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0. 12. 16. 06:00
문학동네가 올해 초에 의미있는 일을 냈다.
한 장의 그림 또는 하나의 역사적 장면을 키워드로 삼아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재발견하는 인문서 시리즈 '키워드 한국문화'는
현재까지 10권의 책이 출판됐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출간할 예정이란다.
개인적으로 참 고맙고 반가운 책이라 하겠다.
그 첫번째 책이 바로 <세한도>다.
추사 김정희!
시, 서,화에 두루 능했을 뿐만 아니라
금석학, 경학, 고증학까지 조예가 깊었던 그는 중국까지도 그 명성을 떨쳤다
우리나라 전체를 통틀어 손꼽힐만한 지식인이었던 추사.
그리고 추사의 뒤에서 방대한 정보력을 제공한 사람이 바로 우선 이상적이다.
추운 겨울이 되어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 것을 알게 된다.
세한도 그림 속에는 유명한 공자의 말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제주도에 위리안치된 추사 김정희.
유배간 사람을 누가 일부러 찾을까?
그것도 바다 건너 저 먼 제주도까지...
추사의 제자이자 당대 유명한 역관이었던 우선 이상적은 
그러나 변함이 없이 추사를 그리워하고 흠모하면서
그에게 청나라에서 가지고 온 귀한 서책들을 보냈다.
그가 보낸 책에는 당시에 지식인들이 읽고 싶어했던
<황조경제문편> 120권 79책도 있었다.
말이 120권이지 예정없는 뱃길로 서책을 운반하기란 지금처럼 쉽지 않았으리라.
이상적 본인도 청나라에서 문집이 간행될 정도로 문학적 소양을 인정받은 사람이었는데
어찌 그런 귀한 책들이 탐나지 않았을까!
그 마음을 능히 알았을 추사는 <세한도>를 그려 이상적에게 보낸다.
그러니까 <세한도>는
이상적의 의리와 믿음이 추운 겨울 변하지 않고 푸르른 소나무와 잣나무 같다는 표현이자
추사의 진심이 담긴 그윽한 마음의 전달이었다.

...... <세한도>에 담긴 정신이 추사 한 사람만의 감회가 아니라, 조선의 모든 선비들의 정신이자 지금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정신이라 할 수 있다. 추사는 <세한도>를 통해 바로 이 조선의 정신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한 장의 그림이 아닌, 학문과 예술이 하나 되는 경지가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은 추사가 <세한도>를 완성해낸 과정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추사는 청나라에서 유행하던 화풍을 연구하여 그 근원의 궁극을 파헤쳤고, 그 궁극에 이르는 문경을 만들어냈다. <세한도>는 추사 자신이 만든 그 문경의 정점에 있는 작품이다. <세한도>에 청조 학술과 예술의 정수가 담겨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추사가 <세한도>를 완성하는 과정은 우리가 외래문화를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한 전범이라 할 수 있다. 외래문화의 틀 속에 우리의 정신을 어떻게 담아내야 하는지, 그 해답을 제시해준 것이다. 이것은 바로 외래문화의 수용을 통해 새롭게 창조한 우리 문화가 그 보편적 가치를 확보해나가기 위해서는 얼마나 처절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


박철상의 글을 읽으면,
그가 <세한도>에 얼마나 특별한 감회와 존경을 담고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일부러 관계된 모든 것들을 찾아 책 속에 담으려고 한 모습이
읽는 내내 또 다른 감동이었다.
명작이라고만 알고 있었던 <세한도>에 담긴 몰랐던 사실들도 알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또 식민지 시절 일본으로 옮겨진 <세한도>를 거금을 주고 찾아온 손재형의 모습에선
간송 전형필을 떠올렸다.
(이들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문화유산을 지킬 수 있었는가!)
손재형이 찾아오지 않았다면 <세한도> 여깃도 
일본 공습의 폭격 속에서 재가 되고 말았으리라...



