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회루'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1.11.14 경복궁 야간 개방
  2. 2011.02.14 돌, 얼음, 나무(石氷木) 그리고 결(結)
  3. 2009.11.20 봄날의 기억
찍고 끄적 끄적...2011. 11. 14. 05:53
조선시대 공식적인 법궁!
경.복.궁.
문화재청 50주년을 기념해서 지난달 경복궁(10/5~10/9)과 창덕궁(10/3~10/9)을 10시까지 야간 개방했다.
종묘도 하루 개방했던 것 같은데 안타깝다.
그나마 경복궁도 토요일에 찾아갔을 땐 9시가 약간 넘은 시간이었는데 들어갈 수도 없었다.
입장은 9시까만 된다고 해서...
그래서 다음날 다시 찾아가 경복궁만은 기어이 보고 왔다.
경복궁에 대한 로망은,
시간을 아우르는 고요하고 신비로운 깊이감에 대한 경외다.
거리와 깊이.
아무리 먼 거리라도 수평의 개념이라면 결국 그 끝에 도착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곳이라면...
찍어누르는 거리와 시간이 갖는 수직적 무게감을 감당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왕의 밝은 은혜가 아래로 두루 미치면 나타난다는 전설 속의 신령스러운 짐슴 청록(靑鹿)).
영제교 위에 무심히 앉아있는 청록을 보면서
저 짐슴은 지금의 세대를 바라보면 어떤 심정일까 답답했다.
어쩌면 그저 바닥의 넓적한 편석(片石)에 눈만 주고 있을지도...



경복궁 전체를 개방한 건 아니지만
어둠이 내리는 근정전과 경회루를 둘러보는 운치는 그윽하고 신묘했다.
중인 출신 박자청에 의해 8개월만에 완공됐다는 경회루.
박자청은 이 건물로 임금에게서 상당히 높은 벼슬(아마도 종 2품이었을거다)을 하사받아
신분의 설움에서 벗어났다.
물론 사대부들의 불같은 반대로 조정이 들썩이긴 했다.
철저한 신분제 국가였던 조선시대에 이렇게 자신의 능력으로 그 한계를 뛰어넘은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그래선지 이 경회루가 그 강력한 물증으로 느껴져 왠지 강단지게 보인다.
경회루는
시간이 지나 점점 어두워질수록 물 속의 비친 음영이 더 선명해진다.
마치 거대한 거울을 마주하고 있는 느낌!



출사나온 동호회들도 많고 가족까리 밤나들도 많아 나와
경회루 앞은 은밀한 자리싸움이 한창이었다.
그 모습을 보는 것도 어전지 흥미로웠다.
경회루의 인공호수 한켠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만들었다는 조그만 정자가 빛을 밝히며 앉아있다.
개인적으로 참 맘에 들지 않는 곳.
이곳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낚시를 하면서 여가를 즐겼다는데
굳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게 영 볼품없고 불편하다.



사람들에 들썩이는 경회루를 빠져 나와 근정전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창호문 사이로 빛이 쏟아지는 모습도 예뼜고
꼭 동네 시골 골목길 같은 한적하고 소박한 풍경을 보는 것도 그윽하니 좋았다.
마춤으로 알맞게 떠있던 달을 향해 어설픈 카메라 셔터도 몇 번 누르고...
제멋데로 마구잡이로 난사하는 초보이긴 하지만 사진을 찍다보면 
명암의 신비가 자꾸 눈에 들어온다.
그래선가?
나는 어두운 곳에서 프래시를 터뜨리며 사진 찍는 걸 아주 싫어한다.
사물 자체가 주는 명암 속에 사진기의 인위적인 빛을 더하는 게 왠지 불경스런 행동 같아서...
달과 궁궐.
어쩐지 오래 알고 지낸 지기(知己)처럼 참 편안하다.
갚이와 시간이 교차하는 바로 그곳!
아마도 잠시동안 내게 다른 세상을 들여다보는 게 허락됐었나보다,

시간의 문은 달빛 속에 다시 굳게 잠겼다.
오롯이 남은 공간 속에 또 다시 길을 잃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찍고 끄적 끄적...2011. 2. 14. 06:10
겨울궁이 좋은 이유는
결을  품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대면할 수 있어서다.
코끝이 더 쨍해질수록
손끝이 더 많이 얼얼할수록
겨울궁은 더 많은 숨을 쉬고
그 숨 속에 시간의 흔적을 천.천.히. 발설한다.
차가움 속에도 분명 온기는 있다.
느끼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선택된 권리!
겨울궁 차가운 석물 앞에서 나는 감히 권리를 누린다.
눈으로 쉬어지는 차가운 숨.
손끝으로 물드는 차디찬 돌의 결.







