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1. 1. 31. 06:33
방송작가가 여행을 다녀와서 책을 냈다.
별 유명한 작가도 아니고 특별히 재미난 내용도 아니었던지 그닥 인기있는 책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어느날 잘 알지 못하는 연예인이 자신의 별로 잘 알려지지 않은 책을 방송에 들고 나서 소개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팔린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책이 팔려나갔다.
그는 말했다.
로토에 맞았다고...
내가 생각해도 이건 확실히 대박이다.
그 남자는 그 로토맞은 돈으로 또 다시 여행길에 올랐다.
한 겨울의 아이슬란드로...
해가 지지 않는 백야가 있고, 찬란한 오로라가 하늘에 떠 있는 그곳으로...



<나만 위로할 것>
책은 참 이기적인 제목을 달고 있다.
그러나 여행은 그런거 아닌가?
나만 위로하기 위해서 떠나는 지극히 이기적인 과정...

...... 나의 도시는 내게 영감을 주었고 내가 살아야 할 이유와 목표도 주었다. 가끔 도시를 떠나 한적한 시골이나 전원에 있으면 나는 지루했고, 뭔가 하지 않는 것이 한없이 불안하고 초조했다. 나는 전형적인 도시인이었고 내 도시를 사랑했다.
하지만, 어느 날 병을 얻었다. 그날 이후 나는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이 무서웠고, 꽉 막힌 도로 위에서 견딜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고, 화려하게 빛나는 조명들을 바라볼 때마다 불안했다.
그런 날들이 계속되자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광활한 평야와 사람과 문명이 없는 텅 빈 풍경을 갈망하게 되었다. 그 풍경에는 끝없이 줄지어선 차들도, 화려한 조명들도, 그리고 저마다 다르거나 고집 센 사람들도 없었다. 내가 지금 이야기하는 건 광활한 대자연을 말하는 것 아닌, 말 그대로 스스로 고립된 텅 빈 곳을 동경하게 된 것이다.
나는 그런 곳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강원도의 고한부터 러시아 시베리아 호수, 미국 중부의 사막, 아무도 없고 바다거북만 살고 있는 퍼스의 해변, 눈이 허리까지 내리는 핀란드의 숲, 그리고 낮게 부는 바람소리만이 전부인 아이슬란드...... 이런 곳에서 나는 평온을 만났다. 작동되지 않던 뇌는 제대로 된 생각이라는 걸 하게 됐고, 입만 열면 허황된 꿈을 읊어대던 입은 침묵하게 되었다. 그동안 어긋나 잇던 206개의 뼈들이 다시 재조립되는 기분이 들었다 ......


솔직히 책을 통틀어 마음에 드는 대목은 이 부분 뿐이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감상적인 글들.
저자는 추위속에서 앞니마저도 잃었다는데
책을 통해 읽는 추위는 아무래도 현실적이지 않다.
고립된 텅 빈 곳...
그 곳을 찾고 싶은 열망과 깊은 향수.
이기적인 제목과 그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다.
내가 이 책을 읽은 건...



알랭 드 보통이 아니라면 공항으로 여행가겠다는 사람이 있을까?
그리고 프랑스가 아니라면 작가에게 이런 제안을 한 나라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나 꿍짝이 잘 맞는 조합이다.
책 속에 사진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
공항 한복판에 놓여진 커다란 하얀 책상, 노트북, 그리고 물병과 컵.
뭔가를 열심히 보고 있는 알랭 드 보통.
그가 공항의 안내인인줄 알았던지 여행객들은 그에게 길을 묻는다.
(여기나 거기나 작가를 알아보지 못하는 건 마찬가진가보다. 그래도 알랭 드 보통인데....
 하긴 누가 상상이나 할까? 세계적인 그 알랭 드 보통이 지금 공한 한복판 책상에 앉아 있으리라고...)
2009년 여름, 뜻밖에 알랭 드 보통은 히드로 공항 관계자의 초청을 받았단다.
공항의 첫 "상주작가"가 되어 세계에서 가장 바쁜 공항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권한을 주겠다는 것!
제안을 수락한 그가 일주일동안 공항에서 한 일은
"지켜보는" 일이었다.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을(노동자들), 그리고 공항을 이용하고 있는 사람들을...
유명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리처드 베이커의 사진이
이 이례적인 여행서의 재미와 특별함을 더한다.



