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7. 5. 24. 08:10

우지(宇治)의 상징이라는 등꽃은 멀리서 보면 꼭 라일락 같다.

등꽃은 보됴인을 만든 후지와라 가문을 상징하는 꽃으로

둘 다 한자로 등나무 등(藤)을 쓴다.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늘어져 흔들리면 등꽃의 모습이 참 운치있다.

풍경도, 바람도, 햇빛도 다 향기롭다.

하늘로 쭉쭉 뻗은 나무는

뜨거운 햇빝 아래 혼자 당당했다.

 

 

일본의 3대 녹차 산지답게 골목마다 녹차를 주재료로 한 음식점이 즐비했다.

그래서 일본에서의 첫 끼니도 녹차 모밀을 선택했다.

나는 가장 무난한 냉녹차 소바를 주문했고

언니와 형부가 주분한건 따뜻한 모밀소바.

고명으로 올려진 커다란 유부와 고등어 반토막이 낯설어 한참을 쳐다봤다.

맛을 보라는데.... 선듯 젓가락이 안가는게...

입맛조차도 모험심이라고는 제로인 나.

 

 

뵤도인을 뒤로 하고 우지강으로 향했다.

동지사(同志社) 대학 영어영문학과에 재학 중이던 윤동주는

친구들과 함께 우지 강변을 찾았다..

그리고 이곳 어디쯤에서 친구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다.

그때는 물론 몰랐었겠지만 

그의 생전 마지막 사진 될 한 장의 사진.

 

 

1943년 6월 경에 이 사진을 찍었고

그해 7월 14일 윤동주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돼 수감생활을 한다.

그리고 1년 7개월 뒤 옥사.

사진을 보관하고 있었던 윤동주의 학우 기타지마 마리코는

그 모임이 징병을 피하기 위해 귀국을 결심한 윤동주를 위한 송별회 자리였고

그때 윤동주가 친구들에게 "아리랑"을 불렀었노라 기억한다.

타인의 기억에 내 마음조차 애뜻해진다.

그리고 올 해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이곳 우지 강변에 윤동주 시인의 기념비가 세워진단다.

사실 기념비는 2007년 이미 만들어졌었는데 그동안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해 설치가 계속 미뤄졌었는데

2016년 우지시에서 건립을 최종 허가했다.

아직 설치가 된게 아니라 실제로 볼 수는 없었지만

기념비에는 윤동주의 시 "새로운 길"이 한국어와 일본어로 두 언어로 새겨져있다.

"기억과 화해의 비"

기억이든, 화해이든 하나만 선택했으면 좋았을걸..

꼭 저녁뉴스 헤드라인을 보는 느낌이다.

 

 

우지강을 가로지르는 회색의 우지교(宇治橋).

일본에서 가장 외래된 다리라는데 석교(石橋)의 옛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현재는  콘크리트 다리가 생경하게 서있다.

일설에 의하면 우지교을 건설한 사람이 고구려에서 건너간 도등 스님이란다.

우지강의 물살이 너무 빨라 말(馬)조차도 발길을 멈추는걸 보고

사람들의 원활하게 이용할 수 있는 다리를 만들었다는데 믿거나 말거나다.

사실 우지교 보다는 멀리 보이는 주황색 다리에 더 눈이 간다.

아사기리교(橋) 아래에 <겐지 이야기>의 한 장면을 재현한 동상이 있다는데

문외한인 나는 <겐지 이야기>를 잘 몰라서 멀리서 다리만 바라봤다.

개인적으론,

두 다리보다 다리 밑에서 배를 모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 인상적이었다.

뒤에 "3"이라는 번호판을 보니 무슨 경기 연습을 하고 있는 중인가보다.

배 모양도, 복장도 특이해서 오래 쳐다봤다.

 

강변을 따라 뚜벅뚜벅 한참을 걸어 역사로 돌아왔다.

무인짐보관소에서 캐리어를 꺼너 열차에 오른다.

다음 목적지는 후시미 이나리 진자.

끝도 없이 이어진 붉은색 도리의 터널을 향해

열차는 유쾌하게 달려간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7. 5. 23. 08:09

2박 3일의 짧은 일정.

오사카 공항에 도착해 리무진을 타고 교토 하찌조구치역에 내려 언니와 형부를 만났다.

캐리어를 끌고 처음으로 갈 곳은 교토 외곽에 있는 소도시 우지(宇治).

우지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차(茶)가 재배된 곳이자

<겐지 이야기>의 배경이 된 곳이다.

교토역에서 JR 나라센을 타고 30여 분 뒤 우지역에 도착했다.

햇빛은 강렬해서 자주 눈을 찡그렸다.

아주 오랫만에 쨍한 햇빛아래 서있는거라 어딘지 낯설고 어색했다.

같지만 다른 햇빛.

그 적당한 이물감이 묘한 청명감으로 다가왔다.

