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4. 4. 15. 07:29

의도하지 않은 실수(?)로 손에 잡은 책이다.

솔직히 고백컨데 이 책을 빌려서 집에 가져와서 몇 장을 읽을 때까지 전혀 몰랐었다.

그냥 도서관에서 이 책을 봤을 때 '어! 내가 안읽은 김연수 책이 있었네!"

의아함과 반가움에 얼른 대출을 했었는데...

책을 쓴 작가가 "김연수"가 아니라 "김언수"였다.

혼자 참 민망했고 동시에 김연수와 김언수 작가 모두에게 대책없이 미안했다.

"설계자들"이라는 제목만 보고는 어떤 내용일지 감이 안잡혔고

단지 책의 표지를 보면서 1999년 개봉했던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떠올랐다.

그런데... 이 유추는,

아마도 일종의 암시였던 모양이다.

그리고 또 하나 책을 다 읽고나서야 알게 된건데

책 표지에 있는 작은 글씨로 적인 문장을 내가 미처 읽지 않았다는거다.

그것만 자세히 봤어도 "설계자들"이 뭘 설계하는 사람들이었는지 뻔히 알 수 있었을텐데...

(책을 시작할 때 그래도 표지를 꽤 꼼꼼히 살피는 편인데 이 책은 참 유난히 띄엄띄엄 시작한 모양이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그게 의외의 모호함과 연결되면서

읽는 내내 쏠쏠한 재미를 줬다.

 

읽으면서 이 소설 영화를 만들면 재밌겠다 생각했다.

정유정의 <7년의 밤>과는 또 다른 느슨하면서도 팽팽한 긴장감이 살아있다.

(모순되는 단어의 조합이긴 한데 이 표현이 딱인걸 어쩌하리.)

살인청부업자가, 그것도 아주 단체적이고 기업적으로 등장하는 소설을 이렇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니...

불쾌감과 거부감보다는 오히려 미학적이란 느낌이 들더라.

살인을 설계하는 사람,

그 설계에 딱 맞게 사람을 죽이는 자객,

그렇게 죽은 사람을 조용히 소각하는 동물소각소.

이런 그로테스크한 인물들과 상황들에 미학을 느끼다니...

내가 어떻게 됐건가 싶기도하고...

그래, 살인을 해도 미학적으로 죽여준다면 죽는 입장에서도 좀 덜 비참하겠다.

(죽임을 당하는 마당에 별 시덥잖은 소리로 들리겠지만...)

"인생은 멀리서부터 복잡하게 꼬여온다. 그러므로그것은 한방에 풀리지 않는다"

맞는 말이다.

이 책에는 이런 의외의 클라세들이 느닷없는 습격처럼 튀어 나온다.

꽤 충격적이더라.

읽으면서 그랬다.

산다는 건 누군가의 설계로

나를 죽이기 위해 오는 또 다른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 같다고...

래생(來生).

하필이면 주인공 이름이 래생이라나!

그냥 참 어이없게 주인공 이름이 심하게 부럽더라.

그리고 개들의 도서관 관장 자리까지도.

뭐 꼭 관장이 아니어도 좋다.

사팔뜨기 사서 자리라도.

 

그럼 비밀을 지켜줄 용의,

충분히 있는데...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4. 1. 14. 09:16

김연수가 이랬었구나!

2013년 6월 20일에 출판된,

지금으로부터 무려 10년도 전에 쓴 김연수의 초기작을 읽으면서

젊은 작가의 치기와 순수가 귀여워 살며시 웃음이 났다.

"나 이렇게 파릇파릇하고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는 작가예요~~"

어리꽝을 부르는 막내동생 같은 느낌.

김연수는 이 낯선 형용사와 동사들을 찾기 위해 또 얼마나 분주했을까?

김연수에게 작가로서 이런 시기가 있었다는걸 읽어내는 건 아주 유쾌하고 발랄한 즐거움이었다.

그런 때가 있다.

작가의 작품을 우연히든, 의도적이든 거슬러 올라가 읽을 때만 찾을 수 있는 묘미.

이거 썩 재미있다.

 

 

 

홍보문구가 살짝 오글거리긴 하지만

(김연수의 의도는 분명히 아니었을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 역시나 "김연수"답다.

두어시간이면 후딱 읽을 수 있는 짧은 소설이지만

생각을 하게 만드는 담론같은 문장들을 수줍게 만날 수 있다.