...... 만약 화성인을 데리고 우리의 현대 문명을 관통하는 다양한 주제들 - 테크놀로지에 대한 우리의 신앙에서부터 자연 파괴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상호 관계성에서부터 여행을 로맨틱하게 하는 마음과 태도에 이르기까지 - 를 깔끔하게 포착할 수 있는 어떤 장소에 데려가야 한다면, 우리가 가야 할 곳은 공항밖에 없을 것이다. 온갖 소란과 교차 속에서 아름답고 흥미롭게 펼쳐지는 공항 풍경은 현대 문명의 상상력의 중심에 자리한다 ......

1. 접근
2. 출발
3. 게이트 너머
4. 도착

공항만큼 사람을 설래게 하는 시작이 있을까?
어쩌면 모든 마법같은 신기루의 시작은 바로 이곳에서부터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먼 곳으로의 여행의 구체적으로 실감나는 것도.
쉬는 날이면 일부러 공항을 찾는다는 사람의 심정을 나는 알 것 같다.
그는 설래고 싶었으리라.
비록 그게 여행객의 표정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노곤함을 보는 일이 될지라도
공항은 언제나 꿈꾸게 한다.
알랭 드 보통의 말처럼
공항은 현대 문명의 사상력,
그 중심에 확실히 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9. 8. 05:28
 <내가 가장 예뻤을 때> - 공선옥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작가 공선옥!

얼마전 그녀가 올해 7월에 제 24회 만해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소설집 <나는 죽지 않겠다>, <명랑한 밤길>이 그 수장작이라고 하네요. 제가 그녀의 책으로 처음 읽었던 건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 살>이라는 소설이었습니다. 두 여자의 삶이 어찌나 가슴 짠하던지 그만 덜컥 화가 나기도 했죠. 도대체 왜 나는 그녀의 글을 전적으로 이해하는가? 그리고 전적으로 의지하는가? 어느 날은 속이 상하기까지 했습니다.

1964년 전라남도 곡성 출생....

그녀의 말투가, 하다못해 그녀의 글 속에 나오는 투박한 사투리나 함지박만하게 쏟아내는 푸짐한 욕설들이 그토록 낯설지 않았던 건 “곡성”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네요. “전남 곡성군 삼기면....”으로 시작되는 저의 본적지. 그래서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의 대사나 문체들 그리고 느낌들에서 근원적인 포근함과 따뜻함, 그리고 도망가고 싶은 욕구마저도 느끼게 된 거라는 걸 이제는 이해합니다.

“본적지”라는 이름의 고향!

어쩌면 누군가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단지 서류 속에만 존재하는 아버지의 땅일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언젠가는 한번쯤 돌아보게 되는 그런 곳, 실질적이든 아니면 마음 안에서든 찾게 되는 부모의 땅, 그리고 내 생명의 시작이었던 땅.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이 책을 읽으면서 실제로 살아보지 않은 제 본적지에 대한 희미한 동경에 많이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렇다면 이 책 속에 도대체 뭐가 들어 있었던 걸까요?


이미 위로 딸을 셋이나 둔 집에 네 번째 딸이 태어납니다. 부아가 난 할아버지는 이름을 지어달라는 아들에 말에 한마디 합니다.

"니무랄 것! 암꺼나 허라고 혀!”

그래서 네 번째 딸의 이름은 “암꺼나 혀”의 “해금”이 되어 버렸습니다.

순금, 정금, 영금, 해금 그리고 마지막 5번째 딸 영미(“영미”라는 이름은 내리 다섯의 딸을 낳은 어미가 “금”자에 대해 갖는 마지막 반항이자 일종의 시위였던건 아닐지...)

