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0. 8. 25. 05:46


제 목 : 경남 창녕군 길곡면
일 시 : 2010.0730. ~ 2010.09.19
출 연 : 이주원(종철 역), 김선영(선미 역)
장 소 :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극 본 : 프란츠 크시버 크뢰츠
번안, 연출 : 류주연

<연극열전3rd>의 여덟 번째 작품이다.
몇 달 전에 유주연 연출의 <기묘여행>을 인상깊게 보기도 해서 연극열전에서 <경남 창녕군 길곡면>이 공연된다고 했을 때 놓치지 말고 찾아봐야지 생각했었다.
게다가 서울 문화의 밤 행사에 이 연극이 포함되어 있어서
8월 21일 총 2회 공연은 만원이라는 정말 파격적인(?) 가격으로 관람할 수 있었다.
솔직히 이게 왠 횡재냐 싶었다.

 
이 연극은 독일작품이다.
프란츠 크시버 크뢰츠라는 사람의 극본으로 도시 하층민의 삶을 있는 그대로 그려낸 작품이다.
독일 원제는 "오버외스터라이히" 라는데 독일에 실제 있는 작은 도시 이름이란다.
우리나라에선 연출 류주연이 직접 번안을 하면서 제목을 <경남 창녕군 길곡면>이라고 정했다.
(실제로 경남에 창녕군 길곡면이라는 곳이 있긴 하다)
2007년 초연됐고 거의 매년 재공연된 작품이다.
꼭 제목처럼 경남 창녕군 길곡면이 아니라도 대한민국 어디든 다 상관이 없다.
아웅다웅 지지고 볶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괜찮다.
어차피 인간이 사는 곳은 어디든 다 마찬가지니까.


                          김선영(선미)                                         이주원(종철)       

초연때부터 함께 부부로 출연한 김선영, 이주원은
실제 부부가 아느냐는 소리를 들을 만큼 완벽한 호흡을 자랑한다.
(그런데 부부라고 해도 정말 믿겠다)
원작자는 각 나라에서 이 연극을 공연할 때는 꼭 사투리로 공연해달라는 조건을 붙였단다.
도시 하층민의 삶을 그린 이야기에 표준말을 또박또박 쓰는 것도 좀 우습긴 하겠지만
사투리가 아니라면 연극의 재미가 아무래도 줄어들었을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약간은 수다스럽고 구시렁구시렁 거리는 경상도 사투리를 선택했는데
김선영, 이주원 두 배우 모두 고향이 경상도라 사투리의 묘미가 한층 자연스럽고 재미있다.
실제로 이 연극에서 구시렁거리는 부분이 많이 나오는데
100% 전부 두 배우의 애드립이란다.
두 사람도 서로 무슨 이야기를 할지 전혀 모른다고...
그리고 선미 역의 김선영은 실제로 임신중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기에 대한 사랑과 보호본능이 극 속에 그대로 드러난다.
역시 엄마는 늘 언제나 강하다.
(그런데 왜 아빠들은 겁쟁이가 많은건지...) 

 


결혼 3년차!
여유돈이라고는 통장에 들어있는 120 만원이 전부이고
두 사람의 한 달 수입은 대략 300만원 정도. (아내는 그나마  비정규직이다)
그래도 알콩달콩 나름대로 만족스럽게 살아가던 두 부부에게 변화가 닥친다.
계획하지 않았던 임신.
아내는 생명을 지키고 싶어하지만
남편은 아내에게 낙태를 하자며 설득 아닌 설득을 한다.
소위 돈 없으면 애 낳기도 힘든 세상에 남편은 덜컥 겁이 나버린거다.
남편은 말한다.
"아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아빠냐가 중요하다" 고...
왜 끊임없이 나쁜 것만 찾으려고 하느냐는 아내의 질문에
남편은 "그게 현실이다!" 며 무시할 수 없는 한 마디를 내뱉는다.
남편의 말에 화가 나기도 하지만 보는 입장에서도 솔직히 할 말은 없다.
이 말이 사실이긴 하니까...
김용택 시인의 말이 떠오른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바로 자녀에 관한 문제라고...
맞는 말이다.
연극 속에서 남편 역시나 그 현실이 덜컥덜컥 겁이 날 수밖에 없었을거다.