 

......기억이 아름다울까, 사랑이 아름다울까? 물론 기억이다. 기억이 더 오래가기 때문에 더 아름답다. 사랑은 두 사람이 필요하지만, 기억은 혼자서도 상관없다. 사랑이 지나가고 나면 우리가 덧정을 쏟을 곳은 기억뿐이다...... 모든 게 끝나면 유통기한이 지난 식료품처럼 사랑했던 마음은 반품시켜야만 하지만, 사랑했던 기억만은 영수증처럼 우리에게 남는다. 한때 우리가 뭔가를 소유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증거물, 질투가 없는 사람은 사랑하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억이 없는 사람은 사랑했었다는 증거를 제시할 수가 없다 ......

 

쉽고 당연한 문장이지만,

아주 정확하고 정직한 문장이라 뜨끔했다.

정말 그렇다.

처음엔 둘이 같이 빠졌다가 모든게 끝나면 혼자 힘으로 빠져 나와야 하는 사랑.

김연수는 여기서 또 다시 아주 정확한 포인트를 잡아낸다.

...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사랑이라는 고나계에서 혼자서 빠져나올 때마다 뭔가를 빼놓고 나온다는 점이다...

어쩌면 우리는 잃어가기 위해서, 잊혀지지 위해서, 잊기 위해서

"사랑"에 빠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제목처럼 "사랑이라니... OOO!"다.

누군가에게 이 단어가 환희일 수도, 징글징글함일 수도, 무덤덤한 타인의 감각일수도 있겠다.

뭐가 됐든 그게 이 모든게 다 "잊기" 위한 방법들이 아닐까?

나이가 들수록 기억이 희미해지는 것도

어쩌면 적자생존의 원칙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가령 "알츠하이머"의 경우 그 원칙이 무참히 깨지면서

현재와 미래의 시간은 다 잊혀지고 과거만이 생생해지는 건 아닐까?

과거가 전부인 삶.

 

사랑과 기억 중에 뭐가 더 아름다울까?

어쩌면 둘 다 아름답지 않을수도...

함께 빠지는 것도,

혼자 빠져나와야 하는 것도,

다 힘겹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4. 1. 4. 07:54

2013년 마지막 날.

퇴근길에 지하철 역사내 서점에서 책을 한 권 샀다.

김연수의 새 소설집 <사월의 미, 칠월의 솔>

김연수란 작가는

샘을 낼 수조차 없게 만든다. 

이 사람 글은 읽을때마다 늘 그랬다.

정말 깊구나...

읽는 사람을 끝을 알 수 없는 깊이까지 끌고 들어간다.

때때로 나는 김연수의 짧은 문장 안에서도 길을 잃고 종일 헤매기도 한다.

11편의 단편을 하나하나 읽어가면서

나는 11명의 나를 만났다.

그 11명의 내가 나에게 말을 건다.

책을 읽는 건 외롭기때문이라는데

그렇다면 김연수는 2014년 냐의 새해를 조금 더 외롭게 만든 셈이다.

하지만 괜찮다.

김연수니까...,

김연수라면 나는 더 외로워진다고 해도 상관없다.

 

 벚꽃 새해 ‥‥‥창작과비평, 2013 여름
깊은 밤, 기린의 말 ‥‥‥문학의문학, 2010 가을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자음과모음, 2010 겨울
일기예보의 기법 ‥‥‥문학동네, 2010 겨울
주쌩뚜디피니를 듣던 터널의 밤 ‥‥‥세계의문학, 2012 봄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문학과사회, 2012 여름
동욱 ‥‥‥실천문학, 2013 봄
우는 시늉을 하네 ‥‥‥문예중앙 2013 봄
파주로 ‥‥‥21세기문학, 2013 여름
인구가 나다 ‥‥‥현대문학, 2011 2월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 ‥‥‥자음과모음, 2008 가을

 

때로는 이런 잔잔한 글이

거대한 풍랑처럼 나를 덮쳐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기꺼이 서퍼가 된다.

그리고 그 파도가 나를 데리고 가는 곳으로 아낌없이 몸을 맡긴다.

내가 도착하는 곳은

현실일 수도, 환상일 수도, 악몽일 수도, 때로는 벼랑 끝일 수도 있다.

공통점은 하나다.