책 말미에 20여명이 <세한도>를 보고 쓴 제형을 찬찬히 읽는 것도 특별했다.
추사에게 <세한도>를 받은 이상적은
연행길에 그 그림을 동반한다.
좋은 그림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물론 있었겠지만
이상적은 청나라에서 추사의 소식을 궁금해하던 사람들에게 그림을 보이고
직접 그들의 제형을 받아와 스승에게 알린다.
서로의 안부를 제형으로 확인하고 위로하는 애뜻한 정을 보는 것 역시도
뭉클할만큼 아름답다.

책을 읽으면서,
몇 년 전에 <세한도>가 전시됐을 때
미적거리다 미처 찾아보지 못한 게 또 그렇게 원망스러울수가 없다.
게으른 자의 회한은
늘 반성할 것 투성이다.

세.한.도
눈 앞에서 직접 확인하고 싶은 정신이다.
얼마나 아득할까....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1. 22. 06:05
공자를 흔히 이상주의자라고 말한다.
그런데 아무래도 나는 장자가 공자보다 훨씬 더 이상주의자같다.
공자의 말은
그래도 성인군자로서의 행동을 시행해 봄 직도 하지만
장자의 말은 인간세상에서 성인군자를 넘어 도통의 경지에 이르기를 바라는 것 같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고 좋은 말이긴 한데
이걸 현실적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은 도저히 아무것도 하지 말고
무심(無心)의 경지가 되야만 한다.
아무 마음 없이 세상을 살 수 있을까?
(정확히 말하면 사심과 욕심없이)



깨끗함이 드러나는 사람은 진정 깨끗한 사람이 아니다. 장자의 관점에서 보면 그는 깨끗함에 집착하는 사람일 뿐이다. 집착하는 사람은 그 반대되는 것을 의식하고, 더 나아가서는 반대되는 것을 부정할 것이다. 지나치게 깨끗한 옷차림을 좋아하는 사람이 남의 더러운 옷차림을 이해하지 못하는것처럼, 마음의 깨끗함이 '훌륭한 것'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작은 오점을 용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았다. 장자가 보기에는 이런 사람은 진정 깨끗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효도와 형제애, 박애와 정의, 충성과 신의, 지조와 청렴 등의 가치는 원래 인간의 내면에 있는 자연스러운 품성의 발현이므로대단하다고 할 만한 것들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런 것이 드러나 보이면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사람이 머릿속의 생각만으로 추구하는 가치란 아무리 숭고한 것이라 해도 상대적인 것이며, 결국에는 무너지기 쉬운 허상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사람을 세상 속에서 버티게 만드는 건 어느 정도 "집착"의 힘이 아닐까?
결국에는 무너지기 쉬운 허상이며 관념이라는 장자의 말은
그러나 지독히 이기적인 결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책 속에 "관념"에 대해 언급한 부분은 눈에 띈다.

생각으로 자리잡은 "관념"이란 편견에 불과할 뿐이다.
관념은 대개 주관적이고 편협적이다.
진정한 실체는 인간이 생각하는 한계와 표현하는 범주를 넘어서는 일이다.
아무리 좋은 가치라도 머릿속에 관념으로 자리 잡히는 순간 본질이 훼손도고 만다.
진실을 보지 못하는 원인이란 정형화된 기준이 "관념"이 되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정한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개념화된 언어와 문자의 폐해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변화하는 사물의 표면에 얽매이기 때문이다.
관념의 덫과 껍데기에 머무는 오류는 세속적인 것에의 탐닉 때문이다.


관념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그는 "통찰"을 언급한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새로운 차원의 눈으로 현실을 보는 통찰.
결국 장자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첫째는 "있는 그대로 두라"는 것이고,
두 번째의 것은 더 나아가 "자신을 쓸모없는 상태로 두라"는 것이다.
모든 감관(感觀)의 작용을 멈추고 자기 자신의 존재조차 잊는 "좌망"의 존재가 되자고 말하는 장자.
사랑이나 정의 등도 인간이 설정한 일정한 기준에 불과하다.
이런 기준은 그보다 더 큰 기준으로 넘어설 수 있지만 자신의 육신의 존재를 잊고 감관의 작용을 넘어서는 일은 어려운 일이란다.
거기에 "나"라고 하는 자의식과 지식까지 버리고 자연의 섭리와 하나가 된다는 것은
"지고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는...
이렇게 살게 되면 장자의 말처럼 삶의 기술과 도가 합쳐지겠구나 싶기는 한데,
아무래도 불가능 그 이상의 일 같다.
(불가능, 그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한다면 대략 난감...)

