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스 카잔차키스'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4.04.09 <그리스 미학 기행> - 김진영
  2. 2014.03.17 <수난 1,2> - 니코스 카잔차키스
  3. 2014.03.12 헤르메스 (Hermes)
읽고 끄적 끄적...2014. 4. 9. 08:16

책을 읽는 중간 중간 후회가 밀려드는 책이 있다.

두 가지 이유로.

내가 왜 이 책을 읽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면서 그야말로 기계적으로 책장을 넘길 때,

그리고 지금처럼 왜 좀 더 빨리찾아 읽지 않았을까 하는 자책 비슷한 감정에 빠질 때.

"타이밍"이라는 거,

참 절묘하구나 비켜가는구나...

이 책을 그리스 여행 가기 전에 읽었었다면,

아마도 내 여행의 걸음과 느낌과 veiw는 정말 많이 달랐으리라.

Fira의 빛나는 태양 아래 그렇게 아낌없이 넋을 잃기만 하진 않았으리라.

여행자의 관광에 밀려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던 원주민의 가난한 삶.

그걸 나는 여행 내내 외면했다.

아니 단 한 번도 밀려난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품지도 못했다.

빠듯하게 계획한 여행도 아니었는데 그때는 왜 그랬을까?

이 책 한 권만 먼저 만났었다면...

왜 나는 저스트 고나 프렌즈 시리즈를 찾아봤을까?

얼마나 실용적인 여행을 하겠다고!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을 읽기까지 좀 망설였다.

미학 기행이라니...

어딘지 젠체하는 기분도 들었고

게다가 저자의 모습은 미학을 논하기에는 소위 말해 새파랗게 젊어 보이기까지 했다.

'자기가 무슨 이윤기라도 된다고 생각하나!"

살짝 빈정이 상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랬는데...

책장을 넘기면서 수없이 되뇌었다..

정말 멋지다. 이 책!

그리스의 바람과 햇빛이 시간을 품고 고스란히 글 속에 담겨 있다.

 

길의 감촉,

그 서걱거리는 황홀한 소리를 저자는 다 듣었고 느꼈고 만졌다.

...... 걷는다는 것은 머리가 아닌 몸으로 생각하는 방법이다. 몸으로 생각하는 경험은 훨씬 직관적이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은 메모장과 연필 그리고 논리력이 필요하다. 질문 대부분이 구체적 형상이 없이 물음과 답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몸으로 생각하는 경험은 걸으며 닿는 길의 감촉, 목덜미를 감싸게 하는 바람, 등을 데우는 태양까지도 기억한다. 물론 이런 경험은 대화를 통하기보다 제 몸에 귀 기울일 때 가능하므로 혼자하는 여행에서 더 큰 법이다. 무엇보다 '걷는 생각'은 억지로 하는 생각과는 전혀 다른 수월한 방법이다. 억지스런 생각이 반드시 그 자리에서, 무언가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라면 '걷는 생각'은 자리를 벗어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벗어나는 행위, 걸으며 생각하는 해방감이다. 그리고 영감은 바로 이 자유로운 순간순간에 온다 ......

"걸으며 생가하는 해방감"

머릿속으로 바람이 치는 그리스의 종소리가 울린다.

...... 내게 여행은 느긋함보다는 치열함이었다. 여행을 떠나는 순간부터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꺼져가던 열정을 다시 사리기 위해서 걷고 또 걸었다. 지독하게 걸어 오르고 그곳에서 묻고 대답한다. 왜 여기 있는지, 왜 나였는지, 이제 어디로 가는지 그야말로 끊임없이 '물음'을 적어간다 ......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보면서 나는 시간을 생각했다.

신전 위를 가득 덮고 있던 구름도

사납게 옷길을 날리던 바람도 다 고대로부터 오는 시간이었다.

오래 침묵하게 만드는 시간.

그렇게 그리스의 시간은 과거로 향해 있었다.

나는 짬짬이 그 시간의 간격을 더듬어가며 시간의 거리를 좁혔다.

 

그리스...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곳이다.

다시 가게 될 일이 있을가 싶어 잠깐 머무르는 시간 동안 발걸음이 바빴다.

플라카 지구를 밤늦게 산책할 때도

인심좋은 주인장이 잔돈이 없다며 엽서 10장을 그냥 가져가라고 줄 때도

다시 올 일 없는 이곳에서 참 고마운 기억을 담는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는 다시 그곳을 꿈꾸게 됐다.

꼭 뭘 보겠다는 소망이 생긴건 아니다.

단지 그곳에서 햇빛 속에 오래 앉아 불오나전한 나를 느껴보고 싶어졌다.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상징들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면서

"Carpe Diem"와 "Memento Mori"를 좌우에 거느리고 고대의 제전에 혼자 빠져 보고 싶다.

그러나 예언같은 신탁을 받게될지도.

 

이 책은,

너무 짧았던 그리스에서의 시간을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니체와 베르그송을,

심지어 아폴론과 디오니소스까지도 내내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욕망과 멀어지기 위해 메테오라 그 깊은 수도원을 스스로 오른 수도자의 절실함.

그 절실함이 나를 부른다.

니체와 베르그송, 니코스 카잔차키스에게 길을 물어

그곳을 찾아가야겠다.

스스로 봉쇄를 선택한 간절함에 답하기 위하여!

신탁이 제우스의 번개처럼 내 몸을 후려친다고 해도

 

 

* 여행을 귀중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두려움이다  - 니체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묘비명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4. 3. 17. 08:17

그리스의 대문호 니코스 카잔차키스.