그곳이 어디든 나는 꿋꿋히 버텨낸다.

그래서 고맙다.

아직 내가 책을 통해 이곳 아닌 다른 곳으로 훌쩍 가버릴 수도 있다는 게.

버텨낼 수 있다는 게.

 

그래서 그냥 믿고 싶다.

김연수는 나를 위해 글을 쓴다고!

Posted by Book끄-Book끄
그냥 끄적 끄적...2013. 5. 10. 08:17

난 일종의 활자증후군이다.

가방 속에 뭔가 읽을 게 없으면 조금 불안하고

읽고 있던 책이 몇 장 안 남았는데 읽을 책이 없어도 불안하다.

그래서 때론 무거운걸 알면서도 가방 속에 2권의 책이 함께 들어있을 때도 많다.

조금 있으면 다 읽을 책과

조금 있으면 읽기 시작할 책.

이런 활자증후군에게 자음과 모음 출판사의 사재기 기사는 좀 충격적이다.

전혀 몰랐던 일은 아니자만 이렇게 드러내놓고 보니 일종의 배신감같은 것도 느껴진다.

내가 이런데 당사자인 작가는 어떨까?

황석영의 50년 작가인생의 기념작 <여울물소리>

김연수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백영옥의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모임>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 세 권의 책을 모두 읽었다.

황석영과 김연수는 이 책에 대해 절판을 선언했고

황석영은 명예훼손으로 소송도 준비중이란다.

"<여울물 소리>는 칠순을 맞이해 작가 인생 50년을 기념하는 의미가 실린 주요 작품으로 이런 추문에 연루된 것 자체가 나의 문학 인생 전체를 모독하는 치욕이다"

자음과 모음은 확실의 작가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심하게 망쳐놨다.

"치욕"이라는 단어...

무시무시하고 아프다.

꼭 날카로은 창같다.

 

김연수의 책은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서 2번을 읽었었다.

김연수에게도 이 작품은 특별한 작품이었는데...

"개인적으로 무척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 어렵게 쓴 소설이라 소설 속 주인공들이 내 형제들처럼 가깝게 여겨져서 안타깝지만, 그래도 쓰는 동안의 고통과 기쁨은 온전히 누렸으니까...."

좀 유순한 표현이긴 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김연수가 이 책에 갖고 있는 애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챘었다.

 

따지고 보면 내 일도 아닌데,

나는 아프다.

우리나라 출판업계가 어렵다는 것도 알지만

베스트셀러 작가들을 통해 경제적인 부진을 만회하겠다는 욕심은 이기를 넘어 너무 사악하다.

베스트셀러만 그나마 장사가 되는 우리나라 독서문화도 끔찍하고...

냐도 비참하고 아픈데

그 책을 쓴 작가들의 심정은 참담하겠다.

자기가 쓴 책을 스스로 절판하겠노라 선언했을 때의 심정이라니!

감히 짐작할 수도 없겠지만

황량하고 참 막막하다.

 

사람이 참 이기적인게,

그 와중에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기사에 언급된 세 권의 책을 모두 읽어서...

 

난 아직 멀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2. 8. 15. 10:56

시인이자 소설가 김연수의 세 번째 산문집.

작가 김연수의 사진이 간혹 인터넷상에 기사와 함께 나올때마다 궁금했었다.

'이 사람 왜 이렇게 말랐지?' 하고...

이 책을 읽고 알았다.

김연수가 마라톤을 하는 러너(ruuner)라서 그랬다는 걸!

좀 뛰어본 사람들은 안다.

(그게 비록 런닝머쉰 위에서 기계적으로 뛰는 뜀박질이라도...)

뛴다는 것의 즐거움고, 뛴다는 것의 지루함과, 뛴다는 것의 지긋지긋함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뛸 수밖에 없는 중독 현상을.

 

김연수의 말은 아니지만 책 속에 "긍정적 중독"이라는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무릎을 쳤다.

긍정적 중독이란,

1. 자발적으로 매일 1시간 정도의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동시에 경쟁적이지 않은 일.

2.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으며 숙달되기 위해 정신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일.

3. 혼자서도 할 수 있고 여럿이 같이 할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일.

4. 행할 만한 신체적, 정신적 가치가 있다고 믿는 일.

5. 자기 자신만이 그 일의 성과를 판단할 수 있는 일.

