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4. 11. 25. 08:34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일시 : 2014.09.27. ~ 2014.11.20.

장소 : DCF대명문화공장 2관 라이프웨이홀

극작, 각색 : 추민주

연출 : 김태형

총감독 : 김조광수

출연 : 정동화, 박성훈 (민수) / 오의식, 강정우 (티나)

        차수연, 손지윤 (효진) / 이갑선, 김대종 (왕언니)

        우지순, 이이림 (경남) / 구도균, 이정수 (주노)

        리안나 (서영), 김효숙 (엄마)

제작 : 대명문화공장

 

<두결한장>

영화로 먼저 만들어졌을때 송용진이 출연한다고 해서 잠깐 관심을 갖긴했지만 정작 개봉했을땐 챙겨보지 못했었다.

솔직히 김조광수의 올드한 감성을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음악극으로 만들어진다고 해서 이번엔 한 번 챙겨봐야겠구나 생각했다..

공개된 개스팅도 괜찮았고 오랫만에 이갑선 배우를 무대에서 보고 싶기도 했다.

보고 난 후의 느낌은...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생각했던것보다 훨씬 더 뻔하고 상투적인 스토리라 당황스러웠다.

(영화도 그런가????)

계약결혼이든 뭐든 아무튼 사랑없이 결혼하는 커플과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한 남자만 바라보는 한 남자.

그리고 공식처럼 찾아오는 시한부 인생까지...

정말 온갖 종류의 최류성 소재들이 총망라됐다.

게다가 너무 일방적인 감동과 슬픔을 강요하는것 같아서 개인적으론 좀 불편했다.

내가 무딘건지 아니면 이런 최류성 이야기에 공감을 못해선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저기 훌쩍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너무 민망할 정도로 멀쩡하게 관람했다.

 

관람하는 내내 중심인물인 민수 타나, 효진, 서영의 연기보다

오히려 주변인들의 연기가 훨씬 눈에 더 들어왔.

제일 기대했던 배우도 이갑선 배우였지만

역시나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더라.

배우로서도, 인물로서도 묵직한 중심의 역할을 충분히 감당해내고 보여줘서 감탄했다.

이갑선, 이이림, 구도균 배우가 아니었다면 이 작품을 나는 훨씬 더 밋밋하게 봤을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세 배우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성적소수자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라 용감하고 과감하길 바랬는데.

덜 치열했고, 덜 직접적이었고, 덜 절망적이었다.

신파를 보여주는걸로 끝내서는 안됐다.

잔인할 정도로 정확한 현실을 보여줘야만 했다.

그게 사회적인 퇴출을 넘어 한 사람의 완벽한 매장으로 끝이 난다해도

잔인하게 치열하고 너덜거릴 정도로 고분분투했어야 했다.

이렇게 동화적인 판타지로 끝내버리는건... 

참 씁쓸하고 모호한 환상일 뿐이다.

 

비밀을 간직하고 살아온 사람은 안다.

드러내놓고 산다는게 얼마나 무섭고 거대한 공포인지...

그런데 이 작품 속에는 안타깝게도

그게 없었다.

 

삶은,..

여행일수도 있지만 끔찍한 지옥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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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끄적 끄적...2013. 6. 21. 08:00

<I Am My Own Wife>

일시 : 2013.05.28. ~ 2013.06.29.

장소 : 두산아트센터 Space 111

대본 : 더그 라이트

번역 : 김기란  /  무대 : 여신동

조명 : 최보윤  /  음향 : 임서진

연출 : 강량원

출연 : 남명렬, 지현준 (샤롯데)

제작 : 두산아트센터

 

아름다운 여자를 만났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를 한줄한줄 정성껏 읽어나갔다.

서로 다른 두 시대를 살아온 여장남자.

 그녀의 삶 전체에 대한 모든 이야기,

그러나 그 인생 전부를 읽어내고도 결코 다 알아낼 수 없는 그런 여자.

샬롯 데 폰 말스도르프.

처음에 대면한 건 프레임 액자 속에 담긴 정물화 한 점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빛,

스르륵 비밀처럼 열리는 문.

알 수 없는 미소와 함께  객석을 휘 둘러보고 거침없이 사라져버리는 그녀, 샤롯데!

끝나고 나서 알았다.

그 미소가 나를 베를린 그륀더자이트(Gruenderzeit) 박물관에 깊숙히 들어가게 했다는 걸...

 

작품을 보기 전,

조금 두려웠었다.

남명렬 배우의 게이스런 모습을 목격하게 될까봐.

그렇게된다면 참 난감하고 당황스럽지 않을까 생각했다.

(배우 남명렬을 개인적으로 조금 알기에...) 

다행이 게이스런 몸짓과 목소리는 없었다.

단지 그녀만이 있었을 뿐.

 

남명렬의 샤롯데은,

질투가 날만큼 아름답고 포근하고 따뜻했다.

일부러 목소리를 여자처럼 꾸미지도 않았고 자세는 오히려 남자의 움직임에 더 가깝다.

그러나 그의 샤롯데는 너무나 섬세하고 세밀해서

여자인 내가 보기에도 질투가 느껴질 정도다.

특히 말의 끝에 여성만이 감지할 수 있는 섬세함이 담겨있다.

소리와 빛,

마치 그녀처럼 중복되며 겹쳐지는 그림자들.

이 작품은 지독한 탐독을 부른다.

남명렬이 읽어준 이 작품은,

오직 한 사람의 이야기였고, 한 사람의 목소리였다.

1인 35역의 모노드라마... 운운은 일종의 미사여구라고 생각하련다.

나는 이 작품 속에서 35명을 만난 게 아니라,

대단한 단 한 명의 여자를 만났고, 봤고, 읽었을 뿐이다.

그녀, 샤롯데!

배우 남명렬의 특유한 발성과 딕션은 내겐 마술이고 최면이다.

