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식증'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8.08 <컴백홈> - 황시운
  2. 2010.09.20 <빈집> - 김주영 2
읽고 끄적 끄적...2011. 8. 8. 05:58

내가 연식이 좀 된 사람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정말 연식이 오래된 분들께는 죄송 ^^)
창작과 비평, 민음사,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오는 책을 편애하는 경향이 있다.
어쩌라!
어찌됐든 우리나라 문학계를 장시간 꿋꿋하게 지켜온 3인방인 것을...
<컴백홈>이라는 제목과 표지는 좀 비호감이었지만
제 4회 창비장편소설상을 수상했다니 그래도 뭔가가 있으려니 기대했다.
일단 흡인력과 집중력 대단하다.
첫페이지를 열면 어찌됐든 마지막 페이지까지 확인하게 만드는 책이다.
그렇다면 재미?
오랫만에 박장대소하면서 씁쓸하고 안스러워하면서
참 여러 감정을 가지고 읽게 만든 장편소설이다.
게다가 서태지가 나오지 않는가 말이다.
서태지는 확실히 변함없는 문화아이콘이 맞다.
음악계를 장시간 접수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문학계에 비상한 영감을 주고 있다.
여러모로 그는 대한민국 문화를 "컴백홈"하게 만든다.
그것도 열 두 번도 더...


슈퍼울트라 개량돼지라는 별명을 가진 130 kg 거구를 자랑하는 열일곱살 박유미!
서태지가 데뷔했던 1992년 4월 11일에 4.78 kg의 초우량아로 태어난 그녀는
공식적인 왕따에 집안의 패물이라도 훔쳐내지 않고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삥을 뜯기고,
온몸의 멍을 가실 날 없이 다구리를 당하고,
심지어 친구의 애인이었던 양아치새끼에게 강간까지 당해도 하소연할 곳 하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서태지에게 그랬듯,
세상은 그녀에게 지나치게 가혹하기만 하다.

....... 서태지는 매번 '최초' 혹은 '최악'이라는 수식이 붙을 만한 고난 속에 던져졌지만, 도저한 세계에서 온 특별한 사람답게 그 모든 역경들을 당당히 헤쳐나왔다.
슈퍼울트라 개량돼지에게는 무슨 짓이든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아이들 틈에서 내가 여태껏 꿋꿋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서태지와 함께 가게 될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 때문이엇다.
다이어트에 성공해서 완벽한 인간으로 거듭난 후, 나느 그를 찾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당당히 말할 것이다. 나는 드디어 모든 준비를 마쳤다고. 이제 언제든 당신과 함께 달로 떠날 수 있게 됐다고 ......

급기야 그녀는 거식증을 지향하는 프로아나(Pro-ana) 싸이트에 가입한다.
서태지와 함께 달의 뒷편에 가기 위해서 말이다. 
Pro-Ana!
찬성을 뜻하는 Pro와 거식증을 뜻하는 Anorexia가 합쳐진 말로
마른 몸을 지향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신조어란다.
이쯤 되면 주인공를 정신질환자라고 손가락질하고 언덕위의 하얀집이라도 알아보고 싶어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가 당신에게 이렇게 고백한다면?

...... 내게 달과 서태지는 단순한 환상이 아니었다. 서태지와 함께 가게 될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는 지난 시간 동안 나를 지탱해온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내게 달은,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할 수밖에 없는 '다른 세상'이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잘 알고 있었다. 수많은 크레이터로 뒤덮인 그 척박한 세계에서 나는 끝내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할 거라는 걸. 하지만 믿고 싶었다. 서태지는 달에서 온 아주 특별한 사람일 거라고,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달의 뒤편, 그 영겁의 어둠속에서 스스로가 빛이 되어 살아가는 위대한 존재들의 세상이 숨겨져 있을 거라고, 머지않아 나는 서태지와 함께 그 도저한 세계로 떠나게 될 거라고, 그리고 그곳에서 비로소 모든 걸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나는 그녀의 환상을 응원한다.
그것도 미치도록, 열렬하게!
그녀는 때가 되면 반드시 자신이 왔던 달의 뒤편으로 가게 될 것이다.
그것도 컴백홈을 노래하는 울트라맨 서태지와 함께... 
아니, 꼭 그래야만 한다.