6. 스스로 비판하지 않고 몰입할 수 있는 일.

굳이 내게 이걸 접목하자만 "읽기"를 앞세울만 하겠다.

여섯 가지 목록에 전부 들어맞으니 나도 "긍정적 중독" 현상에 빠져있는 중독자(重毒子) 되시겠다!

 

책은 쉽게 잘 읽힌다.

작가 김연수의 입김이 많이 빠지고 오로지 뛰는 자의 본능과 사색으로 가득하다.

뛰면서 사람은 참 많은 걸 생각할 수도 있구나 싶어

오래 뛰는 자의 상념이 문득 부러웠다.

 

 ...... 러너의 가장 친한 친구는 피로라는 것, 러너가 온몸으로 껴안아야만 하는 것은 바로 절망이다. 희망으로 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절망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사실을 러너는 이해해야만 한다. 대략 35킬로미터 지점에서 결승점 사이에서는 러너들의 마음속에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도 했고 또 거부하기도 했다. 받아들였을 때 나는 결승점에 들어갔고 거부했을 때 낙오했다 ......

 

그렇다면,

나는 참 많은 걸 받아들이지 못했나보다

제대로 결승점에 도착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때로는 결승점을 지나쳐 어이없이 계속 뛰었는지도 모른다.

룰(rule)을 이해하지 못하면 누구든 탈락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걸

나는 이해하면서도 충분히 체화(體化)하지 못했다.

러너 김연수의 산문집을 읽으면서

나는 나의 늦됨을 오래 바라봤다.

뛰는 사람이 보는 건 무얼까?

러너의 눈 속으로 반짝이는 햇살과 예민한 촉각으로만 느낄 수 있는 바람이 지나간다.

어쩌면 김연수는 보기위해서 뛰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늦됨을 그의 뜀박질 위에 얹혀 함께 뛴다.

이제 나도 좀 뛰어볼까...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4. 25. 06:17

정동화 앨빈과 조강현 토마스!

사랑스런 작품 <Stoy of My Life>의 더 사랑스러운 두 사람을 다시 만나다.

역시 몇 번을 봐도 이 작품은 언제나 참 좋다.

뭉클하고, 아프고, 아득하고, 애잔하고, 쓸쓸하고 그리고 따뜻하다.

생각했다.

이 이야기는 "우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에 대한 이야기구나 라고...

누구나 그렇지 않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이 항상 특별한 사람이길 바라는 마음.

그렇다면, 나 역시도 이 작품과 깊은 사랑에 빠져버렸다.

그래서 나는 또 어쩔 수 없이 앨빈과 토마스 사이를 불같이 질투한다.

어쩌자고 이렇게 뭉클할 수가 있을까?

이 아름답고, 아름답고, 아름답고, 아름다운 사랑아! 

"한 번 나타난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아"

토마스가 말했다.

그리고 이 말은 확실히 옳다.

이 이야기는 긴 세월 넘어 영원토록 내 안에 계속 남아있을테다!

결단코 그럴테다!

 

토마스와 앨빈은 서로 너무 깊게 사랑을 했구나.

지독한 사랑은 종말을 맞는다.

그 종말은 비극이었던걸까?

이 작품을 보면서 한번도 동성애 코드를 느낀 적이 없었는데

이날 공연을 보면서는 지독하게 절실히 느꼈다.

동성애면서 동성애 그 너머에 있는사랑.

두 사람의 모습은 표현되어질 수 없는 아름답고 완강한 사랑이다.

토마스의 꿈이 시작될 특별한 선물을 고르고, 레밍턴 선생님의 장례식장에 몰래 숨어들어가고

첫 단편 소설을 읽어주고, 눈싸움을 하고, 그리고 헤어지고... 

아이같던 웃던 토마스는 앨빈과의 첫번째 이별을 말하면서 울먹였다.

먹먹한 가슴은 결국,

앨빈의 "This is it"에서 고요한 통곡이 되어 몸 속을 울린다.

이제 어쩌면 좋을까!

 

 

....... 나는 그에게 물어. 왜 죽어야만 했느냐고.

물론 그 사람은 대답하지 않아. 대답할 사람은 그가 아니니까.

그는 죽었으니까 자기가 왜 죽었는지 알아낼 수 없는 거야.

그가 왜 죽었는지는 내가 알아내야만 해.