뭉개지는듯하면서 명확한 그의 "ㅅ발음"을 들으면서

나는 또 다시 이곳과 저곳의 경계에서 서성였다.

그 목소리가 신비와 현실, 거짓과 진실, 그와 그녀 사이 어딘가로 나를 데리고간다.

아주 자연스럽고 평범하게!

 

 

샤롯데에게 누군가 물었다.

가구가 망가지거나 오래되면 어떻게 하느냐고,

수리하거나 버리느냐고.

그녀가 대답한다.

 "나는 절대로 가구를 수리하거나 버리지 않아요.

  그 모든게 존재했다는 증거죠.

  모든 것은 보존해야 해요. 있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만 합니다.

  이건 기록이예요. 삶의 기록!" 

순간 나는 그녀의 오래된 컬렉센 중 하나가 되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품었다.

그녀의 거짓들이 그녀에게 그랬듯

(어디까지 타인의 관점에 불과할뿐이지만)

그게 내게도 자가처방이 되어줄지도 모른다는 절박함.

아! 그렇구나!

이 작품은 절박한 기록에 대한 이야기었구나.

문득 시계추가 움직이며 커다란 소리를 낸다.

나치와 공산주의라는 서로 다른 두 시대를 살아낸 그녀가 남긴 소리.

그 소리가 마치 급작스럽게 들린 총소리처럼 가슴을 뚫고 지나간다.

내 오른쪽 입꼬리도 살짝 올라간다.

꼭 그녀처럼... 

 

나는 그녀를 읽었다.

비록 전부는 아닐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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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끄적 끄적...2012. 12. 28. 08:06

<심야식당>

일시 : 2012.12.11. ~ 2013.02.17.

장소 :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원작 : 아베 야로 "심야식당"

대본, 작사 : 정영

작곡 : 김혜성

연출 : 김동연

출연 : 송영창, 박지일 (마스터) / 서현철, 정수한 (타다시)

        임기홍, 김늘메 (코스즈) / 박정표, 최호중 (겐)

        한채윤, 백은혜 (치도리 미유키) / 박혜나 (마릴린)

        정의욱 (켄자키 류)/차정화, 배문주, 김아영 (오차즈케 시스터즈)

 

원래는 계획에 없던 관람이었다.

책장 넘기는게 귀찮아 만화를 워낙에 안 읽기도 하거니와

특히나 일본만화는 이상하게 공감하기가 쉽지않아 더 안 보게 된다.

(나, 그 유명하다는 슬램덩크, 초밥왕 이런 것도 안 봤다.)

아무리 출연진들이 좋다고 하더라도 인터파크에 미리크리스마스 이벤트 30% 할인이 뜨지 않았다면 아마도 외면했을 작품.

솔직히 말하면 이 작품이 창작인줄도 몰랐다.

그런 작품이 있다.

별 기대를 하지 않고 공연장을 찾았는데

첫 장면과 대면하는 순간 속수무책으로 쏙 빠져버리게 되는 그런 작품!

창작뮤지컬 <심야식당>이 내겐 그랬다.

작고 소박한 음식점 앞으로 박지일이 자전거를 끌고 들어서는 순간,

느닷없이 퍼지던 따뜻한 훈김.

그건 마치 이제 막 지어낸 고슬고슬한 밥을 눈 앞에 둔 느낌이었다.

2시간 동안 지독한 허기와 신기한 포만감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어느새 내 빈 속은 꽉 채워졌다.

문어모양으로 자른 베엔나 소시지를 볶은 소리,

달콤한 계란말이 부치는 소리,

전기밥통 여는 소리, 차

밥 위에 차를 따르는 소리,

재료를 손질하는 경괘한 칼질 소리.

음식을 준비하는 이 모든 소리가 그렇게나 다정하고 따뜻할 수 없었다.

(이런 소리들을 작품속에서 그대로 들려주겠다는 생각, 누가 맨 처음 했을까?)

 

저녁 12시 부터 아침 7시까지 문을 여는,

변변한 간판도 없는 심야식당.

메뉴라고는 된장정식 하나뿐이지만

손님이 주문하는 음식은 그때그때 만들어주는 마스터가 있는 그 곳.

사람들은 심야식당 문을 열고 말한다.

"마스터! 늘 먹던 걸로 주세요~~~"

비엔나소시지, 달콤한 계란말이, 고양이맘마, 버터라이스, 모시조개술찜,

달걀후라이를 올린 소스 야끼 소바, 감자셀러드, 오차즈께...

음식과 함께 하나씩 꺼내지는 추억과 사연들에 나는 여러번 뭉클하고 아련했다.

추억에 제대로 채한 사람들.

외롭고 지친 세상에서 나를 알아봐주고 위로해주는 단 하나의 음식.

마스터가 해주는 음식은 "괜찮다, 괜찮다"라며 어깨를 또닥이는 깊은 위로 같다.

(그치,그치,그치,그치~~~~ 네~~~!) 

마스터 역의 박지일은 정말 최고의 스토리텔러였다.

대사와 노래가 많은건 아니지만 작품 속에서의 존재감은 정말 엄청나다.

그 목소리라니...

누구라도 박지일 마스터 옆에 있으면 그동안 꽁꽁 싸매고 있던 깊은 트라우마도 술술 고백할 수 있을 것 같다.

절로 위로가 되는 백만불자리 음성.

늙은 게이 코스즈 임기홍도 신주쿠 뒷골목 역사책 타다시 서현철도 역시나 멋지고 인상적이었다.

(이 두 배우가 내게 일말의 실망을 안겨줄 날이 과연 오기는 할까?)

배우 최호중은 놀라운 발견이다.

이 배우 주목받기에 정말 충분하다!

노래도 괜찮고 그 많은 배역을 정말 완전히 다른 감정과 모습으로 연기했다.

