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은 날의 숲'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5.06 <남한산성> - 김훈
  2. 2011.05.04 <내 젊은 날의 숲> - 김훈
읽고 끄적 끄적...2011. 5. 6. 06:33
<내 젊은 날의 숲>을 읽고 오래 전에 읽었었던 <남한산성>을 다시 손에 잡다.
시대도, 이야기도 전혀 다른데 왜 나는 두 이야기에서 동질감을 느꼈을까?
어쩐지 두 이야기의 태(胎)가 같은 것 같다.
"임금이 남한산성에 있다..."
꼭꼭 씹어 삼키듯 여러번 반복되는 이 문장은
이야기 속의 매서운 칼바람과 된서리보다 더 날카롭고 눈물겹다.
홀로 우는 곡(哭)같은 문장이구나.
<남한산성>은...
말의 마디마디는 서럽고 참담하고 절절하고 아득하다.


김훈도 그러지 않았을까?
이 글을 쓰면서 내내 어디 한 곳이 부러진 듯 아프고
몸의 마디마디 끝으로 더 날카롭고 예리한 칼끝을 받아내는 그런 심정이지 않았을까?
역사를 되집는 건 용기도 오만도 아닌 무거운 책임감과 참회의 심정이었으리라.
현재를 살고 있다고 과거에 책임이 없을까?
간곡하고 단단한 단문들 하나하나를
나는 보이지 않는 산을 연거푸 넘는 심정으로 읽고 또 읽었다.
매 골마다 번번히 서러웠던 건 내가 우는 곡(哭) 때문이었다.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자는 것입니다."
거기다 예조판서 김상헌은 다시 내 발목을 잡는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힘으로 삶을 열어나가야 합니다"
이조판서 최명길이 나머지 한 발목마저 잡고 놓지 않는다.
"말이 준엄하고 가파르구나..."
인조의 말에 그만 덜컥 주저앉고 일어서지 못한다.
남한산성에 있었던 그들 뿐만이 아니었구나.
김훈은 남한산성안으로 나를 옮겨놓고 힘들게 한다.
어쩌자고 나를 이 속으로 밀어넣었나....


갇힌 성 안에서는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이 한 덩어리로 엉커 있었고, 치욕과 자존은 다르지 않았다.
신생의 길은 죽음 속으로 뻗어 있었다. 임금은 서문으로 나와서 삼전도에서 투항했다. 길은 땅 위로 뻗어 있으므로 나는 삼전도로 가는 임금의 발걸음을 연민하지 않는다.
밖으로 싸우기보다 안에서 싸우기가 더욱 모질어서 글 읽는 자들은 갇힌 성 안에서 싸우고 또 싸웠고, 말들이 창궐해서 주린 성에 넘쳤다.
나는 아무 편도 아니다.
나는 다만 고통 받는 자들의 편이다


인조는 결국 성을 나왔다.
그리고 칸 앞에 무릎을 꿇고 치욕의 삼배를 올렸다.
칸은 청으로 돌아가는 길에 조선의 세자와 빈궁들을 볼모로 끌고갔다.
성을 나왔지만 항복했지만
인조는 또 다시 더 큰 성 안에 갇히고 말았다.
스스로 강자의 적이 되는 처연하고 강개한 자리에서
돌연 아무런 적대행위도 하지 않는 적막은...
치욕을 견디는 것보다 더 무겁고 치명적이다.
한 번도 역사 속의 인조를 가엾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남한산성>의 인조는
서럽고 서러워서 자주 목에 매인다.
할 수만 있다면 칸 앞에 무릎꿇은 그를 일으켜세워
그 자리를 모면케 하고 싶다.

"당면한 일을 당면할 뿐이다..."

역사는...
참 잔인하게도 준엄하구나...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1. 5. 4. 06:30
김 훈의 책을 읽으면
고인이 된 박완서 작가가 생각난다
(얼마전에 어머님의 뜻에 따라 전재산인 13억을 서울대에 기부한다는 가족들의 발표가 있었다.
 돌아가셔도 작가 박완서는 따뜻한 큰엄마의 모성은 지극하고 감동적이다.
 뒤늦게 작가가 안 되었다면 당신의 삶도 지키고 살아내기 힘들었을텐데...
 돌아가신 고인도, 가족들도 모두 진정한 '오블리스 노블리제'다.)
작가 박완서가 그랬다.
김훈의 버르장머리없는 짧막한 글을 보면서 내내 추웠다고, 
그리고 실제로 그 추위가 자신의 6,25 동난 때를 떠올리게 해서 실제로 몸에 감기몸살이 왔었노라고...
몸이 아프고 으슬으슬했을 때 나도 김훈의 책을 연겨푸 두 권 손에 잡았다. 
내 몸의 추위를 김훈이 글이 주는 더 큰 추위로 버텨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3주간 약봉지를 끌어안고 있다
겨우 김훈을 말한다.
그런데 정말 말할 수는 있는 건가?