그게 바로 이해라는 것이지,

이해란 누군가를 대신해서 그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해서 다시 그들을 사랑하는 일이야 ......

                                  

이 작품을 볼 때 한창 김연수의 <원더보이>를 읽고 있었다.

책장을 넘기다 깜짝 놀랐다.

마치 앨빈과 토마스가 이 책 속으로 들어온 것 같다.

(하긴 이 두 사람도 내겐 확실히 "원더보이"다)

토마스는 앨빈을 이해했을까?

아마도 그랬으리라.

그러니 그들의 사랑은 아직까지 현재 진행형이다.

세 번의 장례식과 한 권의 책, 그리고 한 편의 영화

이 모든 이야기는 적어도 내겐 늘 특별한 이야기로 기억될 수밖에 없다. 

정동화 앨빈과 조강현 토마스와 함께 있는 동안

나는 충분히 위로받고 따뜻했다.

이들이 내겐 천사 클라랜스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1. 4. 18. 06:22
폴 오스터의 소설은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폴 오스터의 세계는 항상 몇 가지의 세계가 함께 공존한다.
그리고 그런 연결되어 있기도 전혀 그렇지 않기도 하다.
그의 소설 제목처럼 그건 보이는 세계이면서
동시에 보이지 않는 상상과 공상이 만들어낸 세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부적인 스토리텔러 폴 오스터를 거쳐가면
그 세계는 현실보다 더 생생해서 지금 살고 있는 세계를 공상화한다.
그을 읽고 있으면 내가 화자가 되고 서술자가 되어 주도적으로 이야기 속으로 파고든다.
이건 일종의 마력이고 중독이다.
때론 진심으로 궁금하다.
내가 지금 몹쓸 흑마술에 걸린건 아닌지가...


각 장마다 시점과 서술자가 달라지고
믿어지지 않는 새로운 사실의 등장과 폭로는
읽는 사람을 불연듯 섬득하게 만든다.
어쩌면 소설 속 인물 워커의 말처럼 좀 혐오스러운 이야기일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읽기를 그만둔다면,
보른의 말처럼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 보이는 세상에서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은?
혹은 지금 보이는 세상이 내게 보이지 않는 것은?
책은 철학적인 질문으로 나를 내몬다.
나는 이 모든 사람들이 쏟아내는 폭로같은 진실들을 믿을 수 있을까?
아니면 진짜 진실이라는 게 이 중에 있기는 한걸까?
오스터의 글은 점점 재미와 함께 무거운 중압감을 남긴다.
그의 앞으로의 글들이 그래서 나는 조금씩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그의 세계가 내겐 moon hill 이다.

이 소설에서 오스터가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현실 속에 어떤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에 그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이 벌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에(기억이든 환상이든 우연이든) 그 사건이 존재한다. 이렇게 볼 때 나라는 존재가 먼저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생각해 내는 이야기가 먼저 있고 그 이야기 속의 나는 얼마든지 <그>로 대체 가능하다.... 다시 말해 어떤 사람이 갖고 있는 - 꾸며낸 것이든 혹은 꾸며내지 않은 것이든 - 일관된 이야기가 그 사람의 자아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인간들은 모두 호모 파블라토르(Homo fabulator, 이야기를 말하는 사람)다 

작품 속에서 <보이지 않는 invisible>이라는 단어가 명시적으로 사용된 문장을 이러하다.
.... 나 자신을 1인칭으로 서술함으로써, 나는 나 자신을 질식시켰고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내가 찾고 있던 것을 찾는 게 불가능해졌다.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떨어트릴 필요가 있었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나 자신과 나의 주제(바로 나 자신) 사이에 약간의 공간을 두는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나>는 <그>가 되었다.
나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나를 <그>나 <너>라고 보게 된다는 것이다.



