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1. 10. 25. 06:07

<신의 아그네스>


일시 : 2011.10.01. ~ 2011.10.31.
장소 : PMC 대학로 자유극장
출연 : 윤소정, 이승옥, 선우
극본 : 존 필미어(John Pielmeier)
연출 : 이대영

미국의 인기 희곡작가 존 필미어(John Pielmeier)의 세계적인 명작 <신의 아니그네스>는,
1982년 초연이래 지금까지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고 있는 작품이다.
우니나라에는 1893년 초연됐고
아그네스역엔 윤석화가 캐스팅됐었다.
그후에 신애라, 김혜수등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이 아그네스를 연기해 화제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그래선지 작품이 공연될때마다 매번 작품성과 대중성에서 엄청난 흥행을 일으켜 소위 "아그네스 신드롬"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번 공연에는 초대 ‘리빙스턴 박사’로 활약한 ‘윤소정’이 다시 리빙스턴으로 무대에 섰다.
아그네스를 보호하려는 원장 수녀 마리암 역은
오랜 기간 국립극단에서 활동해 온 원래 연극배우 이승옥이, 
아그네스 수녀역에는 뮤지컬에서 연극으로 영역을 넓힌 선우가 맡았다.
신이 주신 특별한 재능, 천사의 목소리라는 축복을 받은 아그네스 역에 선우를 선택한 건 
KBS 남자의 자격 하모니편과 무관하지는 않으리라.
살짝 속보이는 캐스팅은 아닌가 생각됐다.
연출 이대영은 이 현대적인 고전물에 조명과 음악적 요소를 더해서
극적 효과를 끌어들이려 노력했다는데 배우 선우에 대한 기대치가 상당한 듯 느껴진다.
개인적으론 이 연극을 선택한 건 순전히 배우 "윤소정" 때문이다.
세 번째 리빙스턴 박사를 맡게 된 배우 윤소정은 스스로 이 작품을 자신의 대표작이라고 말했다.



21살의 어리고 순진한 수녀가 어느날 아기를 낳는다.
그리고 그 아이는 탯줄로 목이 감긴채 휴지통에서 사망한 상태로 발견된다.
과다출혈과 정신적인 충격으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아그네스 수녀.
아그네스는 기소됐고 그녀의 정신감정을 위해 수녀원으로 정신과 의사 리빙스턴 박사가 찾아온다.
<신의 아그네스>는,
이렇게 엄청나게 충격적인 소재와 섬세한 심리묘사로 인해
"현대인의 성서" 혹은 "여자들의 에쿠우스"로 불린단다.
순수함 속에 광적인 모습이 내재된 ‘아그네스 수녀’
그런 그녀를 신의 가까이에서 보살피려는 ‘원장수녀’
진실을 밝히는 것으로 아그네스를 구하려는 정신과 의사 ‘리빙스턴 박사’
두 시간 동안 세 명의 배우가 펼치는 열연은
논쟁이고, 소통이고, 이해고 ,치유고, 구원이다.
윤소정, 이승옥 두 노장의 연기는 어떤 젊은 배우들보다 더 열정적이고 진지하고 확고했다.
순간순간 두 개의 불꽃이 맞부딪치면서 타닥거리는 강렬함!
<에쿠우스>에서 느꼈던 트라우마(trauma)의 충돌이 이 작품에서도 느껴진다.
아그네스의 트라우마, 리빙스턴의 트라우마, 그리고 원장 수녀 마리암의 트라우마.
그건 모두 모성을 가진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이다.
어쩌면 유일하게 공통된 감정일지도...
그래서 이 작품이 종교가 그 배경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신과 모성이라는 유일하고 절대적이며 맹목적인 사랑과 집착!
마리암 원장수녀는 은폐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아그네스에게 일어난 일이 신의 기적이라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게 다 신의 뜻이자, 신의 증표(證標)라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던 아그네스는
모든 걸 너무나 명확하고 분명하게 기억 속에 담고 있다.
신만큼 유일하고 절대적이던 어머니에게 박은 어린 시절의 학대와 성폭행.
나는 그런 아그테스가 스스로 자신과 계약을 했다고 생각한다.
마치 파우스트처럼...