임기홍과 또 다른 부류의 멀티맨 탄생을 예고한다.

매실, 연어, 명란젖 오차즈께 시스터즈는 정말 환상적이었고

작품의 구석구석을 정말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나게 만들었다.

등장하는 10명의  배우들 전부 대단했다.

번잡하지 않은 무대도 너무 좋았고 뮤지컬 넘버들도 하나하나 다 좋았다.

(요즘 공연되는 창작뮤지컬들 정말 대단하다. 정말 만세다~~!)

 

정말이지 이 식당 어떻게든 찾아내서 꼭 한 번 가고 싶다.

찾아내면 문을 드르륵 열고 호기롭게 말하는거다.

"마스터! 늘 먹던 걸로 주세요!"

 

나는...

진심으로 위로받고 싶다.

내 텅 빈 마음속 그 깊은 곳까지

포만감 가득한 위로를 꾹꾹 채우고 싶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7. 18. 08:15

<라카지>

원제 : La Cage Aux Folles

일시 : 2012.07.04. ~ 2012.09.04.

장소 : LG아트센터

연출, 각색 : 이지나

음악감독 : 장소영, 김은영

출연 : 정성화, 김다현 (앨빈) / 남경주, 고영빈 (조지)

        이동하, 이창민, 이민호 (장미셀)

        천호진, 윤승원 (에두아르 딩동)

        전수경, 도정주 (마담 딩동)

        김호영, 이지송 (자코브)

        유나영 (자클린) / 임천석 (프란시스)

 

정성화의 세 번째 게이 역할.

참 재미있는 건 <거미여인의 키스> 때도 느낀거지만 전혀 여성스럽지 않은, 상당히 뚝배기스런 외형을 가진 정성화가 게이 역할을 하면 코믹하면서도 묘한 페이소스와 함께 깊은 연민이 느껴진다.

같은 배역에 더블 캐스팅된 김다현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다.

세월에 따라 배도 두둑하게 나오면서 적당히 처지고 

얼굴과 몸 여기저기엔 더이상 화장으로도 감출 수 없는 주름이 늘어나고

주변에 상광없이 자기중심적은 걸판진 수다를 떠는 굳은 심지의 소유자.

이제 여성성보다는 남성성을 더 많이 띄게 되면서 성별이 모호해지는 중년의 끄트머리에 위치한

제 3의 성(姓)을 가진 그들, 아줌마!

외모에서부터 전혀 여성스럽지 않은 정성화의 아줌마 연기는

그래선지 더 측은하고 안스럽다.

 

여장을 한 정성화와 김다현의 모습을 사진으로만 봐도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정성화가 그랬단다.

김다현의 여장한 모습을 보면서 질투를 느꼈다고.

어디 정성화뿐이랴!

한때 꽃다현으로 불릴만큼 아름다운 미모(?)를 자랑했던 김다현을 향한 질투,

아직까지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지나에게 <라카지> 연출을 의뢰했을 때 그녀가 요구한 게 한가지였단다.

앨빈 역은 꼭 정성화가 해야 한다는 조건.

이지나 연출은 어떤 확신을 가지고 배우 정성화를 믿었던걸까?

드랙퀸과 정성화라?

일단 그 조합은 참 암담하고 그림이 안 나온다.

<거미여인의 키스>와 <위험한 상견례>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낮설다.

 

뮤지컬 <라키지>는 1983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됐다.

30년 동안 연극, 영화, 뮤지컬로 만들어졌었고

영화는 우리나라에서도 매니아층에서 상당한 호응을 얻기도 했었다.

30년 전에 게이 가정 이야기를 무대에 올렸다?

상당한 용기와 파격이 아닐 수 없다.

직접 목격한 쇼뮤지컬 <라카지>

일단 재미있다!

화려한 볼거리와 다양한 장르의 음악으로 눈과 귀가 즐겁다.

거기가 의외의 감동과 통쾌함도 있다.

출연하느 배우들은 역시 자신의 이름에 걸맞게 잘한다.

심지어 뮤지컬을 처음 한다는 2AM의 이창민조차도 장미셀 역을 너무 능청스럽게 잘한다.

처음이라는 게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리고 이 작품에서 누구보다 대단한 배우들은 역시 라카지걸들!

(이 건장한 남정네들 진심으로 존경스럽다)

그로테스크한 진한 화장에 하이힐을 신고 화려한 춤을 추는 그들을 보면서 연신 감탄했다.

의상 무게만도 엄청날텐데 대단한 체력이고 대단한 에너지다.

역기를 발에 달고 춤추는 기분이라고 했던가!

보는 관객들은 동남아에서나 볼 수 있는 알카자쇼를(?) 대한민국에서 보는 재미가 솔솔하지만

실제 라카지컬을 하는 남자 배우들은 참 죽을 맛이겠다 싶다. 

(이 남정네들 나보다 더 유연하고 나보다 더 다리 잘 올라간다.)

1막 후반부에 라카지걸들이 보여주는 춤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조그만 새장에서 추는 그로테스크한 춤을 비롯해서

탱고와 캉캉 등 각종 춤을 보여주는데 절로 입이 쩍 벌어진다.

솔직히 내 눈에 알카자쇼보다 더 대단하더라.

알카자쇼에 나오는 사람들은 자신이 여자라고 확고하게 믿는, 트렌스잰더가 대부분이지만 

라카지걸들은 진짜 남자 아닌가!

(뭐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건 개인의 취향이니 언급할 필요도 없고...) 

 

2AM 이창민보다 더 놀라웠던 배우는

자코브역의 이지송.

게이스런 연기의 달인 김호영과 더블 캐스팅 된 게 부담스러웠을텐데 너무 잘 어룰렸다.

노래와 연기, 목소리도 어쩜 그렇게 능청스럽고 귀엽던지...