언젠가 지적 능력(?)이 지금보다 월등해지면(?)
해석본이 아닌 제대로 된 장자와 한 판 붙어봐야 겠다..
비판자가 될지, 동조자가 될지 스스로 궁금해지기에...
아직 그의 이론은 내겐 그저 "한여름밤의 꿈" 같다.
그런데 가능할까???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11. 23. 06:31
 <책만 보는 바보> - 안소영 

 
책만 보는 바보

<책만 보는 바보>

제목만 보면 어떤 책이라고 생각되나요?

좋은 책을 소개해 주는 서평집 같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간서치(看書痴)”란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을까요?

“간서치(看書痴)”란 말 그대로 “책만 보는 바보”라는 뜻으로 “책벌레”를 가리키는 말이죠.

조선의 역사 속에서 “간서치”라 할 만한 인물을 꼽으라면, (어디까지나 지극히 저의 개인적인 취향임을 밝히는 바입니다.)

정조 이산, 연암 박지원, 다산 정약용, 청장관 이덕무, 퇴계 이황, 율곡 이이 등을 꼽을 수 있을 겁니다.

특히 청장관 이덕무는 아예 자기 자신을 “간서치”라고 부를 정도로 책 속에 파묻혀 지냈던 인물이죠.

이 책, <책만 보는 바보>는 그러니까 바로 규장각 검서관(檢書官)이었던 이덕무(1741~1793), 그 지독한 책벌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자 안소영은 청장관 이덕무가 1761년 쓴 자서전 <간서치전>을 읽고 그에게 매료되어 이 책을 집필하게 됐다고 합니다. 그것도 스스로 이덕무가 되어, 역사 속의 그를 버젓이 지금의 시대 안으로 불러내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이덕무라는 역사 속 인물이 마치 내 옆에 앉아서 조곤조곤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집니다.

일생을 책 속에 파묻혀 책만 읽는다...

어떻게 생각하면 생활력 없고 현실적이지 못한 무책임한 한량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덕무 그 자신은 결코 책만 보는 바보가 되고 싶었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의 진정은 세상에 쓰임이 되는 사람이길 간절히 원했죠.

그런데 이 바람은 그에겐 넘지 못할 높은 산과도 같았습니다.

바로 “서자(庶子)”라는 그의 출신 성분 때문이었죠.

“...... 사람으로 태어나 가장 비참한 것은 쓰일 데가 없다는 것이다. 책만 파고들면 무엇 하나? 내 말과 글로는 세상을 조금도 바꾸어 놓지 못하는 것을. 몸을 움직여 할 줄 아는 일이 무엇이던가? 어렵게 뜻을 세웠다 하더라도 세울 뜻을 펼쳐 보일 데가 없는 나의 인생은 내내 외롭고 서럽기만 했다.....”

이덕무는 왕족의 후손이었으나 적자 혈통이 아닌 서자 혈통이었습니다. 그의 할아버지로부터 시작돼 후손으로 이어진 서럽고 서러운 서자라는 핏줄.

이 보이지 않는 서러운 핏줄로 이덕무의 앞길은 가로막히고, 주눅들 수밖에는 없었죠. 그때마다 그는 “두려움과 무기력감”에 빠져 괴로워했다고 고백합니다.

적자와 서자의 구별이 엄격했던 조선!

그 시대에 서자가 낄 자리는 도저히 없었습니다.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하여 먹고살 방도를 찾아보려 하여도 양반의 핏줄이라 하여 달가워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존대를 받으며 구종을 부릴 수 있는 당당한 양반의 처지 또한 아니었죠. 그럴 때마다 그는 어머니가 물려준 보잘것없는 핏줄이 아니라, 아버지가 물려준 이기적인 양반의 핏줄이 한스러울 따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가 책만 보는 바보가 될 수밖에 없었던 건 서러운 핏줄에 대한 한스러움과 어쩌지 못하는 신분에 대한 벽 때문이었던 거죠.


이서구, 유득공, 박제가, 백동수.