두 시간 가까운 시간동안 90% 이상 등장하는 리빙스턴 박사!
배우 윤소정의 존재감은 고요한 폭풍과 같다.
결코 고성을 지르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사람을 몰입시키는 엄청난 집중력.
그녀의 무대를 보고 있으면 그래서 때때로 소름이 끼친다.
원장수녀 이승옥은 처음엔 낯설었는데
극이 진행할수록 시선을 사로 잡는다.
시선처리와 대사 속에 담긴 감정표현이 정확하고 성실하다.
연륜이라는 건 정말 무시할 수 없음을 절감했다.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극의 표현을 빌리자면 유리같아 깨지기 쉬운 아이 아그네스.
선우의 첫 정극 도전은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나 미안하게도 순수하다기엔 그녀가 너무 나이 들어 보인다는 안스러움과
(그래서 종종 순수라기보다는 몸만 자란 지진아 같은 느낌도 든다)
성가가 성가처럼 들리지 않았는다는 건 확실히 귀에 거슬린다.
장중하고 성스러운 느낌이 들기보단 가요나 팝을 듣는 느낌이다.
직접 불렀다면 어쩌면 달랐을지도 모르지만 MR로 처리한 게 많아서 아쉽다. 
딕션과 액팅은 좋았지만 표정과 감정표현이 아직 미숙하다.
어쨌든 시작이니까...

<신의 아그네스>
오랫동안 궁금했던 작품이었는데
드디어 봤다.
그것도 다행스럽게도 윤소정,
그녀가 리빙스턴으로 분한 그 <신의 아그네스>를...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6. 29. 06:30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사람에게는 그 사람 각자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시련과 고통만 찾아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누구든 생각하게 되죠.

“이건 정말 너무 심한 거 아냐?”

때론 신조차도 그 공평성에서 살짝 벗어나신 게 아닌가 하며 야속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이 생길 때도 분명 있습니다.

여기 우리가 보기엔 참 힘든 삶을 사는구나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생후 1년 때 앓은 척수성 소아마비로 두 다리의 자유를 잃은 1급 장애인.

2001년 유방암 판정, 방사선 치료로 완치.

그러나 다시 2004년 척추암으로 전이, 2년간의 투병 생활.

1년 만에 다시 간으로의 암 전이....

그렇게 다시 시작된 투병 생활 중에 그녀는 이 책을 씁니다.

결국 책의 출판을 하루 앞 둔 5월 9일 57세의 일기로 타계를 한 문학 전도사.

장.영.희!

<문학의 숲을 거닐다>로 잘 알려진 서강대 영문학 교수 장영희.

<내 생애 단 한번> 이후 9년 만에 내놓은 에세이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은 그렇게 그녀의 유고작이 되어 이 세상에 출판됐습니다.

그녀는 “천형(天刑)의 삶”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에 주눅듬 없이 자신의 삶이 “천혜(天惠)의 삶”이었다고 당당하게 고백하며 오히려 그들의 지친 어깨를 다독입니다.

어쩌면 병상에서 이 글을 쓰면서 그녀는 정말로 “살아온 기적”들을 되짚어 보면서 “살아갈 기적”을 간절히 꿈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카르페 디엠!
(carpe diem :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라! 매 순간이 당신 삶의 마지막인 것처럼... )

그녀는 계속되는 장애와 긴 투병 생활 속에서도 진정으로 카르페 디엠의 삶을 하루하루 실천하며 온 몸으로 느꼈던 사람으로 기억됩니다.

세 번째 암 판정 이후 그녀는 말합니다.

"신은 우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하기위해서 넘어뜨린다. 나 역시 넘어질 때마다 어떻게 다시 일어서야 할지를 생각한다."

그녀가 찾아낸 방법은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열심히 살며 잘 이겨냄으로써 아름다운 기적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글 속엔 스스럼없이 장애와 투병의 흔적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 글들은 모두 하나같이 밝고 심지어는 유머러스하기까지 합니다.

양지바른 곳에 쪼그리고 앉아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던 유년의 기억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 만큼요.

이야기가 끝날까봐 조마조마하며 “그래서~~~”로 되묻던 그 어린 기억...

60을 바라보는 여자가 도대체 이렇게 귀엽고 순수해도 되는가 싶은 만큼 깨끗하고, 밝고 그리고 심지어 장하기까지 합니다.

장영희! 이 여자!

급기야 깰 수 없는 내공으로 집을 짓고 말았네요.

가끔 우리는 저울질을 합니다.