우리나라엔 <그리스인 조르바>로 잘 알려진 그에게 지금 빠져있다.

<수난1,2> 권을 폭풍처럼 읽어내면서 내내 생각부터 했다.

너무 일찍 이 책을 읽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그리고 주제 사라마구의 <예수복음>을 읽은 상태로 이 책을 만나서 다행이라고!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이제부터 나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작품들을 일부러 찾아서 읽게 될 것이다.

 

그리스의 작은 마을 "리코브리스"

그리스도의 수난극을 위해 시민들을 대상으로 각각의 역할을 정하는 마을의 원로들.

양치기 마놀리오스에게는 "예수"의 역할이 주어진다.

베드로와 유다. 야고보, 요한그리고 마리아까지...

그러다 이 풍요로운 마을에 유랑민들이 들어온다.

터키의 침략으로 삶의 터전을 빼앗긴 그들은 리코브리스에 도움을 요청한다.

자기의 것을 나눠야 하는 상황 앞에서.

인간은 아주 필사적으고 구체적으로 이기적이 된다.

소위 말하는 지도자의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위선과 욕망.

그걸 이 작품은 아주 민망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역할극은 이제 더 이상 역할극이 아닌 현실이 된다.

또 다시 "예수"를 핍박하는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다.

 

...... 헛되군요, 나의 예수님.

       2천년이 지났는데도 인간들은 여전히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있지 않습니까?

       도대체 언제쯤이면 당신은 다시 태어나 이번만큼은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고

       우리 가운데서 영원히 사실 겁니까? ......

 

조물주의 창조는 늘 반복되고

그래서 인간의 창세기도 늘 반복된다.

당연히 인간의 출애굽기도 반복되고

예수의 골고다 고난도 반복된다.

구약과 신약의 끝없는 반복.

수없이... 수없이... 몇 번씩 반복되고 있는 예수의 십자가 고난.

인간은 자기 자신이 못 박히기 전까지는 결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다.

그게 인간의 불행이고,

인간의 역사다!

 

인간의 사악함은...

신의 창조 그보다 훨씬 더 멀리까지 가버렸다.

그래서 이젠 신조차도 어쩌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저 수없이 못박히는 예수만 보낼 뿐...

 

그랗다면 예수는,

앞으로 몇 번을 더 못박혀야 할까?

감히 신에게 부탁하고 싶다.

이제 인간을 버리라고...

Posted by Book끄-Book끄
그냥 끄적 끄적...2014. 3. 12. 08:23

요즘은 일기같은 이런 소소한 일상들을 기록하는데 은근히 재미를 붙였다.

읽었던 책에 대한 간단한 느낌도

미뤄둔 공연 후기도 써야 하는데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

일상이라는 말.

어쩐지 눈물겨워서...

꾸역꾸역 살아내는 평범하고 조용한 날들이

책을 읽기엔 오히려 평온하다.

 

그리스의 국민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사실은 좀 망설였던 작가인데 드디어 용기를 냈다.

열린책들에서 2008년에 출판된 2권짜리 소설 <수난>.

이 책이 나의 첫 니코스 가잔차키스의 작품이 됐다.

이제 고작 70여 페이지를 넘긴 것에 불과하지만 마음이 조금 사로잡혔다.

"주제 사라마구'의 <예수복음>의 뉘앙스가 느껴져 어딘지 낯설지 않다.

아마도 내 작가 목록에 또 한 명이 뒤늦게 합류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버킷 리스트같은 목록들이 차곡차곡 쌓인다.

뭐가 됐든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목록 하나 가지고 있다는 건 나쁘지 않다.

평생 함께 갈 동반자가 되어 줄테니까.

배신이나 변심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그것도 참 좋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덕분에

"헤르메스(Hermes=Mercury)"에 대해서 생각하는 중이다.

제우스의 전령사로 알려져있는 헤르메스.

"큐피트"와 자주 혼동되는 헤르메스는

머리에는 날개 달린 챙 있는 모자를, 발에도 날개 달린 샌들을 신고 있다.

그리고 손에는 두 마리 뱀이 대칭으로 감겨있는 지팡이 카드케우스를 들고 있는데

이 지팡이가 제우스의 뜻을 잔하기 위해 사람의 꿈 속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도구 역할을 한다.

서로 대립되는 이해관계를 균형 있게 조정해 내는 탁월한 솜씨 때문에

상인들이 모시는 상업의 신이기도 하고,

전령으로서 온갖 길에 환하기 때문에 여행자들의 수호신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고대의 유적들 가운데는 십자로의 돌무더기나 기둥 위에 헤르메스의 상체를 깎아 세운 이정표들이 많았단다.

(이 이정표를 "헤르메니아"라고 부른다.) 

헤르메니아엔 길을 잘 아는 헤르메스가 옳은 길을 찾도록 인도해 줄 뿐만 아니라,

헤르메스 특유의 기지와 꾀를 빌려 여행길의 온갖 위험으로부터 보호받기를 바라는 고대인들의 소망이 담겨있다.

게다가 헤르메스는 이승과 정승, 꿈과 현실을 마음대로 오갈 수 있어서 죽은 이를 저승으로 안내하는 역할도 종종 했단다.

그냥... 요즘 내가

이승과 저승, 꿈과 현실, 과거의 미래, 이곳과 저곳

그 중간 어디쯤에 살고 있는 것만 같아서...

그러니까 지금 나는 "헤르메스'의 시간 속에 있다.

상관없다.

계속 가다보면 헤르메니아를 만나게 될테니까.

 

길은 늘 있었다.

선택의 문제였을 뿐.

 

Posted by Book끄-Book끄