이 놈의 세상은 참 친절하지 않다.
특히 살찐 여자들에겐 더더욱 친절하지 않다.
살찐 여자들은 그 소외감과 상실감을 채우기 위해 더더욱 먹을 것에 집착한다.
어쩌면 이 세상은 이들을, 아니 우리 모두를 더이상 보호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어디로 "컴백홈" 해야할까?
작가는 조금만 더 견뎌보라고, 무언가를 찾게 될 순간이 반드시 올 거라고,
그러니 부디 지치지 말라고 위로하기  위해 소설을 썼단다.
돌아갈 집마저 없어졌다 해도
우리가 보지 못하는 달의 이면처럼 당신을 위한 세상이 어딘가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그런데 사실은,
나도 정말이지 달의 뒷편으로 가고 싶다.
아니 가야만 한다.
꼭 서태지와 함께가 아니더라도...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9. 20. 06:37

작가 김주영(71)이 올해로 등단 40년을 맞았다,
칠순을 넘긴 노작가는 그러나 여전히 왕성하다.
<멸치> 이후 8년만에 새롭게 쓴 장편소설 <빈집>을 보며
허랑한 바람앞에 서있는 인간이 다시 떠올랐다.
왠지 허깨비같은 사람들.
장터같은 너저분한 마당에는 그러나 치열한 삶의 기운같은 것이 느껴진다.
한 편으론 바짝 마른 나뭇잎 한 장을 손에 들고 있는 것 같다.
조금만 힘을 줘도 그대로 부서져 버릴 것 같아 들고 있는 두 손은 점점 난감해진다.
"...... 내 안에 터질 듯이 더부룩한 탐욕이 있다. 그것이 나를 천성적인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 내 일생이 소멸될 때까지 이 탐욕과 껴안고 엎치락뒤치락하는 가늠은 계속될 것 같다."
<객주>, <활빈도>, <천둥소리>,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화척>, <홍어>, <멸치>, <아라리 난장>
숱한 장편을 쏟아낸 작가에게 아직 겨안고 엎치락뒤차락할 탐욕이 많다는 것은
순전한 독자에겐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의 글을 읽는 건,
펄떡이는 날 것을 바라보는 비릿한 생동감이다.
<빈집>의 처음 장면인 털게의 탈출처럼...
...... 바다를 떠난 지가 도대체 얼마나 되었을가. 기력도 소진되었을 뿐만 아니라, 몰골조차 쪼그라든 게들이 물사레에 떠밀리며 마지못해 수족관 속을 떠다니고 있었다......
그의 글은 고요하게 기습적이다. 
내리쬐는 탱볕 속에 딱 한 방울의 물방울이 이제 막 바짝 마른 흙바닥으로 떨어지려는 중이다.



1998년 발표한 전작 <홍어>에서는 아버지가,
2002년 발표한 <멸치>에서는 어머니가 집을 비웠다.
급기야 <빈집>에서는 도박판을 쫒아 집을 비운 아버지를 찾으러 어머니마저 수시로 집을 비운다.
가족이지만 모여살지 못하는 사람들.
그러나 그 부재는 다름 아닌 가족의 누군가를 찾아나서기 위한,
혹은 가족을 지켜내기 위한 부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정말 가족은 울타리 안에 곱게 지켜졌던가?
책을 읽는 눈길이 가파르고 숨차다.
놀음판의 타짜, 그래서 늘 집을 비우는 아버지,
그 스트레스로 딸을 구박하다가 본인도 집을 나가는 재취 어머니,
빈집에 홀로 남은 어린 딸 어진.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영원한 가출은 결국 어진이 홀로 지키던 빈집마저 내주게 만든다.
쫓기듯 한 결혼생활.
벌레 취급하듯 자신의 존재를 혐오하는 남편과 시어머니를 피해 외딴집을 도망친 어진은
그 옛날 아버지가 오동나무에 묻어둔 주소지를 찾아 이복언니 수진에게로 간다.
비곗덩어리 안성댁(수진)과 거식증으로 비쩍 마른 검불데기 절름발이 어진.
둘은 아마도 첫눈에 두 사람이 자매간인걸 알아봤으리라.
알면서도 서로 모른척하며 아무렇지 않게 언니, 동생하고 불러대며 말을 섞었으리라.
서로의 근본을 뻔히 알면서
한껏 다정한 이복자매의 모습은
가족의 부재만큼이나 아득하고 안스럽다.
빈집을 빠져나와 또 다시 빈집으로 건너가는 여정들...
그게 삶이었던가?