마음의 장애와 신체의 장애 둘 중에 어느 게 더 치명적인가를...

그딴 저울질이나 하고 있는 제게 “날 좀 봐라! 나는 그 두 가지를 완벽하게 다 가지고 있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녀를 처음 알게 됐을 때의 당혹감이라니...

내 “배부름의 옹졸함”이 드러나는 걸 보면서 스스로 얼굴 화끈거리기도 했더랬죠.

문학 전도사, 희망 바이러스, Positive thinking 의 실천가!

그녀의 이름 앞에 붙는 이 단어들이 제게는 문학박사, 교수, 영미문학사의 간판보다 더 애뜻하게 다가옵니다.


그녀가 타계했다고 했을 때,

저는 그녀의 어머니가 걱정됐습니다.

두 다리를 못 쓰는 둘째 딸을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매일 업어서 등하교시켰던 어머니. 비가 오면 부서진 우산살이 딸에게 향할까봐 그 우산살의 방향을 매번 자신에게 향하게 해 옴 몸을 적셨던 어머니. 진눈깨비 내리는 날이면 행여 딸을 학교에 못 데려다주게 될까봐 새벽에 일어나 연탄재를 부숴서 집 앞 골목길에 뿌려놓았던 그 어머니.

역시 그녀도 어머니가 마음에 걸렸던 모양입니다.

임종 직전 노트북 컴퓨터로 어머니 이길자(82) 여사에게 남긴 짧은 편지에 그 마음이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이 몇 줄의 글을 그녀는 혼미한 정신과 싸워가며 3일간 아주 힘겹게 썼다고 합니다.

"......엄마, 미안해. 이렇게 엄마를 먼저 떠나게 돼서.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 찾아서 기다리고 있을게.
  엄마  딸로 태어나서 참 좋았어.
  엄마! 엄마는 이 아름다운 세상 더 보고 오래오래 기다리면서 나중에 다시 만나......"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에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마지막 말도 “엄마 !...”

이 두 글자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 또한 옴 몸의 힘이 빠졌습니다.

세상의 모든 딸은 모든 어머니에게 빚을 지며 살고 있다는데......

저 역시도 어머니의 두 손에서 다시 삶을 시작했기에 그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말한다면 허세일까요?

그녀는 짧지만 참 긴 삶을 성실히, 그리고 최선을 다해 살아냈습니다.


“흔적이 남는 사람”

저는 장영희라는 사람을 그렇게 기억하렵니다.

지치고 힘들어 혼자 징징거리고 있을 때 그녀는 어느새 제게 말합니다.

"...... 그렇게 야단법석 떨지 마라. 뼈만 추리면 산다.
 아무리 운명이 뒤통수를 쳐서 살을 다 깎아 먹고 뼈만 남는다 해도 울지 마라.

 기본만 있으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살이 아프다고 징징대는 시간에 차라리 뼈나 제대로 추려라. 
 그게 살 길이다......"

먼저 간 사람들은 믿음을 가지고 떠난다고 합니다.

남겨진 사람들이 자신이 못 다한 사랑을 해주리라는 믿음, 진실하고 용기 있는 삶을 살아주리라는 믿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 주리라는 믿음, 그래서 나중에 다시 만날 때까지 이곳에서의 귀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리라는 믿음....

그 믿음에 걸맞게 살아가는 것은 이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그녀는 말합니다.

서로 치고받고 싸우기도 하지만 또 서로 도와 가며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이 세상.

나쁜 운명을 깨울까 봐 인생을 내내 살금살금 걷듯이 살아간다면 좋은 운명 또한 평생을 살아도 깨우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나쁜 운명, 좋은 운명 모조리 다 깨워 가며 저벅저벅 당당하게, 큰 걸음으로 걸으며 살아내라고 평생을 휠체어와 목발에 의지해 살았던 한 여자가 말합니다.

두 발의 자유를 잃고 신체의 구석구석을 원치 않았던 동반자에게 차례차례 내주면서도 매 순간을 세상 누구보다 큰 걸음으로 걸었던 한 사람...

그녀가 “살아온 기적”을 보면서

저 또한 “살아갈 기적”을 부지런히 탐하게 됩니다.

이제 넘어져 또 다시 뼈가 부서진다고 해도 더 이상 징징대지 않으렵니다.

그 시간에 오히려 더 열심히 뼈를 추려야겠죠.