꽝꽁 언 연못 위에 서 있는 경회루는
의연하고 그래서 오히려 더 따뜻해보였다.
그러지 않았을까?
오래전 조선의 임금들도 꽝꽝 얼어버린 연못을 지나
경회루에 올라 차고 두꺼운 얼음 속에 숨어있는 그 모든 것들이
다시 생명 얻어 태어나는 번성의 시간을 그리지 않았을까?
가만히 얼음의 결을 내려다보면서
차가운 얼음의 숨을 들으면서
차곡차곡 응집해야할 모든 힘들에 대해 숙연하지 않았을까?
회색 하늘을 이고 있는 경회루 앞에서
잠시 그 목소리를 추억했다.
험난했겠구나...
위로같은 깊은 묵상과 함께.



찬 바람 속에서
푸르게 혹은 잎을 보내고 가지만 꼿꼿히 세운 나무들.
그 결 속에 숨겨진 건 정말 시간이리라.
푸르러 오히려 비현실적인 소나무.
집현전 앞을 지키는 저 소나무는
항상 그렇게 자신의 숨결을 유지했으리라.
배우기 위해선, 더 많이 알기 위해서는
허리를 굽혀야만 한다는 독경일까?
경복궁을 찾을 때마다 잊지 않고 한참을 보게 되는 영목(靈木)
이들이 본 시간의 일부라도
우리는 온전히 알아듣고 이해할 수 있다면...
그럴 수 있었다면 나무는 더 이상 지치게 푸르지 않아도 됐을지도...



우스개소리로 그랬었다.
전생에 공주나 황후였나보다고...
그래서 궁궐이 그렇게 눈에 담기는 것 같다고...
그런데 이젠 점점 궁궐을 가꾸고 다듬던 나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쪽으로
더 많이 생각이 기운다.
보는 것만으로 아름답고 고요한 게 아니라
거칠고 힘든 숨과 노고가 느껴지는 것 같아서 어깨가 묵직하다.
아마도 아주 오래 전에 이 길을 수없이 쓸고 닦았던 건 아닐까?
그랬더라도...
이제 와 행복하니 참 다행이다.
石氷木...
세도 세도 끝이 없는 결(結)의 세계.
전생과 이생을 그 속에 함께
가.두.고.오.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찍고 끄적 끄적...2009. 11. 20. 06:34
아직 추위가 채 가시지도 않던 봄날 어느날
쨍한 바람 끝을 따라 경복궁을 찾았었지.
조선의 왕이 집무를 보고 살았던 곳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이곳 역시 사람이 살던 곳.
살뜰한 숨결들이 느껴져 오소소 몸이 떨렸었지.
그 사람들 다 어디로 갔을까 생각하다
"다 내게로 와 있지!"
 대답하며 혼자 몰래 웃었던 기억!



재연되고 있던 수문장 교대식
선명하게 붉던 도포 자락,
바람 끝에 날리던 옷 끝에도
품계석을 하나씩 쓸던 내 손 끝에도
그대로 느껴지던 시간의 흔적들...
옛 사람들이 서 있었던 곳.
그들은 오늘 이쯤에 있는 이 나라를 상상할 수 있었을까?

켜켜이 앉은 시간의 더개 속에서
근정전 왕의 어좌 위엔
지나온 시간만큼의 역사가 오롯이 새겨져 있었지.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조선의 왕은 고민하고 또 노력했을까?
나라를 위해, 종사을 위해, 백성을 위해...
혹은
잔인한 당파를 위해...



엤 사찰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 옛 왕궁의 위엄.
그 자리에서 깊은 책임감과 뜻을 품었던 사람들.
그 마음은 또 어디로 갔을까?
때로는 물이 되고,
때로는 구름이 되고,
때로는 천년 나무 그 뿌리가 되어
내내 어딘가에 새겨져 깊은 나이테 되지 않았을까? 
혹은 꼭꼭 채워진
금서의 공간으로 비밀을 간직하고 있을까?
그래도 모든 시간은 흔적을 남긴다는 걸
빈 해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다시 이해한다.



긴 처마 끝과 긴 담장의 끝
가만가만 들어보면
각인된 흔적의 시간들이 조용조용 내게 말을 건넨다.
너는 무엇을 남길 수 있겠느냐고...

옛 궁궐.
그 헛헛한 공간 속에 칼 끝처럼 매섭고 예리하던 바람 끝
뭉턱뭉턱,
그 끝이 도려내는던 시간의 흔적들.
남겨지지 못하는 역사는
결국 누구도 찾을 수 없게 된다고...
그러니 더 이상 아무것도 잃지 말라며
그 칼 끝이
나를 향해 말을 한다.

날선 칼 끝이 선명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