이런 하녀 하나쯤 있으면 인생이 정말 해피할 것 같다.

(갖고 싶다~! 자코브!)

처음엔 이지송이 김호영만큼 배역에 어울릴까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는데

점점 그런 마음을 가졌다는 게 미안해질만큼 너무 멋졌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보면서 가장 매력적이었던 배역이었고 배우였다.

딩동 부부 천호진과 전수경은 출연 분량이 많지는 않고 노래도 거의 없지만

마지막 라카지오폴에서의 모습은 관객들을 들썩이기에 충분했다.

의외의 재미를 주는 이런 역할들 참 매력적이다.

접시 가지고 실랑이 하는 부분은 전수경의 목상태가 안 좋아서 그런지 잘 살지 못했다.

노래도 잘 안 들리고 음도 불안정하고.

그래도 딩동 부인같은 캐릭터는 역시 전수경이 고수다.

조지역의 남경주.

처음이었다.

뮤지컬 배우 남경주의 매력을 이렇게 제대로, 완벽하게 느낀 게.

이상하게도 남경주가 출연하는 작품에서 특별한 감동도 재미도 못느꼈었는데

이 작품은 남경주가 전체적인 무게중심을 잘 잡고 있다는 느낌이다.

남경주가 아니라 조지 그 자체로 느껴졌다.

제작발표회때 남경주가 그랬다지?

"김다현은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정성화는 결심이 좀 필요할 것 같다"고...

그런데 무대 위에서 마담 자자를 바라보는 눈빛은 정말 사랑이 담긴 그런 눈빛이었다.

섬세했고 다정했고 그리고 깊이가 있었다.

출연 분량이 상당한데 시종일관 흐름을 잘 잡고 노래와 춤도 훌륭했다.

이래서 남경주 남경주 하는구나 비로소 제대로 느꼈다.

그래서 <시카고>의 남경주는 또 어떤 모습일까가 좀 궁금해져버렸다.

남경주와 최정원은 참 나랑 안 맞는 뮤지컬배우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라카지>를 보면서 세 명의 배우에게 놀란 셈인가?

이창민, 이지송, 남경주.

아니지, 환상적인 라카지걸들을 빼놓으면 절대 안되지!

뮤지컬 넘버들도 참 좋았고

특히 정성화가 부르는 넘버들은 확실히 애틋하고 특별하다.
여러 버전으로 나오는 "I am What I am"은 각 버전들마다 다 매력적이고

여성적으로 보이려고 애쓰지 않으면서 자기 소리에서 최선의 앨빈으로 노래하는 정성화의 모습은

세상의 어떤 여자보다 아름답고 우아했다.

극명하게 대비되는 외면과 내면의 오버랩은

이지나 연출이 그렇게 강력하게 정성화를 원했던 이유를 조금 이해하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울컥하고 애잔했던 넘버는,

남경주가 아내 앨빈을 보면서 아들에게 부르는 "Look over there".

남경주의 감정표현이 정말 훌륭했다. 

 

이런 류의 쇼뮤지컬.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이 작품은 꽤 괜찮았다.

아팠고 애잔했고 즐거웠고 아름다웠다.

라카지오폴의 새들은 멋지게 울었다.

이제 울음을 그치고 멀리 날아올라도 되겠다.

 

<La Cage>

 

1. prelude

2. We Are What We Are

3. A Little More Mascara

4. With Anne n My Arm

5. With You On My Arm

6. Tonight of All Nights?

7. Song On The Sand (La Da Da Da)

8. La Cage Aux Folles

9. What I Failed to Tell You

10. I Am What I Am

11. Song On The Sand

12. If YOu Wish to Attend

10, Maculinity

11. Look Over There

12. Coktail Counterpoint

13. The Best Of Times

14. Look Over There

15. The Finale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4. 6. 06:11

 <게이 결혼식>

 

장소 : 학전 블루 소극장

일시 : 2012.03.01 ~ 20.12.07.01.

출연 : 서현철, 남문철 (에드몽) /  최덕문, 이희준, 최대훈 (앙리)

        노진원, 김늘메 (도도) / 우지순, 민성욱 (노베르)

        송유현, 민정 (엘자) 

연출 : 민준호

제작 : (주)적도

기획 : 학전

 

 

프랑스 코미디 연극 <게이 결혼식>

일찌감치 조기예매를 하고 기다렸던 작품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 연극을 보려고 한 건 단지 서현철이라는 배우가 출연해서다.

남명렬, 김영민, 서현철, 정승길, 윤소정. 서은경.

나름대로 내가 격하게 아끼고 사랑하는 연극배우들이다.

그래서 이들이 출연하는 작품은 되도록이면 놓치지 않고 챙겨보려는 편이다.

얼마 전에 남명렬이 출연한 <모래 정거장>과 <죄와 벌>을 놓치고서도 얼마나 속상했던지...

(공연 기간도 너무 짧았고 개인적인 일때문에 시간이 전혀 안 맞았다)

 

연극배우 서현철.

점점 브리운관에서의 활약상도 커지고 있긴 하지만

(얼마전에 <해를 품은 달>에서 비중있는 조연으로 나오기도 했다)

나는 TV에서보다는 공연 무대 위에서 만나는 서현철이 더 좋다.

사람을 마냥 유쾌하고 즐겁게, 밝게 만든다.

그것도 악의 없는 건강하고 씩씩한 웃음.

(내가 골백번 환골탈퇴해도 결코 가질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성향 ^^) 

탄탄한 연기력은 물론 말할 것도 없지만

무대와 관객을 장악하는 능력 또한 엄청나다.

개인적으로 코믹한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서현철이 출현하는 작품은 주저없이 선택한다.

그리고 실제로 지금껏 본 연극, 뮤지컬 중에서 괜히 봤다 싶은 작품도 없다.