하나라도 더 잘, 더 제대로 추려내야 잘 맞춰질 수 있을 테니까요...


모든 사람의 모든 순간이

전부 온전한 “기적”임을 기억하며...

Posted by Book끄-Book끄
모든 생명은 축복이며
기쁨입니다.
열심히 힘차게 뛰고 있는
태아의 심장을 보고 있으면
그 작은 몸 안에 숨어있는 힘의 비밀이
궁금해집니다.



그 작은 심장 안을
꽉꽉 채우고 있는
부지런한 생명의 움직임
어느 한 곳도 비워두지 않고
구석구석
힘찬 박동을 보냅니다.



심장 안의 피는
잠시도 힘참을 잃지 않고
대동맥을 통해 온 몸으로 그 푸른 생명을 전합니다.
길고 긴 피의 길...
막힘없는 생명의 길을 향해
태아는 매 순간
온 힘을 다해 순환합니다.



머리로 향하는 세 갈래 혈관길
태아의 머리는
그래서
항상 따스함을 느끼고 사랑을 배웁니다.
기억하고 있겠죠?
매 순간순간 자신이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를....

모든 태아의 작은 숨결
모든 태아의 작은 박동
모든 태아의 작은 움직임
그 하나 하나가
모두 기적이고 전설입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6. 22. 13:33
<듀이 :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

                    - 비키 바이런, 브렛 워티  

듀이


반려 동물!

이제 우리나라에도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는 관계입니다.

예전에 집동물이라고 하면 키워서 먹는다는 보양(?) 개념의 축생이었는데 지금은 동반자 관계를 넘어 부모자식으로까지 발전된(?) 관계도 아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동반의 반려관계는 마음의 독거인(獨居人)인 그네들의 외로움과 고독감을 둘만의 긴밀한 소통으로 치유할 수 있는 묘한 “미스터리”의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긴 해도 지하철이나 공공장소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개나 고양이를 풀어놓고 마음껏 뛰어놀게 하는 “개어머님”, “개아버님”을 보면 개념도 함께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는 것 같아 난감한 표정을 짓게 되죠.

주먹만한 강아지도 무지 무서워하는 저로서는 쉽게 손에 들기 어려운 책이었습니다.

책 표지에 버젓이 등장하고 있는 눈 큰 고양이의 시선이라니......

예전부터 고양이는 영매(靈媒)로 쓰였다는데......

그래도 일단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그래봤자 뭐 책 속의 고양이일 테니까요.


1988년 1월 18일, 가장 추웠던 겨울 날 !

아이오와주 스펜서 마을 공공 도서관 사서 비키는 도서 반납함에서 동상에 걸린 자그마한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합니다.

세상은 매서운 계절보다 더 세차게 몰아치는 경제 위기의 상황이었죠.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동상 걸린 네 발을 가진 버려진 오렌지색 새끼 고양이는 그렇게 해서 "듀이“라는 새 이름을 갖게 됩니다.

“Dewey Readmore Books"

도서관 고양이로는 아주 적절한 이름이 아닐까요?

우여곡절 끝에 도서관에 새로운 식구가 된 “듀이”는 오랜 경제 위기로 희망을 잃어가는 마을 사람들에게 새로운 활력과 사랑, 위안을 안겨 주며 마을 전체의 친구가 되어 갑니다.

그런 듀이에게도 그만의 관계맺기 방식은 있습니다.

“한 번에 단 한 사람의 마음만을 얻어간다“는.....

한 번에 단 한 사람에게만 최선을 다함으로써 그 사람의 마음의 문을 끝내 진심으로 열고야 마는 작은 고양이 듀이.

인맥 네트워크의 대가라고 소개해드리고 싶을 정돕니다.

그렇게 마음을 얻어낸 듀이는 급기야 도서관을 찾는 사람 각자에게 필요한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 줍니다.

동물을 싫어하는 아이의 마음도 이해하고, 말벗이 필요한 노인들의 무릎 위로 올라가 기꺼이 체온을 나누며, 장애우 아이에게 웃음을 되찾아 주기도 하죠.

그렇게 이 작은 고양이는 마을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어 갑니다.

단지 마음을 나누는 방식, 그것 하나로 말이죠.

