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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6.04 <절집기행> - 심석구
  2. 2009.11.20 봄날의 기억
읽고 끄적 끄적...2010. 6. 4. 06:36
의외의 책을 만나 의외의 기쁨을 느낄 때가 있다.
이 책 <절집기행>이 그랬다.
한 장 한 장 넘기는 게 꼭 벗꽃 흩날리는 나무 아래
시간을 놓고 넉넉한 휴식을 취하는 느낌이다.
행복하다.
읽음으로 눈에 보이는 것들이...
베낭 없이도 나는 11 곳의 천 년 고찰들을 차례로 거닐었고 
11 분의 천 년 고승들과 시간을 거슬러 대면했다.
모두 소담하고 아늑했으며 더없이 다정들 하셨다.



1. 하늘에서 꽃비 내리고, 흰 피가 솟구치니 더욱 다정하구나 
  소금강산 백률사(栢栗寺) - 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동
   신라 최초의 순교자 이차돈 (異次頓, 506~527)

2. 모든 것에 걸림이 없는 사람이라야 한 길에서 나고 죽음을 벗어나노라.
   봉화산 수도사(修道寺) - 경기도 평택시 포승면 원정7리
    무애행(無碍行)과 이타자비행(利他慈悲行) 원효(元曉, 617~686)

3. 못물이나 강물을 마실 수 없으면서, 어찌 큰 바다를 삼키겠는가
   조계산 선암사(仙巖寺) 대각암(大覺庵) -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대장경 간행으로 일관된 삶 대각국사 의천(義天, 1055~1101)

4. 선은 고요한 곳에도 있지 않고, 시끄러운 곳에도 있지 않으며,
   조계산 송광사(松廣寺) -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돈오점수와 정혜결사의 횃불 보조(普照) 지눌(知訥 1158~1210)

5. 더듬이 끝에 '無' 하나를 앞세우고 가는 달팽이
   속리산 법주사(法住寺) - 충청북도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
    한국 불교 선종의 중흥조 태고((太古) 보우(普愚, 1301~1382)

6. 가는 것은 어렵지 않네 내, 아주 감세 
   봉미산 신륵사(神勒寺) - 경기도 여주군 여주읍 천송리
    고려 말 비운의 선지식(善知識) 나옹(懶翁, 1329~1376)

7. 연꽃과 같이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바다 위에 핀 연꽃 한 송이.
   간월도 간월암(看月庵) -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
    조선 건국의 정신적 스승 무학(無學, 1327~1405)

8. 차 한 잔 들게나그려
   두륜산 대흥사(大興寺)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다선일미의 은자 초의(草衣, 1786-1866)

9. 아침에 우짖는 까치, 부처의 소리를 토하는구나
   덕숭산 수덕사(修德寺)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근대 선불교의 중흥조 만공 월면((滿空 月面 , 1871~1946)

10. 눈이 저렇게 오니 풍년이 들겠구나
    백암산 백양사(白羊寺) -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
     선농일여(禪農一如)의 청정비구 선승 만암(曼庵)

11. 아아 님은 갔지만은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 하였습니다
    설악산 오세암(五歲庵) - 강원 인제군 북면 용대리
     젊은 불교의 기수 만해(卍海) 한용운 (1879~1944)

               <송광사>

<법주사>

책 장을 넘기면 느닷없이 만나게 되는 시들.
그것들은 전부 글을 쓰고 싶다며 깝죽대던 과거의 내 시간속에 등장했던 시들이었다.
오규원의 "빈자리가 필요하다"
장석남의 "덕적도"
황지우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
이창기의 "꿈에도 별은 찬밥처럼"
시들은 안녕하지만 시간 속에서 시를 쓴 누군가는 이제 더이상 이 세상 속에 없다.
그리고 시는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되어 남아 있다.
천 년 고찰에서 천 년 고승들을 만나는 자리에
이들도 기꺼이 동반자가 되어 안내했다.
새로운 삼위일체의 향기 속에 느껴지는 풍요로움.
몹시 탐나던 표현들은 때론 내 것인양 훔치고 싶었다.
...... 잘 그린 수묵화의 침묵같은 고요
       지나는 바람 한 자락까지도 소홀함 없이 쉬어가도록 애쓴 풍경
       가는 빗방울이 연못의 수면 위에서 까치말 뛰듯 놀고 있었다.
       자신의 도피처를 자신 안에 갖지 못한 자만이 느끼는 비장감
       버릇 같이 치미는 향수 ......