(그렇다고 서현철이 출연하는 작품을 적게 본 것도 아닌데...)

 

엄청난 금액의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 고모의 유언에 따라 억지로 결혼을 하게 되는 앙리(이희준).

그것도 어릴적부터 절친인 친구 도도(노진원)와의 위장 게이 결혼.

서로 win win 하기 위해 1년의 기간을 둔 계약 결혼이라지만

자꾸 예기치 않는 일들이 발생하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거짓말이 시작된다.

명문있는 카톨릭 집안의 장남은 버젓히 게이잡지에 결혼 기사가 실리고

도도는 앙리의 여자친구 엘자(박민정) 때문에 졸지에 장애인 게이 남동생이 된다.

아들 앙리가 진짜 게이라고 믿은 아버지 에드몽(서현철)는

그 와중에 자신도 그렇다면 편안하게 커밍 아웃 하신다.

거기에 이 모든 계획의 출발점인 이혼 전문 변호사 친구 노베르(민성욱)의 이혼 싸움까지...

좀 심하다 싶을만큼 여기저기서 사건이 연발탄처럼 빵빵 터진다.

재미있는 건 보고 있으면

등장인물 각자가 순간적으로 머리 굴리는 소리가 다 들리는 것 같다.

애드립도 아닌데 마치 애드립처럼 느껴지는 거짓말의 향연이라니!

포복절도까지는 아니지만 시종일관 재미있고 유쾌하게 봤다.

등장하는 다섯 명의 배우 전부 연기도 괜찮고...

다만 앙리, 도도, 노베르가 친구로 나오는데

상대적으로 도도역의 배우가 좀 나이가 많이 들어보인다는 게 흠이라면 흠.

뭐 프랑스는 나이랑 친구랑 아무 관계없다고 한다면 대략 할 말은 없다.

 

몰랐었는데 앙리 역의 이희준이 요즘 TV와 영화에서 주목받는 중인가보다.

오늘 김남주와 영화 <화양연화>를 패러디한 장면이 기사화됐는데 사진 분위기 상당히 좋다.

표정이랑 풍기는 느낌도 상당히 괜찮고...

KBS 주말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 나올 장면이라는데

처음엔 이 사진을 보고 이희준인 줄 전혀 몰랐다.

하긴 영화 <화차>에서도 꽤 인상기게 봤는데 거기서도 이 사람인줄 몰랐다.

(영화에서는 훨씬 더 나이가 들어보였는데... 요즘 회춘하셨나???)

요즘 TV나 영화에서 공연배우들을 많이 보게 된다.

오만석, 전수경과 홍지민, 박혜미는 이미 TV 유명스타가 됐고

김무열이나 신성록은 다방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신성록은 군에 있으니까 엄밀히 말하면 hold 중이고)

지금 한창 인기리에 방영되는 <더킹 투 하츠>에서는 조정석이

사극 <무신>에는 이석준, 뱍해수, 김영필 등 제법 많은 공연배우들이 나온다.

신선한 느낌도 있고 연기도 잘하는 배우를 찾다보니

기본기 탄탄한 공연배우들에게 자연스럽게 섭외가 가는 모양이다.

반대로 가수나 탈렌트들이 공연무대에 서는 일도 점점 많아지고 있고...

둘 다 장단점이 있긴 하겠지만

서로의 영역에 해악이 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 분명히 시작은 연극 <게이 결혼식>이었는데 어쩌다 완전히 삼천포로 빠져버렸다. 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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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끄적 끄적...2011. 4. 7. 06:29


지난 달에 정성화 몰리나와 최재웅 발렌틴 페어를 보고
박은태 몰리나와 김승대 발렌틴이 궁금했다.
항간의 소문에 의하면,
박은태가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서 기대가 되기도 했고...
일단 외형적으로는 아주 적절한 비쥬얼과 싱크로율이 나오겠다 싶었다.
정성화 몰리나는 여성스럽지 못한 외모와 체격때문에
어쩐지 측은하고 안스럽긴 했지만
군데군데 코믹하다는 느낌을 너무 많이 받았었다.
최재웅의 발렌틴은 역시나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이 사람 다시 <헤드윅>을 한단다. 또 다시 말근육을 드러내는 쫄바지를 입고서...^^)
늘 생각하고 느끼는 거지만 최재웅은 정말 좋은 톤을 가진 배우다.


박은태의 몰리나...
어쩜 그렇게 여자일 수 있을까?
여성적인 게 아니라 박은태는 그대로 여자의 모습이었다.
다소곳이 다리를 한쪽으로 꼬고 앉아 있던 모습이며
그 가려린 손끝의 움직임과
새초롬한 얼굴 표정과 말투에 담기는 여성 특유의 뉘앙스...
그의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심각하게 그가 게이가 아닐까를 의심했다는데
직접 눈으로 보고 난 뒤에 그 심정이 이해가 된다.
그리고 솔직히 왠만한 여자보다 그의 몸이 드러내는 선은 확실히 곱다.
무대를 채우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이 작품을 위해 박은태라는 배우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느껴져 찡했다.
노래 잘하는 가수 출신 뮤지컬 배우였는데
이제 정말 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그래서 그의 몰리나가 더 아름답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김승대 발렌틴.
최재웅을 먼저 봐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발렌틴을 완벽히 소화하기엔 그는 여러가지로 어려보인다.
외모도 그렇고, 연기도 그렇고, 표정도 그렇고...
혼자 자꾸 비장해지려 하는게 관객들으리 충분히 끌고가지 못해 안타까웠다.
그러나 어찌됐든 무대 위에서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배우 중에 한 명이다.
언젠가 배우 김승대에게 결정적인 터닝 포인트가 찾아온다면
그의 무대는 지금과는 확실히 달라질 거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무대는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채워지지 못하는 부분이 분명 있는 것 같다.
언젠가 그에게도 그런 날이 오겠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김승대와 박은태의 조합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고 불편한 느낌이다.
딱히 과장되거나 함부러 하는 것도 아닌데 묘하게도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지 않는다.
다른 작품 속의 주인공을 한 무대 위에서 우연히 보는 것 같은 난감함!
이 정체불명의 난감함때문에 많이 고민되더라.
박은태의 아우라 때문이었나?
무대에 두 사람이 대사를 주고 받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시선은 계속 박은태 몰리나에게만 고정된다.
발렌틴이 교도소장처럼 목소리만 등장하는 인물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 부분에 발렌틴의 독백으로만 채워지는 부분이
어쩐지 느슨하게 느껴졌다.
베일에 가려진 인물의 느닷없는 등장이 주는 당혹감이랄까?
암튼 난... 그랬다.