......내가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은 아버지로부터 비롯된 어머니의 상처였다. 그래서 어머니와 나의 관계는 감정과 혼란의 파괴로 이루어진 최악의 결합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겉치레뿐인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모든 것이 가능했고 모든 것이 정당화되면서, 결국은 모든 것이 괴멸되어버린 결과를 낳았다......
백수진, 백어진.
두 자매의 어머니는 평생을 서로 숨바꼭질을 하며 지냈다.
한쪽이 한쪽을 피해 도망치면 며칠 안에 어떻게든 귀신같이 알아내고 찾아오는 여자.
그럴수도 있겠구나.
그런 숨바꼭질 속에서 위로를 받을 수도 있었겠구나.
결국 책을 읽고 있는 나까지도 그 관계 속에 위로받고 있다.
.... 엄마는 죽기 몇 년 전까지 줄곧 그 여자하고 술래잡기를 한 거야. 엄마가 사고무친한 객지를 떠돌면서 살았지만, 무엇하나 엄마를 흥분시키는 일이 있었겠어? .... 그 여자하고 숨바꼭질하는 흥분도 없었다면, 우리 엄마 살맛이 없었을 거야. 우리 엄마 행복했던 때가 있었다면 그 여자한테 쫒겨다니면서 이사하고 살았을 때야. 이번에는 그 여자가 며칠 만에 집을 찾아낼까 긴장하면서 기다렸겠지. 나도 그 속내를 엄마 죽은 다음에야 깨달았지. 그 숨바꼭질이 그나마 폐병 앓앗던 우리 엄마를 예순 살까지 살 수 있도록 생명을 연장시켜준거야.....
......엄마가 참고 또 참았던 건 외로웠기 때문이야. 그런데 외로움을 타고 있기는 그 여자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엄마는 하고 있었던 거야.... 미친년처럼 남편을 찾아 안가는 곳이 없었을 만큼 설레발치고 나섰던 그 여자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외로웠다는 것을 엄마는 알고 있었던 거지.
이 세상에 나 빼놓고 엄마에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은 그 여자 딱 한 사람뿐이었다면 이해가 돼?......

나는 대답한다.
그래, 이제 이해할 수 있노라고.
모든 것을 놓듯 떠난 이복자매 두 사람만의 여행길.
수진은 방파제 앞에 푸른 재킷을 벗어놓고 사라졌다.
어진은 생각한다.
...... 방파제 앞에 끝간데없이 펼쳐진 곳을 바다로 생각했다면, 신발을 벗어놓았을 텐데, 태양이 작열하는 뜨거운 사막으로 알았기에 껴입고 다녔던 재킷을 벗어놓고 떠난 것이었다. 이제 사막으로 떠난 수진이 언니처럼 바다 끝에 서 있는 나 어진이 역시 온전히 혼자가 된 것이다......

파도같은 설움이 울컥 밀려온다.
사막의 냄새가 이럴까?
비릿하고 짭조름하다.
산다는 건,
늘 듬성듬성한 빈집으로 겅중겅중 뛰는 뜀뛰기같다.
손끝으로 푸른 사막의 비릿내가 진동한다.
어진이는 아마도 또 어딘가 빈집 속에서 오동나무 둥지같은 똬리를 들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제야 온 가족이 모이려나...
아득한 먼 길.
굽이굽이 돌아 이제 다시 모이려나...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