작가 김연수를 이야기할 때 항상 나오는 책이 바로 이 책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였다.
문단계에서 오래전부터 주목받고 있는 그의 작품을 그래도 몇 편 찾아 읽었고,
읽고 나서 혀를 내눌렀었는데
공교롭게도 이 책은 매번 놓였었다.
드디어... 드디어.. 읽어버렸다.
김연수.
그는 아무래도 신내림을 받은 사람인 것 같다.
그것도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그의 몸 속에 웅크리고 있는 게 분명하다.
참 볼품없는 억지스런 엉김이지만 내 또래의 나이다.
고작 그정도의 나이테밖에 갖지 못한  그가
조선 시대를 이야기하고, 신민지 시대를 이야기하고
만주 지역을 이야기하고, 혜초의 왕오천국국전을 이야기한다.
그것도 기록된 역사를 철저히 불신하면서 완벽하게 고립의 언어로 말이다.
그의 글들은 비극적이라는 표현이 희극적으로 들릴만큼 비의적이다.
이미 늙어버린 그의 언어는 세상 그 어떤 생물보다 생명력있게 펄덕인다.
그 펄덕임이 문득 무섭다.
마치 그게 유일한 생명력 같아서...
꼭 태고의 눈으로 뒤덮인 낭가파르파트 꼭대기에서 홀로 조난당한 느낌이다.
참. 비.극.적.이.다.
인간도, 인간이 만든 모든 역사도 신기루가 되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그만둘까?
그만둘 용기도, 허세도 없는 인간은
신기루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 신기루 속으로 자진해서 들어간다.
별 수 있나!
인간은 이해될 수 없는 존재고,
역사는 믿을 수 없는 존재인데...
달리 무슨 방법이 있을까!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12. 14. 05:48
김애란과 더불어 요즘 그야말로 완전히 꽃힌 작가다.
1970년경북 김천 출생,
문학계의 젊은 기대주.
그건 그의 나이뿐만 아니라 글이라는 특별한 재능을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이 사람,
천상 글쟁이구나... 세 권의 책을 읽으면서 내가 절실하게 생각했던 건 바로 이거다.
그의 몸 속 어딘가에는 수 많은 이야기가 비밀스럽게 기지개를 켜고 있다.
혹시 이 사람,
과거에 여러 번 살았던 모든 전생을 송두리째 다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닐까? 
확실히 작가 김연수는 수.상.하.다.



......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은 절대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습니다. 죽지 않을 사람처럼 행동하지요. 이 소설은 말하자면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이 품는 삶의 열망의 의미란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과 같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

여섯번째 장편소설 <밤은 노래한다>를 출판하면서 그가 말했다.
사람들은 알까?
노래하는 것과 밤 노래하는 것과
노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세계라는 걸...
풍금이 있던 자리가 풍금이 있는 자리와 완전히 다른 것처럼...
문득 궁금해진다.
그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썼을까?
민족독립과 계급해방을 꿈꾸던 조선의 혁명가들은
중국 땅에서 일제의 첩자로 매도되어 5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희생됐다.
"민생단 사건"
죽음도 결코 두렵지 않은 그들이었지만 그들이 원한 죽음은 이런 모습은 아니었을테다.
그 시간 속에 실제로 있었던 사람들은
어떻게 이 모든 걸 견뎠을까!
그리고 김연수는 이 글을 쓰면서 또 어떻게 견뎠을까?
1930년대 초 북간도의 조선인 사회를 뒤흔들었던 '민생단' 사건.
그 시대를 겪지 않은 사람이 이렇 글을 쓴다는 게 가능할까?
이 책은 그대로 역사며, 고통이다.
그 시간의 사람에게도 그리고 읽고 있는 지금 시간의 사람에게도...



새시대를 꿈꾸는 신여성 이정희,
남만주철도회사 측량기사 김해연.
어느 날 이정희의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가 김해연에 손에 쥐어진다.
그리고 모든 게 달라진다. 정말 모든 게...
"그 여자는 강철처럼 강한 여자야. 자살 따위를 할 여자가 아니란 말이다."
간도임시파견대의 중대장인 나카지마 타츠키 중위는 말한다.
총사령관에서 나온 사람은 조사할 것이 있다며 김해연을 연행한다.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
원하든 원치 않든 김해연은 이제 점점 다른 세계 속으로 걸어간다.
허망하게, 치열하게, 그리고 필연적으로....