개인적으로 최재웅 발렌틴, 박은태 몰리나 페어가 꽤 궁금하다.
왠지 그림만으로도 싱크로율이 100% 일 것 같아서...
아! 한 가지만 더!
박은태가 몰리나를 조금 더 도도하게 표현했으면 하는 바람!
고민끝에 일부러 설정한 것 같긴 한데
대사 마지막을 묘하게 올렸다 내리는 톤은 좀 마음에 안든다.
진짜 여자는 그렇게 안한다.
정말 ^^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3. 9. 06:36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의 쌍둥이 아들로 출연했던 정일우.
그 이후에 일지매로 분했던 청년 정일우가
이번에는 대학로 소극장에서 연극배우에 도전(?)한단다.
"정일우의 연극 데뷔"라는 간판만으로도
이미 어느 정도의 티켓 파워는 이미 예상이 되고
실제로도 지금까지 전석 매진 행렬의 연속이란다.
게다가 그가 맡은 역할이 게이 청년.
카메라를 한 번 거쳐 편집한 TV 연기와
실수조차도 통째로 보여질 수밖에 없는,
그것도 소극장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의 배우의 표현력이라는 거.
물론 배우 정일우에게도 도전이겠지만
보는 입장인 관객에게도 엄청난 도전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연예인들의 뮤지컬, 연극 나들이가 요즘 무슨 붐인가 싶다.
왠만한 가수는 이미 뮤지컬 무대에 서있고
(샤이니의 온유, 동방신기의 시아준수, 소녀시대 제시카, 전혜빈, 슈퍼 주니어의 예성, 성민...
 이 외에도 그야말로 기타등등 기타등등...)
또 연기 잘하는 TV 감초 배우들도 한창 연극 무대를 채우고 있다. 
공연예술은 참 너무하다 싶게 다양화로 달려가는데
그에 비해 깊이감은 자꾸 떨어지는 것 같아 솔직히 어느 때는 속이 상하기도 하다.
(이게 뭐 어디 연예인들의 탓이겠느냐마는...)
정통파 연극배우들의 무대가 그래서 이제는 더 반갑고 놀라울 정도다. (완전 로또지!)
때때로 유명 연예인들의 공연계 접수(?)로
지금까지 좋았던 공연 하나가 송두리째 "허당"으로 전락하는 걸 보게 되면
억지로라도 그 배우를 끌어내리고 싶은 과격한 바람도 솔직히 생긴다.
(또 실제로 그런 모습을 적쟎게 목격한 관계로...)
그래도 일단은 어린 하이틴 배우의 예상치 못한 도전은
사실 놀랍긴 했다.



연극은 참 재미있고 따뜻하다.
정일우의 도전은 물 위에 뜬 기름같이 때론 이질감으로 다가왔지만
(불안한 딕션, 한결같던 톤, 감정없는 대사 처리에 방향감각이 전혀 없던 눈동자,
 잘생긴 얼굴과 상의 탈의로 이 모든 걸 무마하기엔 솔직히 턱없이 부족하더라.)
그래도 다른 두 배우가 참 부지런히 그 부분까지 성실히 덮어주더라.
함께 무대 위에서 연기하면서 배우 정일우는
"하모니"와 "균형"을 배웠을까?
그랬다면 그의 도전은 적어도 본인에겐 플라스 알파가 
충분히 되고 있을테다. 



35살 노처녀 "강은우" 역의 정선아
참 맛깔나게 심수봉의 "그때 그사람"을 부르던 강은우는
참 구구절절 나같더라.
서러울만큼 놀랍고 두려운 조우였나?
두 남자의 동거기념 3주년 파티,
그녀는 처음엔 분명 불청객의 입장이었다.
그런데 연극의 말미에는 이들은
마치 가족사진을 찍듯 나란히 같은 방향을 함께 바라본다.
그리고 그 모습은 어색하거나 작위적이라는 느낌조차 없다.
강은우가 늘 소원하고 바랐던
함께 할 사람을 이제야 만났는지도 모른다는 묘한 안도감까지 전해진다.
오정진(이상홍)과 이준석(정일우),
이 두 게이커플(?)에게 은우는 여자이면서 동시에 여자가 아닐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 존재의 편안함은 은우의 고백과도 정확히 닿아 있다.
"세상 남자들이 모두 게이였으면 좋겠어. 왜냐면 남자랑 있으면 피곤하잖아
 그런데 오늘은 하나도 안 피곤해!"