꼭 내가 찍은 것 같은 흑백사진들.
서툴면서도 다정하고 천진한 표정의 아이같다.
어설픈 "나"인것도 같은 사진들.


                                                                <수덕사>

                                                                   <백양사>
                              
역사와 이력을 만나는 글이 아니라
느낌과 향기를 만나는 에세이 한 권.
시장통에 앉아 서둘러 국밥 한 그릇을 말아먹고 훌훌 옷자락을 떨어내며
예정없이 흐르는 걸음처럼 느긋하고 소박하다.
긴 여행끝이라도 피로함을 느껴지지 못할 만큼...
아! 나는 여기서 잠시였지만
충분히 쉬었구나.
넉넉한 빈 자리를 가슴에 품고 돌아오는 길은
오랫만에 행복했고 그리고 평안했다.

<빈 자리가 필요하다 - 오규원>

빈 자리도 빈 자리가 드나들
빈 자리가 필요하다
질서도 문화도
질서와 문화가 드나들 질서와 문화의
빈 자리가 필요하다

지식도 지식이 드나들 지식의
빈 자리가 필요하고
나도 내가 드나들 나의
빈 자리가 필요하다

친구들이여
내가 드나들 자리가 없으면
나의 어리석음이라도 드나들
빈자리가 어디 한구석 필요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찍고 끄적 끄적...2009. 11. 20. 06:34
아직 추위가 채 가시지도 않던 봄날 어느날
쨍한 바람 끝을 따라 경복궁을 찾았었지.
조선의 왕이 집무를 보고 살았던 곳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이곳 역시 사람이 살던 곳.
살뜰한 숨결들이 느껴져 오소소 몸이 떨렸었지.
그 사람들 다 어디로 갔을까 생각하다
"다 내게로 와 있지!"
 대답하며 혼자 몰래 웃었던 기억!



재연되고 있던 수문장 교대식
선명하게 붉던 도포 자락,
바람 끝에 날리던 옷 끝에도
품계석을 하나씩 쓸던 내 손 끝에도
그대로 느껴지던 시간의 흔적들...
옛 사람들이 서 있었던 곳.
그들은 오늘 이쯤에 있는 이 나라를 상상할 수 있었을까?

켜켜이 앉은 시간의 더개 속에서
근정전 왕의 어좌 위엔
지나온 시간만큼의 역사가 오롯이 새겨져 있었지.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조선의 왕은 고민하고 또 노력했을까?
나라를 위해, 종사을 위해, 백성을 위해...
혹은
잔인한 당파를 위해...



엤 사찰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 옛 왕궁의 위엄.
그 자리에서 깊은 책임감과 뜻을 품었던 사람들.
그 마음은 또 어디로 갔을까?
때로는 물이 되고,
때로는 구름이 되고,
때로는 천년 나무 그 뿌리가 되어
내내 어딘가에 새겨져 깊은 나이테 되지 않았을까? 
혹은 꼭꼭 채워진
금서의 공간으로 비밀을 간직하고 있을까?
그래도 모든 시간은 흔적을 남긴다는 걸
빈 해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다시 이해한다.



긴 처마 끝과 긴 담장의 끝
가만가만 들어보면
각인된 흔적의 시간들이 조용조용 내게 말을 건넨다.
너는 무엇을 남길 수 있겠느냐고...

옛 궁궐.
그 헛헛한 공간 속에 칼 끝처럼 매섭고 예리하던 바람 끝
뭉턱뭉턱,
그 끝이 도려내는던 시간의 흔적들.
남겨지지 못하는 역사는
결국 누구도 찾을 수 없게 된다고...
그러니 더 이상 아무것도 잃지 말라며
그 칼 끝이
나를 향해 말을 한다.

날선 칼 끝이 선명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