이 책을 내가 완전히 이해는 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경외심 비슷한 두려움을 느꼈다.
전부 세 가지 면에서...
그 시대에게서, 김연수라는 작가에게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읽고 있는 나에게서...
이상하게도,
나는 상당히 은밀해지고 말았다.
한동안은 숨고 싶어질지도...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12. 1. 05:55
몇 달 전에 읽은 기사가 있다.
"지난 10년, 문학은 이들 때문에 행복했노라"
이런 제목이었던 것 같다.
그때 평론가들이 뽑은 2000년대 최고의 작품과 작가의 리스트도 있었다.
거기서 중, 단편 부분과 작가 부분에서 상위에 있던 사람이 김훈, 김연수, 김애란, 박민규 였다.
그 기사를 보면서 김애란의 책을 읽어봐야겠다 생각했었다.
순서가 좀 뒤바뀌긴 했지만 그 당시까지 내가 읽은 책은 그녀의 두 번째 소설집 <침이 고인다>가 전부였다.
그때 놀랐었다.
작가의 눈이라는 것에,
그리고 그걸 다르게 표현한다는 것에.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를 운운하기에는 더군다가 그녀의 나이가 너무 젊다.
신경숙, 은희경, 정경린에 익숙한 사람에게 분명 김애란은 상당히 특별하고 독특한 "다름"으로 다가오리라.
그녀의 단편들을 읽고 있으면,
정말이지 침이 꼴깍 꼴깍 넘어갈 수밖에 없다.
이 평범하고 조금은 불쾌하기까지 한 "침"이 주는 "특별함"이라니...
침도 약이라고 엄마는 가끔 말씀하셨는데
적어도 내겐 김애란의 "침"은 확실히 약발 잘 받는 약이다.



<달려라 아비>는 개구진 표정의 그녀 사진이 실린 첫번째 소설집이다.
사진으로 만난 김애란은 말괄량이 삐삐를 연상시킨다.
두 눈에 가득한 똘망똘망한 장난기,
 그 천진함이 너무 맑아 나조차도 킥킥 웃게 만들만큼...
그녀의 표정 속엔 어쩐지 개그적인 속성이 있다.
(오해마시라, 지금 나는 그녀의 얼굴을 말하는 게 아니라 표정을 말하는 거다,)
가끔은 책을 읽으면서 허풍이나 객기처럼
"이 정도쯤은 나도 쓰겠다!" 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그러나 김애란의 소설집 두 권을 읽으면서는 그런 생각을 못했다.
"나라면 이렇게 못 썼을거야..."
자괴감이 들긴 했지만 그게 비굴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내게 충격적인 작가다.
1980년 인천 출생.
2003년 단편 "노크하지 않는 집"으로 제 1회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했고
(<달려야 아비> 제일 마지막에 실린 이 단편은 읽으면서 섬득하고 처연했다)
2005년 25살의 나이로 최연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했던 김애란.
확실히 그녀는 현대 한국 문학의 젊은 화두다.



달려라, 아비
나는 편의점에 간다
스카이 콩콩
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
영원한 화자
사랑의 인사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
종이 물고기
노크하지 않는 집


실려있는 9편의 이야기 모두가 다 황홀할만큼 특별해서
이 중에 한 편만 선택하라고 누가 강요한다면
나는 기꺼이 선택을 포기하고 그렇게 말한 사람을 지독히 원망하리라.
김애란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도대체 가능한가?"
어떤 평론가는 그녀를 두고 이런 표현을 썼다.
나 역시나 그녀의 소설때문에
불면증이, 편의점이, 포스트잇이, 스카이 콩콩이 특별해져 버렸다.
심지어 분홍색 야광 팬티를 입고 선글라스를 쓰고 쉼없이 달리고 있는 아비도
하반신을 이불에 묻고 내내 TV만 들여다보는 아비마저도
기꺼이 입양하고 싶어질 지경이다.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느냐 말이다!!)
일 났다!
나는 그만 또 사랑에 뼈져버렸다.
내게 일방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그녀의 글들이
너무 너무 미워 죽겠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10. 8. 05:45
처음엔 그를 왜 문단에서 주목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1970년 출생한 아주 젊디 젊은 작가 김연수
그 나이에 과거가 있으면 얼마나 있고 사건이 있으면 얼마나 있다고
젊은 작가 한 명의 작품이 나올때마다 문단은 바빠지나 했었다.
1993년 <작가세계>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
1994년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제3회 작가세계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굿빠이, 이상>으로 2001년 동서문학상,
소설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로 2003년 동인문학상,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로 2005년 대산문학상,
2007년 단편소설 <달로 간 코미디언>으로 황순원문학상을 수상...
그의 이력은 문학상 수상작만 나열하는 것으로도 숨이 차다.
순서가 좀 뒤바뀌긴긴 했지만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읽었을 때도 의구심이 풀리지 않았었다.
그리고 읽은 그의 두 번째 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이 책을 읽고 생각을 바꿨다.
그의 책을 이제 다 찾아보리라!