피곤하지 않은 인생,
그리고 혼자가 아닌 인생.
누구나 꿈꾸지만 참 쉽지 않고 점점 "진절머리나게 어려워지는 인생"
똑똑 튀는 박장대소의 대사를 들어면서도 나는 어쩐지 명치끝은 자꾸 쨍해진다.
현실을 그대로 말할 수 있는 용기.
어쩌면 "사랑"이라는 걸 하면서 제일 중요한 게 바로 이건지도 모르겠다.
이제 그만 노력하라며 헤어지자는 준석의 말에 감정을 다치는 두 남자.
은우는 그들에게 말한다.
"왜 부등켜 안고 기뻐하지 않아?
 내가 없어서 외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단 말이야!"
그런건가?
그래서 은우는 술에 취해 예전에 살던 아파트를 찾았던건가?
그리고 창문 너머로 부인이 있는 애인의 집을 바라보기 위해서?
혹시 나도 그랬었나?
누군가 나에게 말해주길...
"저 하늘의 별이 다 쏟아져내려도 너와는 절대 헤어지지 않아!"
그런 믿음성 없는 말을 아직까지도 내내 꿈구고 있었던건가?



한 편의 연극을 보면서
내 맘은 참 많이 다치고 생채기가 나버렸다.
상처를 들여다 봐야 하는 거?
그래 어쩌면 그것도 공포체험의 일종일수도 있겠다.
서른 다섯이 넘은 여자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마른 논바닥같은 푸석함처럼.
예기치 않지만 집요하고 다가오는 이 구체적인 공포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4. 6. 05:57
<연금술사> - 파올로 코엘료

연금술사 


“옛날 영화를 보러갔다”

윤대녕의 소설 제목입니다.
<연금술사>를 떠올리면 이상하게 전 이 소설 제목이 떠오릅니다.
그렇다고 <연금술사>가 무슨 오래된 고전 소설도 아닌데 말이죠.
우리나라에 미지의 문학처럼 여겨졌던 중남미 문학의 붐을 만들어냈던 소설.
그리고 작가는 참 다양한 경험과 다양한 직업, 그리고 다양한 방황(?)과 다양한 구도(?)의 길을 만난 사람입니다. 산전수전에 소위 공중전까지 전부 겪은 셈이죠.
처음에 이 사람의 책을 읽었을 때 분명 게이일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지만....^^)
문체가 여성스러웠던 건 아닌데 어쩐지 섬세하고 다정한 것이 따뜻한 양모를 뒤집어쓰고 있는 느낌이었거든요.
따스함의 전달 혹은 적당한 안식이라고 말할까요???
제가 알기론 현재까지 우리나라에 번역된 그의 책은 전부 9권입니다.
그의 첫 책을 비롯해 11권은 아직 번역되지 않은 상태고 가장 최근 번역작은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개인 산문집입니다.
1982년부터 지금까지 27년 동안 열심히 작가의 길을 가고 있네요.
이 사람의 경력은,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직업을 가지는 게 가능할까 의심스러울만큼 다양합니다.
그것도 한번 스치는 직업이 아니라 소위 한 분야의 전문가 소리를 들을 만큼 실력을 발휘했던 사람이죠.
그런 사람의 마지막 정착지가 작가인 셈이네요.
1947년 출생, 이제 60 고개에 접어든 나이니까 혹 모르겠습니다. 또 다른 길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연금술사>
파올로 코엘료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들어준 소설입니다.
“무언가를 온 마음을 다해 간절히 원한다면, 온 우주가 그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책의 내용은 몰라도 이 구절은 이제 하나의 명언처럼 유명세를 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단서가 있다는 걸 혹시 아시나요?
“단, 자신이 원하는 게 무언지 언제나 정확히 알고 있어야만 한다....”는
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한 말입니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이루어지길 간절히 소망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잘 아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자주 그리고 쉽게 잊어버린다는 사실이죠.

이 책,
 
첫 페이지부터 은밀함을 품고 있습니다.
.....위대한 업의 비밀을 알고,
그 비밀을 사용할 줄 아는 연금술사 J에게....
어쩌면 그냥 스쳤을지도 모르는 이 문구가 이 책의 맨 앞에 쓰여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책을 읽는 동안은 이 “J"가 되기로 작정을 했죠.
주인공 산티아고의 순례의 길을 함께 따라갑니다.
“J"인 나는 꿈을 해몽하는 집시가 되기도 하고, 늙은 왕이 되기도 하고, 크리스털 가게 주인이 되기도 하고, 영국인이 되기도 하고, 낙타몰이꾼이 되기도 하고, 오아시스에 남겨둔 그의 여인이 되기도 하고, 연금술사 스승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물론 산티아고 자신의 모습이 되기도 하죠.
함께한 순례의 길은,
자아의 신화, 위대한 업 혹은 만물의 정기, 그리고 하나의 언어로 명명되어지는 “사랑”에 대한 비유와 상징의 보물 찾기였다는 걸 깨닫습니다.
결국 이 책,
“소통”과 “조화” 에 대한 충고였던 셈이네요.
크리스털 주인의 꿈은 메카로의 성지순례였습니다.
산티아고 덕에 부자가 된 그는 떠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떠나지 못합니다.
그는 말하죠.
“내 꿈을 실현하고 나면 살아갈 이유가 없어질까 두려워.....”
(혹시 이 모습이 내 모습, 혹은 당신의 지금 모습은 아닌지......)
가게 주인은 꿈의 길 그 끝에서 마지막을 보게 될 사람입니다.
그가 만약 진정한 연금술사를 꿈꿨다면 아마 다르게 말을 했겠죠.

꿈을 이루지 못하게 만드는 건,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것 때문이라고 하네요.
그리고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것은,
“모든 일에는 결국 치러야 할 댓가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래 앓고 난 사람처럼 힘들게 하는 일이 있나요?

어쩌면 이 책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네요.
아는 길을 되집어 볼 수도 있을 테니까요...
따뜻한 봄날,
당신의 영혼에 파이팅을 외칩니다.
이제 꽃으로 피라고....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1. 19. 06:15
 

<붉은 애무> - 에릭 포토리노


붉은 애무 


에릭 포토리노...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프랑스 작가입니다.