<내 젊은 날의 숲>
오직 눈(目)뿐인 세상.
글이 아니라 한 땀 한 땀 정성으로 그린 그림을 보는 느낌이다.
세밀화 그 이상의 묘사에 나는 감히 감동을 운운하기도 벅차다.
아마도 나는 이 책을 한 열 번쯤은 읽게 될 것 같다.
그리고 그 매 번을 나는 당황하면서 아득할 것이다.
김 훈이란 작가를 절필시키고 싶을만큼 이 글은 내겐 언제까지라도 치명적일 것이다.
아주 명확하게 확실하게...
줄거리뿐만 아니라 묘사 하나하나를 따라가는 것도 아득하다.
이걸 어떻해야 하나...
작은 여백과 빈숨까지 다 보는 시선.
어떻게 그걸 종이위에 그대로 다 표현할 수가 있는가!
김훈은 괴물이다.
그리고 그는 펜을 든 화가다.


o 눈 덮인 숲속의 추위는 바라보기에 따뜻했다.
o 추위 속에서 나무들은 우뚝하고 강건했다.
o 얼음이 녹은 늪의 수면은 팽팽했고 거기에 물벌레 한 마리가 기어다녀도 물은 주름잡혔다.
o 숲이 수런거리는 소리와 나무의 입김으로 가득찬 시간.
o 눈 속에서 꽃이 필 때 열이 나는지 꽃주변의 눈이 녹아 있었다.
o 풀을 들여다보면서 내 몸속으로 흘러들어오는 식물들의 시간을 나는 느꼈다.
o 색깔들이 물안개로 피어나는 시간이었다.
o 완전히 사랑하고 이해해야만 볼 수 있는 빈틈.
o 본다고 해서 보이는 것이 아니고 본다와 보인다 사이가 그렇게 머니까 본다와 그린다 사이는 또 얼마나 
  아득할 것인가
o 백작약 꽃잎이 필때부터 꽃의안쪽에서부터 이미 추락을 예비하는 피로의 낌새가 보였다.
o 작약꽃은 피면서 동시에 졌고 지면서 또 피었다.
o 5월의 숲은 강성했다.
o 편지의 글씨체는 어려보였다.
0 꽃잎에 이슬을 매단 채 아침햇살을 받으면 패랭이꽃 이파리 끝까지 긴장하면서 쟁쟁쟁 소리가 날듯한 기
  운을 뿜어내는데 흐린 날 아침에 꽃은긴장하기 않았다.
o 여름의 숲은 크고 깊게 숨쉬었다. 나무들의 들숨은 땅 속의 먼 뿌리끝까지 닿았고 날숨은 온 산맥에서
  출렁거렸다.
o 꽃은 쳐다보는 사람을 향해서 피어있다.
o 꿈이 힘들어 보이네요
o 저물 때 숲은 낯설고 먼 숲의 어둠은 해독되지 않는 시간으로 두렵다.
o 멀리 보는 시선이 헐거웠다.
o 가엾고 투명한 다임잇소리
o 직접 보지 않았기 때문에 말은더욱 치열히지는 모양이다.
o 깊어서 끌어낼 수 없는 울음이 밴 흔들림이었다.
o 가을의 서어나무는 날마다 헐거워져서 안쪽이 들여다 보였다.
o 나무의 죽음은 느리게 진행되어서 살아가는 일처럼 나무는 죽는다.
   나무는 한 그루 안에서 늙음과 젊음이 순환하는 것이다. 나무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과는 다르다.
o 눈이 쏟아지는 날에 흐려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귀를 기울이면 보인다.
o 귀로 더듬는 세상의 모습
o 숲에 눈이 쌓이면 눈에 덮이는 익명성 속에서 나무들은 편안해 보였다.
o 숲에 내리는 눈은 바람에 따라서 풍경을 열었다가 닫고 지웠다가 다시 돌려놓는다.
o 숲속의 겨울 취위는 한군데로 뭉쳐서 강추위가 되지 않고 추위가 숲에 고루 퍼져서 나무들을 덮고 나무
  들은 추위 속에서 풋풋해 보였다.
o 울음이 너무 멀어서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다
.


공무원으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의 뇌물죄와 알선수재로 가족을 부양한 아비도
민통선 안 국립수목원의 계약직 전속 세밀화가가 되어
고요 속에서 꽃과 나무를 들여다 보는 딸도
그 딸에서 새벽마다 절박하게 무내용의 전화를 해대는 엄마도
다 아득하고 가엾고 그리고 시리다.
갓지은 고슬고슬한 밥에 묻혀 주먹밥으로 엉키고 뭉치는 아버지의 하얀 뼛가루를 읽는 건
차라리 고요함이었고 아늑함이었다고 해두자!
아버지의 죽음과 50여년 만에 늙은 여동생에게 인계된 쌍추쌈이 먹고 싶다는 어린 병사의 고요한 일괄 유골이  
서럽게... 서럽게... 겹쳐진다.

새들은 흩어진 따뜻한 주먹밥을 달게 먹었을까?
목울대가 시큰하다.
묵묵히 입 안에 온기를 넣으며 
나는 내내 고요하고 싶다.

* 조연주!
   박범신의 <은교>가 다 자라면 꼭 그녀 같을 것 같다.
   전혀 다른 두 작가가 만든 두 인물이 묘하게도 하나로 겹쳐진다.
   은교와 연주...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