사람을 완전히, 못 말린 정도로 믿어주는 고양이 듀이는 사람 사이의 연결 고리가 되어줌으로써 사람들 한명 한명을 특별한 존재로 만드는 비상한 재주꾼이기도 합니다.

실패하는 법이 없고 그리고 결코 실망하거나 포기하는 법이 없죠.

사람의 가치는 이웃들에게 얼마나 존경받느냐에 달려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듀이는 이미 고양이로써 사람의 가치 그 이상을 넘어서는 존재가 된 셈이네요.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만들어낸 큰 기적!

단지 반려 동물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갖는 서양인의 시선이 아니더라도 누런 피부에 까만 눈을 가진 이국(異國)의 제 눈에도 이 고양이의 특별함은 인지되고도 남습니다.

상처 없이 사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상처를 숨기는 사람은 어디서든 그 티가 나는 법입니다.

그러니까 이 고양이 듀이는,

상처를 보고 아는 체를 해 주는 고양이였다는 생각이 드네요.

보고도 뻔히 모른 체하고 지나쳐버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과감한 반기를 들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누설(漏泄)”

우리는 우연한 비밀을 알게 되면 크든 작든 폭로하고픈 누설의 욕망에 부딪칩니다.

그러나 아는 체를 해 달라며 온 몸으로 힘듬을 누설하는 사람을 보면 굳이 철저한 비밀보장을 맹세하며 못 본 척 고개를 돌려줍니다.

사실 그가 원한 건 그런 외면이 아님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 내가 옳았다 스스로 합리화하는 건지도 모르죠.

“듀이”라는 작은 고양이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 건,

도서관에 버려진, 그래서 그곳에서 사람들과 별 탈 없이 그럭저럭 잘 살아내고 있는 고양이라서가 아닙니다.

듀이의 역할이 결코 스펜서 도서관의 마스코트에 불과한 게 아니라는 걸 이해했다면 그렇게 숱한 "미투(mee too) 듀이“가 탄생되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됩니다.

엄밀히 말하면 그런 “미투 듀이”의 재생 역시 “동물 학대”의 또 다른 형태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죠.

확실히 도서관이라는 곳은,

고양이가 살 만한 적당한 곳은 아닙니다.

그런 도서관에서의 삶을 선택한 “듀이”

어쩌면 작은 고양이에게도 그 사실은 하나의 큰 도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 자신이 있을 곳을 찾아라. 그리고 가진 것에 만족하고 행복해하라.

 인생은 물질에 관한 것이 아니다. 사랑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사랑이 어디에서 찾아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


2006년 위종양으로 안락사하기 전까지 19년간 듀이는 자신이 선택한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습니다.

고양이에게 “신화”라는 단어를 쓰는 게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Dewey Readmore Books"는 이제 스펜서의 신화를 넘어 전 세계의 신화로 남겨졌습니다.

누군가 읽어주길 바라는 상처를 보게 된다면,

듀이처럼 재빠르게, 듀이처럼 적절하게, 그리고 듀이처럼 진심으로 그 상처를 알아봐주고 그리고 기꺼이 소통하는 사람이 되어 달라 이 책은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상처!

참 고약한 놈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 기회가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아픈 틈이기도 합니다.

“그 틈새로 들어가세요~~!‘

황금빛 커다란 눈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자, 그럼 이제 우리도 용기 한번 내 볼까요!!!


*듀이 공식 홈페이지 : www.deweyreadmorebooks.com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2. 1. 16:18

<생의 모든 순간을 사랑하라> - 윌리엄 하블리첼

생의 모든 순간을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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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페 디엠(Carpe Diem)

많이 들어본 말 아닌가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자주 했던 말이죠.

카르페 디엠은 “enjoy the moment"라는 뜻의 라틴어입니다.

생을 즐겨라....

어떻게 생각하면 참 무책임하고 방종에 가까운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겠지만 이 말의 참된 의미는 “현재를 잡아라!”라는 뜻입니다.

인생을 즐기라는 건 맞긴 한데 매 순간을 마치 내 생의 마지막 순간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즐기라는 의미입니다.

참 어려운 일이죠?


이 책을 쓴 의사 윌리엄 하블리첼은 세계적인 심장 권위자 중 한 명이라고 하네요.

이 사람이 임상에서 만났던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 놓은 책이 이 이쁜 책입니다.

혹시 이런 경험 있으세요?

아주 적절한 책을 아주 적절한 때에 만나게 되는 경험.