급기야 아내와 남편은 한 달 지출을 조목조목 종이에 적어가며 계산기를 두드린다.
집세, 자동차, 대출금, 보험금에 심지어 부모님 용돈, 화장품, 미장원비, 술, 담배, 우유 값까지 끄집어내 계산한다.
(이 부분이 이 연극에서 가장 롱테크로 진행된다. 유치하지만 그야말로 사생결단으로 점점 치열해지는 장면 ^^)
월 300만원 수입에 지출은 2,955,000 원.
아내가 직장을 그만 두는 전제하에 한 달 수입을 200만원으로 잡고
(그러기 위해선 남편은 야간 운전까지 해야한다)
이제는 줄일 수 있는 목록들을 하나하나 삭제하기 시작한다.
차를 팔고, 술 담배를 끊고, 물만 마시고,
화장품은 립스틱만 바르고 머리를 기르고 기타 등등 기타 등등...
거의 모든 것을 안 하기로 작정했는데도 나온 금액은 1,934,000 원.
눈 앞에 남은 건 잔액 66,000 원의 현실이다.
(보는 나까지도 어쩔 수 없이 씁쓸해진다)


결론은,
어쨌든 아기를 낳기로 하니까 등장조차 하지 않는 아기 입장에서는 더없는 헤피엔딩이다.
하지만 엔딩에서 남편이 연주하는 루이 암스트롱의 어설픈 섹소폰 연주처럼 과연 부부의 현실도 누부신 "What a wonderful world" 가 될 수 있을지는 솔직히 의심스럽다.

유쾌하고 즐겁게 보고 나오긴 했지만
정말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현실에 등골이 오싹할 지경이다.
아이 없이 두 사람만 행복하고 즐겁게 살겠다는 딩크족이 아니라면 결혼한 부부는 자녀를 낳아 함께 키우면서 살아가게 된다.
그걸 우리는 일반적으로 "평범"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점점 우리가 알고 있는 이 평범이라는 기준이 점점 평범 이하로 자리이동이 되고 있으니 부모 입장이라면 퍽퍽한 세상살이가 될 수밖에 없다.
아이의 세상을 wonderful world로 만들어주기 위해 부모는 소위 삑사리 가득한 인생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면?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냐?"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문제는 장 담그는 게 무서워서가 아니라
내 항아리에서 자생으로 생기는 구더기는 그런데로  봐줄 수 있어서 기껏 장을 담궜는데
멀쩡한 내 장에다가 누가 자꾸 구더기를 넣으려고 하는 사회에 있다.
그래서 연극의 말미에 나온 "절망에서 살인! 이라는 신문기사가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재미있었고, 배우들의 연기도 너무 좋았고.
연출과 무대도 너무 좋아서 전체적으로도 상당히 좋았던 작품임에는 분명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고 나와서는 너무 많이 참담해지는 연극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 연극을 보면서 단지 코메디라고만 여길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그 참담함이 배가 된다.
에이! 그만 생각하자!
열심히 연습하면 삑사리 없는 "What a wonderful world"를 연주하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그러니 살자... 살자... 살자...
치열하게 살든, 연습하듯 살든, wonderful 하게 살든. 삑사리가 작렬하게 살든,
어쨌든 살기나 하자!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6. 9. 05:40



오랫만에 합정동 양화진 문화원 목요강좌를 다녀왔다.
개인적으로 탐이 나는 강연이었는데 들을 수 있어서 다행스러웠다.
<사람을 귀하게 가꾸는 글쓰기>
김용택 시인이 정한 제목을 가만히 발음해본다.
왠지 마음 속에 따뜻한 훈김이 올라오는 것 같다.
섬진강 시인으로 유명한 김용택님은 청바지에 회색 자켓을 입고 강연장에 올라섰다.
자그마한 키에 건강하게 그을린 얼굴,
꼭 동글동글하고 단단한 차돌을 마주한 느낌이다.
그러면서도 한 동네에서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동네 어른을 뵙는 것 같은 친근함까지...
개구진 표정과 재미있는 입담 속에는 그가 38년 동안 가르쳤다는 초등학생의 순수가 그대로 묻어났다.
진심으로 부러웠고 그리고 오랫만에 넉넉했다.
아이들의 시를 소개하는 모습에서는 꼭 개울가의 반짝이는 물빛 같은 눈빛이었다.
나도 모르게 꺄르르 꺄르르 햇살처럼 따라 웃게 된다.



시인은 중고등학교 때까지 교과서 이외에는 어떤 책도 읽어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대신 영화는 참 많이 봤었다고...
이번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은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를 이야기하면서
주인공 윤정희에게 시를 가르치는 문화센터 시인 강사  "김용탁"이 바로 자신이었노라며  해맑게 자랑(?) 하신다.
귀여운 홍보성 멘트와 함께...
이제는 퇴임을 했지만 자신이 가르친 학생이 어른이 되어 낳은 아이들까지 가르친 38년의 교편 이야기는
그 어떤 역사보다 생생하고 다정하다.
(시인 김용택은 덕치 초등학교에 붙박이 선생이었다. 
 규정 때문에 1~2년 타학교로 전근을 가기도 했지만 항상 다시 덕치 초등학교로 돌아왔단다.)
"하는 짓이 지 애비랑 똑같다"는 진리를 자신은 정말 많이 목격했다며 웃으신다.
어떤 때는 아이를 향해 무심코 그 아이 부모의 이름을 부를 때도 있었단다.
그럴 때면 자신도 깜짝깜짝 놀란다고...