소위 백탑파라고 불리우는 이덕무의 깊은 벗들입니다.

명문가의 적자인 이서구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다 이 서러운 핏줄인 서자 출신이죠.

이들의 사귐은... 참 다정하고 멋스럽습니다.

아끼던 일곱 권의 <맹자> 한 질을 팔아 생계를 꾸려야 했던 이덕무를 보며 자신이 아끼던 <좌씨춘추>를 팔아 술을 샀던 7살 아래의 유득공. 우수한 성적으로 무과에 합격했으나 서자 출신으로 오랫동안 관직에 나가지 못해 산 속으로 들어간 2살 아래 처남 백동수, 사물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연구에 능했으나 쓰일 곳이 없어 오히려 더 마음이 아팠던 9살 아래 박제가. 명문가의 후손으로 이덕무와는 무려 13살의 나이 차이가 있던 어린 이서구까지...

그들의 사귐에는 나이와 신분을 초월하는 깊이 그 이상의 것이 있었습니다.

특히 나이 차이가 가장 많았던 이서구와의 사귐은 “이심전심”의 마음까지도 전해집니다.

“...... 아무리 책을 좋아하는 벗이라 해도, 책의 향기를 코끝으로 먼저 느끼는 예민한 후각과 책을 만질 때마다 설레는 손끝의 미세한 떨림까지 시시콜콜 나누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이서구와는 굳이 이러한 느낌과 취향을 꺼내어 나눌 필요도 없었다. 그도 역시 그러하였으므로 ...... 수십 년 동안 그와 나 사이에서 오고 간 책들은, 서로의 손대가 묻어 닳아 갔다 ......”

책을 손에 잡는 그 작은 공간이 온 우주를 다 담을 수 있을 만큼 드넓고도 신비로웠다고 말하는 이덕무. 그는 책을 읽기 위해 방에 들어서는 순간 가지런히 꽂혀 있는 책들이 모두 자신을 향해 눈길을 돌리는 것만 같다고 말합니다. 책과 눈이 마주치는, 그 책 속에 담긴 누군가의 마음과 자신의 마음이 마주치는 설렘까지도 온전히 벗들과 나눌 수 있었던 그가 저는 참 부럽고도 존경스러울 따름입니다.


이 책 속에는 그에게 서러운 핏줄을 잊고 더 큰 세계를 만날 수 있게 도와준 스승과의 인연도 담겨져 있습니다.

“공자가 말씀하시길...”을 스스로 “스승이 말씀하시길...”로 고쳐 읽었을 정도로 이덕무는 공자의 사상과 이론에 심취해 있었죠.

월식과 일식으로 지구의 자전을 설명한 담헌 홍대용.

그는 이 세상의 중심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며 우리나라 입장에서 본다면 중국도 북쪽의 큰 땅덩어리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합니다. 조선 양반들의 지나친 사대주의의 폐해를 꼬집는 의미심장한 말이라 할 수 있죠.

선입견을 버려야만 조선이 이롭게 변할 수 있다고 말한 연암 박지원.

선입견은 결국, 자신만의 생각에 사로잡혀 사람과 사물의 본래 모습을 바라보지 못하는 편견이기도 하다고 연암은 말합니다. 그러한 편견에 사로잡힌 세상은 새로운 활기라고는 없는 세상, 변화를 거부하는 낡은 것들로만 가득한 세상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죠.

조선에서도 알아주는 명문가의 자손인 연암은 자신보다 13살이나 어린, 그것도 서자 출신인 박제가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의복을 정갈하게 갖추고 인사까지 합니다.

심지어 헤어지는 자리에서 박제가에게 이런 말까지 했다고 하네요.

“슬기로운 젊은이여! 부디 오래오래 사시게!”

이 두 스승은 그들을 자애로 대해줌으로써 세상 보는 눈을 바르게 열어 주었습니다. 자칫 기가 꺾이거나 흔들리기 쉬운 그들의 서러운 마음을 바로잡아 주고, 그들이 글을 쓰거나 문집을 낼 때마다 일일이 읽어 보고 격려해 주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런 스승들의 가르침과 격려가 있었기에 이들 서러운 서자들이 드디어 규장각 검서관이 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승의 추천으로 연경사신단이 되어 연행길에 오른 이들은 탕탕평평의 정책을 표방한 정조의 부름을 받아 차례차례 대궐에 입궐하게 됩니다.