딸 다섯의 넷째 딸이라니, 그 존재성마저도 너무나 희미한 “마해금” 그녀가 이 책의 서술자입니다. 그녀는 이제 스무 살 무렵을 살고 있는, 그리고 광주라는 대도시가 스무 살인 그녀 삶의 근원지죠.

처음 “광주”라는 지명을 봤을 때, 조심스러웠습니다. 그 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가? 그렇다면 어쩐지 자신이 없을 것 같아서요.... 그러나 다행히 이 책은 그런 제 두려움을 살짝 피해갑니다. 그렇다고 아예 관계가 없는 건 아닙니다. 해금은 광주민주화항쟁 때 공중에서 날아오는 유탄에 친구 경애를 잃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은 그들 친구들에게 분명 어떤 형태로든 변화를 가져오죠.

이제부터 우리는 5명의 여자들과 4명의 남자들. 아직 스무 살인 그들의 지나온 시간들을 정해진 순서 없이 마구잡이로 만나야 합니다.

경애의 갑작스런 죽음에 "세상 사람들은 왜 아무렇지 않지?“라고 반문하며 방황하던 친구 수경은 끝내 저수지에 뛰어 듭니다.

느닷없이 남편이 데리고 들어온 두 번째 마누라를 피해 딸의 자취방으로 찾아든 할머니같은 승희 모친은 추위에 떨며 찾아온 딸의 친구 해금에게 따뜻한 밥을 지어줍니다.

꾸역꾸역 울음과 함께 밥을 넘기는 해금에게 그 어미는 말합니다.

"악아, 우지 마라! 사는 것은 죄가 아닌 게로 우지를 마라!“

그렇게 등을 다독여 주던 승희 어머니는 그 밤, 돌아오지 않는 딸을 내내 기다리며 차디찬 딸의 자취방에서 뇌출혈로 사망을 하고, 그 딸은 그 사실에 충격을 받아 친구들 곁을 떠나 헤매다 배부른 모습으로 어느 날 그들 앞에 다시 나타납니다.

승희에게 마음을 주고 있던 누군가는 방황으로 시간을 보내고,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승희와 승희가 낳은 아들 승춘과 함께 따뜻하게 살고픈 꿈을 키워내고 있습니다.

잘 다니던 대학을 그만 둔 친구 정신은 노동자가 되어 민중 해방의 길로 들어서고, 온 동네 자랑꺼리였던 서울대생 승규 또한 학생운동에 점점 더 깊게 참여하게 됩니다.

누군가 생각합니다.

“꼭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같아...”

그리고 도 누군가는 말합니다.

“아무리 죽을 맛이라지만 죽는 것 보단 낫잖아”


돈이 없다며 월급을 밀려온 사장은 젊은 여자를 끼고 관광호텔을 드나들고, 제 노동의 가치가 무시되고 짓밟히는 세상을 실제로 겪은 만영은 사장의 기름진 얼굴 위로 뜨겁고 기름진 고기 석쇠를 던져버립니다. 와이셔츠 공장에 취직을 한 해금은 상대보다 힘이 세다고, 더 많이 배웠다고, 더 많이 가졌다고, 더 우월하다고 믿는 자들이 부리는 오만과 횡포와 모욕과 폭력과 무례함을 이제 조금씩 경험하게 됩니다.

해금은 언제가 친구 정신이 한 말을 떠올립니다.

“그것들과 맞서기 위해선 우선은 그 오만과 횡포와 모욕과 폭력과 무례함을 견뎌내야 한다고. 모든 오만한 자들이, 모든 무뢰배들이 스스로 부끄러워할 때까지, 견디고 견뎌서, 그 견디는 힘으로 우리가 아름다워지자고. 왜냐하면 모든 추함은 모든 아름다움 앞에선 결국 무릎을 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오늘, 저 무뢰배의 오만이 횡행할 수 있는 이 야만의 구조, 이 동물적 상황을 나는 견뎌야만 한다고. 저항하기 위해 견딜 것, 아름다워지기 위해 지금은 견뎌야만 한다고....”

