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가는 아내에게'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5.21 달동네 책거리 46 : <늙어가는 아내에게>
  2. 2009.04.20 달동네 책거리 42 :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달동네 책거리2009. 5. 21. 23:38


 


늙어
가는 아내에게
- 황지우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지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곱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 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 보이는 게야


생각나?

낡은 목조 적산 가옥이 많던 동네의

어둑어둑한 기슭,

높은 축대가 있었고, 흐린 가로등이 있었고

그대의 집, 대문 앞에선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바람이 불었고

머리카락보다 더 가벼운 젊음을 만나고

들어가는 그대는

내 어깨 위의 비듬을 털어 주었지


그래서, 그래서,

내가 살아나야 할 이유가 된 그대는 차츰

내가 살아갈 미래와 교대되었고

이제는 세월이라고 불러도 될 기간을

우리는 함께 통과했지

살았다는 말이 온갖 경력의 주름을 늘리는 일이듯

세월은 넥타이를 여며주는 그대 손끝에 역력하지


이제 내가 할 일은

아침 머리맡에 떨어진 그대 머리카락을

침 묻힌 손으로 집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일 것이야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

힘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괜찮았지?

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때나 가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때나 가서 할 수 있는 말일 거야



혹시 얼마 전에 제가 이곳에 소개했던 황지우의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에>를 기억하시나요? 그 글을 올리면서 기회가 되면 그 시인의 또 다른 시 <늙어가는 아내에게>도 소개해드리겠다고 했었는데...

마침 오늘이 부부의 날이라 이 시를  올립니다.

전문은 이것보다 조금 더 긴데 제가 일부 삭제하고 올렸습니다.(다분히 의도적으로요..)

함께 늙어 가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임자, 우리 괜찮았지?”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 부부의 삶은 정말 찬란했다 말할 수 있겠죠.

황혼은 그래서 세월과 함께 아름다워 지는 모양입니다,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지금

아름답게 늙어가고 있는지...
당신 옆에 그 사람과 함께.. 

평생을 손 잡고 함께 갈 사람,
그 사람이 당신의 평온입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4. 20. 23:37
 


게 눈 속의 연꽃(문학과지성시인선 97)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 지 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지국은 

내 가슴에 서성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설레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 .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서성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오랜만에 시 한 편 소개하려고 합니다.

기형도, 황지우, 이성복....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인 트로이카입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나머지 두 분의 시도 소개해드리고 싶네요......)

황지우님의 시 중에서 또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 3편을 꼽으라면...(누가 꼽으라고 한 것도 아닌데.... 혼자 신난 것 같습니다)

<뼈아픈 후회>, <너를 기다리는 동안>, 그리고 <늙어가는 아내에게>

이렇게 세 편입니다.

<뼈아픈 후회>는 나를 반성하게 만드는 시고, <늙어가는 아내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보는 느낌의 시입니다. 그리고 오늘 소개하는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란 시는 연시(戀詩)이면서 동시에 절망 속 희망을 노래하는 시입니다.

시인 황지우님은 1952년 생으로 1980년 광주항쟁에 연루되어 고문을 받은 이력이 있는 시인이자 번역가이자 그리고 조각가에 대학총재이기도 합니다.
한 사람이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다니.... 역시 천재가 확실한 듯...
(저 10년도 훨씬 전에 인사동에서 있었던 이분 조각전에도 갔더랬습니다. 조각전 이름이 “뼈아픈 후회”였고 브론즈 작업이 대부분이었는데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야말로 똘망똘망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되버렸네요...^^).

이 시는 그의 네 번째 시집 <게 눈 속의 연꽃>이란 시집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시가 만들어지게 된 에피소드도 재미있습니다.

1986년 시인이 지명수배 되어 도피생활을 할 때 가장 많이 있었던 곳이 신문사 도서관이었다고 합니다.
(대단한 아이러니 아닙니까??? 등잔 밑이 어둡다는 우리네 말이 정말 딱 진실이네요....)
그러다 그 신문사에서 발행하는 하이틴 잡지에 근무하는 선배를 만났다고 하네요. 그 선배의 부탁으로 5분 만에 탄생한 시가 바로 이 시라고 합니다,
그 뒤에 적작 본인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시를 당시 성우 김세원 씨가 어느 FM 방송에서 낭송한 뒤로 여러 사람이 찾는 시가 됐다고 하네요.

그런 경험 다들 있지 않나요?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던” 경험....

그러다 “오지 않을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내가 너에게로 갔”던 경험....

혹 가슴 설레며 지금 누군가에게 서성이고 있지는 않은가요?

그렇다면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해서, 그리고 아주 먼 데서라도 천천히 그 사람에게로 계속 가라고 꼭 전해드리고 싶네요.

시인의 말을 빌려 봅니다. 

‘기다림이 없는 사랑이 있으랴.

희망이 있는 한,

희망을 있게 한 절망이 있는 한.

내 가파른 삶이 무엇인가를 기다리게 한다.’.....


힘든 하루였습니다.

비까지 와서 그런지 약간의 울증 상태로 넘어왔네요.
햇살 좋은 남산이 생각났습니다.

돗자리를 깔고 햇빛 아래서 한 세 시간 정도 책을 읽을 수 있다면 마음이 치료되겠구나 하는 생각...

내가 지금 뭘 기다리고 있나???

희망? 아니면 절망?
그리고는,
이 시가 생각났습니다.

어디서 누군가 열리는 문을 바라보며 나일 것이다를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를거란 느낌...
분명한 건,
이 시가 확실히 위로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