그 날의 감격에 대해 이덕무는 말합니다.

“...... 버려진 물건처럼 이리저리 구르던 우리들의 삶도 이제 쓰일 데가 있다는 것이 감격스럽기만 했다. 규장각 서고에 가득한 책들 속에서 좀벌레로 늙어 간다고 해도, 이 세상 어딘가에 나의 자리가 있다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뽀얗게 쌓인 먼지를 털어 내고 세상의 빛을 향해 나온 책들처럼, 벗들과 나의 시대는 그렇게 새롭게 열리고 있었다......” 라고.

한때는 자식의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재능을 보는 것이 너무나  두려웠다고 그는 말합니다.

그 어린 아이들의 마음과 생각이 영글어 갈 무렵에는 이 세상에 태어나 무슨 꿈을 꾸며 살아야 하는지 묻는 것만 같아 두려웠다고요. 철이 들어 자신들의 처지를 알고 체념한 듯 꽉 다문 입술을 보면 서글프기까지 했다 말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이들의 이야기에 마음껏 같이 웃어 주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궁금하기만 한 그 물음에 성의껏 대답해 줄 수 있게 되었노라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습니다. 여릿여릿한 뼈대와 무른 살들이 차츰 강건해지고 단단해지듯이, 품은 뜻에 따라 자신의 삶을 만들어 나가려는 노력들을 진심으로 격려하고 축복해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이죠.

그리고 실제로 이들 서얼 출신 백탑파는 조선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업적을 남깁니다.

박제가의 <북학의>, 유득공의 <발해고>, 그리고 이덕무의 아들에 의해 정리되어 세상에 나온 이덕무의 <청장관전서>, 정조의 명에 따라 이덕무, 박제가, 백동수에 의해 만들어진 <무예도보통지>까지...

특히 <무예도보통지>는 무예 동작 기법을 세세하게 그림으로 그려 넣음으로써 글을 모르는 병사들까지도 쉽게 따라 배울 수 있게 만든 이론과 실제가 겸비된 최초의 군사 훈련서이기도 하죠.

이렇게 세상 속으로 나온 이들은 더 큰 미래의 조선을 생각하며, 자신의 아이들에게 이어질 더 나은 세계를 위하여 일생을 공헌하고 헌신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업적들의 근본은 어릴 때부터 시작된 방대한 깊이의 책읽기에서 비롯된 것임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합니다.

그가 책을 통해 나눴던 옛사람들과의 깊은 시간의 공유를 이제 저는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시간이지만, 그 시간의 흔적은 사람의 기억과 마음속에 남는다고 합니다. 그 흔적은 그렇게 서로의 삶 속에 깊숙이 들어가면서, 시간 속에 길을 내기도 하고, 각자의 시간을 서로에게 나누어 주기도 한다네요.

시간을 나눈다는 것,

그것은 반드시 얼굴을 마주 대하고 있는 사람들끼리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책을 통해 우리는 옛사람들의 시간을 나누어 받을 수도 있고, 그 반대로 우리의 시간을 옛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도 있다고 이덕무는 말합니다. 그들의 소망이 나를 통해 이루어질 때 옛사람들은 그만큼의 사간을 더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고요.

그렇다면 어설픈 저의 책읽기 또한 옛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하나의 의미가 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간서치 이덕무의 말처럼 어쩌면 저 역시도 조금은 이덕무의 벗이 되었다 감히 말할 수 있을지도요.

“...... 오랜 세월이 흐른다 하더라도 누군가 나의 마음속에 스며들어와 나의 진심을 이해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서로 시간을 나눌 수 있다. 옛사람과 우리가, 우리와 먼 훗날 사람들이, 그렇게 서로 나누며 이어지는 시간들 속에서 함께 하는 벗이 되리라 ......”


* 책을 읽으면서 중간중간 나오는 모퉁이 그림들이 너무 예뻐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다정하고 소담스러운 그 단정한 그림들이 너무 사랑스러워서요.