전 개인적으로 책에 대한 신비주의를 아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 가령 좀 힘들거나 맘에 상처가 있을 때면 어떤 방법으로든 꼭 위로가 되는 책을 만나게 됩니다.

제목이 주는 거부감에 그냥 다시 반납할까 생각했던 책입니다. 솔직히 고백하면 딱히 읽을 꺼리가 없어서 손에 쥐었던 책이예요.

다음은 또 다시 호된 뒤통수 강타... ^^

(사실 이런 종류의 강타라면 뭐 뒷통수가 밋밋한 평면이 된다고 해도 저는 즐겁습니다)


이 책에서 우린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도 인생의 마지막을 눈앞에 두고 있는 사람들을요.

혼자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이제 제발 누군가 그만 내려오라고 말해주길 기다리고 있을 때.

어쩌면 당신의 시간도 도둑맞고 있는 건지 모릅니다.

과거의 “분노”로 인해, 혹은 미래의 “계획”으로 인해 지금 내 눈 앞의 현재를 송두리째 그것도 완벽히 도둑맞고 있는 건지도요...

늘 그랬던 것 같아요.

줄 것이 너무나 없는 내 존재에 대한 보잘 것 없음에 화가 나면서도 한 번도 다르게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거,

어쩌면 정말 중요한 건, 주지 않아야 할 것들을 주지 않았어야 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랬다면 “카르페 디엠” 그렇게 말 할 수 있지 않았을지...


인생에서 가장 큰 적은 “분노”와 “죄책감”이라고 이 책은 말합니다.

지은이는 의사로서 숱한 사람들을 만나 치료의 행위를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고백합니다.

“의사로서 나는 치료와 치유를 동일시해 왔다. 하지만 치료와 치유 사이에는 깊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또 말합니다.

“치유는 의학과는 상관없이 이루어질 수 있다”라고...

작가는 당신 자신이 만난 사람들을 통해 “카르페 디엠”의 기적을 하나씩 경험합니다.

삶이란,

바로 지금 일어나는 것이라고요,

이 삶이 어제 속에 묻혀 상실되거나 내일을 기다리는 가운데 잘 못 쓰여진다면 우리는 너무 많은 걸 도둑맞게 된다고요.

만약 우리가 현재 속에 살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면 우리는 불멸을 얻게 될거라 말합니다.

누구나 늘 내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살죠.

네, 분명 내일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내일이 나에겐 약속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이긴 참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시한부의 인생을 선고 받고도 내일 떠날 여행꾸러미를 챙기며 행복해하는 사람도 있고, 이제 곧 더 이상 살아있지 않을 미래를 생각하며 죽음보다 깊은 절망 속에 화석처럼 생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모든 인생은 시한부 인생입니다.

그 시간을 누군가는 기적처럼 살고, 누군가는 상처 속에서 살게 되는 거죠.

혹시 당신도 “기적”을 꿈꾸고 있나요? (저는 분명히 늘, 그리고 간절히 기적만을 꿈꾸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몰랐습니다.

인생의 “기적”은 지금 바로 현재를 사는 사람에게만 일어난다는 걸.

그래서 “기적”을 체험하기 위해선 지금 그 자리에 있어야만 한다는 걸.

우리가 현재의 순간을 체험하기 시작하면 기적과 일상의 차이는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이 책은 말합니다.

종교적인 영생만이 영원을 말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지금"이라는 무한의 시간을 체험하고, 주어진 기회를 포착하고, 생의 모든 순간을 사랑하며 산다면 우리는 오히려 영원을 살아내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제부터 저는 매 순간을 “기적” 속에서 살아보려고 합니다.

카르페 디엠!

오늘 제가 여러분께 전해드리는 축복입니다...

여러분의 작은 순간도 모두 하나하나 기적입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32주된 태아의 초음파 모습입니다.
2009년 1월 8일 만난 천사...



심장안의 판막이 열립니다.
그 안으로 피가 흐르네요.
이 작은 움직임이 생명을 이룹니다.
아무리 작은 움직임일지라도
제 몸 안에서 이루어지는 건
모두다 기적이예요.



심장 안의 판막이 닫힙니다.
세상에 나와
받아들일 것과 거부할 것을
똑똑히 구별하라고
누군가 제게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심장안 작은 떨림도
전부 신비고 배움입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