

세계적으로 이 작품이 공연될 때는 누가 헤다 역을 하느냐가 매번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는데 우리나라가 선택한 첫번째 헤다는 배우 "이혜영"이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작품의 카리스마가 어느정도인지 가늠이 된다.

솔직히 이혜영 한 명만 봐도 손해날 것 없는 작품이겠구나 생각하면서 일찌감치 예매를 했었다.

명동예술극장은 개관한 이래 나름대로 주관과 곤조(?)를 가지고 좋은 작품을 성실하게 제작해왔다.

개인적으로 처음 명동예술극장을 찾았는데

뭐랄까 어떤 독보적인 자존감 같은 게 느껴졌다.

살짝 독립군 같다고나 할까?

 

연극은 어렵다는 표현보다는 너무나 성실하고 극적이었다.

"헤다 가불러"라는 인물이 가지는 삶에 대한 욕망과 주도권에 대한 집착이 섬득하면서도 사실적이다.

고전적이면서도 섬세한 심리묘사나 대사들은 지극히 현대적이다.

한 인간, 한 여성의 마지막 이틀!

그 이틀의 시간이 평생의 시간보다 길고 강렬하다.

이 여자의 마지막은 또 얼마나 정당하고 당당한가!

삶의 주도권을 타인에게 빼앗기느니 차라리 모든 걸 던져버리겠다.

결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성이 아닌 아버지의 성을 그대로 고집할만큼 헤다는 자신의 삶에 주도적이었던 헤다.

그녀는 일종의 개척자였고 기획자였다.

"욕망"이라는 건 또 얼마나 치밀하고 관능적인가!

그리고 또 배우 이혜영은 얼마나 아름답고 관능적이고 화려하던가!

솔직히 길지 않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배우 이혜영에게 단 한 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헤다야 늘 아름답지 않니!"

테스만 고모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다.

아니 솔직히 "이혜영이야 늘 아름답지 않니!"가 정확한 표현이다.

대사와 동작이 너무 우아하고 아름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장되거나 힘이 들어간 게 아니라 정말 물처럼 자연스럽게 흐른다.

50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그녀는 젊은 헤다 역에 완벽히 동화됐고 충실했다.

무대에 서있는 자세와 눈빛, 동작 하나하나가 어찌나 당당하던지...

보는 내내 완벽히 압도당했다.

특히 커튼콜때 이혜영의 모습은 연극보다 더 감동적이었다.

뭐랄까?

무대와 관객에 대한 깊은 존경과 경외심이 담긴 인사였다.

범접할 수 없는 여신같은 신비감과 아우라에 숨이 막혔다.

 

헤다와 후반부에 심리대결을 펼치는 판사 역의 김정호의 연기도 압권이다.

서로 아닌 척 하면서 팽팽하게 당기는 그 긴강감이라니...

설정인지 아니면 실제 목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딘지 상대를 얕잡아보는 듯하면서 느물거리는 독특한 김정호의 목소리는 상당히 인상적이다.

표정도 너무 좋았고... 

이혜영뿐만 아니라 호산, 김수현, 강애심의 열연도 훌륭했다.

특히 이 모든 배우들의 목소리톤과 딕션이 믿어지지 않을만큼 좋았다.

아! 그리고 신비감을 주던 곱추 하녀 임성미에게도 박수를...

(이층에서 고개만 내밀던 하녀때문에 극 중간중간 정말 많이 놀랐다.)

마지막 헤다의 자살 장면.

마치 헤다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확실하고 독보적인 보석이 된 것만 같다.

아주 극도로 아름다웠다노라 말한다면 내가 이상한걸까?

 

헤다는 아름다웠다.

그리고 배우 이혜영의 헤다는 백만 배쯤 더 아름다웠다.

그 어떤 젊은 여배우도 이햬영의 젊음과 관능을 결코 따라오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두루두루 끔찍한 작품이었고 꿈같은 작품이었다.

 

아름다운 작품을 보면

오래오래 황홀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