구로공단 여공들의 시위.

해금은 자신이 인간이기 위하여. 그리하여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인간의 시간 쪽으로 돌려놓기 위하여 운동장 한가운데로 달려 나갑니다.

유리를 밟아 피투성이에 퉁퉁 부은 발이 된 해금, 얼굴에 피멍이 든 정신은 승규가 붙잡혀 심한 고문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 승규는 부모에게조차 알리지 못한 체 그대로 군대로 끌려가게 되죠.

보름이면 다가올 아들의 첫휴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승규 모친에게 전해지는 소식.

아들이 군대에서 머리에 총을 쏘고 자살했다는 청천벽력같은 사실.

어미는 내 자식이 그럴리라 없다며 통곡하고 또 통곡합니다.

그 시대, 모든 어미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 통곡은 아마도 그 어미의 모든 일생동안 결코 그치지 않고 이어지리라는 걸 한자리에 모인 친구들 모두 가슴으로 느낍니다.

그들은 생각합니다.

우리는 단지 혹독한 겨울을 견디어내고 있을 뿐이라고.

그들이 가장 예뻤던 때, 스무 살의 겨울 말입니다.


인생에는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온다고 합니다.

“이전”과 “이후‘가 확연히 구분되는 순간 말이죠. 그런 순간은, 예기치 않게 혹은 법칙처럼 결국은 누구에게나 오고야 만다고 합니다.

이 책, <내가 가장 예뻤을 때>가 바로 그 “이전”과 “이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불과 얼만 전에 우리는 “이전”과 “이후”가 구분되는 순간을 지나왔습니다. 어쩌면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광주”라는 지명에 그리고 그 때 그곳을 살아내고 지켜왔던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살아낸 “가장 예뻤던 때”에 말이죠.

빚을 진 자에겐 언제나 “의무”가 남습니다.

언젠가 그 빚을 제 힘으로 갚아야 하다는 실질적인 의무 이외에도 꼭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도덕적인 의무까지도요.

당신이 가장 예뻤던 때? 그때를 당신은 기억하고 있습니까?

그때를 지나왔다면, 혹은 아직 지나오지 않았다면 기억하십시오.

그 순간을 어떻게 살아냈느냐에 따라 당신의 빚이 조금은 감면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요.

모른 척 하고 싶다면 당신은 아마도 평생을 도덕적인 빚쟁이로 살아내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치열하게, 당당하게, 그리고 절실하게

견디라고, 지키라고, 이겨내라고... 그리고 살아내라고

이 책 <내가 가장 예뻤던 때>가 말해주네요.

어쩌면 이 책은,

그러니까 “가장 예뻤던 때”를 살아온 그들이 내게 남겨준 화두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가장 예뻤던 때?”
내게는 그때가 과연 언제였을까요?


* 작가 공선옥의 이력이 참 눈물겹네요.
작가가 되기 전 그녀의 직업은 한달 동안 밤낮없이 일을 해야 손에 19만원을 쥘 수 있는 미싱사였다고 합니다. 우연히 동료가 응모해준 소설이 당선돼서 통장에 입금된 60만원의 거금을 보고 그녀는 무척 놀랐다고 하네요.

먼저, 40만원으로 방을 얻고 그 다음으로 밥상을 샀다는 그녀. 늘 밥상 없이 방바닥에 차려놓고 먹던 밥이 내내 서러웠던 거죠. 뜨거운 밥과 찬을 밥상 위에 차려놓고 아이들을 앉혀 놓고 그녀는 그제서야 말했다고 합니다.

“이제야 살 길이 생겼다”고.....

말하자면, 그녀가 쓴 글들은 전부 생존과 결부된 처절한 사투였던 셈입니다.