가끔 생각한다.
그가 성균관대 출신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1991년의 그 시점에 대학생이 아니었다면...
(그 때 성균관대에서 권기정의 사망 사건이 있었다.
 아주 생생하게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성균관대 운동권 학생이었던 언니 때문이다.
 권기정의 시신을 지키는 무리 속에 우리 언니도 있었기에...)
어쩌면 김연수에게도 그 시절에 대한 부채 혹은 책임감 같은 것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마치 광주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소명처럼...
기억하고 그리고 기록해서 전하기 위해서.
그 때 서울 시내는 항상 매캐한 최류탄 가스로 가득했었고
도심은 백골단과 대학생들의 쫒고 쫒김으로 분주했었다.
명지대에서는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아 학생이 사망했었고
(공교롭게도 명지대는 우리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어 그 사건도 아직까지 선명하다. 분향소를 찾아갔던 기억도...)
그리고 전대협의 북한행이 그 즈음이었고.
세계적으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때이기도 했다.
곰곰히 되집으니 내가 살아온 대한민국의 현대사도 전쟁 못지 않았구나 싶다.
그러니까 이 책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는 이 모든 현대사들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처음엔 사랑이야긴가 했었다.
그런데 아니다.
사람 이야기, 그것이었다.
예전의 어느 인터뷰에서 작가 김연수는 말했다.
"써보니까 소설이라는 게 사람을 이해하는 문제더라고요. 대상은 실제로 살아 있는 사람일 수도 있고 문득 떠올린 사람일 수도 있죠"
사람에 대한 이야기...
사람 이야기 속의 실제 사건과 시간들이 나는 두렵다.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극적으로 생환한 뒤,
죽은 동료의 이름으로 개명하고 제3세계 망명객들의 후원자가 된 피아니스트 헬무트 베르크,
떠돌이 일용직 노동자에서 "광주의 랭보"로,
다시 혁명적 문화운동가 강시우로 "이 세상에 두 번 다시 태어"난 남자 이길용,
모범적인 고등학생에서 느닷없는 폭행을 경험하고 결국 자살에 이르는 정민의 삼촌,
서해 갯벌을 막아 논을 만들겠다는 만석지기의 꿈을 꾸다 간첩으로 몰려 실형까지 살게 된 주인공의 할아버지.
책 속엔 이렇게 유일하면서 둘이 되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읽으면서 나는 턱턱 숨이 막혔다.
한때 우리나라가 그랬었지.
(그렇다면 지금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군가에 의해 내 인생이 날조되고 뒤바꿔지기도.
그래서 몽롱한 바보로 버려지듯 던져져버린
그런 삶들이 있었다는 거...
여기도, 저기도 갈 수 없었던 사람들.
나 자신일 수도, 나 자신이 아닐 수도 없었던 시간들.
소설로 읽어내는 그 사람들과 그 시간들은 아무리 해도 덤덤해지지 않는다.

문학동네에 이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하면서 김연수는 말했다.
"때로는 한 사람이 세상 모두를 대신하는 경우도 있고, 이 세상 모든 것을 바라보면서 한 사람만을 생각할 때도 있다. 모든 사람은 단 한 사람이라고 말한 사람이 보르헤스라고 했던가. 확실하진 않지만 나는 보르헤스가 그런 말을 했다면 그게 옳은 말이라고 전해주고 싶다...... 모두에게는 각자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는 역시 운명과 사랑과 배신과 복수와 좌절과 슬픔과 기쁨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멀리, 아주 멀리 가면 풍경은 달라지지만, 역시 이야기가 말하는 바는 비슷하다.
작가로서 진심으로 바라는 일은 이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이 정말 많은 얘기를 들려주기를. 그리고 그 이야기를 읽은 사람들이 다시 내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해주기를....."
그가 쓴 또 다른 글에서 사람들은 또 어떤 이야기를 해줄까?
그가 생각하는 재능이라는 건 "집중력"의 문제란다.
얼마만큼 시간을 그 안에 쏟아 부울 수 있는지의 정도 차이가 재능이라고...
이제 나는 또 한 사람의 재능을 탐하기로 했다.
김.연.수.
그를 읽어야겠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