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0. 5. 21. 12:48
"연극열전 시리즈3"의 다섯 번째 작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좀 특별하게 기다렸던 연극이었다.
예매도 일지감치 했었고...
공교롭게도 나중에 잡힌 세미나와 겹쳐지는 바람에
세미나 중간에 두시간 정도 도망(?)치는 결과까지 초래하게 만든 연극이다.
(다행히 세미나가 서울대병원이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최고의 드라마 작가 노희경이 1996년도 자신의 동명 드라마를 연극 대본으로 만들고
"베토벤 바이러스"의 PD 이재규가 직접 연극 연출을 했단다.
두 사람만의 조합으로도 끔찍하게 궁금했었다.
(그러면서도 생각했다. 이 연극을 표민수 PD가 연출했다면... 하고) 
1996년 MBC에서 방영했다는 이 드라마를 나는 보지 못했었다.
주현, 나문희, 김영옥, 이민영, 이종수
이들이 한 가족으로 나왔단다.
그리고 2010년 나는
최정우, 송옥숙, 이용이, 박윤서, 이현응이 만든 가족 이야기를
연극이라는 전달 수단을 통해 바라본다.




이 세상 모든 이야기들의 근원은 "가족"이라고 했던가?
함께 있음에 충분히 말하지 못하고 전하지 못하게 되는 모든 감정들이
아내의,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을 통해 전면에 등장한다.
뻔한 이야기에 뻔한 결말인데
그리고 그걸 다 알고 있는데
공연장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통곡보다 깊고 서러운 눈물을 흘린다.
나는 참 많이 불편해졌다.
울어야 하는데... 울어야 하는데...
어쩌면 내게 "가족"이란,
솔직한 감정의 표현조차도 도저히 불가능한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느낌은 "감히..."에 닿아있다.
반성보다 더 깊은 죄책감이 오히려 두 눈을 부릅뜨고 버티게 했는지도...
그날 아마도 나는 공연장에서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는
최고로 "독한년"의 모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치매에 걸린 노모, 의료사고로 월급쟁이 의사가 된 남편,
삼수생 아들, 대학졸업 후 피곤한 직장인이 된 딸.
거기다 도박에 빠진 동생에 지지리 궁상 올케까지...
그리고 불현듯 선고된 자궁암 말기의 "며느리이자 아내이자, 엄마이자 누나"인 한 여자.
굳이 노희경식이 아니더라도 신파의 모든 요소가 이 연극 속에는 다 들어있다.
자, 우리는 이미 완벽하게 준비가 다 됐다.
이제 앉아있는 너희들도 울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는가....
꼭 그렇게 묻는 것 같다...
극장을 나서면서 "가족"을 생각하면 좋겠다고 연출가 이재규는 말했는데
나는 극장을 나서면서 "가족"이 아닌 "드라마"를 생각했다.
어쩐지 내겐 현실적이지 않다.
자신이 죽은 후 가족들을 힘겹게 할 치매 노모를 생각하며 함께 죽자며 목을 조르는 장면도
아들이 아버지에게 대학 발표날까지만이라도 엄마를 살아있게 해달라고 울먹이는 장면도
딸에게 "말 안해도 알지? 넌 나야!"라고 말하는 주인공의 대사에도
난 불안한 눈만 껌벅인다.

어.쩌.지?
난 참 많이 불편해지고 말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
내겐 "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이별"이 되고 말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09. 9. 3. 06:39

<거짓말>,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꽃보다 아름다워>,
<굿바이 솔로>, <그들이 사는 세상>의 작가 노희경.
매번 만드는 드라마마다 이슈메이킹이 되고 지독한 마니아 층을 만들어 내는 그녀.
1966년 생의 드라마 작가 노희경.
그녀의 책이 나온다고 했을 때,
어떤 느낌일지, 그 책 안에서 고스란히 그녀를 느낄 수 있게 될지 궁금했다.

dl

당황스럽다.
꼭 그녀가 아니어도 상관없는 글이기에...
그녀가 책을 쓴다면 반드시 어떠해야한다는 선입견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나는 마냥 서운하다.
뭘 바랬던걸까, 나는?
트랜드에 연연해하지 않고, 시청률에 과감할 수 있었던 그녀를
고스란히 이 책에서 봐야 한다고 느꼈을까?



나는 한때, 겨벼움을 깊이 없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가벼움에 반대말은 무거움이요, 깊다의 반대말은 얕다인데
가벼움의 반대말을 깊다로 착각하고 무거움과 깊다를 동의어로 착각했었다.

그러니까, 나도 이 책을 보면서 그랬던 거다.
너무 가볍다고.... 깊이가 없다고....
내가 정당하지 않다는 건 알겠는데,
그리고 다 이해는 하겠는데 그래도 왠지 나는 책이 낮설다.



인간을 미워하는 것은 이해심이 없어서이고,
세상을 미워하는 것은 세상에 대한 무지에서 온다.
....진실이나 사실이란 말은 함부러 써선 안 된다.
모든 기억은 내 편의대로 조작될 수 있다는 것,
그대와는 무관한 어떤 것일수도 있다.

그래, 어쩌면 내가 너무 무지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믿음보다 눈물보다 먼저 요구하는 것,
그것은 대상에 대한 끊임없는 관찰과 예민함이다.
그 예민함과 관찰은 실제의 시간보다 훨씬 느리고 길게 간다.
... 어리석다.
사랑할 대상을 미워할 대상으로 바꿀 오기가 있으면서 내 잘못을 돌아볼 용기가 없었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란다.
자신에게 사랑받을 대상 하나를 유기했기에......
매일 아침마다 108 배의 절을 하고,
단 하루라도 글 쓰기를 빼먹지 않는 작가.
드라마작가를 꿈꾸는 사람에게
노동자의 기본 근무시간 8시간을 지키는 성실한 노동자가 되라는 뼈아픈 충고를 하는 사람.
궁금하다.
그녀는 왜 이런 일기성 글을 에세이집으로 남겼을까?
이 책은 너무나 요즘의 트랜드에 딱 맞는 책이기에
어쩌면 나는 더 당황하고 어색했는지도 모르겠다.

오래된 기억 하나,
나도 그랬었다.
한때 어설프게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다는 환상에
방송작가협회 교육원에서 주관하는 드라마 작가 교육을 신청하기 위해 여의도에 갔더랬다.
(그때 나는 부끄럽게도 내가 드라마라면 그래도 좀 쓸 수 있을 거라는 엄청나게 무지하고 자기기만적인 착각에 빠져 있었더랬다....)
대학시절 어린 마음에 모아놓은 돈도 없으면서 찾아간 방송작가협회 교육원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100만원 정도의 수업료가 필요했다.
그냥 돌아왔던 발거음...
문득 그날의 기억이 덜컥 목에 걸려 넘어온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않는 자, 모두 유죄>
유기한 사랑보다, 유기한 기억때문에
지금 나는 유죄가 될 것 같다...

그녀의 꽉 찬 글이 문득 그립다.
그녀가 썼던 아름다운 드라마를 책에서 만나길 기대했던 건,
혹 내 욕심이었을까?

<화양연화>, <해피투게더>를 이야기하는 그녀의 글
그리고 내가 한때 중독처럼 읽었던 이성복의 시 <뼈아픈 후회>
나와 같은 느낌을 또 다시 만나다....

마른 등을 가진 강팍한 여자를 보면 나는 서럽다.
그 삶이 가진 너덜거리는 예민함의 공포를 알기에....
그녀,
치열했겠다. 아팠겠다.
그리고 외로웠겠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