이 책, 아무래도 오래오래 그리고 깊게깊게 사랑하게 될 것만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덕무의 단정한 마음을 빌어 그가 밝힌 책읽기의 이로움을 옮겨 봅니다.

1. 굶주린 때에 책을 읽으면, 소리가 훨씬 낭랑해져서 글귀가 잘 다가오고 배고픔도 느끼지 못한다.

2. 날씨가 추울 때 책을 읽으면, 그 소리의 기운이 스며들어 떨리는 몸이 진정되고 추위를 잊을 수 있다.

3. 근심 걱정으로 마음이 괴로울 때 책을 읽으면, 눈과 마음이 책에 집중되면서 천만 가지 근심이 모두 사라진다.

4. 기침병을 앓을 때 책을 읽으면, 그 소리가 목구멍의 걸림돌을 시원하게 뚫어 괴로운 기침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나의 책읽기는 나에게 어떤 이로움을 주는지...

오래오래, 깊게깊게 생각하게 합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3. 16. 05:57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 -최효찬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


기억하고 계신 분들이 혹 있을까요? (매우 소심한 질문...)

<500년 내력의 명문가 자녀교육>이라는 책을 달동네 책거리에서 소개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우리나라 명문가를 만나봤다면 글로벌 시대에 맞게 오늘은 세계 명문가들도 한번 찾아가 볼까 합니다.

왠지 재미있는 여행이 되지 않을까요?

같은 작가 최효찬의 명문가 시리즈 vol 2에 해당하는 책입니다.

우리나라의 명문가를 소개했던 앞의 책처럼 가장 큰 특징은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와 책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거기에 조금 더 깊게 들어간다면 리세즈 오블리제(Richesse oblige : 부자들의 도덕적 의무와 책임)의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Noblesse oblige, Richesse oblige!!

이 두 말은 말이죠. 음....

말 자체만으로도 사람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얼굴에 미소를 짓게 만드는 말이에요. 개인적으론 등 따시고 배부르게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있답니다. ^^


여러분이 알고 있는 세계 명문가... 얼마나 될까요?

이 책에선 모두 10곳의 명문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메리카 드림의 꿈을 안고 미국 땅을 밟은 가난한 아일랜드 시골 농부.

이민족으로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일등”이 되어야만 했고 그렇게 4대에 걸쳐 일군 노력으로 이민 110년 만에 최연소 미국 대통령을 만들어낸 정치 명문가 케네디 가.

우리나라에선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고 싶은 이유가 “간판”에 대한 과시욕도 무시하지 못할 테지만 케네디 가에서 그렇게 “하버드”만을 고집했던 이유는 자녀들이 최고의 인맥 네트워크로 연결되길 희망해서였습니다.

그들의 바램은 그러한 인맥이 위기가 닥쳤을 때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던 거죠. 그러나 거기에 빗대 몸을 의지하라는 게 아니라 정당히 이용해 극복할 줄 아는 현명함 또한 가져야만 했습니다.


돈을 번만큼 사회에 환원했던 스웨덴 발렌베리 가는 국민들에 의해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 시청 앞 광장에 동상이 세워지기도 했습니다.(우리나라는 자비로 열심히들 세우시던데......)

기초과학 기술 연구의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발렌베리 가는 스웨덴이 노벨상 수상자를 내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가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거의 전 재산을 기부했다고 하니 저의 개인적인 깜냥으론 도저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네요.

그런가 하면,

우리가 잘 아는 게이츠 가!

진정한 Richesse Oblige를 실천하고 있는 가문이죠.

“빌&멜린다게이츠”라는 세계 최대의 자선단체를 만든 이들 부부는 “컴퓨터 황제”라는 타이틀도 모자라 이젠 “기부 황제”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쥐고 있습니다.

현재 보유 자산이 550억 달러에 달하는 그들은 자식들에겐 1000만 달러의 상속금만 남기고 나머지 재산은 전부 자선사업에 쓰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그들이 한 말이 있네요.