 

 

내가 일본에서 가장 좋아하는건 정원.

이곳 보됴인의 봉황당도 찬란한 햇빛 아래 주인공의 위엄을 뽐냈다.

봉황이 두 날개를 활짝 펼친 모양을 본따서 만들었다는 봉황당은

커다란 연못에 감싸여 있었다.

이 연못은 어머니 뱃 속의 양수를 의미한단다.

태아는 그 강을 건너 세상 밖으로 나와서

또 강을 건너 또 다른 세상으로 돌아간다.

그러니까 윤회 혹은 극랑왕생의 모티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건물

 

 

별도의 입장료를 내면 봉황당 안에 들어갈 수 있는데 

금박을 입힌 거대한 아미타여래좌상이 있고 그 주변으로 52명의 운중공양보살상이 걸려 있단다. 

하지만 나는 박물관을 둘러보는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줄도 너무 길고, 진품은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대서...

짧은 일정때문에 세세하게 둘러보지 못하는건 아쉽지만

날개를 활짝 펼친 봉황당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다.

연못둘레를 따라 총총총.

이어지는 사람들의 발걸음.

일행처럼 섞이는 내 발걸음.

총.총.총.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10. 27. 05:56
제목만 봤을 때는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헌사같은 책이라고 생각했다.
글을 쓴 저자는 현재 메이지 대학교 문화부 교수 사이토 다카시.
소개글에 말의 권위자라고 나와 있는데 솔직히 어떤 의미의 표현인지는 잘 모르겠다.
좀 거하게 말하자면,
하루키의 소설 뿐만 아니라 일본의 현대문학 속에 등장하는
사랑에 대한 느낌과 그 언어적 표현에 대한 통찰이다.
참 묘한 건 객관과 주관 그 중간의 어디쯤에서 적당히 감성적으로 쓰여진 글이다.
살짝 시니컬하기도 하고 관조적이기도 하면서 때론 열정적이다.
사랑한다면, 사랑하고 싶다면, 사랑했다면,
일본 소설 속 사랑 언어에 주목하라...
딱히 그러고 싶진 않았는데 읽다보면 그 표현들에 주목하게 된다. 이상하지?



part 1 쿨한 사랑 -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part 2 나쁜 사랑
<금각사> 미시마 유키오
<산시로> 나츠메 소오세키
<겐지 이야기> 무라사키 시키부

part 3 보통 사랑
<지금 만나러 갑니다> 이치카와 다쿠지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카타야마 쿄이치
<선생님의 가방> 가와카미 히로미
<전차남> 나카노 히토리


기억하기 딱 좋은 편수인 10편의 일본 소설이 나온다.
물론 이야기의 줄거리를 무시할 순 없지만 
여기선 각각의 소설에 나오는 어떤 부분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고 소박하게 쓰고 있다.
나는 이 책들을 읽으면서도 이런 부분들을 놓쳤었구나 새삼 성긴 책읽기에 웃음이 나기도 했다.
때론 이런 책들이 묘하게 가슴에 담길 때가 있다.
고민하지 않고 소풍처럼 읽을 수 있는 적당히 평화롭고 한가한 책이...



가끔 생각하게 된다.
"사랑"이라는 건 말일까? 행동일까? 감정일까?
이 모든 것이라고 대답하겠지만 어쩐지 그 시작은 말(고백)이 아닐까?
표현되어지든, 표현되어지지 못하든.

그리고 나는 사랑을 하고 있었다.
그 사랑은 몹시 복잡한 곳으로 나를 끌어들이고 있었다.
주위의 풍경에 마음을 쓸 여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고백을 세상을 다르게 보고, 다르게 느끼게 한다.
극도의 무관심이든, 극도의 관심이든
고백의 순간 이제 더이상 처음과 같을 수는 없게 되는 것.

나의 외로움이 너의 외로움이 되는 것,
망연히 벽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흘려야 했던 것, 왜 너를 사랑했냐고,
왜 나를 사랑했냐고 따지고 싶어도 따질 수 없는 것,
한 번이라도 더 보고 헤어질 것이라고 후회해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는 것,
그것을 입 밖에 내밀 수 없었던 사랑이라는 것.

너와 나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
그래서 그 경계의 끝에서 비록 누군가 너덜거리게 된데도
사랑이 두려운 남자도 여자도
모두 운명같은 사랑을 꿈꾼다.
운,명.같.은.사.랑.
얼마나 대책없는 단어끼리의 조합인가!

하도 사랑, 사랑하기에
그것이 뭐가 그렇게 대단하기에 난리냐 싶어
사랑을 해봤지만 그 감정 별 것 아니던데,
라고 말하면서도 사랑 없이 못 사는 것이 사람인지라,
누군가 사랑, 그것은 말이야, 서두를 떼기만 해도 또다시 두근거린다.


아닌 척 하면서도 그만,
이 문장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사랑, 참...
또 다시 모질구나... 싶어서...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