이 사람은 작가로써도 유명하지만 2008년 1월 경영난에 허덕이던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지의 회장으로 임명돼 파격적인 구조 조정으로 르몽드지를 구해낸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럴 때 보면 확실히 신이 가끔은 불공평하단 생각이 들어요. 

얼마 전엔 (1월 5일) 이 “르몽드”지에 우리나라 보수신문 “조중동”에 대한 상당히 긴 불량의 정면비판 글이 실려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글의 요지는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한국 일간지가 역대 독재정권에 봉사한 댓가로 조세 면책의 특권을 보장받아 왔고 현재도 이들 일간지들이 보수진영과 재벌의 시각을 대변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꽤 정확한 지적을 하고 있어 오히려 민망하기까지 했답니다.


<붉은 애무>... 제목 참 강렬하죠?

처음 이 책을 알게 됐을 때, 그 제목의 강렬함에 당황했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했죠. 대중교통 안에서 읽고 있으면 사람들이 좀 쳐다보겠구나...(그런데 실제로 정말 그러던데요~~~)

그 사람들, 어떤 내용을 상상하면서 절 바라봤을까요?

프랑스의 대표적인 립스틱 브랜드명이기도 한 “붉은 애무”는 프랑스어로 잔잔하게 불에 타 들어가는 상태를 뜻한다고 합니다.

불에 타 들어가는 데 잔잔하다니요......

어쩐지 꽤나 치명적일 거란 확신이 들긴 하네요.


이 소설은,

네,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것도 아주 치명적이고 파괴적이기까지 한 사랑이죠.

이렇게 고백하는 남자가 있습니다.

“홀로 된 여자의 아들에게는 아이가 될 권리가 없다”라고...

정상적인 책임감을 가지고 있지 않은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 이름도 모르는 아비와 아이를 짐스러워하는 어미,

그렇게 아이인 적 없이 커버린 한 남자.

어느 날, 그 남자에게 마리라는 여자가 나타납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아이를 낳아서 걸을 때가 되면 아이를 당신에게 주고 떠나겠다...”

실제로 그녀는 정확히 아이가 첫 걸음을 떼는 날  두 사람 곁을 떠나죠.

아이인 적이 없이 자라버린 남자는 이제 자신의 힘으로 어린 아들을 키워내야 합니다.

엄마의 부재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 남자...

아직 어린 아이에게 있어 부모의 존재라는 건, 거의 엄마의 존재가 대부분이라는 걸 이 남자는 너무 잘 알고 있었죠.

“엄마 보고 싶어!”

엄마를 찾으며 떼를 쓰는 아들에게 손찌검을 한 남자는 아이에게 말합니다.

“약속할게. 매일 저녁 엄마가 와 있을 거야”

아들을 위해, 이 남자는 그토록 혐오하던 게이샾에 들러 원피스를 사고, 금발의 가발을 사고, 포근하고 따뜻한 2개의 스펀지 공을 사고, 얼굴과 다리의 털을 면도합니다.

그리고 매일 밤 아들에게 선택권을 주죠.

엄마, 아빠 중 누구를 원하는지...


처음엔 밤에만 엄마로 변장했던 남자는 아이의 요구에 따라 점점 낮에도 엄마의 모습이 됩니다. 그리곤 함께 외출을 하고 공원으로 소풍을 가고 그리고 써커스를 보러 가죠.

잠이 깬 아들에게 “엄마 여기 있어, 푹 자!”라고 말하면서 이 남자는 느낍니다.

자신이 점점 엄마로 변한 모습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아들이 3살이 되는 날, 평온하게 유지됐던 두 사람의 가정에 누군가가 찾아옵니다.

그녀... 아이의 진짜 엄마인 “마리”가요.

여자는 말합니다.

“이제 아이를 위해 엄마로 살기로 했다”고... (아내의 역할은 제외하고 말이죠)

그 순간 그 남자는 자신이 방금 잃어버린 모든 것을 떠올립니다. 금발의 가발, 시폰 원피스, 스펀지 공, 머플러......

이제 아이는 일주일의 반은 아빠와, 일주일의 반은 엄마와 생활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이는 이제 점점 진짜 엄마를 더 많이 요구하게 되죠.

마리로 변장한 남자를 보며 3살 아들은 웃어버립니다.

그 순간, 남자는 깨닫습니다.

자신이 아버지의 수렁으로 되돌려 보내졌다는 걸......

아들이 마리와 보내게 되는 날이면 남자는 엄마가 되어 마치 아들이 집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다 엿보기가 시작되죠.

저녁 8시부터 자정까지 남자는 마리 집 창문 맞은편에 주차한 체 자신의 아들과 그 아들의 엄마를 훔쳐봅니다.

그 남자의 눈길....

뭐였을까요?

엄마의 시선? 아니면 아빠의 시선?

어쩐지 참 잔인하기까지 한 시선이라 섬뜩함조차 느껴집니다.

엄마(진짜 엄마)의 손을 잡고 유아원으로 향하던 이른 아침,

남자는 두 사람의 깍지 낀 손가락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때, 갑자기 울린 핸드폰을 받기 위해 엄마가 잠시 잡은 손을 놓은 사이 아이는 콩콩 거리를 뛰어다닙니다.

그러다 돌진해오는 스포츠카에 순식간에 뺑소니 사고를 당하죠.

범인은 밝혀지지 않고...

결국 이 남자는 아들을 잃고 맙니다...


이 남자....

이제 어떻게 될까요?

이제부터 “붉은 애무”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 남자의 마지막 모습은, 그리고 마지막 시선은, 그리고 마지막 증거는.....

아빠여야 할까요? 엄마여야 할까요?


책을 덮으면,

마치 독한 술이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느낌입니다.

잔잔하게 불에 타 들어가는 느낌이네요.

부드럽지만 겉잡을 수 없는 광기.

당신은 지금 누구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나요?

그 눈길이 진짜 자신의 눈길이라고 정말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