“자식들에게 많은 돈을 남겨 주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을 위해서 그다지 좋은 일이라고 여기지 않기 때문이죠”

빌의 절친한 친구로 알려진 워렌 버핏도 지금까지 85%의 재산을 빌 게이츠 재단에 기부한 상태라고 하네요. 죽기 전까지 재산의 99%를 기부하겠다고 하니 이런 경쟁이라면 과히 적벽대전을 능가하는 스펙타클이 아닐지...... (도대체 인간이긴 한 겁니까? 이 사람들.....)


그 외에도 동양을 대표하는 성인인 공자 가문과 타고르 가문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공자의 고향으로 알려진 곡부에는 그의 80대손에 해당하는 직계 후손이 그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고 하니 그 또한 놀라울 따름입니다.

공자의 교육론은 창의성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질문위주의 토론식 교육”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커뮤니케이션 스킬의 대가라고 할 수 있겠죠. (이 부분 솔직히 심하게 부러운 대목입니다...)

막대한 재산을 바탕으로 문화예술가를 지원하고 후원했던 인도의 타고르 가.

정상적인 학교 교육에 적응하지 못했던 타고르는 아버지와의 여행을 통한 교육으로 좀 더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있었다고 하네요.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그가 동양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될 수 있었던 건 가족의 칭찬이라는 근원적인 자양분이 밑바탕이 되어 있었습니다.

타고르의 말을 옮겨 볼께요.

“아이는 칭찬이라는 보약을 먹으면 능력 이상으로 재능을 키워갈 수 있다”

 (오늘 보약 한 첩씩 다들 처방해 보심이....)

이렇게 보면 명문가로 가는 길을 참 평범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여자의 대학입학이 불가능했던 폴란드를 떠나 20세에 파리의 소르본 대학에 입학에, 결국 최초의 여성 노벨상 수상자가 됐던 퀴리 부인(그것도 2번이나), 그녀는 소르본대의 최초 여성 교수이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그녀의 딸 역시 어머니의 뒤를 이어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죠. 그들은 그 시대엔 상상이 불가능했던 평등부부를 실현했던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먹고 사는 “가업”이 아니라 후손에게 정신적인 양식을 “가학”으로 물려준 다윈 가는 엄밀히 말하면 총 5대에 걸쳐 진화론을 연구한 셈이네요,(생각해보세요. “인간은 원숭이가 진화된 것이다”를 무려 5대째 연구했다는 사실....지겹지들 않으셨을까???)

세계적인 대문호 톨스토이를 만든 건 “일기” 쓰는 습관에서 비롯됐고, 자만심이 아닌 자긍심 있는 아이를 키우기 위해 노력한 영국의 러셀 가, 고리대금업으로 시작했지만 세계 최대의 금융제국을 이끌고 있는 유대인 명문가 로스차일드 가는 흩어진 유대인을 모아 이스라엘을 건국하는 데 큰 공헌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 가문에 의해 나라가 세워진 셈이죠, 그리고 이 가문은 다섯 후손에 의해 지금도 조용히 세계의 경제를 주무르고 있습니다.

“다섯 개의 화살”의 살아있는 증거인 셈이죠.

(“하나의 화살은 쉽게 부러지지만 다섯 개가 모이면 누구도 부러뜨리지 못하게 된다”는...)


이 책에 나오는 명문가를 들여다보면 공통적인 몇 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부모가 자식의 “멘토” 역할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일류 부모” 밑에서 “일류 자녀”가 만들어진다는 의미죠.

그리고 방대한 양의 “독서” 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컴퓨터 황제 빌 게이츠 역시도 고백하고 있습니다.

컴퓨터가 결코 책의 역할을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라고요...

그는 두 아들에게 컴퓨터를 갖게 하지 전에 먼저 책을 사줬다고 합니다.

명문가 특징을 두 가지를 더 이야기 하자면,

최고의 인맥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한 다방면적인 투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실현하는 기부와 자선의 실천이었습니다.

어쩐지 좀 다른 세상의 이야기 같긴 하지만 가만 살펴보면 또 못할 것도 없는 내용들입니다.

여기도 역시나 “독서(다독)”가 한 자리 차지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우리나라 명문가든, 세계의 명문가든

“다독‘이 어디서든 제 1의 근본의 되는 건 분명하네요.

왠지 자신감이 좀 충전되는 기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어떤 책을 읽을까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 “독서”는 명문가의 시작입니다..... ^^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