밥상 위, 한 술 밥의 의미가 문득 처연하게 느껴집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09. 9. 3. 06:39

<거짓말>,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꽃보다 아름다워>,
<굿바이 솔로>, <그들이 사는 세상>의 작가 노희경.
매번 만드는 드라마마다 이슈메이킹이 되고 지독한 마니아 층을 만들어 내는 그녀.
1966년 생의 드라마 작가 노희경.
그녀의 책이 나온다고 했을 때,
어떤 느낌일지, 그 책 안에서 고스란히 그녀를 느낄 수 있게 될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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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스럽다.
꼭 그녀가 아니어도 상관없는 글이기에...
그녀가 책을 쓴다면 반드시 어떠해야한다는 선입견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나는 마냥 서운하다.
뭘 바랬던걸까, 나는?
트랜드에 연연해하지 않고, 시청률에 과감할 수 있었던 그녀를
고스란히 이 책에서 봐야 한다고 느꼈을까?



나는 한때, 겨벼움을 깊이 없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가벼움에 반대말은 무거움이요, 깊다의 반대말은 얕다인데
가벼움의 반대말을 깊다로 착각하고 무거움과 깊다를 동의어로 착각했었다.

그러니까, 나도 이 책을 보면서 그랬던 거다.
너무 가볍다고.... 깊이가 없다고....
내가 정당하지 않다는 건 알겠는데,
그리고 다 이해는 하겠는데 그래도 왠지 나는 책이 낮설다.



인간을 미워하는 것은 이해심이 없어서이고,
세상을 미워하는 것은 세상에 대한 무지에서 온다.
....진실이나 사실이란 말은 함부러 써선 안 된다.
모든 기억은 내 편의대로 조작될 수 있다는 것,
그대와는 무관한 어떤 것일수도 있다.

그래, 어쩌면 내가 너무 무지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믿음보다 눈물보다 먼저 요구하는 것,
그것은 대상에 대한 끊임없는 관찰과 예민함이다.
그 예민함과 관찰은 실제의 시간보다 훨씬 느리고 길게 간다.
... 어리석다.
사랑할 대상을 미워할 대상으로 바꿀 오기가 있으면서 내 잘못을 돌아볼 용기가 없었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란다.
자신에게 사랑받을 대상 하나를 유기했기에......
매일 아침마다 108 배의 절을 하고,
단 하루라도 글 쓰기를 빼먹지 않는 작가.
드라마작가를 꿈꾸는 사람에게
노동자의 기본 근무시간 8시간을 지키는 성실한 노동자가 되라는 뼈아픈 충고를 하는 사람.
궁금하다.
그녀는 왜 이런 일기성 글을 에세이집으로 남겼을까?
이 책은 너무나 요즘의 트랜드에 딱 맞는 책이기에
어쩌면 나는 더 당황하고 어색했는지도 모르겠다.

오래된 기억 하나,
나도 그랬었다.
한때 어설프게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다는 환상에
방송작가협회 교육원에서 주관하는 드라마 작가 교육을 신청하기 위해 여의도에 갔더랬다.
(그때 나는 부끄럽게도 내가 드라마라면 그래도 좀 쓸 수 있을 거라는 엄청나게 무지하고 자기기만적인 착각에 빠져 있었더랬다....)
대학시절 어린 마음에 모아놓은 돈도 없으면서 찾아간 방송작가협회 교육원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100만원 정도의 수업료가 필요했다.
그냥 돌아왔던 발거음...
문득 그날의 기억이 덜컥 목에 걸려 넘어온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않는 자, 모두 유죄>
유기한 사랑보다, 유기한 기억때문에
지금 나는 유죄가 될 것 같다...

그녀의 꽉 찬 글이 문득 그립다.
그녀가 썼던 아름다운 드라마를 책에서 만나길 기대했던 건,
혹 내 욕심이었을까?

<화양연화>, <해피투게더>를 이야기하는 그녀의 글
그리고 내가 한때 중독처럼 읽었던 이성복의 시 <뼈아픈 후회>
나와 같은 느낌을 또 다시 만나다....

마른 등을 가진 강팍한 여자를 보면 나는 서럽다.
그 삶이 가진 너덜거리는 예민함의 공포를 알기에....
그녀,
치열했겠다. 아팠겠다.
그리고 외로웠겠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