그는 덕치 초등학교 2학년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쳤단다.
시인이 말한 초등학교 2학년의 특징에 모두들 무릎을 치며 공감했다.
정직하고 진실함이 통하는 시기
  -->그래서 무엇을 하든 진지하고 열심이란다. 
       운동회에 달리기만 봐도 고학년은 1,2,3등만 열심히 달리는데 2학년은 심지어 꼴등까지도 열심히 달린다면서...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일을 고자질하는 눈과 입모양이 또 얼마나 진지한지 모른다고...
세상을 늘 새롭게 보는 눈을 가진 시기
   --> 그래서 그 아이들의 눈엔 세상이 늘 재미있고 감동적이고 신비롭게 보인단다.
손에 아무것도 없어도 놀 땅만 있어도 행복한 시기
   --> 창밖으로 운동장을 바라보면 어쩜 저렇게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잘 노나 싶단다
시인은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아이들에게 한 가지씩 숙제를 내준다고 한다.
일주일동안 자신의 나무를 한 그루씩 정해서 자세히 보고 글을 써오라고.
아이들이 한 그루의 나무를 "끝까지 자세히 보게" 되면 드디어 새로운 세계를 창조되기 시작한단다.
나무를 통해 아이들은 신비함을 깨닫게 된다고...
그러면서 시인은 신비함과 신기함의 차이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신비함이 사라지면 신기함만 남는다"고...
그런데 이 말의 속뜻은 꽤나 정곡을 찌른다.
자신의 배우자에게 신비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느냐고 청중을 향해 질문한다.
아마 없을 거라고...
"저 인간 왜 저러나~~~" 하는 신기함만 남지 않았느냐고...



세상에 한 사람이 한 사람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 만큼 아름답고 신비한 게 없다는 말이
왠지 가슴끝에 뜨끔하고 뭉끌하게 걸린다.
지금껏 나는 아름답고 신비한 사람을 신기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던 것 아닌지...
기념일이나 특별한 날에 곁에 있는 사람에게 잘하려고 노력하지 말고
서로의 일상을 존중하라는 당부도 전했다.
우리나라 부부들의 기념일 마지막 장식은 거의가 "싸움"이란다.
그게 다 안 하던 짓을 하니까 감정의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아서라고...
"이 인간이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저러나...." 
그 마음이 결국 싸움으로 이어지게 된다고. (다들 공감 백배의 표정들이었다)
결국 "생각이 사람을 바꾼다"면서
대통령의 생각이 나라를 바꾸고, 교장의 생각이 학교를 바꾸고
목사님의 생각이 교회를 바꾸고, 가장의 생각이 가정을 바꾼단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세히 봐야" 한다는 말도 전한다.
자세히 봐야 이해가 되고, 이해가 돼야 내 것이 되고, 내 것이 돼야 인격이 된단다.
그리고 인격이 만들어지면 드디어 관계가 맺어진다고 말한다.
관계는 당연히 갈등을 만들 수도 있는데 이 갈등을 아름다운 조화로 만들어 낼 줄 알아야 한단다.
관계의 악화가 오면 한 쪽으로 쏠리는 쏠림현상이 발생하게 된다면서
그 가장 대표적인 게 본인은 "교육의 양극화"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인은 자신은 "항상 지금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강연을 마무리했다.
결국 사람을 귀하게 가꾸는 글쓰기란,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라
나를 가장 귀하고 아름답게 가꾸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자신은
평생공부, 예술적 재능을 키우는 일, 자연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늘 놓치 않겠노라고...
이미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였지만 
이 말을 마친 시인의 모습이
내겐 누구보다 젊고 건강한 청년으로 보였다.



김용택 시인이 들려준 초등학교 2학년 학생들의 시도 옮겨본다.
너무 귀엽고 그리고 다들 정말이지 명작이다. ^^

<여름>
이제 눈이 안 온다
여름이니까

<쥐>
쥐는 나쁜 놈이다.
먹을 것을 살짝살짝 가져가니까.
그러다 쥐약먹고
 죽는다.

<뭘 써요? 뭘 쓰라구요?>
시써라
뭘써요?
시 쓰라고.
뭘 써요?
시 써서 내라고!
내.
제목을 뭘 써요?
니 맘대로 해야지.
뭘 쓰라고요?
니 맘대로 쓰라고.
뭘 쓰라고요?
1번만 더하면 죽는다.
뭘 쓰라고요?
이 녀석아!
장난하냐!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